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탁.
문을 닫자마자 전서호가 스르륵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그가 후우, 한숨을 내뱉었다.
답지 않게 잔뜩 긴장했던 탓이었다.
“날 용서해줄까?”
“기대하지 않는다더니.”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제야 윤강백이 전서호의 물음에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군.”
전청운은 오랜 시간 전서호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윤강백마저 확신이 없었다.
“심성이 워낙 유순한 아이라, 모질게 굴진 못할 거다.”
그의 아버지가 제 아들마저 저버린 것을 생각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순했다.
전서호가 그를 냉대할 때도 반항 한번 못 하지 않았던가.
다른 아이 같았으면 삐뚤어진 생각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너한테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전서호는 이런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중심을 잃고 흔들릴 때 청운이한테 손을 내밀어준 게 너였잖아.”
전서호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네 속도 말이 아니었을 텐데.”
둘 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윤강백이 전다호에게 품은 마음을 전서호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핏줄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여자의 아들을 품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였다.
“전부 내가 비겁한 탓이지.”
윤강백이 자조적인 말투로 중얼거렸다.
“……살아있을 땐 한 번도 내색하지 못한 주제에. 뒤늦게 후회하는 마음으로 그 애를 거둔 것뿐이니까.”
과연 전다호가 그의 마음을 알았을까.
그건 전서호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설령 알았다 해도 전다호는 끝까지 모르는 척했으리라. 설령 그녀의 마음이 그곳으로 향한다 할지라도.
“그렇게 따지면 나 역시 너와 별반 다를 바 없는지도 모르겠군.”
전서호가 전청운에게 그의 아버지를 투영한 것처럼, 윤강백은 그에게서 전다호를 본 것뿐이었으니까.
씁쓰레한 말투였다.
그러고 나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둘은 각기 자신의 상념에 빠져들었다.
스으윽.
문이 열린 것은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였다.
울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한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들어오시죠.”
그가 담담히 얘기했다. 전서호와 눈을 마주쳤을 때 움찔하긴 했지만 이전처럼 벌벌 떠는 모습은 아니었다.
“우선…… 사과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 말에 전서호가 눈을 지그시 내리깔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얼굴에 체념의 빛이 서리자 전청운이 뒷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은요.”
“……당장은?”
“그때 이후로 많이 노력하신 걸 저도 압니다.”
과거의 기억에 가려져 있었지만, 전청운도 눈이 있는데 전서호가 얼마나 그에게 쩔쩔매는지 모르지 않았다.
모르는 척하고 싶었을 뿐이지.
전청운을 위해 전시 직전에 은퇴를 선언하고, 친우들도 죄다 뒤로한 채 홀로 은둔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현 청사의 국장인 이운우가 자리 잡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 역시 그의 안배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전청운의 아버지가 그런 악독한 놈이란 걸 알았더라면, 그를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청사 사람들이 지금과 같았을까?
전서호는 이운우가 가시밭길을 걸을 걸 알면서도 전청운을 지키기 위해 침묵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언젠가는…….”
너무 막연한 이야기라 그도 뒷말을 흐렸다.
언젠가는 웃으며 마주할 날이 오지 않겠냐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자 전서호가 멍한 얼굴을 하더니 왈칵 얼굴을 찡그렸다.
“……고맙다.”
급기야 고개를 푹 숙인다.
“정말 고마워…….”
그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
셋은 함께 묘에 묵념을 올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강백과 전청운은 먼저 떠나고 전서호 홀로 묘를 지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앞에 누군가 다가왔다.
전서호의 사유지에 이렇게 무단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이는 손에 꼽힌다.
그 자신, 윤강백, 스승인 손이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우야.”
그의 제자, 이운우.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직까지도 정식 제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의 옷 위에 새겨진 청사의 문양이 아리도록 선명했다.
“……길드장님.”
“이젠 아니라니까.”
이운우에게 그는 항상 ‘길드장님’이었다.
그를 비참한 뒷골목에서 끌어올려준 은인 같은 사람. 자신의 쓸모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원동력 말이다.
“……잘 해결됐나 보네요.”
전서호의 얼굴에 피곤함과 동시에 약간의 미소가 서려 있었다.
이운우가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응. 다행이지. 용서받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가 평소와 달리 호쾌하게 웃었다. 오랜 시간 그의 심장 한편을 짓누르던 짐을 덜어 해방감마저 들었다.
그런 전서호를 보면서 이운우는 생긋 웃었다.
“그럼 이제 제가 필요 없으신가요?”
“뭐?”
전서호가 저도 모르게 휙 고개를 돌려 이운우를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전서호는 그 미소가, 자신의 진짜 얼굴을 감추기 위해 가면처럼 짓는 표정임을 눈치챘다.
그에게 그 표정을 가르친 것도 자신이었다.
“무슨 소릴…….”
“전청운과 화해하셨다면서요.”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
“아, 그래도 전청운은 이제 홍염의 국장이니 청사로 돌아오는 건 어렵겠네요. 도의적인 문제도 있을 거고. 그러니까 일단은 제가 청사의…….”
탁.
전서호가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 이운우의 어깨를 잡아챘다.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것처럼 이운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운우야. 대체 무슨 소리야.”
전서호의 얼굴이 혼란으로 잔뜩 물들어있었다.
“아직도 다른 놈들이 너한테 그런 소릴 해? 청사의 길드장은 청운이가 될 거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이제 청사는 내 손을 떠났고, 국장 자리도 네 것인데 대체 왜…….”
그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조급한 적이 있었나 되짚어봤다.
아마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침착하게 말하고 싶은데, 눈앞의 아이가 멀어지려 하는 것이 보여서 자꾸만 갈증이 났다.
“대체 왜 그런 얘길 해.”
“저는 전청운의 대용이었잖아요.”
그 말에 전서호가 쩍 얼어붙었다.
청사에서 은연중에 돌았던 이야기다. 길드장 자리에 이운우가 오르면서 싹 사라졌지만.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운우가 그런 헛소리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길래, 역시 저런 일은 무시하는 게 맞는 대응이란 걸 안다고 내심 뿌듯해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운우가 그 이야길 다시 꺼냈다.
“제가 모를 줄 아셨나요?”
이운우가 해사하게 웃었다.
그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운우야. 너…… 울어?”
그는 맹세코, 단 한 번도 이운우의 눈물을 본 적이 없었다.
뒷골목에서 주워왔을 때부터 눈에 독기가 가득한 녀석이었다.
스스로 원해서 갖가지 고통스러운 훈련도 받았지만 우는 소리 한번 한 적 없었다.
그런 이운우가 울고 있었다.
“그럴 리가……. 그 헛소문을 아직도 신경 쓰고 있었나? 내가 머저리도 아니고. 네가 청운이 대용이었으면 왜 네게 청사를 넘겨줬겠어.”
전서호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머릿속이 엉망으로 꼬여가는 걸 느꼈다.
좀처럼 당황하는 일 없는 그에게 아주 낯선 일이었다.
“저는 한 번도 이 안에 들어가게 해준 적 없으시잖아요.”
이운우는 이 백색 건물이 대체 뭔지는 몰라도 전서호나 윤강백에게 아주 중요한 곳임을 알았다.
한 번씩은 저 안에서 청사와 홍염 사이의 중요한 대담이 끝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운우는 이 밖에 서서 기다려야만 했고.
“그런데 전청운은 이 안에 직접 데려가주시네요.”
그는 차게 헛웃음을 쳤다.
그 날카로움에 찔리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아니, 진짜 찔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의 심장 언저리가 이렇게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을 보면.
“운우야.”
“변명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내 말 좀 들어봐!”
전서호는 저도 모르게 고함을 지른 다음 한 손으로 잠금을 해제했다.
콰드득!
맨손으로 고드름을 꺾어내기까지 했다.
그 살벌한 모습에 이운우도 매섭던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네가 여길 궁금해할 줄은 몰랐는데. 너한테 감추려고 했던 게 아니야. 네가 청운이의 대용품이라서 그런 건 더더욱 아니고.”
“여긴…….”
이운우는 난생처음으로 그 안에 발을 디뎠다.
온통 하얀 가운데 홀로 놓인 화병이 대충 이곳이 어떤 곳인지 가늠할 수 있게 했다.
“너는 처음 보겠구나.”
맹세코. 이운우에게 감추려던 게 아니었다.
그 스스로도 이곳에 발길을 옮기는 게 쉽지 않았을 뿐이니까.
“청사의 부길드장이다.”
그걸로 설명은 충분했다.
대중에겐 공개하지 않았지만, 청사의 부길드장은 전서호의 선대부터 연임하던 이가 있었으니까.
전다호. 그 이름을 이운우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 여기가…….”
“그래. 내 누님이 묻혀있는 곳이지.”
이운우는 이곳이 청사의 기밀이 숨겨져 있는 곳인 줄로만 알았다.
그도 아니면 정통성을 인정받은 이만 출입할 수 있다거나, 뭐 그런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지극히 사적인 공간일 줄이야.
“청운이를 더 아껴서 그 애만 여기 데려온 게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그 애의 어머니이기도 하니까…….”
전서호는 구구절절 설명을 이어나갔다.
“너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묘이기도 하고, 또 지금에야 이렇게 담담히 설명할 수 있지만…… 청사의 길드장으로 있을 땐 아마 그러지 못했을 거야.”
그는 자신이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 말에 이운우가 벌건 눈빛을 하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죄송해요. 제가 이상한 오해를…….”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운우는 민망함에 눈도 제대로 마주치질 못했다.
“운우야. 내가 널 청운이 대용으로 생각하는 줄 알았던 거야?”
그 질문에 이운우는 침묵했다.
확실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순 없을지언정 어렴풋이 맞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전서호는 작게 숨을 내뱉었다.
잘 버텨내기에 단단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이토록 속에서부터 곪아가고 있었을 줄이야.
“내가 널 직접 데려왔지.”
전서호가 가늘게 좁히고 있던 눈을 떴다.
샛노란 눈에 세로로 찢어진 동공과 마주했다.
이 눈빛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밑바닥을 뒹굴던 이운우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 순간이었는데.
“널 처음 데려올 때 다른 아이를 떠올렸다는 건 부정하지 않으마. 갑자기 내가 제자를 키우기로 결심한 데 그 영향이 없다고 할 순 없으니까.”
전서호가 진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시작이 그랬을지언정, 나는 널 자식처럼 키웠다.”
“길드장님…….”
그의 얼굴이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내가 또 널 상처 입혔구나.”
전청운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의 바로 옆에 있던 이운우도 이렇게 아파하고 있던 것을.
왜 그걸 이제까지 몰랐을까.
그는 서툴게 이운우를 끌어안았다.
전서호는 아이를 다룰 줄 몰랐다. 그의 부모가 전서호를 한 번도 아이로 대한 적이 없었으므로.
“내가 많이 부족한 탓에 너까지 상처 입히고 말았어…….”
전서호가 작게 읊조렸다.
품에 안은 아이가 포옹마저 어색해하는 것이 아리도록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