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화
철컥.
한 번 더 총을 겨누는 것보다, 이번엔 마리아가 더 빨랐다.
아마 총에 맞기 전부터 능력을 가동하려고 준비를 해온 덕이었을 거다.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는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우우우우웅!
사방의 벽이 열기를 품고 뜨겁게 격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도 이 안에는 사람이 다섯이나 남아있었다!
놀란 눈들이 서로와 마주쳤다. 특히나 최도윤은 반쯤 제 운명을 직감한 듯했다.
‘이건 그다지 쓰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간 다 같이 폭발에 휘말려 죽을 처지였으니까.
‘노이트.’
내 부름에 노이트가 응답했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무엇을 원할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감싸안는 비익.’
후욱!
그 이름을 부르자 일순 시간이 멈췄다.
바르르 떨리던 마리아의 팔도, 무어라 소리치려고 하는 이사벨라도, 제 목숨보다 서류부터 챙기는 카멜롯도.
죄다 멈춰 섰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부풀어오른 벽까지 말이다.
[알림: 특수탄환 ‘감싸안는 비익’이 자신의 나머지 한 쌍을 찾습니다.]
이 탄환을 쓰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비익比翼.
날개가 하나씩밖에 없어서 서로 부둥켜안지 않으면 날지 못했다고 전해지는 비익조에서 유래된 이름이었다.
이 특수 탄환은 유별나게 특이해서 나 홀로 발동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반드시 함께할 파트너가 필요했다.
신뢰도를 따지자면 이사벨라가 우선이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전투원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부족했다.
‘최도윤과 카멜롯. 둘 다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는 상대라고 하긴 어려운데…….’
그래도 둘 중 고른다면, 이쪽이지.
나는 최도윤의 손을 잡아끌었다.
박제되어 있는 시간 속에서 홀로 생기를 되찾는다.
“이……건?”
“제 능력 중 하나예요.”
최도윤이 놀란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라니…….”
“이 상태에선 다른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니 잠시 시간 벌기에 불과하죠.”
그렇다 하더라도 한낱 인간인 내가 이런 일까지 할 수 있다는 건 놀랄 만한 일이었다.
아마 탄환이 개방될 때 크로노스와 밀접해 있던 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감상은 나중에 하고. 당장 이 일부터 처리하죠.”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 틈을 타서 사람들을 바깥으로 옮기면…….”
“아뇨.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니까요.”
그런 편리한 능력이 아니다.
“그럼 뭘 어떻게 해야.”
철컥.
나는 그의 이마에 총구를 겨눴다.
“……무슨 의미지?”
“맞아도 죽지 않을 거예요.”
“그걸 믿으라는 건가?”
그가 존댓말도 때려치운 채로 낮게 읊조렸다.
하지만 믿어야만 했다.
마음 같아선 그냥 강제로 쏴버리고 싶지만 그의 진심 어린 협력이 필요한 단계이므로 애써 참아냈다.
이미 한번 비슷한 경험이 있는 카멜롯 대신 최도윤을 선택한 이유도 이 조건 때문이었다.
‘진심으로 내게 동의할 것.’
이 애매하기 짝이 없는 문장이 승패를 가른다니.
찬반 투표도 성좌들이 할 게 틀림없었다.
‘진심’ 같은 주관적인 단어를 시스템이 어떻게 판단한단 말인가.
“제가 이유 없이 거짓말할 것 같아요?”
그건 아니었는지 최도윤의 눈매가 한층 누그러졌다.
“당신을 죽이고 싶어서 이러는 거면, 굳이 이렇게 귀찮은 방법을 쓸 필요도 없는걸요.”
그러자 다시 매섭게 변했다.
언제든지 널 죽일 수 있다는 선전포고와 같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사실인걸.
최도윤을 죽이는 데 귀찮은 방법들을 동원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부정할 수 없군.”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받아들여요. 살리고 싶잖아요? 당신 동료를.”
민시우가 아직도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당신 목숨도.”
최도윤도 이곳에 서 있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것 같은 폭탄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갤 끄덕였다.
“……뭔진 모르겠지만, 당신 능력이라면 우릴 전부 버리고 혼자 사는 것도 가능했을 테니……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절 믿어요?”
“지금까지 당신을 관찰한 제 자신을 믿습니다.”
마지막까지 재미없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마주 보는 눈빛이 무척 올곧아서.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아, 참.”
마지막으로 그에게 전할 말이 있었다.
“후유증이 조금 있을 수도 있어요.”
“뭐?”
되묻는 그의 말에, 총알도 답했다.
타앙!
감싸안는 비익이 최도윤에게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리고 그 이마에 닿는 순간.
촤라라락!
탄환이 허공에서 흩날렸다.
모래처럼 작은 알갱이들이 그와 날 감싸안고 맴돌았다.
[알림: 특수탄환 ‘감싸안는 비익’이 현실에 개입합니다.]
[알림: 목적이 설정됐습니다.
- 목적: 폭발 시점의 연기]
[알림: 대가를 산출합니다.]
시끄러운 알림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알림: 산출 결과가 나왔습니다.
- 1, 0054, 7209]
[알림: 분담 수치를 조정해주십시오.]
나는 망설임 없이 내 비율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권장 수치는 70%라는 알림과 함께 1차 경고 메시지가 떴다.
아랑곳하지 않고 더 올리려는데 최도윤이 막아섰다.
“잠시만요. 이게 대체 뭡니까? 분담이요?”
“말 그대로요. 현실에 개입하는 만큼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걸 누가 얼마나 치를지 결정하는 거죠.”
“대가라고 하면?”
“명확하게 정해진 건 없어요. 신체의 고통일 수도 있고.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일 수도 있고요.”
나 역시 분담을 내가 떠맡는 건 처음이라 어떤 형식으로 발현될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탄환을 쓰던 날은…….
‘수치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고, 분담 비율도 크로노스가 100%였으니까.’
지구의 오염을 되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을 때 나온 수치는 눈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절반씩 맡는 게 어떻습니까.”
“아뇨. 설명 없이 휘말리게 한 건 저니까 제가 분담하는 게 맞아요.”
“그럼 70대30으로 하죠. 제가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70이 권장 수치인 것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조금 찜찜하긴 하지만 그와 분담 비율로 실랑이를 벌일 필요도 없기 때문에 순순히 승낙했다.
[알림: 특수탄환 ‘감싸안는 비익’의 효과가 발휘됩니다.
- 효과: 폭발 시점의 연기(5m)]
알림과 동시에 나와 최도윤은 현실로 돌아왔다.
후우우욱!
마법이 풀리는 것처럼, 주변을 맴돌던 알갱이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다른 이들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탁, 뭔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온몸을 강타하는 고통에 잠시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조심해! 아직 끝나지 않았……! 어?”
시간이 흐르는 것과 동시에 이사벨라가 외쳤다.
그러나 벽은 폭발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잠잠하기만 했다.
퍼억!
최도윤이 마리아를 기절시키는 동시에 내가 이사벨라와 민시우를 한꺼번에 업어 들었다.
“카멜롯 씨. 알아서 탈출할 수 있겠죠?”
아마 바깥에 있는 자경단들에게 모습을 들키면 곤란할 것 같았기에 슬쩍 물었다.
그는 자신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며 웃을 뿐이었다.
푸욱!
“가죠.”
최도윤이 원하던 대로 마리아와의 악연을 끝냈는지, 한쪽 뺨에 튄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나는 민시우를 그에게 건넸고 우리는 말없이 건물을 탈출하는 데 전념했다.
남은 시간은 고작 5분이었으니까.
***
“내가 움직일 수 있다니까……!”
“안고 가는 게 더 빨라.”
이사벨라는 내게 안긴 채로 달리는 게 퍽 민망한 듯 자꾸만 꾸물거렸다.
“왜 미리 연락 안 했어?”
나는 그게 묻고 싶었다.
“카멜롯하고 접촉했을 때. 펜던트 잃어버렸을 때. 나랑 먼저 연락할 수 있었잖아.”
귀걸이는 아직도 이사벨라의 귀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직접 찾아올 때까지 한 번도 날 부른 적이 없었다.
“……내가 해결하고 싶었거든.”
“나랑 같이 해결할 수도 있었잖아.”
“펜던트를 잃어버렸다는 한심한 소릴 하기 무서워서 그랬어.”
이사벨라가 펜던트를 어루만졌다.
다니엘의 유품을 잃어버릴 뻔했다는 것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킨 모양이었다.
“어쩌다 잃어버린 건데?”
“……말하자면 길어. 평소엔 절대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데,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사라졌거든.”
아마 이 모든 게 우연일 것 같진 않고, 카멜롯이 손을 썼다고 봐야겠지.
“그래도 다음부턴 말해줘. 같이 찾으면 더 쉬울 수도 있었잖아.”
이사벨라를 구하러 이운우를 배신하고, 저녁 약속도 죄다 취소한 채로 여기까지 달려오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 목소리에 담긴 피곤함을 알았는지 이사벨라가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인질들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의외의 인물들과 마주하는 바람에 뻣뻣하게 굳었다.
어쩐지 어색한 얼굴의 자경단들과 함께 있는 인물들이 너무도 낯익었다.
“……저녁 식사에 늦는다고 연락은 남겨주지 그랬어.”
어쩐지 조금 성난 얼굴로 최도윤과 날 번갈아 바라보는 혜원 언니와.
“또 이런 위험한 일에 끼어든 거예요?”
평소보다 냉담한 눈빛의 표연원.
“그래서 직접 데리러 왔지.”
생긋 웃는 전서호.
“……이럴 줄 알았다니까.”
마지막으로 할 말이 많은 듯한 얼굴의 이운우까지.
즐겁게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어야 할 네 사람이 이곳까지 행차한 것이다.
‘대체 어떻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황급히 이사벨라를 내려놓은 다음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음……. 우선, 늦는다고 연락 못 드린 건 죄송해요. 워낙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서…….”
“얘기는 대충 들었어.”
혜원 언니가 자경단들 쪽을 고갯짓하며 대꾸했다.
“원래는 만나면 이번엔 정말 크게 혼을 내려고 했는데.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다.”
언니가 성큼 다가와 나를 꼭 끌어안았다.
“죄송해요. 다음엔 미리 얘기할게요.”
“아냐. 왜 얘기 못 했는지도 대충 알 것 같으니까.”
혜원 언니가 이사벨라의 붉은 머리칼을 따라 눈동자를 굴렸다.
설명하지 않아도 전부 파악한 눈치였다.
혜원 언니가 뒤로 물러나자 이번엔 이운우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썸이라며.”
“미안.”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건데?”
“핑계가 필요했으니까.”
최도윤과 단둘이 만날 핑계가. 이운우의 눈을 속이고자 했고, 실제로 성공하기까지 했다.
내 생각보다 빨리 눈치채서 마지막에 덜미를 잡히긴 했지만.
“하아……. 내가 이것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나? 원한다면 얼마든지 사람 하나쯤 지우는 건 일도…….”
“자꾸 너한테 부담을 주는 것 같잖아.”
어째 이사벨라와 내가 나눴던 대화가 자꾸 떠올랐다.
나 역시 이운우에게 자꾸만 폐를 끼치는 것이 미안해서 모든 것을 숨겼으니까.
“미안해. 다음부턴 너한테 먼저 얘기할게.”
내가 굽히고 나오자 이운우가 불만스럽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네.”
후우, 하고 푹 한숨을 내뱉는다.
“고생했어.”
그 말을 듣자,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던 고통이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왔다.
“허억……!”
절로 몸이 기울고 이운우가 그런 나를 붙잡았다.
“야, 한서하! 너 왜 그래!”
“으……. 소리 지르지 마. 울려…….”
끔찍한 고통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나왔다.
“갑자기 왜 그러는…….”
콰과과과과과광!!
쿠우우웅!
일순 눈앞이 점멸했다.
뒤에서 저택이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거대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등지고 있는데도 그 빛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촤아아악!
“깜짝 놀랐네.”
찰랑, 물결이 치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전서호가 추가적인 피해가 없도록 조치를 취한 것 같았다.
“……다행이다…….”
그렇게 동시에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