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5 후작님 외전 =========================================================================
식사 시간 때마다 어쩐지 빈자리를 보며 불편해 하는 에이든을 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이 크다는 것을 아는 소년이었다. 나이차이도 한 살 밖에 나지 않아 친구가 되어줬으면 좋겠건만, 소녀는 에이든을 무서워 피해다녔다.
그나마 다니엘을 따르는 것 같아 안심이었다. 그러나 다니엘도 기본적으로 자신의 일을 더 우선시 했다. 다니엘은 자신이 공부하는 시간을 방해받는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기묘한 구석이 있었다.
사실 첫째 아들, 에드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가장 그를 많이 닮은 것이 에드였으므로. 예법 교사를 구할 당시 깍듯한 예의범절을 지닌 자작 부인의 부드러운 성품을 믿었다. 게다가 그녀는 거의 몰락해 가는 자작 가문이었고 여자아이 연경의 딸이 있었기에 더욱 더 신경을 써 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후작의 실책이었을 줄이야.
자작 부인은 그녀가 모범적인 학생이라며 칭찬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정말로 나아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겁에 질린 얼굴은 아직도 그녀가 이곳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후작은 그녀에게 벌어진 참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리라 생각했다. 이 가문에 그녀가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또한 어머니의 성정을 닮은 다니엘을 믿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상태는 어떠한가.”
“멍이 빨리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조금 심각하군요. 성녀님께서 스스로를 치유하시지는 못하셨던 모양입니다.”
의원은 그렇게 말하며 다리에 약을 발랐다. 퉁퉁 부은 다리로 힘들게 걸어다녔을 소녀를 생각하자마자 그는 분노했다.
라이셀 백작의 여자아이는 도자기 인형처럼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지금 저 다리에 퍼진 멍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자그맣고 깡 마른 두 다리에 새겨진 참혹한 흔적에 그는 할 말을 잃었다. 후작의 분기는 그녀를 모시던 시녀를 향했다. 시녀는 자작 부인에게 돈을 받고 그것을 은폐했노라고 자백했다. 그는 그녀를 처형할까 하다가 에드의 만류에 그것을 멈추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성녀께서 가장 좋아하던 하녀였다. 만약 저 하녀가 당한 일을 그녀가 알게 된다면 마음이 상할지도 몰랐다.
“그래, 네가 고생했구나.”
그는 에드에게 말했다. 에드는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저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
후작은 대답대신에 한숨을 내쉬었다. 에드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많은 고초를 당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다니엘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아버지. 제가 더 신경썼어야 했는데.”
“네 탓이 아니잖니.”
그말에 다니엘이 천사같이 미소지었다. 후작은 그 깡 마른 다리에 서린 멍을 떠올랐다. 정말로 딸처럼 여기는가, 그는 혼란에 빠진다. 천민 여자 아이, 기껏해야 꽃의 거리 출신의 여자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세개의 태양 중에 하나이다. 만난지 얼마 안된 여자에게 애정이 있을리는 없다. 그러나, 손을 뻗을 때 움츠리던 그 모습이, 피가 터지도록 멍이 들었음에도 꾹 참고 억눌러왔던 그 애처로움이, 그리고 그 가느다란 다리에 서린 멍은 잊혀지지 않았다.
“왜 그러신건지 이유를 말씀해 보시겠소? 이스킨데르 자작 부인.”
후작 처에 방문한 자작 부인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하녀가 자백했소.”
그는 거기서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거기에서 어리석게 용기를 얻은 자작 부인이 소리쳤다.
“전 그저 그 여자아이를 훈육 시킨 것 뿐입니다. 후작께는 좋게 말씀드리려 하였으나. 그 천민 여자아이는 배우는 속도가 너무도 미진하여 매를 들지 않고 버틸수가 없더군요!”
“........”
후작은 계속해 보라는 듯 깊은 푸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게다가 몸가짐도 단정치 못한데 그런 드레스를 입고 있다니, 후작께서 아무리 좋은 취지로 옷을 보내 준 것은 이해하나 아직 주제도 파악 하지 못하고 그런 옷을 입고.......”
“주제라 하셨소?”
그녀의 말을 후작이 딱 잘랐다. 자작 부인은 왜 그가 이 왕국의 검이며 서열상으로는 티게르난 공작과 비등한 이 거대한 가문의 수장인지 깨달았다. 그는 결코 그녀와 같은 생각이기 때문에 침묵했던게 아니었다. 그저 인내하고, 또 인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후작, 후작님!”
덜덜 떨고 있는 자작부인을 향해 후작이 말했다.
“자작 부인, 그대의 입으로 성녀를 모독하고 있음을 알 것이오, 교황이나 공작이 이 사실을 알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질지도 모르오. 하지만 나는 묻으리다.”
그녀는 자신의 입이 경솔했음을 깨달았다. 성녀는 신의 현신이다. 하지만 저런 성녀의 위엄도 없는 여자가 어떻게 성녀란 말인가. 자신의 딸은 옷을 사 입을 돈도 없어 언제나 무시당하는데 저 천출이 그저 머리색과 이마에 낙인으로 인해 대접받는 것을 참을 수 없을 뿐이다. 여러 귀족들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성녀가 사라진지는 100년이 넘었다. 그 100년동안 성녀의 위상을 그 누구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후작의 말에 그녀는 자신이 가르쳤던 사람이 성녀이고, 그 성녀는 교황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후작은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별개의 일, 이제 성녀님께서는 에르멘가르트 후작의 사람이오.”
“........”
“그대는 ‘나의 딸’에게 그러한 짓을 벌였고, 나는 이 것을 잊지 않을 생각이오.”
후작은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자작 부인은 후작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으나. 뒷짐을 진 채 창을 보는 그의 얼굴이 어떤 표정일지 너무도 무서워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저 순진한 사람이겠거니 무시했던 자신의 오만을 벌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딸. 그래, 공식적으로는 성녀는 후작가의 여식이었다. 하지만 후작이 이렇게 그것을 쉽게 인정할 줄은 몰랐다. 어떻게 꽃의 거리, 창녀촌 출신의 소녀를 인정한단 말인가! 그러나 후작은 단호했다. 그녀가 무엇이라고 변호하려고 입을 열자, 그는 축객령을 내렸다. 자작이 이것을 알게 된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감히 그 에르멘가르트 후작 가와 척을 지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녀의 정신은 아득해졌다. 그녀가 나가고 나서 후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다시 앉아서 라이셀 백작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는 알았으나, 사실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싫지만 그밖에 없었다. 아마 백작은 엄청 잔소리를 하며 이때다 싶어 그를 가르치려 들것이다. 이번에는 그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후작은 또 고민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어떤 것을 사줄까. 그렇게 고민하며 여기저기를 서성이던 후작은 이쪽에 걸어오는 하얀 머리의 소녀를 보았다. 그녀의 옆에 있는 여자애가 집사의 딸인 앤인것을 보아 에드가 잘 생각했다며 내심 흐뭇해했다. 앤은 어려서부터 에셀먼드와 같이 자란 가장 믿음직한 하녀였다. 방안에만 있어서 걱정이 되었더니, 아무래도 앤의 손에 끌려 이리저리 집을 구경다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무엇을 좋아하는지 직접 물어보는게 낫지 않을까? 왜 그생각을 못했지! 그가 그렇게 생각하며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그가 고민하고 있을때 이 작은 성녀님은 그를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사실 비올렛은 겁을 먹은 것이었으나, 일단 후작이 보기에는 그러했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물더니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을 보는 얼굴로 (이것도 후작의 시선이 그러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않다는 듯(사실 그녀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도망가버리는 것이었다.
“아가씨!”
앤이 그녀를 쫓아가자 그는 멍하게 서 있었다. 그러다가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단단히 미움을 산 모양이었다. 에이든이 그녀가 펑펑 울었노라고 말하며 그 하녀를 다시 데려오면 안되겠냐고 투정을 부렸다. 그는 그것을 엄하게 일갈했지만 아마 그것때문에 단단히 미움을 산 모양이었다. 뛰어가는 것을 보니 다리 붓기는 가라 앉았으리라 안심을 하면서도 후작은 어쩐지 허탈한 마음이들었다. 그렇다고 핀이 자작부인의 푼돈을 받고 그녀가 당한 일에 침묵했다는 것을 이해시켜 줄 수 조차 없었고, 믿지도 않을 것 같아 그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저 라이셀 백작의 해맑은 여식이 떠올랐다. 아마 그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듯 했다.
<후작외전 끝>
============================ 작품 후기 ============================
후작님은 그리고 또 실수를 하시게 되는데. 내일 열두시를 보시면 나와여...ㅎㅎ
재미있으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0^ 추천 코멘 받으면 전 글쓰는 기계가 된답니다
자꾸 여주가 답답하다고 하시는데
여러분 ㅠㅠ 이건 회귀물이나 복수물처럼 여주가 이미 정신적 성장을 한 상황이 아니에요.
얘 이제 열살임. 초등학교 3학년...애기애기..
저도 이거 쓰면서 아 답답하다 답답해!! 이렇게생각하지만 ㅠㅠ
변하지 않을 거라고여...? ㅠㅠㅠ 제 비올렛은 뜰에 있는 일러스트처럼 될텐데여...
일단 뜰에 있는 비올렛의 그림은 표지로 할 예정이었으나 표지를 바꾸지 못한다는 조아라 규정을 숙지하지 못하여 ㅠㅠ 저는 나중에 바꾸려고 했어여 ㅠ.ㅠ
비올렛은 일러스트 처럼 바뀝니당 그리고 유년기는 좀 답답할거에요.
우리 길게 보고 갑시당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테니까요.
제 전작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완벽한 여자를 쓰지는 못하지만 수동적이고 답답한 여주는 쓰지 않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