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7 움트는 새싹 =========================================================================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백작부인은 그것도 모자랐는지 어디가 어떤 점이 우아했고, 어디가 아름다웠는지 늘상 그녀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칭찬해 주었다. 비올렛은 백작 부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조용히 긴장을 풀었다. 아직 백작부인을 완전히 믿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백작 부인이 혼을 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자작 부인이 더이상 이곳에 오지 않는 것이 그녀에게 회초리 질을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어느정도 그녀는 이해하고 있었다.
이제 이 생활에도 어느새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녀가 온지 계절이 두번 변했고 겨울이 다가 왔다. 언제나 추워서 덜덜 떨며 얇은 담요를 꽁꽁 몸에 휘감은 채 차가운 나무 바닥 위에 잠들었던 비올렛은 언제나 다가올 추위를 걱정한 채 한숨짓고는 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추위에 대해 별로 걱정이 없는 것 같았다. 로즈와 리나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살았던 영지는 수도와 가까운 편이라 기후에는 별 차이가 없을 텐데 이상하기도 했다.
“날이 쌀쌀해져 곧 눈이 내릴 것 같군요.”
“그러게요.”
그녀는 백작 부인의 말에 대답하며 하늘을 보았다. 잿빛의 하늘을 보며 오늘의 날짜를 본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는 읽을 수 있는 달력을 보며 깨달았다.
“……어.”
“왜 그러세요, 성녀님?”
백작부인이 달력을 보며 평소답지 않은 소리를 흘리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일주일 후가 제 생일이라서요.”
“……네?!”
“네에에에?!”
교육이 끝날 시간이자 시간에 맞추어 차를 내고 있던 앤 역시 놀라서 소리쳤다. 왜들 저런 반응일까. 앤은 한번씩 저렇게 함부로 행동하는데 혼이 나지는 않을까? 그렇지만 앤의 입은 다물리지도 않았다. 백작 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다물려지지 않는 입을 부채로 가리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 하며 저 두 여자들의 반응을 지켜보자 앤이 예의도 잊고 말하는 것이었다.
“왜, 왜 그런 이야기를 지금 말하시는 거예요? 아가씨, 말씀좀 해보세요,네?!”
어깨까지 흔들리자 어지러웠다. 백작 부인은 하녀가 성녀의 어깨를 흔들고 있는데도 말리지 않고 보고 있었다. 이래서 그녀가 왕과 버금가는 지위다, 높은 사람이다 납득하는게 어려웠다. 그러나 백작부인과 앤, 특히나 앤에게 있어서는 당황할 만도 한 일이라 백작 부인역시 그녀의 감정에 공감했다.
“제 생일을 알려야 했었나요?”
답변이 더 가관이었다. 둘 다 허탈한 표정만 짓고 그녀를 바라보는게 비올렛은 자신이 또 무슨 잘못을 했나 했다.
**
비올렛은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저택이 부산스러워졌기 때문이었다. 무엇인가가 이상했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비올렛은 무슨 일인지 차마 물어보지도 못한 채 그저 눈치만 보았다. 모든 사람들은 어딘지 불안해 보였으며 요리사인 잭 역시 어딘지 모르게 긴장으로 들뜬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기묘한 불안함이 최고조로 치달았던 다음 날이었다.
“아가씨, 이 옷 한번 입어 보실래요?”
그녀는 보드라운 보라색 드레스를 꺼냈다. 그것을 본 비올렛이 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앤은 생글생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올렛은 너무 쉽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
어딘지 모르게 고집스러울 때만 반말이 나오는 비올렛이었다. 앤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안 어울릴 거 알고 있어.”
이 저택에 그녀에게 드레스가 어울린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에이, 누가 그래요?”
“첫째 도련님, 그리고 에이든 오라버니요.”
그 말에 앤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에, 설마. 에드 도련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기억이 왜곡되었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남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드레스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참 무심하시기도 하시지. 왜 그런 말씀을 하셨담?”
앤은 그렇게 투덜대듯 말하며 드레스를 내밀었다.
“에드 도련님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아마 무슨 속사정이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다는데에 무슨 속사정이 있어?”
그녀가 고집스럽게 툴툴대며 말하자 앤이 킥킥 웃었다.
“아이 귀여워라, 아가씨. 저는 아가씨가 그렇게 할말을 다 할때가 보기 좋더라고요.”
“…….”
오히려 말하고서 앤의 눈치를 보는 비올렛을 향해 앤이 친절하게 말했다. 앤은 참 이상했다. 그렇게 나쁜 말을 이야기 하는데도 후작님께 이르지도 않고 그저 그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잘했다고 그녀를 칭찬해 주었다. 아무리 봐도 사실 칭찬할 일은 아닌데 말이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아가씨.”
“응?”
머쓱해진 그녀가 순진하게 대답하자 앤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아가씨가 이거 안입으면 제가 후작님께 혼나는데 어떡하죠?”
앤은 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다 받아 주었으나 이런 무적의 말을 하면 비올렛은 언제나 질 수 밖에 없었다.
**
비올렛은 드레스를 입은채 조용히 걸었다. 다행한 일이라고 해야 할지, 예전에는 드레스가 무척이나 거슬렸지만 백작 부인에게 예법을 배운 이후로 그렇게 걸음걸이가 불편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그녀의 종아리는 시퍼런 멍투성이도, 매에 맞아 터지지도 않았으므로 전보다 걸음걸이가 안정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앤이 혹시라도 기분이 상할까봐 애써 표정관리는 하지만 드레스는 거추장스럽다. 그리고 그녀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귀족 아가씨들이 입는 드레스는 천민인 그녀가 어울리는 것은 아닌것이다.
고귀한 성녀, 왕과 교황과 같은 지위를 지닌 신의 대리인.아무리 그렇게 말해진다고는 해봐야 그녀의 출신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비올렛은 자신의 현실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하녀들이 수군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차라리 ‘천민’이었다면 상관없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꽃의 거리’출신이라는 점은 여러 사람이 그녀를 경멸하게 만드는 충분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 문제는 그러한 반응을 비올렛 역시 그럴만 하다고 납득해버리는 데에 있었다. 일곱 살 때 부모를 잃어 3년간 꽃의 거리에서 생활 해왔던 그녀의 생활을 말하자면 경멸과 무시로 얼룩진 삶을 살았다.
사실 지금의 그녀 역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아닌 낯선 이의 흉내를 내는 것 같았다. 우아한 나비같은 걸음걸이도, 꼿꼿이 서서 다른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자세도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숨어왔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상이었는데 이젠 다들 어쨌던 간에 표면적으로 그들 위에 선 성녀였다. 복도를 걸으면서 쉴새없이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알수조차 없다.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던 눈동자가 커다란 문에 닿았다. 화려하게 양각된 문의 문양을 보며 비올렛은 자신이 지금 천국으로 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까지 했다. 그만큼 저 문은 현실감이 없어 보였다.
“아가씨.”
“응?”
“생일 축하 드려요.”
그 말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금색의 촛불을 머금은 샹들리에가 빛을 반사시켜 마치 한낮처럼 눈이 부셨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만 사람들이 무척 많이 있을 거라는 그녀의 긴장과는 다르게 있었던 사람은 매우 소수의 사람들 뿐이었다. 그럼에도 화려한 의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홀의 커다란 단 위에는 잭이 노력했음이 분명한 커다란 무엇인가가 놓여 있었다.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예쁜 음악소리가 들린다.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낯선 풍경 속에 그녀는 외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불안하게 눈을 굴리고 서 있으니 낯익은 사람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바로 라이셀 백작 부인이었다.
“성녀님, 생일 축하드려요.”
그녀가 다가오자 여러 사람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를 훔쳐보았다. 그 시선에 움츠리고 싶었으나. 예법을 가르쳐 준 백작 부인이 있어 함부로 그러지도 못했다.
“어머, 성녀님. 생신 축하드려요.”
“한번 뵙고 십었답니다.”
“성녀님 생신 축하드려요.”
그녀는 돌아가지 않는 시선을 들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치맛자락이 꾹 쥐어져 주름이 갈 것같았으나 신경을 쓸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떨어져 있었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 맞았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그녀에게 있어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축하해준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 축하 인사를 받으며 라이셀 백작부인의 눈치를 보았다. 그녀가 활짝 웃고 있는 것을 보아 다행히 결례된 일은 하지 않은 듯 했다.
“앤.”
비올렛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옆에 있는 앤을 부르는 일이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있어?”
“그거야 당연히 아가씨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랍니다.”
“……내 생일은 왜?”
“그거야 성녀님의 생일이니까요.”
그 말에 그녀는 아연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빴구나. 생일을 축하하러. 하지만 왜 저들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축하하기 위해 온 것일까. 그래도 어린 그녀는 그것의 진위를 의심하기 보다는, 정말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왔나보다라고 생각하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본디 성녀의 축일은 열 여섯 이후부터 국가적으로 기념 한답니다. 그땐 온 백성들이 아가씨의 생일을 축하할 거에요.”
“…….”
온 사람들이 이렇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넨다고? 그녀는 그러한 장면을 상상하며 아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건 후작님이 배려해 주신 거에요. 그래도 성녀님의 생일은 축하받아야 마땅하니까요. 라고 하지만 후작님도 참……크게 일을 벌이셨네요, 그렇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여러 사람이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줘도 이건 그녀에게 축하가 아니었다. 그저 이 드레스를 입은 것 만으로도 그녀는 괴로웠다. 몸에 맞지 않는 예법대로 행동해야 하는것은 마치 백작 부인에게 그동안에 배운 것을 검사받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후작은 그것을 원할지도 몰랐다. 그녀의 얼굴이 흐려졌다.
“비올렛!”
다니엘이 그녀를 곧장 발견하고 달려왔다. 다니엘은 연녹색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의 노란 금발머리와 무척 잘 어울렸다. 샹들리에의 빛에 그의 금발이 반짝였다.
“생일 축하해 비올렛.”
“고마워.”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는 다니엘 만은 믿었다. 활짝 웃어주며 그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오늘 정말 예쁘다.”
그 말에 그녀는 어쩐지 자신감이 생겼다.
“네 이름과 같은 보라(바이올렛)색이야. 잘 어울려.”
“고마워.”
그녀는 아직도 바뀐 은발과 눈 색이 낯설었다. 자랑이던 보라색의 눈동자는 사라지고 투명한 눈동자만이 남았다. 만약 그녀의 눈이 아직 보라색이었으면 이 옷은 더 잘어울려 보였을까.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서스럼 없이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오빠가 어울린다고 해주니 좋았다.
“그리고 아주 예법에 능숙해졌어. 이젠 아가씨 같은게 아니라 정말 아가씨가 되었어.”
“정말?”
“정말.”
그렇게 말하며 온유하게 웃었다. 그 부드러운 미소에 그녀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야!”
그녀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그는 옅은 파랑 옷을 입고 있는데 그는 다짜고짜 짜증을 냈다.
“야이 멍청아.”
언제나 에이든은 그랬다. 그는 언제나 툴툴거렸다.
“너 때문에 난 지금 검술 연습도 못하고 여기서 이러고 있단 말이야. 이 옷 정말 싫어.”
그는 자신의 목을 죄여오는 의복의 단추를 끌르며 말했다.
“에이든.”
다니엘이 엄한 목소리에 그는 혀를 내밀었다.
“내가 네 생일을 왜 축하하냐? 넌 내 생일 축하해봤어?”
생각해 보니 가을에는 에이든의 생일이었는데 그녀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사실 그녀역시 생일을 축하해 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에이든의 말은 지당했다. 비올렛은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검술 하러 가.”
“뭐?”
“내 생일 축하를 위해서 굳이 이렇게 올 필요는 없어.”
그 말에 에이든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뭐라고 말을 하려고 입을 뻐끔 거리다가 푸에엥! 하며 얼굴을 찡그리고는 성큼성큼걸어 가버리는 것이었다. 킥킥거리며 웃는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옆에 꼭 붙어있던 앤 역시 웃음을 참다 결국 킥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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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님이 또 사고를 치셨대요 에베베베베베!!!!
재미있으셧다면 추천이나 코멘 부탁드려요!!
아 진짜 요사이엔 지니어스 3를 보는 재미에 살아여! 아 1화가 너무 재밌었음
오늘도 하고있을텐데 제가 티비가 없어서 다시 봐야겠어여..
다음편엔 신캐릭이 나올 생각이에여 캬..
아 참, 비올렛을 옹호해주셔서 감사해요. 일단 뜰에 놔두는 것보다는 공지사항에
비올렛을 올리는게 낫다고 생각해서 공지에 올려놨어요. 뜰안에 비올렛은 어린 비올렛
이 아니라 다 큰 비올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