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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29화 (29/208)

00029  움트는 새싹  =========================================================================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는 웬 창고 같은 후미진 곳에 있었다. 산적들에게 붙잡혔을때도 이런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났다. 안대와 재갈이 풀리고 그녀는 겁에 질렸지만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행여나 그녀의 눈물이 가진 힘을 알게 된다면 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던 탓이다. 그녀를 두고 수군거리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들은 그녀를 마치 오늘 잡은 희귀한 동물처럼 보고 있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건가?”

“성녀님을 우리가 이렇게 납치했는데?”

“아니 어차피 교황께 돌려드리는 거니 괜찮을 거야.”

교황에게 넘긴다고? 그녀는 몸을 달달 떨었다. 신관들에게 팔리는 걸까. 진짜로 팔리면 어떻게 되는거지? 그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우리가 거래할 거는 신관들이 아니야. 우리들이 미쳤냐. 성녀를 납치해서 돈놀음을 한걸 신전에서 알았다간 우리 전부 다 교황성의 지하나 티게르난 공작의 지하실에서 뽑힌 손톱을 보며 울고 있을 거라고.”

험상궂게 생긴 사내가 그녀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그때 본 산적 두목의 얼굴과 겹쳐 비올렛은  겁에 질렸다.

“우리가 상대할 거래처는 교황도 후작도 아니야.”

“그럼 우, 우린 어디에 저 여자애를……!”

“우리의 성녀님은 군나르 족에게 판다.”

그 야만인들에게요?! 그들이 소리쳤다. 하지만 사내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야만족들은 성녀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듣고 겁에 질려있어. 만약 성녀를 가져다 바치면 많은 양의 금화를 줄 것이고, 그리고 저 계집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그들 손에 달린거지.”

군나르 족, 말로만 듣던 그 이교도 들에게 팔린다는 것일까. 백작 부인의 설명을 들었다. 해가 지는 서남쪽에 사는 이교도들, 그들은 절대신이라 불리는 이 고유 신을 믿지 않으며 ‘위대한 정신’이라는 다른 신을 숭배하며 신을 거부하는 야만인들. 그것이 군나르 족에 대한 설명이었다. 거칠고 잔혹한 그들은 군사를 모아 이 나라를 침략했지만 아나스타샤의 활약으로 그 전쟁은 막을 내렸다고 했다. 그리하여 서남쪽에  ‘구자르트’라는 나라를 만들어 왕을 지칭하는 대신 지도자를 ‘카칸’이라고 칭한다고 했다.

“군나르의 카칸은 아주 값을 잘 쳐줄 거야.”

지금 얼마나 엄청난 일에 휘말려 있는 것인지 비올렛은 감히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 야만인들의 손에 팔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일까. 그녀는 눈을 감았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되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런이런, 성녀님. 성녀님께서는 괜찮아,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을거야. 그 야만족들은 뭘 몰라서 우리처럼 잘 대해줄지 어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가 다가와 그녀의 눈물을 쓸어내렸다. 남자의 손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달달 떨고 있는 비올렛의 얼굴을 그는 즐겁다는 듯 지켜보았다.

“정말 눈처럼 새하얀 계집애군. 신의 대리인이라 칭송할만 해.”

“…….”

“하지만 신이 진짜 있을 것 같아? 그 이교도인 군나르 족이 강성한 것을 보면 말 다 했다구. 신관 녀석들도 그렇게 질펀하게 노는데 왜 벌을 내리지 않지? 저 계집애는 그냥 돌연변이야. 신의 대리인이 아니란 말이야.”

그의 말에 다른 남자들이 다소 안심한 표정으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야만인들에게 팔려간다고? 그 말에 아연해졌다.

“이미 상인에게 연락은 해 두었어. 사흘 후에 군나르측 배가 오기로 했단 말이지.”

남자는 그녀가 정말 최고의 상품이라도 되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니엘이나 붉은 머리의 화려한 신관이 머리를 쓰다듬은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산적들도 어린 그녀를 이렇게 품평하고는 했다.

“우리 성녀님께는 특별히 좋은 방을 주었어. 봐, 따뜻하잖아? 적어도 동상에 걸릴 위험따위는 없으니 안심하라고. 난 어린 여자애에게는 함부로 못하겠더라.”

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묶인 줄을 풀어주었다.

“자해하면 알지? 그 멍청한 모자 목이 잘리는걸 보게 될 거야. 자애로운 성녀님은 그런걸 바라지는 못하겠지? 아니, 오기로라도 그럴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음식들을 대충 챙겨준 뒤 나갔다.  우르르 빠져나간 방은 생각보다는  넓었다. 너무나 바보같았다. 토미가, 토미가 그녀를 팔아넘겼다. 아직도 그녀가 있는 곳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분명 할머니가 죽는다고……차라리 할머니를 위해 그녀를 팔았다면 조금이나마 이해라도 했을지도 몰랐다. 정말로 이해하려고 노력이라도 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의 술값을 위해.  겨우 술값을 위해 그녀를 팔았다는 것인가. 얼마나 바보같고 어리석은가. 그녀는 배신감에 한참을 흐느꼈다. 토미가 미웠다. 미워서 견딜수가 없었다.

날이 바뀌는 것은 조그마한 창문으로 알 수 있었다. 몇몇 남자들은 그녀를 가두는데에 큰 거부감을 느꼈는지 그녀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식사 역시 푸짐하게 주는 편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 방에 쳐박혀 있었다. 보통의 여자 아이라면 내보내 달라고 떼를 쓰는게 마땅했으나, 이전의 경험으로 슬프게도 그 발버둥은 소용이 없으며 오히려 그들이 폭력을 쓰게 만드는 기폭제가 됨을 알고 있었다.

3일 정도 지나는 동안 그녀는 또다시 재갈이 물려진 채로 끌려나왔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녀는 딱지가 딱딱하게 굳어가는 손바닥의 상처를 다시 꾹, 눌렀다 상처가 터지는 느낌이 나며 고통이 엄습했다. 그녀는 하얗게 주먹을 쥐었다. 다시 피가 뚝 흘러내렸다.

그녀의 손은 속박이 되었다. 그녀가 추위에 덜덜 떨자 보다못한 남자들 중 한명이 그녀에게 털옷을 씌워주었다. 힘겹게 걸어가자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 그것을 보자 갈색 피부의 남자들이 보였다. 군나르 족이었다. 휘황찬란한 폭이 넓은 옷들을 입은 그들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중 한 소년이 장정 두명을 대동한 채 그녀에게 다가왔다. 눈이부실정도로 화려한 문양의 옷을 입은 소년은 녹색 눈동자에 엷은 밀빛 머리카락을 가졌는데  그는 겁도 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손으로 그녀의 턱을 들었다. 그녀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손이 묶여있었으므로 그를 쳐낼 수가 없었다. 그저 저 알수 없는 소년의 호기심이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옆에 있는 군나르 족 남자가 무어라고 말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재갈을 풀라고 하신다.”

그의 명령에 옆에 있는 남자가 재갈을 풀었다. 갑자기 입속으로 들어오는 공기에 그녀가 하아 하고 크게 숨을 내 쉬었다. 그 반응에 만족한 듯 소년이 흐흥, 하고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자유로워졌다. 그녀의 바로 뒤에 있는 두목 남자는 그것이 싫은 듯 했으나, 이 많은 수의 사람들사이에서 비올렛이 도망갈 수는 없으므로 그저 잠자코 있는 듯 했다. 소년은 계속해서 그에게 흥미를 가졌다.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갑자기 손바닥에 불에타는 고통이 느껴져 그녀는 그만 악, 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소년은 뭐라고 두목 남자에게 화를 내고 있었는데, 그는  그녀의 상처난 손바닥을 꽉 쥐고 있었다.  피가 손목을 타고 아래로 흘렀다. 그러자 두목이 그것을 보며 말했다.

“이런, 성녀님. 자해는 하면 안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가 다른 이에게 깨끗한 천을 가져오도록 시키더니 손바닥에 천을 묶어 주었다. 소년은 얼굴을 찡그리며 그것을 보고 있었다.

“왜요, 무슨 핏방울이라도 흔적을 남기시게요?”

두목으로 보였던 자가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손바닥 아래로 흐른 핏방울을 보였다. 그녀의피가 떨어졌을 공간에 피어있는 초록 잎을 보자, 별안간 표정이 변하며 그녀의 팔을 잡아 끌어 그녀의 뺨을 매섭게 내리쳤다. 어찌나 세게 내려쳤던지 귀가 멍멍하며 그녀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다행히 손이 묶였으면 속절없이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칠 뻔 했다. 슬프게도 비올렛은 맞을때 어떻게 쓰러져야 아프지 않을지 잘 알고 있었다.

“이년, 이년이 우리의 위치를 노출시키고 있었어!”

그가 소리쳤다. 그녀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렸다. 입가에 피가 흘러내려 땅에 스며들었다. 초록눈 소년이 그녀의 피를 먹은 땅에서 피어나는 잡초를 보았다. 그의 얼굴이 쓰러진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비올렛은 자신의 바로 앞에서 자라나는 작은 풀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정말로 피로 새싹을 틔울수가 있었구나. 그녀는 멍하게 생각에 잠겼다.

“이 계집애가 널 오늘 죽여버리겠어!”

소년이 뭐라고 소리를 쳤다. 하지만 두목은 화가 나 있었고 단도를 들어 비올렛의 목을 노렸다. 군나르족이 검을 꺼내들었을때 별안간 검은 그림자가 스슥, 하고 스쳐지나갔다. 군나르 족 남자는 크게 경계해 소년을 뒤로 피하게 했다.  챙그랑, 소리가 들려 무슨 소리인가 바라보았다.

비올렛은 바로 자신의 옆에, 단도를 든 팔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재빨리 일어난 비올렛이 두목쪽을 보자, 두목 남자가 팔이 잘린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것이 신호탄으로 다른 곳에서 으악, 하는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에르멘가르트 후작의 푸른 망토를 입은 남자들이 그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이에 군나르 족 역시 검을 들어 응전태세를 취했다.

그녀는 자신을 일으키는 손길을 느꼈다. 짙푸른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억센 손이 그녀를 잡았다. 에셀먼드였다. 그녀는 정말로, 정말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가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방금까지 정말 죽을 뻔 한 것을 그가 구해준 것이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확인했다. 괜찮니, 다치지는 않았니? 다정한 염려의 말도 없었다. 그저 그는 빨갛게 부어올라 피를 흐르는 오른쪽 뺨에 시선이 더 오래 머물렀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정면을 보며 소리치는 것이다.

“에르멘가르트 후작의 명이다. 군나르 족을 제외하고 한놈도 가리지 말고 죽여라.”

두근. 분명 그 말은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말이었다. 누구의 말이었더라. 에르멘가르트 후작의 명.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그가 군나르족 소년과 소년의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검을 겨누었다.

“나는 에르멘가르트 후작의 대리이자 소 가주이며, 후계자이자, 이 나라의 기사이다. 아그레시아는 네놈들 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검을 겨누는 것 자체가 커다란 모욕이었던 듯, 군나르 족 남자 한명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비올렛이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그는 비올렛을 품에 안은채로 여유롭게 그 검을 막아 냈다. 챙, 검이 맞부딪히는 금속성의 소리가 났다. 그녀는 에셀먼드가 웃고 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는 서늘한 미소를 머금으며 검을 겨눈 남자의 심장을 찔렀다. 또다시 피가 튀었지만 그는 군더더기 없이 깔금한 자세로 다시 소년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러나 그의 검을 타고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에셀먼드가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옆에 사람이 소년에게 무어라고 속닥거렸다. 소년은 삐뚜름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에셀먼드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비올렛에게 머물렀다. 다행이 에셀먼드가 그녀를 뒤에 숨겼기 때문에 그녀는 소년의 강렬한 시선을 받아낼 수 있었다.

“I li se jmorru biex issib dak tiengfi"

그녀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며 소년이 미소 지었다.

“zhar.”

그는 뭐라고 더 말을 하려 했으나 검은 검을 든 남자의 손에 이끌려 갔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후작의 군대로 보이는 남자들과, 그녀를 팔아치우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싸우고 있었다. 아니, 사실 군나르 족이 사라지자 긴장은 끝이 났고 일방적인 도륙이 시작 되었다. 두목이라는 남자는 이미 끌려간지 오래였다.

그녀는 그 피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에셀먼드의 손에 이끌려 말에 올랐다. 히히힝, 거리는 말울음소리에 그녀는 잠시 겁에 질렸다가 말이 걱정하지 마, 라고 안심시키자 그녀는 깜짝 놀라 그대로 말에 탔다. 처음으로 말이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에르멘가르트 경! 구출하셨군요.”

“바셀하운드 경께 이곳의 뒷정리를 부탁드린다고 전하도록.”

“알겠습니다!”

말이 히힝 거리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소란스러운 주위를 둘러 볼 뿐이었다. 아까 맞은 것 때문인지 머리가 멍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그 갑옷과 검을 보고 반가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그것은 언제나 그녀를 위협하는 존재였는데, 처음으로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 되었다.

말을 타고 달리자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났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에셀먼드는 성으로 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달리던 말은 도로로 집어들자 천천히 걸었다. 차디찬 겨울 바람은 어느정도 멎어 있었고, 그 때문에 그녀는 그가 중얼 거리는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나의 것을 되찾으러 간다. 반드시.'라.”

“.......?”

그녀는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나의 것'이라.......”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와.. 추천 많이 주셔서 핵 기뻐서 낭낭하게 넣었습니다.... 선작도 200개나 오르고 여러분. 언제나 이러면 제가 글머신이 된답니다. 오늘 너무 기뻐서 100키바 비축분 썼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회원비회원 추천추천~ 모바일도 추천추천! 추천을 하면은 건강이 좋아져요 세상이 밝아져요!! 뿅!!!!

저번편에 답답하셨을 것 가타여.... 아참, 저 군나르 족 소년이 썼던 언어는 몰타어라고 하는 언어에서 대충 차용해왔습니다. 에셀먼드가 나중에 한 말은 군나르 족 소년이 했던 말을 해석해 준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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