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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53화 (353/361)

353화

챕터: 장막 뒤의 계획들

달그락.

나이프가 고기를 부드럽게 썰어냈다. 나는 접시를 깨트리지 않게 주의하면서 고기를 한 점 입에 물었다.

“갑작스럽게 약속을 잡아 죄송합니다. 따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요.”

“아뇨. 괜찮아요.”

최도윤이 미리 예약한 레스토랑은 개인 룸이 있는 고급 식당이었다.

부담이 될 터인데 이렇게까지 자리를 마련할 걸 보니 꽤나 중요한 이야기인 듯했다.

직원이 간단한 음식 설명을 하고 나간 뒤 우리는 단둘이 남았다.

‘아까 나올 때 다들 경악 어린 표정을 한 게 신경쓰이긴 하지만…….’

뭐, 아니라고 한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은은한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는 이 사내가 내게 식사를 청하면서까지 말하려고 하는 게 뭘지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서. 하실 말씀이란 게?”

“식사 중에 꺼낼 얘긴 아닌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저보다는 최도윤 씨가 더 불편한 식사 자리일 텐데요.”

“……제가 말입니까?”

그가 애써 발뺌을 했다.

이게 벨제부브의 기분이었을까?

나는 그에게 딱히 잘못을 한 것도 없는데, 상대가 이유 없이 날 꺼리는 이 상황이 어쩐지 우습기까지 했다.

꼭 이전의 나랑 벨제부브 같지 않나.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 오히려 궁금증이 더 생기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하는 호기심 말이다.

“제가 눈치는 빠른 편이라서요.”

공간 간섭이라는 고유 스킬은 내가 사람을 면밀히 관찰하는 데 더 도움을 줬다.

눈 안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오르자 최도윤이 몸을 움찔했다.

그가 나이프를 쥔 손. 바짝 굳은 어깨. 떨리는 동공과 내뱉는 숨결 하나까지.

그의 움직임이 전부 머릿속에서 그린 듯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호흡이 얕으면서 빠르네요. 심장 박동도 평소보다 빠른 편이고, 근육은 잔뜩 긴장해있어요. 몸이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방식이죠.”

“……긴장한 것뿐입니다.”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발뺌한다면 더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

어깨를 으쓱하고는 식사를 이어갔다.

최도윤은 잠시 말이 없었다.

“당신을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더 말해보라는 듯 그를 응시했다.

“헌터를 싫어하는 것도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헌터로부터 연상되는 게 싫은 거죠.”

“……게이트요?”

그가 고갤 끄덕였다.

거짓을 고하는 것 같진 않았다.

게이트에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은 이 포스트게이트 사회에서 그다지 드물지도 않았다.

그런 연유로 헌터를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연화도 게이트>를 아십니까.”

그가 익숙한 이름을 꺼냈다.

“……알죠.”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갑자기 입 안에 있는 스테이크에서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곳을 떠올리자 단번에 식욕이 싹 가셨다.

“당신이 그 게이트의 생존자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다지 좋은 기억이 아니란 것도 아시겠네요.”

“제게도 그렇습니다.”

그의 낯이 창백한 것 같기도 했다.

“……연화도 게이트가 열리던 그날, 전 가족들을 빌런으로부터 잃었으니까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가 빌런으로부터 가족을 잃은 것 자체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대개 자경단이 되는 이유는 그런 식이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그의 가족을 그날 잃었다니.

“병원에서 그러더군요. 게이트 때문에 비상이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한 명쯤은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엔 눈물 한 방울 고여있지 않았다.

이미 메말라버린 샘이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날은 전례가 없는 대규모 비파장 게이트가 열린 날이었죠.”

“모두가 그곳에 주목하고 있었고요.”

“그 빌런은 제 가족들을 살해하고 유유히 도망쳤습니다. 경찰도 헌터도 그 여자를 제지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었다고 해야 맞겠군요.”

그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려 비소를 머금었다.

“말 그대로, 세상이 뒤집혔으니까요.”

<연화도 게이트>가 출현한 직후 정부는 국가적인 비상 사태임을 선포하고 즉각 대응에 나섰다.

경찰과 헌터들을 대규모로 투입하며 상황 파악에 나선 것은 당연한 절차였고 말이다.

온 국민이 갑작스러운 비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게이트의 정확한 규모와 난도를 측정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제 가족과 친구들의 안위를 살피기 위해 전화를 수십 통씩 걸었다.

통신이 잠시 마비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난리통 사이로 빌런은 유유히 걸어나간 것이다.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은 채.

“……그래서 저는 당신이 싫지 않지만, 당신을 보는 게 달갑지도 않습니다.”

그의 시선이 올곧게 나를 향했다.

“<연화도 게이트>의 생존자. <연화도 게이트>가 낳은 영웅.”

혹자는 날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사람들은 고난을 딛고 이겨낸 영웅의 이야길 좋아하니까.

특히나 죽었다 살아 돌아오면서 내 사적인 가정사가 까발려진 이후로 그런 경향이 더욱 심했다.

언론은 내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것, 친척들의 집을 전전한 것, <연화도 게이트>에 휘말려 극적으로 생환한 것 등등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느라 바빴다.

“그게 당신이지 않습니까. 한서하 헌터.”

“이젠 헌터 아니에요. 은퇴했으니까요.”

“제 눈엔 아직도 헌터로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고요.”

아직까지도 내 이름 뒤에 ‘헌터’가 따라다닌다는 건 안다.

그리고 그게 썩 달갑진 않았다.

“제가 이런 사적인 이야길 털어놓는 이유는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본론이었다.

“제 가족을 살해한 그 빌런. 저는 그놈을 쫓아 이제까지 달려왔습니다.”

그가 자경단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가족의 복수를 위해.

“……놈은 블랙메일에 있습니다.”

“블랙메일은 최근에야 한국에 진출했다고 들었는데요.”

“블랙메일에 들어가기 전부터 빌런 짓을 해왔으니까요.”

“블랙메일에 대한 얘기라면 이미 본부와 협력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저 역시 본부 소속이니 따로 부탁할 이유가 없고요.”

그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야 뻔했다.

“저보고 본부를 배신하란 소릴 하시는 거면 일어나겠습니다.”

본부를 배신하란 건 곧 이운우를 배신하란 말과 같았다.

전청운은 아직 인수인계 중이니, 지금 본부는 사실상 이운우가 독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전청운이 치고 올라오기 전에 최대한 성과를 거둬 지금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더더욱 블랙메일 소탕에 밤낮없이 열심인데, 거기에 찬물을 뿌리라고?

최도윤의 사정이 안타깝긴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자 최도윤이 말없이 내게 사진 한 장을 건넸다.

“……이건…….”

사진 안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사벨라?”

“저희가 입수한 사진입니다. 블랙메일의 본거지에 호송되는 차 내부를 찍은 거고요.”

말도 안 돼.

하지만 제법 자라 가슴께에서 넘실거리는 저 붉은 머리카락은 부정할 수 없으리만치 선명했다.

손도 묶이고 입도 재갈을 물렸지만 녹색 눈동자가 정확하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한 정보원 말에 따르면 이분이 당신의 지인이라 하던데. 반응을 보니 맞나 봅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려고 애를 썼다.

이사벨라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는 ‘일이 좀 귀찮게 됐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게 설마 블랙메일하고 얽히게 됐단 얘기였을까?

아니, 그렇다 치더라도 이렇게 납치까지 된 마당에 왜 연락을 안 한 거지?

‘귀걸이는 그대로인데. 펜던트가 없잖아.’

이사벨라가 늘 목에 걸고 다니던 펜던트가 사라져 있었다.

어쩌면 저 펜던트를 훔쳐간 게 블랙메일일지도 몰랐다.

갖은 보석으로 치장된 호화로운 펜던트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걸 되찾으려고 저렇게 납치되는 척을 하고 있는 건가?

‘위급한 상황이면 아마 연락했을 거야. 그렇지 않다는 건 이사벨라가 생각하기에 아직 그렇게까지 위협적인 상황은 아니란 거겠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쿵쾅거리던 심장이 좀 잠잠해졌다.

숨을 가다듬고 최도윤을 바라봤다.

“이걸 제게 보여주는 이유는요?”

“이 사람이 블랙메일과 엮인 게 정부 쪽에 밝혀지면 당신도 곤란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 정보원이 그러던가요?”

이사벨라가 톨룩 출신인 것까지 알고 있다는 말인가? 그건 정부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극비 정보였는데!

갑작스러운 톨룩인의 이주가 쉽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다.

이미 테오도르라는 선례가 있긴 했지만, 그 역시 나라는 제어장치가 있다는 설정 놀음을 해야 하지 않았는가.

때문에 톨룩인들의 신원은 내가 끝없이 정부와 싸워서 얻어낸 것이었다.

그러니 이사벨라가 이렇게 빌런 조직과 어떤 식으로든 얽힌 게 들통 나면 나 역시 크게 곤란한 상황이었다.

‘아마 그래서 이사벨라도 내 도움을 받지 않고 해결해보려고 한 것 같은데…….’

일이 이렇게 꼬여버리다니.

나는 결국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계획은 있겠죠?”

“블랙메일의 본거지는 이미 알아냈습니다. 문제는 어디까지나 전력이었죠.”

“그걸 저로 채우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저번에 내 실력을 살짝 본 게 꽤 인상깊었던 모양이다.

후우, 하는 한숨을 내뱉었다.

“본부한테 정보는요?”

“한 박자 늦게 전해줄 겁니다.”

“나야 들키면 곤란하니 협력하는 거지만, 본부랑 협력하기로 해놓고 따로 움직이는 이유는 뭡니까.”

그러자 최도윤이 망설임 없이 대꾸했다.

“그 자식을 죽여버리고 싶으니까요.”

“……가족의 원수요?”

“본부와 함께 움직이면 법적인 제약이 커집니다. 아마 생포되면 감옥에 들어가 평생을 살겠죠.”

그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음식은 이미 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럼 영영 놓치게 될 겁니다.”

“감옥에 들어가는 게 복수라는 생각은 안 하나 보네요.”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그 녀석은 제 가족을 전부 죽였는데, 멀쩡히 살아있으면.”

그의 복수론에 무어라 참견할 생각은 없었다.

용서가 진정한 복수다, 같은 전형적인 이야길 하고 싶지도 않았고.

나야말로 회귀 전에 혜원 언니가 죽은 이후 미친 것처럼 톨룩 놈들을 척살하고 다닌 적이 있지 않았는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기 때문에 섣불리 말을 얹을 수가 없었다.

“미리 말해두는데 저는 최대한 블랙메일을 사살하지 않는 방향으로 싸울 겁니다.”

만약 들키기라도 하면 일이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사살하는 것보다 더 시간도 힘도 많이 들어요. 생각하는 것만큼 전력이 되어주지 못할 수도 있단 소리예요.”

“……이해합니다.”

블랙메일의 본거지에 있을 놈들이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겐 자신이 있었다.

“만약, 아주 만약. 제가 단검 대신 총을 꺼내들면…….”

나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있는 노이트를 손으로 더듬었다.

“그땐 도망쳐요.”

“그럴 순 없습니다. 그만큼 위기라는 뜻인데 저 혼자 도망칠 수는…….”

“네? 무슨 소리예요.”

그가 터무니없는 소릴 한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내가 누군지 잊은 걸까?

“간만에 총을 잡으면 너무 신나서 자제를 못 할 것 같거든요. 위험할 수도 있으니 물러서란 소리였어요.”

노이트가 동의한다는 듯 웅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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