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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27화 (27/208)

00027  움트는 새싹  =========================================================================

“앤은 너무해요.”

그녀의 말에 눈을 감은 여자가 웃었다. 두번 째 만남이었다. 비올렛은 이전보다 더욱 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그녀의 등장에 환하게 웃음으로서 기쁨을 표현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음에도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여자가 그녀의 안부에 대해 물어보자 비올렛은 망설이다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 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의 여자는 비올렛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이따금 미소지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고 난 후, 여자는 비올렛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하녀 아이도 너를 생각해서 그런거란다. 네가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테니 말이야.”

“…….”

“사실은 알고 있잖니?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여자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이라도 보이는 듯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너를 울리려고 하는게 결코 아니었는데 말이야.”

부드러운 음성으로 여자는 비올렛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에는 비올렛의 새하얀 은발의 머리가 보여 그녀의 흑발과 대조되었다. 앤 역시 흑발이었으나 그녀의 머리카락은 빛조차 투과할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맸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누구신가요?”

그녀는 정말 자신이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궁금증을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비올렛에게 왔고,  비올렛은 여자가 있는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이제와 의문을 가지는 것도 이상할 정도였다.

“글쎄, 추측해 보겠니?”

여자는 자못 재밌다는 듯 미소를 띄었다. 그녀는 눈을 굴렸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며, 자신을 만날 수 있기에  그녀가 성녀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렇다면 한 사람밖에 없지 않은가.

“당신은 신인가요?”

그 말에 그녀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신이라니, 재미있는 대답이었구나. 하긴 나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너는 나의 신이란다. 그리고 나 역시 다른 누군가의 신이었지. ”

그게 무슨 말인가요? 그녀는 묻고 싶었다. 처음 만남에서도 어려운 것을 이야기 하는 여자는 지금도 알 수 없는 이야기만 한다.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비올렛을 보며 여자는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렴. 날 신이라고 불러줘도 좋단다. 언젠가 알게 될테니 말이야.”

그녀는 아름답게 미소지었다. 저 미소는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그때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때 만났던 신관 소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홀린듯이 말했다.

“아, 신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았어요.”

“그래?”

“저랑 같은 새하얀 은발에 금색 눈을 하고 있었어요.”

“그 아이를 만났나 보구나.”

그녀의 얼굴에 씁쓰레한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그 사람을 아나요? 라는 물음에 그녀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마 더 물어도 답을 알아낼 수는 없겠지.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으므로 그녀는 더 물어보는 것을 포기했다. 아직 그녀는 고민할 것이 많았고 생각할 것이 많았다.

“너는 아직 경험해야 할게 아주 많단다.”

“…….”

“그리고 네 하녀 아이는, 분명히 네 편이 되어줄거야.”

“저는 그럼 사과를 해야 할까요?”

“글쎄?”

여자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띄었다. 비올렛은 어쩐지 그 여자에게도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

따사로운 햇빛이 비치며 그녀는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늦잠을 잤으나 사실 그녀의 기상시간에 대해 그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다. 앤은 그녀가 일어나자 말없이 세숫물을 가져다 주었고, 그녀는 얼굴을 씻었다. 그 누구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바깥에 나가는 대신, 책을 꺼내들어 조용히 읽었다. 닳고 닳도록 읽던 아그레시아 역사서였다. 성녀 아그레시아에 이어 베아트리체, 루치아, 아나스타샤 등등 계보를 이어나간 그녀들의 업적을 보았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치료하고, 말라붙던 강에 생명을 불어 넣고, 이교도, 군나르 족과의 전쟁을 막아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말룸’을 처단했다. 하지만 업적만이 나와 있을 뿐,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나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답답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앤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찔끔찔끔 눈치를 보며 그녀는 앤과 그녀가 같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 보면 토미를 만나러 가느라 앤과는 함께하지 못했다. 사실 화가 나는건 앤일지도 몰랐다. 입을 꼭 다물고 다시 책에 집중하자, 이번에는 교황의 업적에 대해 나왔다. 교황은 이 종교의 지도자로서 이 나라 10명의 대신관들의 의견에 따라 과반수가 찬성할 시 교황으로 선출된다고 한다. 그리고 현 교황 린도는 만장일치로 교황이 되었노라고 했다. 한번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내보인 적이 없다는데. 언젠가 그를 보게 될 날이 올까.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앤이 옆에서 차를 내왔다. 그녀는 그것을 마셨다. 말린 프라비돈 꽃잎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녀가 좋아하는 달콤한 꽃잎 차였다. 그것을 보자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눈물이 괜히 핑 돌았다. 앤은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데 화를 낸거다. 그녀가 잘못한 것이었다. 꿈속의 여자의 말이 맞았다.

“따라올거야?”

“아가씨가 원하지 않으면 안 갈게요.”

의자에서 내려와 물어보자 앤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앤의 손을 잡아끌었다. 앤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따라 나왔다. 하늘은 맑았지만 날씨는 쌀쌀했다. 비올렛은 앤의 손을 꼭 잡고 어느 지점을 향했다.

“앤, 앤의 어머니는 여기 꽃나무의 꽃을 보고 싶다고 했지?”

앤은 나무를 올려다 보더니 말했다.

“네, 맞아요 하지만 저 나무가 늙어서 이젠 피지 않는다고 그랬어요. 벌써 10년인걸요. 나무도 이제 죽어가는 거예요.”

그녀의 대답에 비올렛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도와줄게.”

“네 아가씨?”

비올렛은 저쪽으로 총총 뛰어가더니 나무에 손을 뻗었다. 그녀의 작은 손을 타고 푸른 빛이 땅을 타고 흘러내려가더니 나무 주위를 감쌌다. 마치 물을 흡수하는 것 처럼 그 힘을 흡수하는 듯 했다. 앙상한 나무에 푸른 잎사귀가 자라났다. 그리고 앤은 어렸을 적 딱 한번 보고 다시는 못본 꽃을 보았다. 꽃의 색은 그때처럼 아름다운 연노랑빛이었다. 기억속에 남아있던 향기가 화악 하고 퍼졌다. 푸른 하늘, 선연하게 피어난 노란 꽃을 둘은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겨울동안 잠시 잊혀졌던 초록의 내음은 사람들 사이에 점차 퍼져 나갔다. 신기하게도, 그녀를 감싸는 공기가 따스해졌다.  그녀가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앤은 그 기적을 눈앞에서 목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리고 연약하기만 한 가엽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소녀는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정말로 평범한 소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고마워요, 아가씨.”

하지만, 참으로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아닌가. 겨우 짜증한 번 낸걸 가지고,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상냥한 아가씨이다 그것이 비올렛의 사과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앤은 미소를 지었다.

*

“할머니가 앓아 누우셨어.”

토미가 힘없이 말했다. 그녀는 안쓰럽다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사실 토미의 할머니는 그녀에게 그렇게 친절하지는 않은 편이었다. 오히려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쪽이었지. 그럼에도 그녀가 아프다는 소식에 비올렛의 마음은 어두워졌다.

“의원은 불러올 수 없는거니?”

“알잖아, 우리는 돈이 없는거.”

토미가 투덜거렸다. 토미가 기대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보는게 느꼈으나, 비올렛은 기실 아무것도 가진게 없었다. 별로 도움을 못준다고 생각하자 더욱 더 토미를 보는게 힘들어졌다. 요사이 토미는 그녀를 보면서 자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는 했다. 토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자신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니 그녀는 언제나 그의 한탄을 들어주었다. 앤은 그 사실이 못마땅한 듯 했으나, 비올렛이 토미의 일로 한번 화를 낸 이후 말을 아꼈다. 다만 토미를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을 거라는 말만 반복 할 뿐이었다. 토미는 그녀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 같았으나, 그녀는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었다. 저번에 아끼던 곰인형을 가져다 주려다가 어쩐지 죄책감이 들어 내려놓은 이후, 그녀는 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토미를 만나기가 벅찼다. 무엇을 원하는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부정적인 데에는 눈치가 발달해 있었다. 문제는 토미역시 그런데에 눈치가 발달했다는 것이었다.

“요즘엔 날 별로 안찾아 오네?”

토미가 빈정거렸다. 비올렛은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녀를 붙잡고, 부정적인 말만 하는 토미를 만나기 버거웠던건 사실이었으므로, 할 말은 없었다. 토미는 그녀를 세워두고 말에 여물을 주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곰인형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것은 토미의 화를 돋군 듯 했다. 그는 손을 탁 쳐냈다.

“이깟게 무슨 소용이라고 그래 비올렛!”

그가 화를 냈다.

“너는 몰라, 아무 것도 모르겠지! 언제나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것만 먹잖아.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너는 돌봐줘야 할 사람도 없잖아!”

그가 소리쳤다. 진창에 쳐박힌 곰인형을 보았다. 라이셀 백작이 준 것이다.  정말 소중히 여겼던 건데, 생일선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데, 그렇다고 그녀가 그녀만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이 곰인형의 눈과 코는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그거라도 팔면 분명 의원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울컥해서 소리쳤다.

“너야 말로 네가 뭘알아! 너는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잖아. 나는 엄마와 아빠가 죽었단말이야.”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내가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 너는 모르잖아. 나는 차라리 돌봐줄 가족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아무것도 없었단 말이야! 나도 힘들어! 힘들다고!”

그녀의 비명이 섞인 외침에 토미는 당황한 듯 했다.

“이거 정말 아끼던건데.”

그렇게 말하며 비올렛은 곰인형을 집어 들었다. 말똥이 섞인 진흙이 묻은 곰인형에서는 악취가 났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소중한 선물을 버리는 것은 차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다시는 널 안볼거야 토미.”

그녀는 홱 돌아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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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축분 어느정도 장전해 두려고 열씸히 쓰고 있답니다. 유년기가 이제 거의 끝나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러분들의 코멘, 추천은 인생의 낙이 되어 절 글머신으로 만든답니다.

역시 공모전 빡세네요. 14kb를 매일매일 쓰는건 역시나 부족했어. 55키바를 다시 쓰긴 했는데 오늘도 좀 분발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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