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3 움트는 새싹 =========================================================================
“누가 성녀님을 울린거죠?”
“……..”
“말해봐요, 누가 그런거죠?”
그 부드러운 말에 그녀는 잠시 흔들렸다. 마치 어제의 그 소년과 너무나 닮은 남자였다. 다정한 금안에 그녀의 직감은 그에게라면 사실을 말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남자는 다정하게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제 왔던 귀부인들께서 그러신걸 들었어요. 저는 천민이기 때문에 아무도 제 생일을 축하해주지 않았을거라고. 그 누구도 이런 곳에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거라고.”
“…….”
그는 조용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말하자마자 서러움이 왈칵 밀려와 다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상한 열기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청년의 금색의 눈은 분노로 타오르는 듯 했다. 그 녹을 듯한 분노의 시선에 그녀가 잠시 움찔 했지만 그는 곱게 접은 두 눈으로 그 분노를 갈무리했다.
“누가, 감히 성녀님께 그렇게 말한단 말입니까..”
그는 또다시 손을 뻗어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상한 남자였다. 성녀라고 깍듯이 대하면서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한다. 정말 딸이라도 대하는 사람의 태도다. 그 다정함에 그녀는 처음으로 안정을 느꼈다. 이 사람은 자신을 절대 해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눈물을 너무 흘리시지 마십시오.”
그는 다정하게 품안에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세련된 머스크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무척이나 부드러운 비단 손수건을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는데 썼다. 아깝다고 생각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성녀님. 저들은 자신을 둘러싼 평화가 어떤 것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를 치들일 뿐입니다.”
“…….”
그는 다정하게 위로했다. 체자레 라고했던가. 화려한 외모를 가진 한량같은 남자는 그녀를 익숙한듯 퍽 상냥하게도 달랬다. 그 고요함에 그녀는 그가 정말로 신관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제의 신관도 그렇게 다정했으니 말이었다.
“기분이 풀리십니까?”
눈물이 그치자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비올렛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눈물 한방울도 귀하신 분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비올렛은 자신이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피 한방울, 눈물 한방울 조차도 신의 기적이 되시는 분입니다. 자 보세요 성녀님.”
그 말에 그녀가 옆을 바라보자 시들거렸던 꽃들이 다시 생생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
아. 또 살려버렸다. 이렇게 살려봤자 아직 피어야 할때 피지 않은 꽃들은 그만큼 겨울에 고통스럽게 노출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죄책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괜찮습니다. 성녀님 그래서 제가 있잖습니까.”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것인지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녀는 순간 강한 힘의 파동을 느꼈다. 그 힘의 파동이 일자 성스러운 푸른빛이 은은하게 흐르더니 꽃을 시들게 했다. 아, 그래, 저 남자에게서 느껴졌던 느낌. 그것은 바로 이 느낌이었다. 성력. 그렇구나. 정말 신관이었어. 그녀는 납득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성결하고 정순한 힘에 깜짝 놀랄 뿐이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손짓 한번에 정원에 있는 모든 꽃과 나무들이 다시 시들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었으며, 결코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할 수 없었다. 색을 잃은 꽃잎들이 우수수 바닥에 쏟아졌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어느새 흐려진 잿빛 하늘을 뒤로 한채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색이 없는 모든 것들 중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색과 같이 선명한 붉은 색이었다. 그의 존재는 머리색처럼 붉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본디 피어나야 할때 피어나지 않는다면 괴로울 뿐입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남자가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그녀는 몇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는 그대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가 그럴 것을 알고 있는 것 처럼.
“꽃은 죽은게 아니라 잠든 것 뿐입니다. 봄에 다시 만날 수 있을거에요.”
그가 부드럽게 그녀를 달랬다.
“다시 자연의 섭리대로 돌려놨어요, 이젠 괴롭지 않을 겁니다.”
“…….”
그녀는 그의 태연한 말에 다시 용기를 냈다.
“내가 많이 잘못한걸까요?”
“아니요.”
그가 딱 잘라 말했다.
“당신의 눈물이 이 꽃들을 깨운겁니다. 그렇지만 꽃들이 당신의 눈물에 당신을 인식하고 당신이 보고싶어 깨어난 것이 당신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아까 흰 장미가 있었던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들은 분명 다시 눈을 뜨면 성녀님이 계신다는 걸 알고 기쁘게 잠들었을 겁니다.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대하면서요.”
“…….”
그의 말에 그녀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녀가 미소를 짓자 그가 다시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강렬한 인상과는 다르게 남자는 정말로 신관 같았다. 물론, 여기서 신관이라고 하는 말은 아주 긍정적인 의미였다.
“자, 이제 둘째 영식이 걱정하겠습니다. 들어가 보세요.”
“……또 만날수 있을까요?”
그 말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 환한 미소는 그녀의 말이 진심으로 기쁜 듯 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
“물론입니다 성녀님. 제가 찾아 가겠습니다.”
그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온기가 그녀의 이마에 전해져 내려왔다. 어딘지 모르게 듬뿍 애정이 서린 따스함에 그녀는 왠지 모르게 행복을 느꼈던 것도 같았다.
*
저택 안에 들어오자 앤이 호들갑을 떨며 그녀를 맞이했다. 어디갔냐는 물음에 정원에 다녀오기로 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뒤에 있는 시든 꽃들을 보고 숨을 들이쉬었다. 앙상한 나무, 그리고 흩날리는 말라비틀어진 검은 꽃잎. 그 을씨년스러운 모습들에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역시 공작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무슨 소리일까.
그날 저녁에 갑자기 들이닥친 후작의 모습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후작은 무엇인가 급하게 쫓기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보자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작의 뒤에는 에이든을 제외한 에셀먼드와 다니엘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잘못되었나?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걱정하실 일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의 뒤에는 다니엘이 못마땅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낯설었다. 그녀가 깜짝 놀라 다니엘을 바라보자 그 시선을 알아챈 다니엘은 다시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봐요, 이렇게 비올렛은 무사하다고요.”
“그래, 그렇구나.”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작의 한숨에 그녀는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혹시 낯선 사람이라도 만났습니까?”
그녀는 입을 열어 아까 그 사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뒤에 온 에셀먼드를 보자 입을 꾹 다물었다. 서슬 퍼렇게 검을 소년에게 겨누던 그 모습을 떠올리자 그 사람에게 무슨 해가 될까 그것이 두려웠다.
“아니요.”
“…….”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꽃이 다 시들어버렸습니다.”
“제가 한거 아니에요.”
그녀는 후작을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다. 한참동안 그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문 것 같았다. 그 시선에 정말로 그녀가 하지 않았음에도 불안해졌다.
“그렇군요.”
후작이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어쩐지 납득하는 모습에 그녀는 오히려 더 의아했다. 에셀먼드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했다. 그 눈빛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옆에 있는 곰인형을 꼭 껴안았다. 후작이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후작은 어딘지 모르게 깊은 생각을 하는 듯 했다. 후작은 돌아갔으며 다니엘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비올렛, 아까 무서운 사람이 다녀갔어.”
“무서운 사람?”
그녀의 말에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뭐라고 해주려는 찰나, 에셀먼드가 말했다.
“쓸데 없는 소리는 하지마라, 다니엘.”
“그건 형의 기준이겠지. 안그래?”
다니엘이 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라니? 다니엘 말이 맞아!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며 에셀먼드를 보자 말하는 것이었다.
“저 여자애는 아직 많은 걸 받아들이기엔 일러…….”
“그건 형의 기준이지. 비올렛은 받아 들일 수 있어.”
다니엘이 말했다. 그 둘은 별로 사이가 안좋은 것일까. 그러나 에셀먼드의 말에도 다니엘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기껏해야 티게르난 공작의 방문을 성녀는 아프다는 이유로 돌려보낸 네가 할말은 아닌듯 한데 말이지.”
“……그건 내 최선이었어.”
공작. 여기서 또 나온다. 그 남자는 자신이 체자레라고 했다. 성력도 목격했는데, 신관이 공작이 될 수는 없지 않는가. 설마 아니겠지. 그녀는 두근두근한 심정을 감추며 말했다.
“다니엘을 괴롭히지 마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다니엘을 탓하는 말에 그녀가 말했다. 다니엘은 잘못한게 없다.
“이제 저한테 다니엘까지 뺏어갈 거예요?”
핀이 가버렸던 것 처럼, 다니엘 역시 앗아가버린다면, 정말 견딜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말에 다니엘이 비올렛, 그렇게 말하지 마, 라고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녀는 다니엘을 나무라는 듯한 그가 너무 싫었다. 이렇게 노려보는 것도 사실 너무 무서웠지만 다니엘이 옆에 있으니 용기가 생겼다. 에셀먼드가 비올렛의 얼굴을 바라 보더니 얼굴을 찌푸리고 이내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에 다니엘이 조용히 말했다.
“꼭 그럴 필요는 없었어, 비올렛.”
다니엘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첫째 도련님이 제일 싫어.”
그녀가 투덜거렸다. 다니엘이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나는 너밖에 없어.”
어딘지 모르게 애처로운 말이었다. 항상 생각하지만 다니엘은 외로워보였다. 검청색 머리카락을 가진 다른 식구들에 비해 다니엘의 머리는 금발이었고, 그것이 어딘지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비올렛은 다니엘의 온화함을 좋아했다.
“나는 다니엘만 좋아해.”
그녀의 말에 다니엘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다정했던 후작님은 며칠동안 들어오시지 않았다. 그녀의 생활은 딱히 변한게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수업을 받고 있었고, 책을 읽고 학식을 쌓았다. 글자는 여전히 모르는 단어는 찾아야 했지만 그녀의 학식은 날로 발전하고 있었고,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보이던 다니엘은 자신의 공부를 미루면서까지 그녀를 도와주고 있었다. 후작이 온것은 일주일 정도 후였다. 후작은 올때 아주 아름다운 인형을 선물로 사 주었는데, 정말 사람처럼 아름다운 인형이었다. 그것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받은 비올렛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쩌면 후작님이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후작 님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성녀님, 당분간 영지에 내려가 있는게 어떻겠습니까.”
후작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회원비회원 추천추천~ 모바일도 추천추천~~ 추천을 하면은 건강이좋아져요 세상이 밝아져요! 뿅!!!(대청자 인증)
재미있게 보셨다면 추천 또는 코멘 부탁으려요. 저번편 코멘이 많아서 행보케씀... 이게 소설 연재하는 맛 아니겠습니까, 제 인생의 낙들이여!
드디어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나왔네요. 헿... 체자레!! 체자레다!!!! 체자레는 체자레 보르지아라는 역사적 인물에서 따온 이름이 맞습니다. 그냥 따오기만 한거에요 ㅋㅋㅋㅋ
돈이 있다면 체자레에 대해서도 커미션을 맡길텐데 ㅠㅠ 그게 아쉬워요 크흡. 비축분을 어느정도 장전해야겠어요 .. 벌써 비축분이 다 떨어졌네요. 난 분명 글을 쓰고있는데 어이하여 부족한거죠? 여튼 독자님들이 코멘, 추천을 낭낭히 해주셨으므로 터보 달려서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