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보호. 보호가 필요하다.
나는 잠시 그 말뜻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들었다. 너무 뜻밖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보호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물을 정도였다.
“네. 밀레니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들입니다. 은퇴한 헌터 같던데. 당신뿐만이 아니라 주변인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인이라…….”
잠시 할 말을 찾아내느라 고민했다.
이 사내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좋단 말인가.
일찍이 조실부모하고 사고무탁하여 홀로 지냈고, 지금 가까이 지내는 이들은 죄다 각성자거나 국가 소속 공무원이라고?
‘혜원 언니나 연원이는 말할 것도 없고. 다정 언니도 어지간한 헌터들보다 강할 텐데. 백목련 씨? 연구소 밖으로 나오긴 하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주변에 목숨을 위협받을 만한 이가 없었다.
‘올리버나 셀도 혁명군 출신인데다 이사벨라는 외국에 나가 있고.’
혹여나 누가 방심해서 위협받는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구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되도록 저희의 보호를 받는 걸 권유드립니다.”
“제게 위협이 될 것 같진 않은데요.”
톨룩이 부활해서 다시 지구를 침범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말이다.
내가 듣기로 밀레니엄은 고작해야 이 주변 지역을 갉아먹고 있는 소규모 빌런 단체였다.
“말했다시피 놈들은 비겁한 방식도 거리낌 없이…….”
위이잉! 위잉!
그때 경찰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걸리면 골치 아픈데.’
괜히 참고인 조사라도 받다가 내가 누군지 밝혀지면 일이 귀찮게 된다.
“저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말에 최도윤이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보기엔 내가 되지도 않는 객기를 부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눈치를 보니 내가 누군지 알아채진 못한 것 같았다. 만약 내 정체를 알았으면, 일전에 TV에서 한번 난리가 난 적이 있으니 내 주변인이 역천에 속한 헌터들이란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그럼 다음엔 안 봤으면 좋겠네요.”
“잠시만요! 그대로 간다고 되는……!”
탓.
최도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음 순간 나는 대로변 옆쪽의 골목길에 서 있었다.
“허억……!”
신문지를 뒤집어쓰고 자고 있던 노숙자가 나를 보고 경악하긴 했지만.
다른 이들은 내가 갑자기 나타났단 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마저 주무세요.”
꾸벅 묵례를 하고 다시 공간 간섭을 발동했다.
서너 차례 더 지난 다음에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
그날 저녁, 이운우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소식이 빠르네.”
대충 무슨 얘길 할지 예상이 갔다.
아마 빌런들을 소탕했는데 빌런이 타고 도망친 차를 확인해보니 내 명의라서 이운우한테까지 보고가 올라갔겠지.
경찰과는 별개의 조직이지만 정보 공유는 하고 있을 테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이운우라면 어떻게든 제 눈과 귀를 심어뒀을 거다.
-현상금 사냥꾼 놀이라도 하고 있는 거야?
“아냐. 정말로 우연히 휘말린 것뿐이라고.”
근처에서 다른 볼일을 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차를 도둑맞은 다음이었던 것뿐이다.
-내 선에서 대충 입막음 해두긴 했는데, 조심해. 너도 알다시피 마땅한 소속이 없는 최상위권 헌터들한테 감시의 시선이 따갑잖아.
“알지.”
국가 입장에선 꽤나 위협적인 존재일 테니까 말이다.
홍염과 청사를 국가가 흡수한 것도 어느 정도 정치적인 알력의 결과물이라고 듣긴 했다.
역천은 사기업으로 돌아섰고, 나도 일단은 역천 소속이라 내 목줄을 놓쳐버린 게 높으신 분들은 꽤나 아쉬운 모양이다.
그래서 더 조용히 살고 싶은 건데.
-만약 현상금 사냥꾼이 하고 싶은 거면 우린 언제든지 환영이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아, 내 선물은 잘 받았어?”
-응. 근데 웬 석고 방향제야. 주문 제작한 거야?
“그거 내가 조각한 거야.”
-이걸?
달각.
마침 옆에 있었는지 그가 뭔갈 만지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석고 방향제를 하나 사서 청사의 문양대로 깎아 선물로 보낸 게 요 며칠 전이었다.
-이런 데 손재주가 좋은 줄 몰랐네.
“최근에 연습하고 있어. 꽤 재밌기도 하고.”
-고마워. 한서하.
이운우가 괜히 낯간지러운 소릴 했다.
-이거 혹시 뇌물인가?
그러면서 작게 소리 내어 웃는다.
“뇌물이라면 뇌물이지. 이번에도 뒤처리는 너한테 맡겼으니까.”
-이 정도는 크게 어려울 거 없지. 지구를 구해낸 영웅이신데. 안 그래?
“지금 놀리는 거지?”
-그걸 이제 알았어?
푸핫! 우린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
“뭐?”
국지성이 놀란 얼굴을 했다.
“태영 씨가 정말 그렇게 말했다고?”
“그래.”
최도윤이 심각한 낯으로 대꾸했다.
“더 이상 조사하지 말라고 했대.”
“그래도 몰래 조회만 해보면 안 되나?”
“나도 물어봤는데, 생각보다 더 위쪽이랑 연결되어 있나 봐.”
최도윤은 오늘 낮까지만 해도 금방 그 정체 모를 여자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현장엔 번호판이 제대로 부착된 차가 남아 있었고, 그 차가 누구의 명의인지만 조회하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대체 누구길래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뭐 높으신 분 딸이라도 되나?”
“나도 모르지. 평범한 헌터는 아닌 것 같긴 한데.”
진짜 고위 정치인 딸은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들 지경이다.
여태까지 빌런들을 상대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지만, 그들에게 협조하던 형사 최태영이 이렇게 조사를 거부한 건 처음이었다.
‘……단검을 주로 쓰는 것 같았는데. 그럼 어쌔신 계열 헌터인가?’
CCTV로 확인했을 때도 그렇고, 체포된 밀레니엄 말단 조직원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주요 무기는 단검인 것 같았다.
아이템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공간 계열 능력을 가진 것 같기도 했고.
하지만 확실한 건 아니었다.
“우리 보호는 필요 없는 모양인데 그냥 모르는 척하자. 척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잖냐.”
권지성의 말에 최도윤도 동의의 뜻을 표현했다.
이렇게 입막음을 할 정도면 모르긴 해도 경호원 한둘쯤은 옆에 끼고 있을 것이다.
보호해주겠다고 했을 때 여자의 반응이 영 미적지근하기도 했고.
‘그래. 그 여자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도 많으니까.’
최도윤은 애써 그녀에 대한 건 잊어버리고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번에 체포한 말단 조직원이 말하기를, 밀레니엄 조직이 또 심상치 않은 일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번 마약 밀수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자금을 끌어 모으느라 혈안이란 것이다.
그 돈으로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몰라도. 아무튼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나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내렸다. 싸한 빗소리가 오늘따라 차갑다.
“오랜만이네요.”
잘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무릎을 꿇고 묘비를 손으로 훑었다. 차갑기 그지없다.
시신도 없는 묘지지만 이것만이 그가 지구에 남긴 유일한 흔적이었다.
손끝으로 그 이름을 쓸어내렸다.
Daniel Ross.
다니엘 블랙이 아니라, 다니엘 로스였다. 죽은 다음에야 그 이름을 되찾다니. 어찌나 역설적인지.
“당신은 Ross를 Loss로 발음하곤 했죠.”
일부러 그런 것인진 모르겠지만.
잃어버린 이름이었으니 Loss 쪽이 더 옳은 발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들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의 희생 덕에 모두가 평화롭게 지내고 있거든요.”
나는 들고 온 국화꽃 다발을 묘비 앞에 내려놓았다. 흐드러지게 핀 국화꽃이 비에 젖는다.
“이사벨라한테서도 당신을 기리는 편지가 왔어요. 이건 당신의 것이니 여기에 두고 갈게요.”
이사벨라가 보내온 편지도 국화꽃 아래 놓았다.
「고귀한 동료에게.
사막의 밤은 춥기만 해. 모래 바람이 피부를 파고드는 것처럼 아프고.
이런 날일수록 잃어버린 이들이 그립네.
이사벨라가.」
짧은 글이었지만 그 안에 사무치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읽혔다.
‘잃어버린’이라는 글자는 물기로 약간 번져있었다.
“그리고…… 너도.”
다니엘의 바로 옆에 놓인 묘지도 내가 수없이 다녀갔던 곳이었다.
“유수야.”
안유수.
묘비 앞에 놓인 화병엔 빛바랜 국화꽃이 꽂혀 있었다.
내가 저번에 가져다 둔 것이었다.
“유라가 많이 바쁜가 봐.”
새로운 국화꽃으로 바꿔주면서 애써 말을 돌렸다.
안유라는 그에 대한 기억을 죄다 잊어버린 이후, 형식적인 추모만 할 뿐 안유수의 애도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법이 없었다.
그녀에겐 남이나 다를 바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그의 묘지를 지키는 건 내가 하는 역할이었다.
전쟁이 한창일 때는 몇 번 찾아오지 못했지만, 종전 이후엔 자주 찾아오고 있었다.
“유라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굽혔던 무릎을 펴고 섰다. 묘비석이 내려다보인다. 나와 비슷했던 안유수인데, 이렇게나 작아졌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다니엘과 안유수. 영원토록 돌아오지 못할 둘의 묘비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둘에게 묵념을 올리고 이만 뒤돌아서려는데 갑작스러운 잡음이 끼어들었다.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꽁꽁 싸매서 뭐 보이는 게 있어야지.”
“모자가 똑같잖냐, 모자가.”
추모를 하러 온 건 아닌 듯한 행색의 사내 서너 명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근방에 모자를 쓰고 있는 인물은 나뿐이었다. 그러니 분명 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저 문신은…….’
전에 본 적이 있다.
밀레니엄. 그놈들이었다.
“이봐. 거기 모자 쓴 놈.”
“거 얼굴 좀 봅시다. 우리가 찾던 녀석 맞는 거 같은데.”
놈들이 내 앞에 서서 껄렁하게 말을 붙인다.
힐끗, 뒤편에 놓인 묘지 둘을 보니 여기서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가 않았다.
“나가서 얘기하지.”
“얘기 하~지~? 와, 이거 미쳤나?”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정신 좀, 차리지?”
톡, 톡.
손가락으로 내 모자를 건드린다.
탁!
“뭐, 뭐야! 이거 안 놔!”
손목을 잡아채서 꽉 힘을 주자 당황스러워하는 목소리로 악을 써댄다.
“야! 아아악! 이거 놓으라고!”
“너, 너 지금 힘 좀 쓴다고 그러는 모양인데, 지금 우리 조직에서 고용한 헌터가 오고 있거든? 어? 시간만 끌면 당장 널 박살 낼 수도……!”
“나가서, 얘기하자니까.”
망자들 앞에서 괜한 소란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작게 경고하자 놈들도 뒤편에 놓인 국화꽃을 봤는지 비열하게 씨익 웃었다.
“여기 뒤진 게 네 동료인가 보지?”
“……뭐?”
“왜. 뒤진 거 맞잖아. 틀린 말 했어?”
내가 반응을 보이자 이거다 싶었는지 깐족거리는 말투로 응수한다.
순식간에 머리로 열이 확 올랐다.
우드득!
“아아아아아악!”
내가 쥐고 있던 손목이 의도치 않게 살벌한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나는 방금 망발을 지껄인 놈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다시 말해봐.”
“이…… 이거 좀 놓고…….”
내 눈빛이 달라진 걸 느꼈는지 놈이 식은땀을 흘렸다.
“다시 말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