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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44화 (344/361)

344화

“신도아 씨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나는 옆에서 윤강백을 바라보는 신도아에게 물었다.

그녀는 윤강백을 쫓아 홍염에 들어간 것이었으니까.

“……정로운과 류라임과 함께할까, 고민 중이다.”

“둘이 한창 바빠 보이더라고요.”

이따금 둘이 사진을 보내오곤 하는데, 어린아이들과 함께 해맑게 웃는 얼굴들이 보기 좋았다.

정로운도 그늘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았고.

“아직 명확하게 정하진 않았다. 빌런을 쫓는 일도 제법 만족스러워서.”

잘 어울리는 일이긴 했다.

그때 사방을 채우던 음악이 뚝, 그쳤다.

취임식이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홍염의 관계자로 보이는 남자가 앞에 나와서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하여,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가장 먼저 윤강백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이후 홍염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더니 마침내 피날레에 이르렀다.

“그럼 윤강백 국장님, 앞으로 나와주세요.”

윤강백이 앞으로 나가 옆에 있던 보좌관으로부터 무언가를 건네받았다. 아마 저게 임명장일 것이다.

차기 국장에게 넘겨줄.

“전청운 부국장님, 나와주세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전청운이 걸어 나왔다.

그 역시 정식 제복을 잘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허리춤에 맨 검은 아마 가짜겠지만, 전반적으로 고고한 기사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윤강백이 그에게 무어라 덕담의 말을 건네면서 임명장을 수여했다.

짝짝짝짝.

박수갈채가 사방에 울려 퍼졌고, 음악이 다시 흘렀다.

이제 윤강백은 ‘전 국장’이 되었고, 전청운은 현 국장이 되었다.

윤강백이 전청운에게 각계의 인사들을 소개해주는 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우연찮게도, 그 시선의 끝에 이운우가 있었다.

그는 한 손에 와인잔을 들고서 전청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색 눈동자에서 갖가지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것이 느껴졌다.

어쩐지 봐선 안 될 것을 훔쳐본 느낌이라 서둘러 고갤 돌렸다.

‘이운우와 전청운…….’

그 둘 사이의 미묘한 앙금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건 전부 전서호가 초래한 것으로…….

‘어? 어디 갔지?’

연회장 안을 휙휙 둘러봤지만 전서호가 보이질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윤강백과 혜원 언니랑 나란히 서 있었는데.

‘하긴. 전청운이 주인공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부터가 의외긴 했어.’

그는 전청운과 마주하기 죄스러워 은퇴까지 결정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윤강백의 얼굴을 봐서 참석하긴 했지만 전청운과 마주할 만한 상황은 최대한 피하려고 한 것 같았다.

테라스에 나가보니 홀로 서 있는 전서호가 보였다.

그는 손바닥 위로 물방울을 굴리며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여기 계셨네요.”

“한서하 헌터.”

“이제 헌터 아니라니까요.”

다들 아직까지 날 헌터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젠 정정하기도 지칠 지경이다.

“운우도 아니고, 한서하 헌터가 날 찾아와줄 줄은 몰랐는걸요.”

“걔야 직책이 있으니 빨리 자리를 뜨기 어렵겠죠. 이운우가 아니라 실망했나요?”

“그럴 리가요. 영광이죠.”

전서호가 능글맞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를 찾아온 건 반쯤은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이들의 평행선을 옆에서 계속 지켜보았으니까.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던 탓이다.

“한서하 헌터.”

“헌터 아니라니…….”

“당신이 보기엔 어떻습니까?”

전서호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를 했다.

힐끗 바라보니 내리깐 눈빛이 꽤나 진중했다.

“내 잘못으로 죄 없는 아이들까지 사이가 틀어졌으니. 참 몹쓸 짓이죠.”

이운우와 전청운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의 시선이 연회장 안쪽으로 향했다. 어느덧 둘이 마주 보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운우가 다정하게 웃고 있다 생각했겠지만, 우리 둘에겐 똑똑히 보였다.

그의 미소가 뒤틀려있었다.

“……글쎄요. 부모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자식에게 물을 수 없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는 없겠죠.”

이름도 모를 전다호의 남편. 그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진 몰라도 전청운에겐 어떠한 책임도 없을 테니까.

“2세대의 참극에 대해선 알고 있겠죠.”

“……네.”

다들 쉬쉬하긴 하지만 헌터라면 모를 수 없는 이야기였다.

윤강백, 전서호 그리고 혜원 언니까지.

이들이 2세대가 아니라 2.5세대라고 불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본래 2세대가 괴멸된 후 반 강제로 세대교체가 일어나면서 2세대와 3세대 사이에 낀 헌터들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죽은 헌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지양되지만 나는 2세대의 인물을 알고 있었다.

전다호. 그녀 말이다.

“원래 청사는 내가 아니라, 내 손위형제가 이을 예정이었습니다. 실제로 부길드장을 역임하고 있었고요.”

하지만 전다호는 영원히 부길드장에서 멈춰 섰다.

“청사의 힘으로 묻어버린 진실이지만…… 사실 2세대의 참극은 한 헌터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전서호가 어딘가 아득히 먼 곳을 내다보는 듯한 눈빛을 했다.

과거를 헤매는 것 같기도 했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죽음은…… 한 인간의 그릇된 욕심이 원인이었고요.”

“2세대는 최초의 SSS급 게이트인 <붉은소금동굴 게이트>에 의해 괴멸당한 것 아니었나요?”

“그렇게 알려져 있죠.”

촤악!

전서호가 주먹을 꽉 쥐자 손아귀에 놓여 있던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진실은 다릅니다. 청사를 집어삼키려고 욕심을 부린 자가 일부러 총책임자를 살해했고, 그 결과 구심점을 잃은 2세대 전체가 게이트 안에서 와해되었죠.”

“하지만…… 그럼 SSS급 게이트를 누가 클리어했단 거죠?”

“SSS급 게이트가 아니었습니다.”

아니었다고?

이건 정말로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2세대가 괴멸 직전에 마지막 생존자들을 끌어 모아 어떻게든 게이트를 클리어했지만 희생이 너무 컸죠. SSS급 게이트가 아니면 안 되었을 정도로.”

그래서 사람들을 눈속임하기 위해 지금까지 그 게이트를 SSS급 게이트라고 속였단 말인가?

‘돌이켜 생각하면 좀 이상하긴 해.’

클로에가 본격적으로 침략에 나선 다음에야 SSS급이 출현했으니까 말이다.

거기다 브레이크아웃이라는 전무후무한 시스템까지 갖춘 다음에야 SSS급이라고 인정받지 않았던가. 마왕이 출현하기까지 했고.

“게다가 누님의 죽음에는 정부도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었거든요. 게이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족속들이라 그냥 게이트를 틈타서 사람 하나 처리할 생각을 했던 거죠.”

그 여파가 어떻게 돌아올 줄 모르고, 하고 중얼거리며 그가 작게 혀를 찼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 됐죠. 청사 길드장 자리에 자기네 입맛에 맞는 인물 하나 올려놓고 싶어서 손을 쓴 거였는데. 그것 때문에 2세대가 몰살당하다시피 했으니…… 결국 게이트 등급을 재조정하면서 사건을 수습한 겁니다.”

게이트에 대해 잘 모르는 작자들이었으니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만 현장에서 일해보면 ‘최종 오더’를 내리는 인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텐데.

더구나 그 게이트엔 2세대 헌터들이 대거 투입되지 않았던가. 그런 상황일수록 최종 결정권자의 필요성이 절실하기 마련이다.

“정부와 손을 잡고 내 누님을 살해하는 데 동조한 인간. 그자가 누님의 남편…… 그러니까 청운이의 아비였거든요.”

역시나.

-안 돼……. 그 자식은 안 된단 말이야……. 내가 분명 봤어. 봤다고…….

그가 그렇게나 반대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전다호의 단호한 대꾸에 무너졌던 그의 어린 날이 그린 듯이 선명했다.

전서호는 내가 그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말을 꺼낸 건 아닌 듯했지만.

“한서하 헌터 말이 맞죠. 부모의 죄를 자식에게 물을 순 없다는 거.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걸 가늠할 정신이 없었어요.”

소중한 가족을 죽게 만든 이의 핏줄.

그 아버지가 잡혀 들어가도, 법적으로 전청운이 전다호의 아들인 이상 양육의 책임은 전서호에게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 누이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전청운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족의 원수를 품에 안아야만 하는 그 현실에서.

전서호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전부 변명이죠. 그때 그래선 안 되는 거였는데…….”

전서호는 전청운에게 고통을 안겨준 가해자인 동시에, 전청운의 아버지로부터 가족을 잃은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 기묘한 관계성에 내가 무어라 첨언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도 알고 있을 겁니다. 원래 청사의 사람들이 운우를 반기지 않았다는 거.”

분명 그랬다. 이운우가 기적적으로 생환하기 전까지는.

“길드원들은 날 생각해서 그랬을 겁니다. 청운이에 대한 죄책감을 운우를 돌보면서 덜어냈으니까요. 그게 그다지 좋은 몰골은 아니었겠죠.”

-이운우 씨는, 길드장님의…… 흠. 길드장님께 다소 해로운 존재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그런 겁니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건.

정진문이 내게 슬쩍 귀띔해줬던 내용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청사가 진실을 묻어버렸으니. 일반 길드원들에게 전청운은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모종의 이유로 아버지와 멀어진 불쌍한 아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대뜸 이운우가 굴러들어와 전청운의 자리를 꿰찬 것이다.

전청운을 귀여워하던 이들에겐 여간 눈엣가시가 아니었을 거다.

전서호가 전청운을 멀리하고 이운우를 가까이하는 모습까지 보였으니. 전청운을 향한 동정의 시선이 더욱 극대화되었으리라.

“……갑자기 고해성사라도 하는 기분이네요.”

다소 뜬금없는 고백이긴 했다.

아마 그도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뭐라도 털어놓고 싶었겠지.

전청운이 청사가 아니라 홍염의 우두머리가 되지 않았는가. 끝내.

“들어줘서 고마워요. 홍염도 청사도 아닌…… 제3자가 필요했거든요.”

“혜원 언니는요?”

“아, 길드 간의 이익관계와도 무관한 사람이요.”

내가 역천을 나온 것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헌터라고 부른 건 일부러 그런 건가.

이운우도 그렇지만, 전서호도 어지간히 속내를 알아보기 어려운 인간이었다.

그런 그가 생판 남인 내게 자신의 이야길 털어놓은 것부터가 아주 의외였지만.

“내가 청운이에 대한 죄악감 때문에 둘 중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못하고 미적거린 탓에 운우한테도 너무 많은 상처를 줬습니다.”

“그러긴 했어요.”

“위로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지만…… 뭐, 맞는 얘기죠.”

그가 일찌감치 길드원들을 단속했으면 이운우도 그렇게 대놓고 적대받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긴. 청사의 사람들이라면 뒤에서 어떻게든 수작을 부리긴 했겠지.

“이제 끝맺음을 지을 때도 됐죠.”

전서호가 작게 중얼거렸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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