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화
“대체 왜?”
이사벨라가 알기로 카멜롯은 한서하와 이미 아는 사이였다.
그런데 그녀를 끌어들이기 위해 이런 짓까지 한단 말인가?
“우선 제3자인 당신까지 이 일에 끌어들여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언제부터? 펜던트를 훔친 것부턴가?”
“그럴 리가요. 그건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카멜롯은 우연찮게 한서하의 지인을 만나게 되다니. 자신은 참 운이 좋은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체 무슨 속셈이야.”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시죠. 한서하 헌터에게도 해가 가는 계획은 아니니까.”
그는 양팔을 활짝 벌렸다.
마치 연극이라도 하는 것처럼 과장된 제스처였다.
“이 블랙메일을 모조리 파괴하는 것! 오직 그게 제가 원하는 전부니까요.”
그의 눈빛에서 묘한 열기가 느껴졌다. 이사벨라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여길 파괴하는 것 정도는 당신도 할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그야 제가 여기 있다는 건 비밀이거든요.”
카멜롯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당신의 존재를 비밀로 하기 위해 한서하 헌터가 여기 달려온 것처럼 말이죠. 저 역시 가림막이 필요했거든요.”
제길.
저 말을 들으니 더욱 명확해졌다.
한서하는 이사벨라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는 거였다.
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절로 가슴께가 답답해졌다.
“그래도 다행히 제가 찾던 정보가 이곳에 있었으니. 다른 지부는 털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개인적인 원한이라도 있나 보지?”
“비슷합니다.”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 비슷한 건 또 뭐란 말인가.
“좋습니다. 모처럼 한 배를 탔고, 시간도 조금 남았고. 당신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권리가 있겠죠.”
그가 생긋 웃었다.
“저는 타르타로스 출신입니다. 그곳이 어딘지 아나요?”
“……몰라.”
“각성자들을 가두는 지하 감옥이죠. 한번 발을 들이면 두 번 다시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는.”
그런 것치곤 눈앞의 카멜롯은 버젓이 바깥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양식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카멜롯은 잠시 과거의 꿈결을 헤아렸다.
지독히 폐쇄적인 그 지하감옥은, 보안을 명목으로 사실상 자치 기구처럼 움직이곤 했다.
국제 연합조차도 함부로 건들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 위용을 알 수 있으리라.
권력 구조가 역전된 데에는 타르타로스의 간수, ‘닉스’의 영향이 컸다.
전무후무하게도 각성자들의 능력을 ‘무효화’할 수 있는 인물. 닉스.
그녀의 능력은 많은 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고, 그녀는 스스로를 타르타로스에 가두는 대신 그 안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됐다.
“양식장? 감옥에서 뭘 양식한다고…….”
“그곳은 닉스의 놀이터였거든요.”
세상을 호령하던 각성자도 닉스의 손바닥 위에선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그토록 무서운 능력이었다.
국제 연합도 닉스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아 쩔쩔맸다.
“닉스는…… 그 안에서 각성자들끼리 새끼를 치게 했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것과는 다르다. 그건 말 그대로 번식이었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방식으로 아이를 갖게 했지만 이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걸 깨닫고 방식을 바꿨다.
난자와 정자를 인공적으로 채취해 제 맘대로 조합하며 아이를 만들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강력한 각성자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각성자들의 고유 스킬은 유전되는 게 아니지만, 적어도 강한 각성자들끼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도 강한 능력을 갖게 될 확률이 높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유로 타르타로스는 양식장이라는 자조적인 별명을 얻었다.
“국제 연합은 오히려 그들을 반겼습니다. 왜냐하면 닉스는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 중 가장 뛰어난 것들을 골라 제물로 바쳤거든요.”
닉스가 세력을 불리는 걸 가만히 두고만 볼 국제 연합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가로 가장 우수한 상품을 원했고 닉스는 기꺼이 그것을 내어줬다.
“……설마.”
이사벨라는 카멜롯의 말 속에서 무언가를 읽어냈다.
그가 내뱉은 말들이 무척 의미심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타르타로스 ‘출신’이라 칭했다. ‘소속’이 아니라.
“하지만 국제 연합도 순진하기 그지없었죠. 닉스가 언제까지나 타르타로스 안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데 만족할 거라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카멜롯은 그 부분을 언급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국제 연합에 넘겨지지 않은 다른 아이들은 타르타로스 바깥에서 길러졌습니다.”
그건 닉스로서도 꽤나 위험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성공했고, 마침내 타르타로스 바깥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그게 블랙메일의 시작이었죠.”
타르타로스가 낳은 아이들.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그들이 세상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지금은 스카우트한 이들이 더 많긴 하지만요. 닉스도 바보가 아니었고, 블랙메일에서 서서히 그들의 존재를 지웠습니다.”
이제 블랙메일의 수뇌부 중 타르타로스 소속은 거의 없다.
그들은 죄다 닉스의 침묵 아래 죽어나갔다. 죽은 이는 말이 없으니, 가장 확실한 입막음이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비밀은 없는 법이죠.”
각 지부에 딱 한 부씩만 배부된다는 ‘서약서’.
블랙메일의 시초에 대한 비밀을 담고 있는 그 서약서를 얻기 위해 그는 이곳에 있었다.
“그 서약서가 도둑맞은 걸 감추기 위한 장치로, 나랑 서하가 선택됐다?”
“장치라뇨. 약간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죠.”
카멜롯이 능청맞게 둘러댔다.
이유야 어찌 됐든 누군가에게 속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이사벨라가 인상을 팍 구기고 무어라 한마디 더 얹으려는 그때.
콰과과과과광!
퍼억!
사람 하나가 천장을 부수고 날아와, 이사벨라와 카멜롯 사이 바닥에 처박혔다.
털썩, 거구의 남자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지며 작게 피를 토해냈다.
“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파스스, 콘크리트 가루가 흩날리는 가운데 누군가 부서진 벽 조각을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 머리카락에 하얀 가루가 끼얹어져 회색으로 보였다.
“……한서하?”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아니, 그녀가 이 건물 안에 있는 건 알았는데. 사람 하나를 곤죽으로 만들면서 이렇게 등장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찾았어요.”
한서하가 누군가에게 보고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대피시키고 바로 움직입니다. 다른 분들도 슬슬 빠져주세요.”
파스스!
그 와중에 한서하가 잡고 있던 콘크리트 조각이 한 번 더 가루처럼 바스러졌다.
이번엔 카멜롯도 할 말을 잃었는지 침음성을 삼켰다.
***
예상대로, 필립을 핑계 삼아 들어간 곳에는 이사벨라와 카멜롯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사벨라가 손에 펜던트가 쥐고 있는 것을 보면 찾을 건 다 찾은 듯했다.
“카멜롯 씨. 이사벨라를 데리고 바깥으로 대피해줄 수 있습니까? 당장 여기가 위험 지역이라서요.”
“뭐?”
“얘기는 나중에 하자.”
필립으로 시간을 끄는 것도 슬슬 한계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이 건물에서 이사벨라를 빼내는 게 우선이었다.
“왜 둘이 같이 있는 건지, 언제부터 그랬던 건지. 나한테 연락을 먼저 하지 않은 이유는 뭔지…… 묻고 싶은 건 많지만, 나중에 하도록 하죠.”
이사벨라를 바라보며 말하자 그녀도 찔리는 게 많은지 내 시선을 피한다.
이사벨라를 탓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일단 대피가 최우선이란 소리다.
“하지만……!”
이사벨라가 어떻게 봐도 호의적이라곤 할 수 없는 눈빛으로 카멜롯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은 몰라도 둘 사이가 그새 틀어진 모양이었다.
“……제가…… 모시도록 하죠.”
그때 최도윤이 민시우를 업고 내려오며 말을 꺼냈다.
“최도윤 씨.”
“움직일 수 있습니다.”
가벼운 뇌진탕 때문에 움직이기 어려워 보였는데, 그가 고집스럽게 움직일 수 있다고 대답했다.
실제로도 약간 휘청거리는 것을 제외하면 멀쩡해 보였다.
갈비뼈에 금이 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이사벨라도 카멜롯보다는 최도윤 쪽이 거부감이 없어 보여서 결국 그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부탁할게요. 제가 조금 더 시간을 끌다가 마지막에 민시우 씨를 데리고 움직이죠.”
민시우는 체구가 작아 데리고 움직이기 훨씬 편하니, 마지막에 내가 옮겨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카멜롯은 뭐, 사지 멀쩡해 보이니 알아서 탈출하겠지.
그를 사서 걱정해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차례대로 탈출하기만 하면 모든 게 계획대로 될 듯했다.
갑자기 마리아가 난입하기 전까지는.
후우욱!
“여기 옹기종기 모여 다들 뭐 하는 걸까?”
뻥 뚫린 천장 위로 마리아가 둥둥 떠 있었다.
‘어떻게?’
뭔가 기계 장치를 이용한 건가? 아니, 그런 의문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이가 좋아 보이네.”
마리아가 활짝 웃는다.
최도윤이 나 대신 이사벨라를 부축하고 있는 상태였다.
들켰다!
순간 모든 것이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마리아가 금방이라도 손을 딱, 튕겨 건물을 폭파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나를 비롯한 몇몇 각성자들은 어떨지 몰라도, 자경단원이나 이사벨라는 죽을지도 몰랐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사벨라와 팔이 닿아있어.’
최도윤에게 맡기느라 팔이 이사벨라의 허리춤을 감싸고 있는 형태였다.
‘게다가 각도도 안 나와.’
마리아와 나 사이에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윗층의 천장들이 적어도 2겹은 있었다.
팔을 떼고, 공간 간섭을 발동하고, 총을 겨누어서 쏘면?
‘늦어.’
순간적으로 그런 판단이 들었다.
노이트를 소환해서 철컥, 하고 장전하는 그때 모든 게 끝이 날 거다.
과정을 단축해야 했다.
노이트를 손아귀에 쥐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짧은 순간. 민시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필립에게 잔뜩 얻어맞긴 했지만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한껏 부어오른 그의 눈과 마주하자, 나는 우리가 동시에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망설임은 짧았다.
철컥.
노이트가 총구를 겨눈 건, 마리아가 아니라 민시우였다.
“무슨 짓을……!”
최도윤이 황급히 만류하려 했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였다.
민시우 역시 동의한다는 듯 작게 고갤 끄덕였다.
타앙!
키기기기기긱!
총알은 민시우에게 채 닿기 전에 투명한 방어막에 부딪친 것처럼 멈춰섰다.
둘은 잠시 힘싸움을 하는 것처럼 허공에서 멈춰 섰다.
“커헙!”
민시우가 작게 숨을 토해내자, 총알은 순식간에 허공을 향해 솟구쳤다.
반사해냈다!
-그 총, 나한테 한번 쏴봐.
-응. 궁금하네. 내가 과연 저걸 반사해낼 수 있을지…….
“우웁! 윽……!”
그 대가로 속이 진탕이 됐는지 헛구역질을 해댔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푸우욱!
“허……어……!”
총알은 마리아의 가슴께를 꿰뚫었고, 건물이 폭파하는 일은 없었다.
마리아의 신형이 그대로 허물어지듯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나와 민시우 사이로 마리아가 처참한 소릴 내며 쓰러졌다.
“하아…… 하아…….”
최도윤이 뒤늦게 숨을 몰아쉬었다.
“끝……난 건가……?”
움찔.
최도윤의 말과 동시에 마리아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