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화
에드문드는 혁명군이 넘어오는 그때, 홀로 톨룩에 남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곳에 아무도 남지 않고 모두 넘어오면 톨룩과 지구를 잇는 그 문을 이용해 다른 이들이 침입할 수도 있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게이트가 닫히면 그 문을 폐기할 사람도 필요했다.
에드문드에겐 내가 건네준 반지도 있었기에 그가 총책임자로서 톨룩에 남게 됐다.
-괜찮겠어? 한 세계의 멸망을 두고 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과거의 편린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 걱정 어린 반응에 그가 뭐라 대꾸했더라.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 그리고 이곳엔 아직 베아트리스의 시신도 있고……. 그 애를 완전히 보내 줄 마음의 준비도 안 됐거든.
그 역시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기에 그 뜻을 존중했지만, 지금 와서는 그때의 결정이 꽤나 후회되고 있었다.
-이 마계까지 오염이 치밀었어. 밖을 내다보면 마왕성 코앞까지 엉망이야.
이건 꽤나 못할 짓이었다.
그는 자신의 세계가 망가지는 걸 직접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 한두 달은 버틸 만했지만 갈수록 마족들도 죽어나가면서 에드문드의 정신상태는 점차 피폐해져만 갔다.
그는 대화할 상대를 잃어 나와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얼마 전에는 요 앞 복도에서 시종이었던 마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봤어. 젠장. 혹시 오염으로 물든 건 아니었을까? 더 자세히 봤어야 했는데.
“에드문드. 이만 돌아오는 게 어때.”
나는 매번 그에게 같은 제안을 했다. 그 대답도 여전했다.
-그럴 순 없어.
그는 오염이 심해지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베아트리스의 시신을 관째로 꼭대기 층에 옮겼다.
그 관을 끌어안고 매일 밤을 버티는 것 같았다.
-여긴 베아트리스의 시신도 있고 또…….
사각, 사각.
그는 자신이 쓰고 있던 일지를 보여주었다.
-이 일지도 완성해야 하고.
“그쯤 하면 됐잖아. 노력할 만큼 했어.”
-이건 여기 남아있는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야. 이 세상의 마지막을 기록하는 것.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는 이상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의 말에 동의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라고 해도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고 냉큼 다른 세계로 옮겨갈 순 없을 것이다.
최대한 이곳에 남아 다른 이들과 함께했던 추억을 곱씹고 싶겠지.
-아직 조금 더 버틸 수 있어. 그러고 보니 최근에 대륙의 중앙에서 이상한 움직임도 발견됐었지. 그것도 좀 더 조사가 필요하겠어…….
중얼중얼. 그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일지를 마저 써내려갔다.
마음 같아선 내가 직접 가서 그의 머리에 총알이라도 한 발 쏴주고 싶었다.
그러면 그는 지독한 악몽을 꾸고 일어난 것처럼 말끔해진 상태로 지구에서 눈을 뜰 텐데.
내 생각에는 오염이 그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그래서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고 있는 것이었다.
공기 중에 퍼진 오염이 그의 호흡기를 통해 이미 에드문드의 몸속에 뿌리 깊게 자리한 것이 틀림없다.
-일주일……. 일주일 안에 모든 게 끝날 거야.
“확실해?”
-지금 같은 속도라면 그래.
그거 듣던 중 희소식이다.
“벨제부브가 많이 기다리는 눈치던데.”
-……그래?
에드문드가 벨제부브의 이름에는 반응했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오는 게 나을 거야. 거기 더 남아 있는다고 좋을 것 같진 않거든.”
-충고는 이해해. 하지만 말했다시피, 나는 이 세계의 마지막을 기록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면서도 뜻을 굽히지는 않았다.
나는 대충 알겠다며 그에게 안부를 전했다. 일주일 뒤에 돌아온다면 그의 거처를 슬슬 마련해야 했다.
***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거 감회가 새롭네요.”
내 말에 박노아가 멋쩍게 미소 지었다. 민망함과 뿌듯함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드디어 정식으로 연구원이 됐어요.”
“축하해요.”
박노아가 어색하게 옷매무새를 만졌다. 흰 가운에 그의 이름 석 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이제 조수에서 벗어나는 건가요?”
“말단 연구원일 뿐이지만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백목련이 옆에서 그를 스파르타식으로 교육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하긴. 그를 볼 때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니.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그 정도 수준이면 무엇이 돼도 됐을 것이다.
그와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백목련이 안으로 들어왔다.
“좀 늦어서 죄송해요. 잠시 회의를 하느라.”
그녀 역시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게다가 무척 깔끔한 모습이었다.
피곤에 절어 있지 않은 걸 보니 새삼 전쟁이 끝난 게 실감됐다.
그녀는 거의 24시간 가동하는 게이트 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면서 갖은 고생을 다 했던 터였다.
“무슨 회의였어요?”
“게이트 연구소를 어떻게 할지 의논했어요. 더 이상 게이트가 나타날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역시나 그런 이야기였나.
전에 백목련과 관련된 얘길 나눈 적이 있었는데 현실로 다가오니 또 새삼스러웠다.
“어떻게 됐어요?”
정직원이 되자마자 일터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한 박노아가 물었다.
“그게……. 이름도 좀 바뀔 테고 인원도 감축되겠지만. 일단 현상 유지는 하기로 했어요.”
“정말요?”
박노아가 뛸 듯이 기뻐했다.
그 역시 백목련과 함께 일하는 걸 가장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박노아 씨도 정말 축하해요. 드디어 개인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네요.”
“감사해요. 소장님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진 못했을 거예요.”
박노아가 허리를 푹 숙였다.
백목련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성좌에 대한 연구를 할 생각인가요?”
내 물음에 박노아가 크게 고갤 끄덕였다. 처음부터 그가 백목련의 옆에서 함께한 이유가 이것 아니었던가.
“네. ‘성좌’, ‘시스템’ 그리고 오염……. 아직까지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는 아직도 머릿속에 고장 난 라디오를 달고 있었다.
“톨룩과의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제게 성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그들은 이 세상을 이루는 구조물 중 하나인 거겠죠.”
성좌들이 신의 조각에서부터 유래했으니 본 소속은 톨룩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과 연결이 끊긴 지금까지도 성좌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그들의 영향력에서 우리가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것 같다.
‘하긴. 아이템들도 다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게다가 시스템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아직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 한참 더 남아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저는 제게 주어진 이 능력을 가지고 그런 것들을 더 연구해보려고 해요.”
“좋은 생각이네요. 박노아 씨 능력이라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누가 뭐래도 그에겐 남에게 없는 장기가 있지 않은가.
신들의 대화를 훔쳐들을 수 있는 재주가.
***
얼마 지나지 않아 에드문드가 지구로 귀환했다.
그는 지구에서 눈을 떴고, 벨제부브와 격한 재회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가 작성했던 일지에 대해서 묻자 일지를 가져올 순 없어서 죄다 머릿속에 넣어서 왔다고 답했다.
“그 전부를?”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결국 해냈지. 그게 내가 끝까지 그곳에 남은 이유였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에드문드의 표정이 이전보단 썩 나쁘지 않았다.
드디어 그 의무가 끝났다는 해방감일지, 오염이 깨끗이 씻겨 나간 덕일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한층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아직 건강 검진이 다 끝나지 않았으니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겠어.”
테오도르가 옆에서 작게 충고했다.
“혹여나 내가 실수했을 수도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심장이 빨리 뛰면 위험할 수도 있다.”
“테오도르 네가 실수할 리가 있겠어? 이 내가 인정한 몇 안 되는 천재인데!”
“하하, 에드문드 자네야말로!”
둘이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하기 바빴다.
그 이후로 둘이 에드문드가 지구로 넘어온 기술력에 대해 무어라 이야길 주고받았지만 제대로 이해할 순 없었다.
“그래서 톨룩의 마지막은 어땠나.”
테오도르가 에드문드에게 물었다. 테오도르 역시 톨룩 출신인지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톨룩은…… 갈수록 끔찍해졌지. 생명체들은 죄다 이상하게 변하거나 죽어갔어. 생명체가 살지 않으니 땅은 황폐해지다 까맣게 변해버렸고.”
그는 톨룩의 마지막을 회상하는 것처럼 눈을 꼭 감았다.
“점점 물이 차오르는 것 같았어. 검은 물이 차올라서, 점점 더 궁지에 몰리는 느낌이었어.”
그건 분명 좋은 느낌은 아니었을 거다.
“날 제외한 거의 모든 생명체가 죽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멸망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살아 움직이는 걸 봤어.”
“대체 뭐였지?”
“그건…… 어린 여자아이였어.”
나와 테오도르는 흠칫 놀랐다.
“어린…… 여자아이?”
“그래!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진 나도 모르겠다니까. 근데 그 오염들을 가로질러 온 것 같았어.”
나도 모르게 테오도르를 빤히 바라봤다. 그도 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몇 초 동안이나 눈이 마주쳤다.
“혹시 그 여자아이가 몇 살 정도로 보였어?”
“글쎄다. 난 인간 아이의 나이는 잘 몰라서……. 키는 이 정도쯤 되어 보였는데.”
그가 대충 손대중하는 키를 보니 더욱 확신이 섰다.
톨룩에서 오염을 가로지를 만한 여자아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클로에.”
그 이름을 여기서 다시 듣게 될 줄이야.
톨룩이 멸망하면서 함께 망가졌으리라 생각만 했는데. 이렇게 직접적인 목격담을 들을 줄은 몰랐다.
“맞아! 그 애가 자길 클로에라고 소개했어.”
에드문드가 확인사살을 했다.
“내가 어떻게 날 찾아왔느냐고 물었더니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생명 신호를 찾아왔다더라고. 좀 이상한 말이긴 했지만, 오염에 찌들면 좀 헛소리도 할 수 있는 거지. 그냥 그럴 수도 있다 생각했어.”
“그리고? 그 애가 또…… 뭐라고 했지?”
테오도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또 이상한 소릴 했지. 자기한테서 삭제된 자료를 발견했다는 거야. 근데 아무리 연구소 기록을 뒤져도 그게 누군질 알 수가 없대.”
나는 클로에가 누굴 얘기하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댄버.’
내가 클로에에게 발사했던 마지막 탄환이…… 그녀에게서 댄버의 기억을 앗아갔으니까.
클로에가 그 기억의 공백을 눈치챈 것이다.
“내가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물었는데 제대로 대답을 못 하더라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어. 이런 말이 어울릴진 모르겠지만…… 고장 날 것 같았단 말이지.”
“무슨 말인지 잘 알겠네.”
테오도르가 조급하게 대꾸했다. 왜냐하면 클로에는 엄밀히 따지면 죽는 게 아니라 고장 나는 거였으니까.
“그러고 나선 시답잖은 얘길 좀 주고받았고…… 나한테 이상한 질문을 던졌어.”
“뭐라고?”
테오도르는 거의 에드문드에게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자기가, 사람이 맞냐고. 사람처럼 보이냐고.”
-만약 저 같은 인공지능이 지구에서 태어났다면 상황이 달랐을까요?
클로에가 내게 던졌던 질문이 잠시 떠올랐고.
-인간들은 상징을 좋아하죠. 당신은 내 상징이에요. 현실의 상징. 그리고 내 탄생을 아는 목격자이기도 하고.
-넌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구나.
뒤이어 그 애와 내가 나눴던 대화가 또 생각났다.
“멀찍이 있어서 사실 잘 안 보이긴 했지만 내 눈엔 네가 엘프도 마족도 아니고 사람으로 보이긴 한다고 대답했어. 그게 원하던 대답이었을진 모르겠네.”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대답한 직후에 하늘이 무너졌거든. 말 그대로.”
우수수, 처음엔 하늘에서 가루 같은 것이 떨어지더니 이내 거대한 파편이 되어 바닥에 흩뿌려졌다고 했다.
“톨룩이…… 그렇게 끝이 난 거지.”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도 테오도르는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에드문드도 애써 숨기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우울의 내음이 풍겼다.
나 역시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인간이 되고 싶어 하던 그 아이는, 에드문드의 대답에 기뻐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