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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55화 (355/361)

355화

“블랙메일 한국 지부의 지부장은 현재 ‘마리아’로 추정됩니다. 블랙메일에 가입한 건 대략 3년 전쯤으로 추정되고, 밀레니엄의 보스가 된 것도 그쯤입니다. 그러니 블랙메일이 한국으로 진출하려는 밑작업을 3년 정도 진행했다고 볼 수 있겠죠.”

띄워진 사진은 나도 아는 얼굴이었다.

일명 걸어다니는 시한 폭탄. 나와 마주했던 밀레니엄의 보스였다.

“마리아라는 건 본명입니까?”

“우리끼리 붙인 별칭이에요. 이 여자의 취미 생활하고 어느 정도 연관이 있죠.”

“취미 생활이라고 하면?”

“갈 곳 없는 어린아이들을 거둬다 자식처럼 키워주는 거죠.”

그거 빌런치고는 꽤 헌신적인 취미였다.

“저 여자의 손을 탄 아이들은 사실상 생체 폭탄으로 변해요. 정확한 원리는 알 수 없지만, 구조하러 다가갔다간 목숨을 잃기 십상이니 주의해주세요.”

어린아이를 생체 폭탄으로 개조하는 게 취미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본거지 안에서 어린아이를 마주치면 마리아의 아이들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아요. 접근을 삼가고 최대한 피하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다들 이의 없이 고갤 끄덕였다.

-곤란하기도 하지. 조금 있으면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인데.

-워킹맘은 힘들어요. 이렇게 야근까지 해야 하고.

그 여자와 마주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뻔뻔스럽게 느껴졌다.

그 전까진 빌런이면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게 이상하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 밑으로 여러 간부들이 포진해 있어요. 대표적으로 로번, 라와, 메디트가 있고요.”

순차적으로 설명이 이어졌다. 그들이 외국에 있을 때 벌였던 악행들이 주요 내용이었다.

몇몇 목격담들을 포괄하여 그들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추측한 결과도 잇따랐다.

“로번은 나랑 저번에 싸운 적 있어~.”

“능력은?”

민시우가 먼저 경험담을 꺼내놓았다.

“정확하겐 모르겠던데. 나이는 20대 정도로 보였고, 남자에, 중얼중얼 혼잣말을 계속했지~.”

그리곤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처음엔 무슨 능력인지 잘 몰랐는데 상대하는 법은 좀 알겠어~.”

“다음에 상대하게 되면 승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응. 아마~?”

한번 부딪친 적 있다면 그가 로번을 상대하는 게 제일 나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각자 상성에 맞춰 누굴 상대하면 좋을지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주적이 남았죠. 마리아를 누가 잡을 것인가,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자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뭐, 헌터가 필요한 일은 그 정도 일밖에 없어 보였다.

“아시다시피 마리아는 손대는 것이 모두 폭탄으로 변하는 위험 인물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죠. 도망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고요.”

“도망치지 않게,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마리아를 잡는 게 최종 목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능력이 능력이니만큼 위험요소가 크거든요.”

소하정이 날 바라보며 물었다.

“가능하겠어요?”

불가능해도 해내야 했다.

그리고 언제나 나는 남들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들을 해내곤 했다.

“물론이죠.”

그리고 작게 덧붙였다.

“주변 피해 최소화는 자신이 없지만요.”

게이트 안에서는 주변을 신경 쓰면서 싸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 소하정도 그것까지 바라진 않았는지 선선히 고갤 끄덕였다.

“우리도 주변에서 서포트해줄 거예요. 최대한 생포에 집중해주세요.”

나는 힐끗 최도윤을 바라봤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긴 하지만 최도윤이 개인적인 원한을 품고 있는 그 빌런이 마리아 같았기 때문이다.

자경단도 생포를 운운하는 걸 보면 복수에 관한 건 그의 독단인 듯했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내 목적은 마리아의 생포 같은 게 아니었다.

물론 함께하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하긴 하겠으나 마리아의 생사 여부 같은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사벨라의 구출. 그게 최우선이야.’

지금도 이사벨라가 놈들의 본거지 안에서 꽁꽁 묶여 있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했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해당 건물에서 인질들을 먼저 빼낼 필요가 있어요. 건물째로 폭파할 가능성도 분명 있으니까요.”

“인질 규모는 어느 정도로 추정되죠?”

“애초에 블랙메일이 사람을 끌고 간 이유는 뭐랍니까? 장기 매매는 국내에선 시장 규모도 작을뿐더러, 그게 목적이었으면 본거지가 아니라 외국으로 빼돌렸을 텐데요.”

“아직 정확한 이유는 추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블랙메일이 사람을 납치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닌지 다들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누군가는 블랙메일이 인체 실험에라도 손을 댄 게 아니냐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과학자들을 대거 인수한 기록은 없다 대꾸했다.

“이제부터라도 장기 매매 시장을 키우려는 게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데…….”

“생체 폭탄을 대량생산하려는 건 아닐까?”

“생체 폭탄은 어디까지나 마리아의 취미지, 실제로 무기로 사용하는 일은 드물어요. 무기 개조에 더 힘을 쓰는 편이고요.”

여러 가설들이 세워졌다 바로 스러졌다.

수없이 많은 빌런들을 경험해온 이들이었지만 갑작스러운 행보에 갈피를 잃었다.

‘이사벨라가 말했던 귀찮은 일과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하필이면 그녀가 끌려간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펜던트는 없는데 귀걸이는 그대로였던 걸 보면 펜던트는 붙잡히기 전에 뺏긴 것 같았다.

일반 강도를 당했으면 순순히 내어줬을 리는 없고. 소매치기나 사기를 당한 거라 생각해야 좋을 테지.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챈 이사벨라는 황급히 도둑을 뒤쫓았지만 이미 패물은 다른 곳으로 넘어간 뒤였을 거다.

그게 흘러흘러 블랙메일의 소행이란 걸 알게 됐을 거고.

그럼 왜 이사벨라가 한국지부까지 오게 된 걸까?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무슨 용도로 인질을 모은 건지 알아야 위치를 특정하기 쉬워지는데…….”

“아. 그런 거라면 제가 위치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소하정이 번쩍 고갤 들었다.

“어떻게요?”

“……나름 정보원이 있어서요.”

차마 내 친구가 거기에 끌려들어가 있어서 그렇다곤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친구 귀걸이에 위치 추적 기능이 붙어있다는 것도.

누가 들어도 이상하게 들릴 게 뻔하지 않은가.

친구에게 위치추적장치가 부착된 귀걸이를 선물로 주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의심 어린 눈초리로 나를 몇 번 추궁했지만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정보가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 있어요?”

“네. 확실할 겁니다.”

이사벨라가 귀가 잘리지 않는 한은 말이다.

살벌한 가정이었지만.

“……그럼 일단 그 위치가 맞다는 가정하에 계획을 짜고, 위치가 예상과 다를 경우를 대비한 계획도 준비하도록 하죠.”

“그게 좋겠네.”

“네에~.”

“……좋은 생각…….”

나 역시 동의를 표한 다음 가장 중요한 걸 물었다.

“계획 시행일은 언제죠?”

“오늘 밤이요.”

“예?”

나도 모르게 소하정을 바라봤다.

그러나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빌런대책본부가 바짝 쫓아오고 있어서요. 오늘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예요.”

이운우가 며칠 밤을 새우는 것 같더라니. 유능한 것도 정도가 있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습격하게 생겼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건 죄송해요. 원래는 저희도 하루 이틀 정도 여유가 있을 줄 알았거든요.”

“……아뇨. 어쩔 수 없죠.”

소하정은 그들 역시 오늘 당일에서야 계획을 급히 당겼다고 해명했다.

“혹시 오늘 저녁에 따로 일정이 있으셨어요?”

그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거든요.”

***

“이상하다.”

표혜원이 시계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늦을 애가 아닌데…….”

저녁 식사 약속은 7시였는데. 어느덧 7시 반을 향해가고 있었다.

표연원이 애써 준비한 음식들이 속절없이 식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먼저 식사하고 있을까? 아무래도 뭔가 일이 생겼는데 연락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네. 이렇게 연락 없이 늦을 애가 아닌데.”

“그러지. 그리고 공식 자리도 아닌데. 좀 늦을 수도 있지.”

표혜원이 멋쩍게 얘기하자 전서호가 괜찮다며 수습했다.

“운우야. 너도 뭔가 들은 얘기 없어?”

“……오늘 누굴 만난다고 듣긴 했네요.”

“누구? 라임이 보러 갔나?”

“아뇨…….”

이운우는 이 얘길 자기가 꺼내도 되는지 잠시 고민했다.

보아하니 표헤원이나 표연원 둘 다 최도윤에 대한 얘긴 조금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야 그렇겠지.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들이 모른다고 했으니. 하루아침에 모든 걸 털어놨을 리가 없지 않나.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이운우는 불쑥 심사가 뒤틀리는 걸 느꼈다.

‘사귀는 사이 아니라더니. 아침부터 나가서 지금까지 안 들어온다고? 심지어 선약이 있는데도?’

그의 머릿속에 최도윤과 팔짱을 끼고 정신 못 차리는 한서하가 잠시 그려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냥 약속도 아니고…….’

전서호와 표혜원까지 있는 자리에 이렇게 말도 없이 늦는 건 한서하답지 않았다.

“……최도윤 씨를 만난다고 알고 있습니다.”

“최도윤? 그 자경단?”

“네. 맞아요.”

“갑자기 자경단을 왜?”

“최근에 본부하고 자경단이 협력할 일이 있다더라고.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니야?”

전서호는 이운우가 시킨 일 때문에 늦는 줄 알고 가볍게 타박했다.

“아뇨. 오늘은 약속이 있다길래 임무도 주지 않았습니다.”

“응?”

꿀꺽.

이운우는 어쩐지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점점 표씨 남매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걸 보니, 입이 차마 떨어지질 않았다.

“……자세히 얘기해봐.”

표혜원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럼 지금 서하가…… 사적인 이유로 웬 놈팡이를 만나서 이 시간까지 안 들어오고 있다, 이거야?”

이운우는 속으로 한서하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한서하……! 네가 저지른 일이니 뒷수습도 네가 해야 할 거다.’

표혜원의 얼굴이 살벌해지자 전서호가 황급히 그녀를 말렸다.

“한서하 헌터가 애도 아니고. 알아서 잘 하겠지. 한국에서 한서하 헌터한테 몹쓸 짓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래?”

“그거야 그렇지.”

겨우 표혜원의 기세가 가라앉았다.

한서하를 위험에 빠지게 만들려면 베테랑 헌터 수십 명을 데려와도 부족할 거다.

“그래도 이렇게 연락도 없이 약속에 빠지는 건 이상하잖아. 역시 뭔가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한서하답지 않긴 해요. 하지만 아마 뭔가 일에 휘말렸다기보단 스스로 일을 만들고 있을 가능성이…….”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이운우는 잠시 멈칫했다.

‘일을 만든다. 게다가 최도윤하고 한서하라……?’

이거 뭔가 냄새가 났다. 뭔가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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