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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33화 (333/361)

333화

에드문드는 정부 기관에 넘겨졌고, 정신 감정 결과 극도의 불안감과 우울감이 확인되어 우선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됐다.

나는 넌지시 테오도르에게도 치료를 권유했지만 그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좀처럼 그가 걱정되어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차준의 연금술 공방을 뻔질나게 드나들게 됐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이제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 거야?”

“대체 에너지 연구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테오도르나 차준의 연금술사 공방은 매우 바빴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여러 의뢰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나 연금술사는 사실상 과학자나 핵물리학자와 다를 바 없어서, 은근히 더 많은 연금술사를 교육하길 권장하기까지 했다.

“대체 에너지라.”

“너도 알다시피 지금 쓰고 있는 마력석은 오염을 만들어낸다. 물론 톨룩이 게이트를 이용해 가속화하지 않는 이상 큰 문제 될 것 없는 양이긴 하지.”

“마력석이 나오기 전에는 더 다양한 방법으로 에너지를 만들었잖아.”

화력 발전소나 원자력 발전소 같은 것들 말이다. 지금은 거의 문을 닫고 마력 발전소만 돌아가고 있지만.

오염이라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발견하기 전까지 마력에너지는 친환경적이면서 효율이 높은 완벽한 기술이었다.

“마력석이 더 이상 배출되지 않으니 다른 방법을 고민하는 게 당연하겠지. 기존 방법으로는 이미 현대의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거다.”

그러면서 테오도르는 매우 신중한 얼굴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공방에는 오지 않는 게 좋겠구나.”

“왜?”

“준이가 자꾸 네 눈치를 보느라 바쁘지 않느냐.”

내 앞에 놓인 차 한 잔을 내려다봤다. 이 역시 차준이 내준 것이었다.

“공방 주인이니 차 타는 것 정돈 다른 사람을 써도 될 텐데.”

“그 애도 공방 주인이지만, 너 역시 꽤나 거물 아니냐. 함부로 대할 순 없지.”

“내가?”

“그래. 네가.”

테오도르가 손을 멈추고 날 바라봤다.

“전쟁영웅, 한서하. 그렇게 불리지 않더냐.”

“네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네.”

연구실에 처박혀서 밖에 안 나오는 줄 알았는데.

이런 소식은 또 듣고 있었나.

전쟁이 종식되고 정부는 여러 가지 발표를 했다. 개중엔 내 업적도 포함되어 있어서, 나는 일종의 전쟁영웅처럼 취급됐다.

“헌터일 때랑 별로 다를 건 없어.”

최상위 헌터가 곧 전쟁영웅일 뿐이다.

지나가다 사람들이 알아보기 쉬우니 모자와 마스크로 가리는 건 이전에도 그랬으니까.

“어찌 됐든 간에 더 이상 오지 말거라. 네가 자꾸 여기 상주하니 이사벨라가 오고 싶어도 못 오지 않느냐.”

“……이사벨라가?”

그녀는 내게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 이후로 딱히 연락이 없었다.

내가 먼저 연락하기도 뭣해서 그대로 시간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래. 나와 영화 취향이 비슷해 종종 영화 감상 후 의견을 교류하곤 했다. 그런데 요 근래는 통 보이질 않는구나.”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야.”

“내가 사교성이 좀 좋지 않으냐.”

테오도르가? 처음 듣는 이야긴데.

“표정이 불온하구나.”

“네가 지구에 온 지도 한참 됐는데 나나 차준 말고는 크게 아는 사람도 없잖아.”

“그야…… 처음엔 정부의 감시가 심했고, 그 다음엔 연구가 바빴고, 이제 와서는 굳이 나갈 필요가 없으니 그런 것 아니겠느냐.”

극심한 집돌이라는 소리였다.

그는 가만히 있어도 차준이 척척 모든 걸 다 해주는데 왜 밖에 나가야 하냐고 진심으로 반문했다.

“그리고 난 멀쩡하다.”

내가 왜 공방을 드나드는지 훤히 다 안다는 듯한 어조였다.

“톨룩이 무너지는 것쯤이야 이미 예상된 일이었고. 클로에가 그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줄은 몰랐다만…… 이제 그 애도 평안을 찾았겠지.”

테오도르의 손이 멈춰 있었다. 내겐 그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묵직하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얼굴을 가늠하게 했다.

“그거면 됐다. 처음부터 그걸 원했으니까.”

-부디. 제국을 멸망시키고 클로에의 영혼을 구원해줘.

혁명의 불꽃을 펼치러 가기 직전에 그가 내게 남긴 말이었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제…… 나중에 죽어서도 댄버의 얼굴을 볼 면목이 생겼지. 네 덕분이기도 하다.”

그가 내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러니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로.”

“……꼭 그런 것 때문은 아니었어.”

“뭐, 심심해 보이긴 했다. 늘 게이트나 돌아다니더니. 너야말로 나한테 뭐라 할 처지가 아니지 않느냐.”

“으음…….”

집, 게이트, 집, 게이트. 이렇게만 오갔으니 나도 할 말은 없었다.

“헌터를 그만두긴 했는데……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어.”

그게 내가 당장 마주한 최대의 고민거리였다.

호기롭게 헌터를 은퇴했고, 그건 곧 혜원 언니가 운영하는 경호 회사에도 들어가지 않았단 의미였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여태까지 내가 배운 건 전부 싸우는 기술들이었는데. 왜 돌연 그것들이 지겨워졌는지.

“어차피 돈은 충분히 많지만. 계속 이렇게 지낼 순 없는 노릇인데.”

생존을 위한 노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그건 충분히 많이 했다.

“뻔한 조언이긴 하다만. 네가 진정으로 뭘 하고 싶은지 잘 생각해보는 건 어떻겠느냐?”

“그러니까 그걸 잘 모르겠단 말이지.”

나는 영 삭막한 인간이라서.

테오도르처럼 영상 매체나 게임 같은 걸 감명 깊게 본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 것들은 시간을 죽이는 용도였지, 내게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진 못했다.

“일단 대학에 가는 건? 네 동생도 대학에 다니고 있다 하지 않았더냐.”

다정 언니도 내게 대학을 권유했었다.

혜원 언니도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고, 표연원도 내심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딱히 배우고 싶은 것도 없는데 무작정 대학을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해서.”

결국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내가 뭘 원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것이다.

너무 바쁘게 달려오기만 한 탓에 뒤돌아보는 법을 모르는 것이었다.

“네 능력을 살려서 뭔갈 해보는 것도 좋겠지.”

“내 능력이라. 공간 간섭을?”

산업용으로 많이 쓰이긴 하던데.

“결국 널 구성하는 아이덴티티 중 하나 아니더냐.”

거기엔 동의하는 바였다. 나 역시 회귀 직후 공간 간섭을 발휘하면서 그 익숙한 감각에 전율했었다.

내 스킬은 나의 가장 오래된 벗이기도 했다.

[알림: ‘노이트 리볼버’가 그건 자신 아니었냐고 당혹스러워합니다.]

‘물론 노이트도 내 둘도 없는 소울메이트지.’

[알림: ‘노이트 리볼버’가 의지도 없는 스킬과 비교당하다니 분하다고 항변합니다.]

나는 결국 노이트의 편을 들어줬다. 다른 건 몰라도 노이트가 토라지면 꽤 오래갔기 때문이다.

‘나한텐 당연히 노이트밖에 없지!’

어쩐지 연인에게 하는 대사 같기도 했지만.

“어쨌든! 공방에 이렇게 매일같이 출석할 필요는 없단 말이다. 알아들은 게 맞겠지?”

“물론이지.”

“아마 오늘 저녁쯤엔 혁명군들의 접근 제한 조치가 풀릴 거다.”

뜬금없는 말이었으나, 뭘 의미하는진 명확했다.

이사벨라에게 가보라는 거다.

“꽤 많이 신경 쓰네.”

“안 그래도 내 인간관계가 협소하기 그지없는데, 기왕이면 너희 둘도 잘 지내면 좋지 않겠느냐.”

나 역시 슬슬 이사벨라에게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고마워, 테오도르.”

“별말씀을.”

***

-할 얘기가 있어요.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연락은 이사벨라에게서 먼저 왔다. 여차하면 말없이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이사벨라도 생각 정리가 다 끝난 것 같았다.

인근 카페에서 마주했을 때, 나는 그녀가 조금 수척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생각은 다 정리된 모양이네.”

“대충은.”

이사벨라의 목덜미에 슬쩍 펜던트의 줄이 보였다. 매일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 같았다.

“사실 널 탓할 일은 아니었지.”

이사벨라가 먼저 서두를 열었다.

“저번에도 말했던 것처럼, 그냥 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거야. 난 오랜 시간 내 친부모에 대한 기억은 잊고 살았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

“……내가 이사벨라로 살아가면서 겪었던 그 수많은 역경들을. 나는 내가 평민 출신이기 때문에 당해야만 했다고 생각했어.”

진짜 이사벨라는 도망치고 그녀가 가짜가 되길 택했을 때.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과 달리 이사벨라는 평민 출신인 티를 지워내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도 귀족 출신이었다니. 몰락 귀족이긴 하지만, 웃기지 않을 수 없지.”

제법 씁쓸한 얼굴이었다.

귀족들 사이에서 그녀가 느꼈을 그 소외감과 외로움이 얼핏 예상이 갔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해.”

나는 선뜻 말을 얹을 수가 없었다.

진작 알려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같은 상황이 돌아온다 하더라도 나는 입을 다무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기왕 사는 세계까지 바꿨는데. 이런 일로 우울해져 있긴 아깝잖아.”

“정부에서 임시로 거처를 마련해줬다곤 들었어. 필요하면 내가 다른 곳에 집을 마련해줄 수도 있고.”

“그럴 필욘 없어. 우리도 여기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지.”

이사벨라는 처음부터 도움을 받으면 더 쉬운 길을 가고 싶어질 거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네 도움으로 먹고 자고 입으면, 귀족 생활과 다를 게 뭐가 있겠어?”

이사벨라는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에는 전남편이 남긴 막대한 재산 덕을 좀 봤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그게 사고사였는지 타살이었는지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대충 알 것 같았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 같은데?”

“셀은 미술을 배워보겠다고 하더라.”

그 애라면 원체 그림 그리길 좋아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니, 그동안은 예술이 귀족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에 막혀 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맞겠지.

“마법은?”

“자기 마법 비결을 알려주는 대신 보상금을 받기로 했대.”

셀은 특출한 전투 마법사이니 정부에서도 탐내는 인재일 것이다.

하지만 군인으로 끌어들이기엔 위험성이 크니까 이렇게라도 붙잡아두려는 모양이다.

“그 외에 기술을 배우는 사람도 있고, 학문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그도 아니면 이젠 숲에 들어가 조용히 살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어.”

혁명군들 역시 저마다의 길을 찾아 떠나고 있었다.

“너는?”

나는 이사벨라에게 물었다.

그녀의 길은 무엇이냐고.

이사벨라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이 세상을 더 구경하고 싶어.”

여행을 떠나겠다는 의미였다.

“그 뒤에 뭘 할지 결정해도 늦지 않겠지.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면서 더 많은 걸 경험해보려고.”

그렇게 말하는 이사벨라의 얼굴이 무척 밝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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