00033 움트는 새싹 =========================================================================
“뭐냐 그 인형은?”
그녀의 방에서 뒹굴뒹굴 거리는 에이든이 물었다. 앤은 왜 이제 왔냐고 웃었는데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막내 도련님이 싫다는 티를 대놓고 내고 있었다.
“앤, 내가 잘못했나봐.”
“.........”
그녀는 멍하게 말했다. 아까 받은 충격은 잊을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를 탓하듯 몰아갔다.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선은 수없이 받아보았으나, 그렇게 쏘아보는 다수의 시선을 받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아가씨? 그 인형은 뭐고요.”
“백작 영애가 준 인형을 받았는데. 갑자기 영애가 울음을 터트렸어. 그래서 돌려주겠다고 하는데 백작 부인께서 필요가 없다고 하셔서.......”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진지 모르겠다. 그녀는 다니엘이 그녀를 외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충격이었다. 에이든이 말했다.
“아니 인형을 줘 놓고선 자기가 왜 울어?”
“나도 모르겠어.......”
앤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다가 실소를 지었다.
“그 꼬마 아가씨가 재밌는 짓을 벌이네요.”
“응?”
그녀가 올려보자 앤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 모르겠어요? 백작 영애께서는 아가씨에게 싸움을 걸고 있는 거에요.”
“.........”
“귀족들의 싸움이라는거죠 뭐.”
“그게 뭐야, 이상해.”
에이든이 그걸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지 않아, 분명 환하게 웃고 있었는걸?”
“.........”
앤이 그 순진한 얼굴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앤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가씨의 지위를 이용해서, 아나블라 아가씨의 인형을 빼앗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할 거에요.”
“말도 안돼, 나는 정말 아닌걸? 나는 알다시피 더 예쁜 인형이 있단말이야.”
“네, 알아요.”
앤이 대답했다. 그녀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런 상황을 만든 걸까? 이미 그녀는 천민 출신이기에 평판은 바닥이었고,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왜 굳이 그녀에게 싸움을 거는 것인가. 사실 비올렛은 남들이 자신을 싫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함에 있어서는 다른 아이들보다는 조숙한 편이었다. 그녀는 사람이 가식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가식적인 사람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모함하여, 몰아간다는 것 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비올렛은 아나블라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야, 나만 믿어.”
에이든이 말했다. 물론 비올렛은 그를 믿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 있었다.
*
그리하여, 비올렛은 조용히 방 안에 있었다. 날은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지만 그 추운 겨울 날 보다 더욱더 비올렛은 방에 머물렀다. 다니엘을 찾아가 볼까 했지만, 그때마다 아나블라와 다니엘이 같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냥 방에 돌아왔다. 아나블라는 확실히 사랑받는 귀여운 아가씨였다. 여러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밖을 나다니는 그녀와 아나블라의 성격은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에 한 번은 앤과 다른 하녀가 험악한 분위기 까지 간 적이 있었다.
다행이도 다들 앤은 무서워 했으므로 그녀에게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다. 에이든은 뭐가 그렇게 신이난지 그녀를 보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를 몰랐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일을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날이 따뜻해져 기분전환 삼아 화단에 나올 때였다.
“꺄아아악!”
아나블라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나블라의 치마가 중력을 무시하며 하늘높이 치솟았다. 비올렛은 그것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왜? 너한테 인형을 뺏었다고 누명을 씌웠잖아.”
에이든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는데, 비올렛은 아나블라가 엉엉 울자 얼굴을 찡그렸다. 이럴줄 알았다.
“흑, 성녀님, 누명을 씌우다니요. 전 정말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요. 설마 에이든오빠에게 그렇게 말한건가요?”
“..........”
“너무해요, 오빠를 시켜서 절 이렇게 괴롭히려고 한 거죠?”
“야, 누가 그랬다고 그래! 그거 내가 한거야.”
에이든이 어이가 없어서 소리쳤다. 이때 앤 역시 뭐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에이든 오빠는 이런적이 없었어요, 성녀님을 만나고 나서 이렇게 된거잖아요.”
“.........”
“저는 다 봤어요, 에이든 오빠가 제 신발에 넣을 벌레를 잡아 오면서 성녀님께 즐겁게 대화하던 것을.”
“에이든은 그런 말 한적이 없어요, 영애.”
비올렛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또 왜 이러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으니 어떤 행동을 할지 몰랐다. 비올렛의 생각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업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올렛은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감도 잡지 못했다.
“영애야 말로 왜 저를 싫어하세요? 저는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요. 저에겐 후작님께서 선물로 주신 인형이 있었고 영애의 인형은 필요하지 않았어요. 왜 그것을 주고 울었나요? 저는 그것을 주라고 강요하지 않았어요.”
그녀의 말에 에이든이 맞아, 맞아!라고 하자 앤이 에이든을 말렸다. 아나블라가 흑,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무슨 일이니?”
아나블라의 울음소리는 컸고, 마침 다니엘이 이곳으로 왔다. 다행이라 할 것은 놀기 좋아하는 백작 부인이 잠시 출타중이라는 사실이었다.
“에이든 오빠와 성녀님께서 둘이서 저를.......”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에이든이 빽 소리쳤다. 목청이 높아지자 아나블라의 뒤에 서 있던 그녀 쪽 시녀들이 수군거리며 다니엘에게 말했다.
“맞아요 도련님! 아나블라 아가씨는 막내 도련님께 자꾸 괴롭힘 당했어요.”
“맞아요, 저도 봤어요.”
그들은 수군거렸다.
“야, 내가 얘를 괴롭히는거랑 쟤랑 뭔 상관인데?”
에이든이 입을 삐쭉였다.
“성녀님께서 막내 도련님께 시켰단 말이에요, 나 참, 뻔뻔하기도 하셔라.”
“꽃의 거리에서는 못된것만 가르치나 보죠?”
“자중하지 못해?!”
다니엘이 소리쳤다. 언제나 부드러운 다니엘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하녀는 움츠러 들었지만 잘못은 없다는 듯 눈은 도도하게 내리깔고 있었다.
“꼬, 꽃의 거리?”
에이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얘가 그곳에서 왔단 말이야?”
그 말에 다니엘이 재빨리 말했다.
“너는 입을 다물어.”
비올렛은 에이든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낯설다는 것을 느꼈다. 꽃의 거리 출신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앤이 말했다.
“아가씨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세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에이든 도련님 께서는 성녀님 방에만 들락날락 거리시는걸요.”
“그렇다고 성녀님이 에이든 도련님을 조종했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발상인거죠?!”
그녀가 날카롭게 소리치자 아나블라의 하녀들은 입을 다물었다. 서슬퍼런 앤의 목소리가 주는 힘은 컸다. 위계질서로 따지자면 앤은 집사의 딸이었고, 에셀먼드와 거의 같이 자라 온 하녀였다. 다니엘이 앤을 바라보았다.
“너를 완벽하게 믿을 수 없다는 점 알거라고 믿어.”
그는 부드럽게 말하며 아나블라와 비올렛을 보았다.
“그리고 성녀.... 아니, 비올렛, 좀더 친해질 수는 없는 거야?”
“........”
“너희들 둘다 마찬가지야. 하지만 비올렛. 성녀님이면 성녀답게 자비를 보여줘.”
그 말에 그녀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성녀답게 보여야 할 자비란 어떤 것일까. 그녀가 다니엘의 얼굴을 보자 다니엘이 확인사살을 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먼저 사과해.”
“.........”
난 잘못한게 없는데. 비올렛은 뻣뻣하게 굳었다. 후작 가에 입양이 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사과하는게 어려워 졌을까. 비올렛은 다니엘의 엄한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아나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망설임의 시간은 짧았다. 비올렛은 너무도 쉽게 말했다.
“제가 영애를 오해한 것 같습니다. 영애, 미안해요.”
그녀가 사과하자 아나블라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성녀님, 저는 너무 기뻐요.”
그리고 그녀는 비올렛을 껴안았다. 그리고 그녀가 귀에 속삭이는 거다.
“천하디 천한 것이 어딜 감히, 나한테 해볼 수 있을것 같니?”
그녀가 놀라서 아나블라를 바라보자, 아나블라는 언제나 처럼 천사같은 얼굴로 미소지었다.
“그러는 의미에서, 한가지 부탁 드려도 될까요?”
그녀는 웃으면서 손가락을 가리켰다.
“앤, 제가 묵을 동안, 앤을 잠시 제게 주시겠어요?”
“.........”
“그녀는 원래 항상 저를 모셨답니다.”
비올렛은 아나블라를 바라보았다. 아가씨, 라고 그녀를 나지막하게 부르는 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아가씨를 모시는건 에드 도련님의 명령으로 인해 여기 있는 겁니다.”
에셀먼드가 앤을 여기에 붙였다고? 정말? 앤은 분명 좋은 친구였다. 비올렛은 의외로 처음 알게 된 사실에 놀라 그녀를 보았다.
“내가 에드 오빠에겐 말 할거야. 오빠는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었으니 문제 없어.”
그녀가 앤을 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천사같은 미소를 짓는 그녀의 얼굴이 소름끼치도록 악독하게 느껴졌다. 비올렛은 싫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분명 에셀먼드는, 그 잔인한 첫째 도련님은 허락할 것이다. 그것이 무슨 잘못이 되는 것은 아닐까. 앤에게 무슨 피해가 가면 어떡하지?
“겨우 일주일이야 비올렛.”
“도련님!”
“지금 형 대신 내가 있어, 여기 책임자는 나야.”
다니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비올렛은 그 표정에 눈을 감으며 포기했다.
“알았어요.”
“아가씨!”
앤이 소리쳤다.
“영애를 잘 모셔드려.”
비올렛의 얼굴에는 체념이 서려 있었다. 아나블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나 고마워요, 성녀님의 은혜에 감사드려요.”
천사같은 미소이지만 이젠 비올렛은 그 미소를 믿을 수가 없었다. 방에 들어오자 하녀들 중 한명이 그녀에게 차를 내왔다. 눈을 조용히 내리깐 채 하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그녀를 싫어하는 하녀들 중 하나일 것이다. 아마 토미를 따라 밖에 나간 시점에서 사용인들은 그녀를 멀리했다. 사실 분노를 받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섬기지만 그녀가 없는 곳에서는 그녀의 험담을 하는 자들의 시중을 받는 것은 별로 편한 일이 아니었다.
*
다니엘이 온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그녀는 멍하게 앉아 울적하게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야 아나블라가 자신을 매우 싫어하며, 그녀의 것을 빼앗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남지도 않은 그녀의 것을 아나블라가 탐내고 있었다.
다니엘 오빠의 애정, 앤. 이미 빼앗겨 버렸다. 맑은 달빛이 창문에 비칠 때 맑은 노크소리가 들렸다. 혹여 아나블라가 온 것은 아닐까, 그녀는 자는 척을 해야 하나 망설였다. 하지만 문은 그냥 열리고 소년이 들어왔다. 그는 어딘지 모르게 수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깨 있었구나.”
지금 와서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 지 비올렛은 알 수 없었다. 다니엘은 침대에 앉아있는 비올렛에게 다가가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비올렛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비올렛은 그의 손길을 말없이 받아들였다.
“많이 서운했니?”
뭐라고 말해야 할까. 사실 서운한 감정반, 원망의 감정 반으로 그를 바라보자 다니엘은 오전의 딱딱한 표정과는 다르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내가 미안해 비올렛. 어쩔 수 없었어.”
“........”
“고모님은 언제나 까탈스러운 분이고 고모부이신 하드포드 백작 가는 북쪽의 제 4관문을 담당하는 곳이라 아무래도 관계를 중요시 해야 해.”
사정을 설명하는 다니엘을 보니 그는 정말로 피곤해 보였다. 문득 에이든이 고모부와 그녀의 사촌 동생을 무척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쩌면 다니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에셀먼드가 없을 때 책임자가 된 지금, 저런 성격의 하드포드 백작 가 모녀를 맞아 들이는 것도 보통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인형이 갖고 싶으면 말하지 그랬어.”
다니엘이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
“아니야, 난 정말 달라고 하지 않았어.”
그녀가 억울해서 말하자 다니엘이 미소를 지었다.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 얼굴에 서운했으나, 다니엘은 그녀가 사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운함이 풀렸다.
“아나블라는 약간 아이같은 구석이 있어. 물론 너와는 다르게 말이야. 모든 애정이 다 자기를 향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 말에 비올렛은 대답하지 않았다.
“앤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해. 대신 다른 사용인들을 붙여서 네가 불편하지 않도록 할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또 그 애가 어떤 구실로 떼를 쓸지 모르잖니?”
확실히 그 말은 맞았다. 앤이라는 그녀의 가장 중요한 사람을 양보함으로서 아나블라는 승리했다고 생각 할 테고,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그녀를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억울했다. 사실 앤을 되찾고 싶었다. 하지만 다니엘이 찾아와서 사과를 하자, 그녀는 떼를 쓸 수가 없었다. 마치 아나블라와 같이 어린애같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봄이 오면 다시 수도로 가자.”
왠지 그 말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곳은 더욱 더 그녀를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백작 부인이 그리웠다. 후작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역시. 후작은 분명 그녀를 혼을 낼 것이다. 하지만 어딜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딜가든 의미없는 곳이다.
“비올렛, 너는 내 사랑스러운 동생이야.”
다니엘이 속삭였다. 그렇게 말하자, 비올렛은 어쩐지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달빛때문일까 아니면 촛불의 일렁임 때문일까. 일순, 다니엘의 푸른 눈이 반짝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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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그리고 도를 넘어선 무례한 코멘은 삭제합니다. 제가 손이 좀 빠른 대신에
오탈자가 많아요. 그걸 보는 눈이 좀 없다고나 할까.. 지적해 주시는 문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선뜩하다는 표준어이고 존재하는 말입니다. 선득하다라는 의미를 강하게 표현하는 말이에요. 오탈자 지적해주시는 것은 정말 너무 고맙지만, 요런 단어 지정할때는 한번 찾아보고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
돌맞을까 무섭긴한데.. 다음편, 다다음편에 사이다 드릴게여..야..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