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화
이운우는 언제나처럼 그린 듯이 웃으며 전청운의 취임을 축하했다.
드디어 그가 이운우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푸른색을 등에 업은 것은 이운우였고, 붉은색을 가슴에 품은 건 전청운이었으니.
청사의 길드원이었던 이들은 그 상반된 대비에 잠시 침묵했다.
“2대 국장이 된 걸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윤강백이 그에게 덕담의 말을 건네자, 전청운은 보기 드물게도 밝은 얼굴을 했다.
늘 무표정하기만 한 그의 안면에 화색이 도는 때는 윤강백의 앞에 서는 때뿐이었다.
“축하해요. 전청운 국장!”
표혜원이 씨익 웃으며 전청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녀의 등장에 감사 인사를 건네던 전청운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
홍염의 국장 취임식에 역천이 꼭 참석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이 자리에 나타났다는 것은 사적인 친분이란 뜻인데, 이 둘이 붙어있다면 마지막 한 명도 뻔했기 때문이다.
‘……전서호, 길드장님…….’
그를 생각하자 전청운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어린 시절 새겨진 뼈아픈 냉대는 전서호의 앞에 서기만 해도 몸이 벌벌 떨리게 만들었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저마다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 길드장님께서…….”
“하지만…… 사이가 썩 좋지는 않다고…….”
사람들이 홍해 바다처럼 갈라졌다.
그 사이로 저벅, 저벅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전청운은 고개를 들지 않아도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청운아.”
그 목소리는 어쩐지 애달픈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착각이었을 것이다. 전청운이 아는 전서호는 그렇게 너그러운 이가 아니니까.
“축하한다. 이건 약소하지만 네게 주는 선물이야.”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전청운에게 전서호가 무언가를 손에 쥐여줬다.
하지만 바짝 굳은 몸이 전청운의 마음대로 움직이지가 않았다.
탁!
선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죄, 죄송합니다.”
전청운이 화들짝 놀라 선물을 주웠다.
혹시나 전서호의 불호령이 떨어질까 봐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나 전서호는 아무런 말 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어보렴.”
전청운이 선물 포장을 벗겨내자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붉은색 보석이 섬세하게 연결되어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검집에 다는 장신구란다.”
청사의 길드장이던 그가 전청운에게 처음으로 건네는 ‘붉은색’ 선물이었다.
그건 일종의 인정이었다.
전청운을 여태까지 홍염에 빼앗긴 것이라 여겼던 지금까지와 다르게. 그를 홍염의 일원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였다.
“위급한 순간에 네 목숨을 한번 구해줄 테니 늘 함께 지니고 있거라.”
“감……사합니다.”
전청운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답했다.
전서호의 다정한 목소리가 너무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연회가 끝나고 잠시 시간이 될까.”
“……그건…….”
“윤강백과 함께, 너와 가야 할 곳이 있다.”
전청운이 저도 모르게 윤강백을 바라보았다. 그가 웃으며 고갤 끄덕이고 있었다.
잠시 고민됐지만, 끝내 승낙했다.
그의 대꾸에 다행이라는 듯 전서호의 얼굴이 풀어진 것 역시, 아마 전청운의 착각이었을 것이다.
***
바닷가가 보이는 드넓은 초원이었다. 짭짜름한 바다 내음이 코를 간질인다.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내 사유지니까.”
전청운은 이곳이 낯설기만 한데. 전서호도 윤강백도 무척 능숙하게 길을 찾았다.
온통 풀밭이라 전청운이 보기엔 그곳이 그곳 같기만 했다.
한참을 걷자 푸른 잔디 위로 덩그러니 서 있는 하얀 건물이 보였다.
꼭대기에 흰색 종이 달린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특색이 없어 보였다.
‘RIP’
하얀 건물 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글씨를 보고 나서야 전청운은 그곳이 무덤이란 걸 깨달았다.
“잠시 뒤로 물러서는 게 좋겠구나.”
윤강백이 작게 조언했다.
전청운이 무어라 의문을 품기도 전에 전서호가 건물에 손을 가져다 댔다.
쩌적!
그의 손을 타고 올라가는 얼음 덩어리가 살벌한 기세로 내달렸다.
쩌저적!
고드름이 전서호의 목덜미를 찌르기 직전, 얼음더미가 물로 녹아 주르륵 흘러내렸다.
“저건…….”
“이 건물의 보호장치지. 일반인이라면 그대로 죽겠지만 너도 이젠 뚫어낼 수 있을 거다.”
무슨 무덤이 사람을 가린단 말인가.
전청운은 갈수록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덜컹!
드디어 문이 열렸다.
건물 내부도 외곽처럼 하얗기 그지없었다.
바닥, 벽, 천장. 가릴 것 없이 모두 흰색이었다.
그 기묘한 공간 안에서 딱 한군데 유일하게 색이 있는 것이 있었다.
‘……꽃.’
가운데 놓인 화병에 색색의 꽃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화병이 하얀 돌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다.
“언제 또 다녀간 거야. 꽃이 그새 바뀌었네.”
“얼마 전에. 이렇게 너와 같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만…….”
“징그럽게도 찾아오네. 나보다 네가 더 지극정성이라니까.”
전서호와 윤강백이 한 번 더 화병을 갈았다.
전청운은 머뭇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저…….”
전서호와 윤강백의 시선이 모조리 전청운에게 쏟아졌다.
전서호의 시선에 움츠러들었다가, 윤강백의 온화한 미소에 다시 힘을 얻었다.
“……여긴 누구의 무덤인 겁니까?”
왜 절 여기로 데려온 겁니까, 라는 뒷말은 삼켜냈다.
윤강백이 생긋 웃었다.
그가 제 감정을 감추고자 할 때 짓는 미소였다.
전서호는 살짝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약간의 죄책감이 서린 표정이었다.
“……여긴…… 내 누이의 무덤이다.”
“……누이……라고 하면…….”
“네 어머니지.”
핏줄 하나 섞이지 않았어도, 전청운에게 어머니는 여전히 그녀였다.
막 철들 무렵에 나타나 그가 겨우 가족의 따스함을 느낄 즈음에 홀연히 떠나가버린 어머니 말이다.
“아…….”
전청운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전다호의 무덤에 와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는 장례식장조차 출입이 금지됐다.
장례식장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마주했던 전서호의 서슬 퍼런 눈빛이 아직도 생생했다.
세로로 쭉 찢어진 그 뱀 같은 눈이.
-누가 널 이 안으로 들였지?
상복을 입은 전서호가 전청운을 발견하고 매섭게 물었다.
전청운이 무어라 대꾸하려 했으나 이내 대답을 삼켜냈다.
벌겋게 충혈된 전서호의 눈빛이, 전청운을 책망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찌 보면 증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린 날의 전청운은 묻고 싶었다.
‘왜 날 그렇게 바라봐요?’
하지만 도저히 묻지 못했다.
원래 전서호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긴 했지만, 이렇게 적개심을 드러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건만.
-감히, 그 새끼의 핏줄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발을…….
-전서호! 말을 가려 해. 아직 애야.
그때 그를 말렸던 것이 역천의 길드장이던가. 그것까진 모르겠다.
전청운은 그 길로 도망치듯이 달려 나갔으니까.
한동안 전청운은 악몽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노란 눈을 한 푸른 뱀이 그를 통째로 잡아먹는 꿈이었다. 전청운은 그때마다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몇 번이나 그 눈빛에 짓눌렸던가.
전서호는 언제나, 말없이 전청운을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은 매일 밤 전청운을 잡아먹었다.
“미안하다.”
전청운을 회상에서 깨어나게 한 것은 전서호의 가라앉은 음성이었다.
“조금 더 일찍 널 데려왔어야 했는데…….”
기억 속의 전서호가 지금과 겹친다.
그는 언제나 시리도록 차가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말로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전청운을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
이따금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때 그의 눈빛이…… 지금과 같았던가?
“왜…… 그러셨어요?”
전청운은 언제나 그걸 묻고 싶었다.
그의 아버지가 돼먹지 못한 사람이었단 건 안다.
전청운의 친모와도 좋게 끝난 건 아니었으니까. 그는 전청운을 짐덩이처럼 여겼기 때문에, 어린 시절은 늘 외로움과의 싸움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나중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알 수 없는 이유로 행방이 묘연해졌을 때.
전청운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이곳에 버려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놈이 전씨 성을 달고 있는 게 못마땅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의 성씨를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전서호는 왜 그를 ‘전’청운으로 두면서 그토록 냉대했단 말인가.
그토록 보기 싫으면 내쫓으면 그만인 것을.
“차라리 저를 내쫓지 그러셨습니까.”
“청운아.”
“그곳에서 말라가는 저를 보셨으면서. 왜…….”
전청운의 물음에 전서호의 얼굴이 희미하게 무너졌다.
“……네 아비의 잘못을 네게 투영하면서도, 널 내쫓는 걸 내 누님이 원치 않으리란 걸 알았으니까.”
“제 아버지의 잘못……이라뇨.”
전서호는 잠시 망설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의 아버지인데. 이걸 밝히는 게 맞을까, 하고.
그러자 전청운이 재촉했다.
“제 아버지가 또 무슨 잘못을 했단 말입니까.”
“……사고가 아니었어.”
“예?”
“사고사가, 아니었다. 계획된 타살이었어.”
그것으로 충분했다.
전청운은 모든 전말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그 웃지 못할 비극을 말이다.
헛웃음도 나오질 않았다.
“아버지가…….”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전서호가 왜 그토록 전청운을 증오했는지.
그도 그럴 게, 전청운은 그의 하나뿐인 누이를 죽인 살인자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감히, 그 새끼의 핏줄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발을…….
전다호의 장례식장에서 왜 그가 그렇게 과민반응했는지.
모든 퍼즐이 짜 맞춘 것처럼 명확해졌다.
“네가 핏줄인 네 아비보다 누님을 더 잘 따랐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네게 화풀이를 했어. 그 점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전서호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떨궜다.
“미안하다. 내가 어린 널 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급기야 그가 무릎을 꿇었다.
그 와중에도 전청운은 온갖 감정이 휘몰아쳐서 제대로 반응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대상이 이제 와 그에게 잘못을 고하는 것도.
어머니의 죽음에 숨겨져 있던 진실도.
하나같이 그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것들이었다.
“용서받으리란 기대는 없다. 네가 얼마나 날 싫어하는지도 알고 있어. 그래서 네 앞에서 사라지려 했던 거고. 하지만 이곳은…… 내가 직접 알려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처벌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눈을 감았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전청운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어머니와 단둘이 있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