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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36화 (336/361)

336화

챕터: 정체불명의 현상금 사냥꾼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속으로 작게 탄식했다.

‘둘한테 점심을 사주고 잠깐 근처 은행에 들른 것뿐인데.’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엎드려! 움직이지 마! 우린 전부 각성자들이라고!”

아이템으로 추정되는 검을 사람들에게 겨눈 채로 은행원에게 돈을 담도록 지시한다.

은행 강도였다.

‘요즘에도 은행 강도가 있나.’

각성자들의 범죄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듣긴 했는데. 이렇게 실감하게 될 줄이야.

“꾸물거리지 마! 여기 하나 더 채우라고!”

“네, 네넵……!”

식은땀을 잔뜩 흘리는 은행원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것들이 고민되기 시작했다.

‘나서야 하나?’

노이트는 집에 두고 왔지만 언제든지 내게 응답할 터였다.

‘상대는 총 7명인가. 인질을 잡고 있는 게 4명, 은행원한테 돈을 담으라고 소리 지르는 게 2명, 망을 보는 게 1명…….’

놈들이 아마추어라면 이게 전부일 것이고 프로라면 후방에 몇 명 더 배치해서 퇴로를 확보해뒀을 것이다.

“하필이면…….”

옆에서 회사원 복장을 한 사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척 봐도 점심시간에 잠시 은행 업무를 보려다가 낭패를 본 것 같았다.

“우린 전부 죽을 거예요.”

회사원이 작게 말을 걸어왔다.

“저놈들은 인질을 살려두지 않기로 유명하다고요.”

“아는 놈들이에요?”

“네. 당연하죠. 요즘 뉴스도 안 봐요? 요즘 활발한 각성자 빌런 집단이잖아요.”

미안하지만 요즘 뉴스를 안 본 지 오래됐다. 언론에 한참 시달렸던 때 이후로 말이다.

“저 문신…… 확실해요. 아, 활동 구역은 분명 이 옆이었는데. 여기까지 올 줄이야…….”

우리 둘이 속닥거리는 소릴 들었는지 빌런 중 하나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거기 조용히 해! 누구 마음대로 떠드는 거야!”

결국 내 옆에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던 회사원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꽤 유명할 정도라면 아마추어는 아니고. 그럼 숨겨둔 동료들도 두어 명 더 있을 텐데. 게다가 손속이 잔인하다면 인질을 죽이는 데 망설임도 없을 테고…….’

더구나 각성자 집단이라면 고유 스킬을 가진 놈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수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나는 놈들을 단번에 쳐부술 자신이 있었다.

‘그래봤자 지능이 좀 있는 몬스터 수준.’

아, 게이트 밖인데 저놈들을 죽여도 되나?

현상금 헌터 자격이 있으면 국가 지정 공식 빌런에 한해서 살인 면허가 부여된다고 듣긴 했는데. 은퇴한 헌터에겐 해당 사항이 없으려나?

잠시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는데 빌런들 중 한 놈이 인질 하나를 멱살잡이하며 고함을 질렀다.

“너! 방금 휴대폰으로 뭘 한 거야. 경찰에 신고했지!”

“히이익!”

인질이 벌벌 떨며 살려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목덜미에 겨눠진 칼날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마침 잘됐어. 응? 꼭 이렇게 본보기를 보여줘야 조용해지지. 하여간. 다들 잘 보라고! 함부로 움직였다간 어떻게 되는지 보여……!”

콰득!

그때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일어난 사내가 빌런의 손목을 잡아 비틀었다.

칼이 바닥을 나뒹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동시에 모든 빌런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허억……!”

“어째서 네가 여기에……!”

기가 죽어 있던 인질들도 두어 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안색도 확연히 밝아졌다.

“살았다!”

“하아, 정말 다행이야!”

나는 봐도 모르겠는데 다들 저놈을 아는 눈치다.

“누군지 알아요?”

“아니. 대체 아는 게 뭡니까?”

옆에 있던 회사원에게 슬쩍 물어보자 그가 내게 핀잔을 줬다.

그러더니 안경을 한 손으로 쓱 올리며 줄줄 설명을 읊는 것이다.

“이 근방을 담당하는 현상금 헌터잖아요.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 같은데? 그 ‘최도윤’이에요.”

그 역시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는데, 모자 밑으로 삐쭉 나온 머리카락이 검붉은 색이었다.

파란 눈동자와 화려한 빛깔의 머리카락이 그가 각성자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무튼 내가 나서지 않아도 상황이 정리될 것 같네.’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내가 역천과 행보를 달리했다는 걸 안 이후 언론은 내가 요즘 뭐 하고 지내는지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사건에 얽혔다간 내가 현상금 헌터가 됐다고 대대적으로 떠들어댈 것이다.

‘그건 좀 끔찍하지.’

은퇴하고 조용히 살려 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새 상황은 점점 급박해져 갔다.

“최도윤, 이 개자식아! 물러서! 이 여자 다치는 꼴 보기 싫으면!”

빌런은 급기야 은행원을 붙잡고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그에 최도윤이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놈과 대치 상태를 유지했다.

“곧 경찰도 올 텐데 이래야겠어? 슬슬 도망치는 게 더 나을 텐데?”

최도윤이 돈가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돈이 있어도 경찰한테서 도망을 못 치면 쓰지도 못하잖아. 안 그래?”

“이게 어디서 명령질을……!”

빌런이 발끈하는 사이.

탁!

최도윤의 손목과 손등에 이어서 달려있던 석궁 같은 것에서 뭔가 튀어나와 빌런의 손등에 닿았다.

슈우우욱!

가느다란 철사 같은 것이 이어져 있어 주르륵 당기자 빌런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철푸덕!

“허억, 허억!”

놈이 무너지자 빠르게 인질을 빼내온다.

“으으윽……!”

빌런이 신음을 흘리며 일어나려고 하지만 최도윤은 놈의 목덜미를 발로 밟고서 머리 위에 석궁을 겨눈다.

“이놈이 죽는 거 보기 싫으면 다 뒤로 물러나!”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된다.

빌런들도 제 동료가 인질로 잡히자 주춤주춤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났다.

“역시 최도윤!”

“무기가 특이하네요. 석궁을 개조한 건가요?”

석궁처럼 보이는데 쏘아 보내는 것에 가는 철사가 이어져 있었다.

“그래! 저걸로 여기저기 이동하기도 하고, 테이저건처럼 쓰기도 한다고!”

회사원은 최도윤의 팬인 것 같았다. 그 말고 주변 다른 이들도 연신 최도윤의 이름을 외치면서 그를 응원했다.

그때였다. 우우웅, 경찰들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너희는 포위됐다. 너희는 포위됐다. 순순히 투항하라.

그에 주춤거리던 놈들이 결국 돈가방을 들고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뒷문을 향해 달려가는 놈들을 향해 최도윤이 석궁을 쐈다.

촤아악!

쏜살같이 날아가 놈들 중 제일 뒤에 있던 이의 등을 적중하자, 곧장 그물이 펼쳐지며 앞에 있던 이들까지 한데 묶어버렸다.

우당탕탕!

“으아악!”

놈들이 한바탕 바닥을 굴렀다.

‘실력이 괜찮네.’

낯선 무기지만 다루는 솜씨도 훌륭하다. 몬스터들에게 먹힐지는 좀 의문이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덴 저 정도면 충분하다.

‘헌터를 했어도 잘했겠는데.’

나는 그물 안에 얽힌 빌런들을 한 번 더 꽁꽁 싸매는 최도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고마우이, 총각.”

사람들이 저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최도윤이 막 봉쇄됐던 문을 열고 경찰들을 마주하려는 순간.

“이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했더니. 일이 이렇게 꼬여있었네?”

뒷문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최도윤 역시 그걸 느꼈는지 바짝 긴장했다.

‘어쌔신?’

느껴지는 기운이 그랬다.

눈앞에 서 있는데도 기척이 희미하다. 이 정도면 상당한 실력자다.

“그 머저리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돈가방은 돌려줬으면 하는데.”

“돌려받아? 헛소리하는군. 이 돈이 언제부터 네 거였다고?”

“순순히 돌려줄 생각이 없으면 이쪽도 힘을 쓸 수밖에 없잖아.”

새로 등장한 놈이 씨익 웃었다.

이거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간다.

‘상성이 나쁜데.’

최도윤의 무기는 상대를 맞히거나, 최소 그 근처는 가야 효용을 발휘한다.

그런데 어쌔신처럼 그 날랜 몸과 은신이 특기인 이들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맞힌다 해도 순식간에 자리를 피하고 만다.

‘원거리 공격을 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지.’

눈 깜짝할 새에 둘의 싸움이 시작됐다.

촤악!

서걱, 쿠우우웅!

“이게 대체…… 제대로 보이지도 않잖아…….”

회사원이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일반인들의 눈엔 제대로 보이지 않겠지만 내겐 똑똑히 보였다.

조금씩 상흔이 늘어가는 최도윤이.

‘저 어쌔신. 헌터 출신이네.’

싸움의 방식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대인 전투만 하던 최도윤은 그 미묘한 패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원래 던전 돌면서 마력석 긁어모으던 일부 양아치 같은 헌터들이 빌런으로 빠졌다고 듣긴 했는데…….’

부를 노리고 헌터로 전향한 이들에게 게이트와 던전이 사라졌다는 소식은 큰 낭패였다.

그게 세계의 평화와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푸욱!

“허억……!”

그때 최도윤이 놈에게 복부를 찔렸다. 단검이라 깊은 상처는 아니지만, 움직임에 제한이 생기기엔 충분했다.

“크윽!”

최도윤이 빠르게 상처를 한 손으로 짓누른다. 개조된 석궁이 피로 물들었다.

‘승패가 너무 명확하네.’

더 이상 그냥 두고 보기가 뭐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회사원이 황급히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무시할 수 있었지만 그의 손목이 다치는 걸 보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순순히 끌려줬다.

“왜요?”

“‘왜요’? 왜긴! 이봐요. 아직 창창한 나이 같은데 자살하고 싶은 거 아니면 조용히 여기 있는 게 낫다고요!”

“아니, 저…….”

“뭐 각성자나 아카데미생 정도 된다고 해서 저놈한테 덤빌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이 사람, 뭔가 알고 있는 건가?

나는 조금 귀를 기울였다.

“저 빌런이 누군지 알아요?”

“알다마다요! 저 사람의 목덜미에 새겨진 저 문신을 보면 뻔하지 않습니까.”

몬스터 종류는 족히 천 개도 넘게 꿰고 있었지만 일반 빌런 집단은 하나도 몰랐다.

내가 멀뚱히 바라보자 그가 답답하다는 듯 설명을 덧붙였다.

“‘밀레니엄’ 안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라고요. 밀레니엄은 알죠?”

“밀레니엄은…… 원래 헌터를 대상으로 한 강도 조직 아니었어요?”

“네. 맞죠. 던전에서 헌터들을 털어 마력석이나 아이템을 뜯던 그 강도 조직 말입니다. 최근에 던전이 사라진 이후 이런 은행이나 일반 가게들을 털고 있다고요.”

던전을 거의 돈 적이 없는 내게도 여러 번 이름이 들렸을 정도로 밀레니엄은 악명 높은 조직이었다.

실력이 나쁘지 않은 헌터들을 모아다 만든 깡패 조직으로 말이다.

혹여나 강한 헌터를 만나 혼쭐이 날까 봐 하위 던전만 노리는 생 양아치들이었다.

두어 명 정도는 상위 헌터에 비견될 정도로 실력이 좋다곤 하는데 대부분 그 정도는 아니었다.

덕분에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날뛰고 있었을 줄이야.

“원래는 그 헌터를 털어먹던 놈들이라고요. 일반인은 상대도 못 합니다.”

그는 내가 전직 헌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내 말을 뭘로 들은 겁니까? 얼른 자리에 앉는 게……!”

털썩!

그와 잠시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최도윤이 바닥에 쓰러졌다.

우리의 바로 앞에서.

최도윤의 눈빛이 초점을 잃더니 이내 휙, 뒤로 돌아가는 게 단번에 보였다.

“쫑알쫑알 시끄럽게.”

놈이 우리 앞에 서서 위협적인 목소리를 냈다.

“상황 파악이 안 돼? 이 상황에서 잘도 떠들어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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