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Deatheater.
다른 이들의 죽음을 양분으로 자 라난 아이들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 는 명칭이 있을까.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Deatheater 를 거꾸로 뒤집으면, Retaehtaed가 되니까. 레태흐태드.
그 이름의 유래가 여기서 시작된 것이었나.
"인간들은 언제나 이런 끔찍한 짓 을 반복하지. 너도 여러 번 느끼지 않았나?"
나는 그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맨 처음 성배를 발견했을 때, 나는 그곳에서 처참한 몰골의 아이들을 봤다. 그리고 딸아이의 영혼을 고통 속에 밀어 넣고 괴로워하는 아버지 를 봤으며, 제 동생이 노예로 팔려 나갈 것을 직감하고 제 신념을 저 버린 엘프도 봤다.
그 모든 것이 인류가 저질러온 죄
의 역사였다.
"하지만……
그래도 변명의 여지는 있었다.
"결국 그 잘못들을 바로잡는 것도 우리 인간이잖아."
그저 증오하고 파괴만 일삼는 것 은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스스로의 위안이 될 순 있겠지만.
"그런다 한들 내 동생은 영영 돌 아을 수 없는데. 그런 게 무슨 소 용이 있을까."
레태흐태드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 었다.
"그동안 그 학원에서 죽어나간 수 많은 아이들은? 그리고 내가 마녀 가 되어 그들을 처단하지 않았다면 그 뒤로도 계속 희생됐을 아이들 은?"
이미 스러진 목숨을 되살릴 순 없 는 법이었다.
"결국 네가 할 수 있는 것도 뒷수 습에 불과하지 않니? 그럴 바엔 무 슨 일이 생기기 전에 죽여버리는 게 최고의 예방 아니겠어?"
"네가 하는 짓 역시 수많은 희생 자들을 낳을 텐데."
마구잡이로 다 죽이면 레태흐태드
가 하는 짓이 결국 인간들의 악행 과 얼마나 다르단 말인가.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인간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데. 내가 좀 더 빨리 죽게 만들어준 것뿐이지."
후후후. 레태흐태드가 음산하게 웃 었다.
표人-、人
으*1 ---.
그녀의 신형이 무너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이제는 하반신이 전부 사라지고 상반신 일부만 남았다.
"난 인간이 싫어. 그 끔찍하고 오
만한 족속들이 말이야."
그러더니 이렇게 뒷말을 잇는다.
"하지만 나 역시 그 인간이지."
레태흐태드가 인간 '줄리아'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니 이 마녀라는 것들이 아주 웃기단다."
나는 묵묵히 그녀의 이야길 들었 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정말 얼 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나 자신까지 잡아먹 어야 그 여한이 풀리거든. 마녀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
그들을 움직이게 해주는 원동력이 끝내 그들 스스로를 불살라버려야 끝이 난다니. 아이러니할 수밖에.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간 을 향한 증오심을 불태우며 살아왔 지만…… 널 보고 있자면 회의감이 드는구나."
그녀가 아득히 먼 옛날을 떠올리 는 것 같은 표정을 했다.
"내게도 다음 생이 허락된다 면……
죽음은 레태흐태드의 목 끝까지 치달았다.
"……그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 을까……
사르르륵.
그렇게 레태흐태드는 완전히 모래 처럼 변해버렸다.
바닥에 재처럼 소복이 쌓인 것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아니. 한 가지 더 있었다. 아직 잠 에서 깨어나지 못한 내 동료들 말 이다.
"으으음.."
류라임이 작게 뒤척이며 소리를 냈다. 레태흐태드가 사라졌는데도아직 꿈결을 헤매는 모양이었다.
섣불리 깨웠다간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르니 일단 내버려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빙그르르!
나침반이 어서 자길 봐달라는 것 처럼 내 앞에서 화려하게 한 바퀴 돌았다.
" 따라오라고?"
빙글!
나침반이 커다랗게 원을 그린다.
자기 의사가 아주 확실한 녀석이 었다.
나는 나침반을 따라가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전 주인. 그러니까 정로나 씨 는…… 편히 가셨어?"
내 말에 나침반이 추욱 늘어졌다.
귀속 아이템의 주인이 바뀌는 경 우는 단 한 가지뿐이다.
전 주인의 사망.
그러니 이 나침반이 내게 귀속된 건 명확히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키 고 있었다. 전 주인인 정로나가 사 망했다는 것이다.
-이 나침반이 당신이 길을 헤맬 때, 중요한 이정표가 되길 바랄게 요.
나는 마지막에 정로나와 나눴던 대화를 곱씹어 보았다. 아주 공교롭 게도 그녀의 말처럼 이 나침반이 나를 이끌고 있었다.
내가 마녀가 되지 않게 해줬을 뿐 만 아니라, 이젠 남아있는 지구 인 류의 모두를 위해 길을 안내하고 있지 않은가.
-대신, 당신도 내 오빠의 나침반 이 되어줘요. 살아갈 이유를 잃은 오빠의 인생에 하나뿐인 나침반이.
그러니 이번엔 내가 그녀의 부탁 을 들어줄 차례였다.
내가 정로운의 나침반이 되어주려 면 우선 이 전쟁을 끝내 정로운이 죽지 않게 해야겠지.
저벅, 저벅.
발을 내디딜 때마다 주변 환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내가 당혹스러움에 나침반을 바라
보니 나침반은 태연하게 어서 따라 오라고 재촉하는 몸짓을 보일 뿐이 었다.
얼결에 다시 한 발 내딛자, 방금까 지만 해도 소금 사막이던 풍경이 수풀이 가득한 열대우림으로 바뀌 었다.
'차원을 넘어가고 있는 건가.'
그 크로노스는 지구와 톨룩 사이 n차원 사이에 존재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파르르!
나침반이 자꾸만 꾸물대는 날 보 며 몸체를 떨었다. 답답해 죽겠다는신호였다.
그렇게 한 발 더 내딛자, 풍덩!
이번엔 바닷속에 빠져버렸다.
이사벨라는 왜 다니엘 로스가 아 직까지 살아있는지. 그것도 황제의 최측근으로 남아있는지 알 수가 없 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그가 혁명군 의 정보를 팔고 목숨을 부지했다는것이다.
하지만 그가 혁명군을 배신하고 다시 황제 편으로 돌아섰다 한들, 한번 배신한 전적이 있으니 최측근 이 되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그러니 그가 황제의 기사처럼, 그 것도 첫 번째 기사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주 의아할 따름이었다.
"한 명만 빼고요?"
이운우가 옆에서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 명은…… 저희 에게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가 없네요."
이사벨라가 명확하게 정정해줬다.
지금 상태론 다니엘이 여전히 혁 명군의 편인지, 혁명군을 배신하고 황제의 편으로 돌아선 건지 모호했 다.
"황제를 끌어낼 수 있어요. 그가 누굴 노리고 여기까지 나왔는지 알 것 같거든요."
이사벨라는 한번 죽음을 경험하던 그 찰나에 야차처럼 일그러지던 셀 의 표정을 기억했다.
그리고 번쩍, 하고 무언가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 것도 말이다.
셀이 황제의 기사를 죽였다.
그냥 기사도 아니다. 세드릭의 충 성은 황실을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 정도로 극진했으니까.
"황제를 유인하면서 그 기사가 아 직 우리 편인지 확인을 해봐야겠어 요."
왜인진 알 수 없지만 이사벨라는 죽은 줄만 알았던 그가 살아있는 걸 알자, 그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는 데 왜 그런 욕망이 샘솟았는지 모 를 일이었다.
마침 좋은 명분도 있었다.
"황제는 지금 가호를 받고 있으니 무적 상태 아닙니까?"
"……맞아요. 하지만 죽지 않는 것 뿐이지, 붙잡히지 않는 건 아니니까 요."
황제를 인질로 잡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저 수많은 황제의 기사들을 뚫어 낼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시도할 엄두조차 못 낼 수 준은 아니었다.
이운우는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 이사벨라의 계획에 동의를 표 했다.
"좋습니다. 그럼 한번 해보죠."
"으틉!"
꼬르르르!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갑작스러운 물세례에 바등거리는 것도 잠시. 나 는 빠르게 공간 간섭을 발휘했다.
팟!
콰과과광! 쿠웅!
동시에 내가 있던 곳에 무언가의 꼬리가 내리쳐졌다.
근처에 있던 산호석이 박살나며 바닥으로 쏟아져 내린다.
'저건?'
한쪽 구석의 동굴에서 번쩍 빛나 는 눈빛이 보였다. 이윽고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침입자여.
쿠구구구구…….
녀석이 몸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진동이 울렸다.
동굴 안에서 목만 쭉 빼낸 모습인 데도 그 위압감이 대단했다.
수룡.
아니, 용이 되기 위해 준비 중인 이무기라고 해야 할까.
마치 뱀처럼 긴 몸통에 비늘이 붙 어있었다. 이마엔 뿔이 돋았고 기다 란 수염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용이라고 하기엔 다소 부 족한 감이 있었다. 으레 입에 물고 있거나 손에 쥐고 있어야 할 여의 주가 보이질 않았다.
-크로노스 님을 만나고 싶다면 나
부터 상대해야 할 것이다.
녀석이 광오하게 선언했다.
나는 시선을 돌려 나침반을 바라 봤다. 나침반의 침이 명확하게, 놈 이 머물고 있는 저 동굴 쪽을 가리 킨다.
'쉽게 넘어가게 해줄 것 같진 않은 데.'
후우. 결국 방법은 언제나처럼 하 나뿐이다.
싸워서 이기고, 크로노스를 만나야 했다.
* * *
전쟁터 한복판에 도착한 시온은 어렵지 않게 이리저리 날뛰고 있는 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득히 멀었지만 세드릭의 원수와 마주하니 절로 분노가 치솟았다.
까드득!
이빨 갈리는 소리가 살벌했다.
"폐하! 어찌하여 이곳까지 직접 행 차하셨습니까! 이곳은 너무 위험하 니 돌아가시는 게……
다른 충직한 부하가 충언을 올렸
으나 시온은 들은 체도 하질 않았 다.
애초에 그는 이 나라를 잘 다스리 는 것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저 녀석을 내가 직접 봐야겠다."
시온이 손가락으로 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저놈을 내 앞에 끌고 와라."
그러자 즉각 신하들이 반발했다.
"폐하! 저자는 고위급의 전투 마법 사로 추정됩니다. 저자를 막으려면 다른 마법사들이 대거 움직여야 하 는데 그러면 다른 곳의 방벽이 뚫
리고 맙니다!"
"그래? 그거 아주 곤란한 일이구 나."
시온이 들어먹는 체하자 신하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러나 시온이 태연하게 뒷말을 이었다.
"그럼 내가 직접 가겠다."
"폐하아!"
신하가 기겁을 하고 그를 말렸다. 실질적인 통솔권은 총사령관에게 있지만, 황제가 인질로 잡히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큰 낭패였다.
그런데 시온은 아주 단호했다.
"병력이 없다며? 그럼 내 호위 병 력들만 이용해서 잡도록 하겠다. 경 들은 제국의 손꼽히는 기사고, 어차 피 내 개인 병력이니 아무래도 상 관없지 않은가?"
"그럼 폐하는 누가 지킨단 말입니 까!"
"난 죽지 않으니 괜찮다. 눈 먼 화 살 정도는 맞아도 상관없다. 게다가 이 본진 한가운데에 있을 테니 호 위도 그다지 필요치 않다."
거기까지 말하고는 더 이상의 얘 긴 듣기 싫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만 물러 가거라."
신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대충 서른여섯 개쯤 되었지만, 시온의 옆 에서 다니엘이 서슬 퍼런 눈빛을 했기 때문에 결국 물러났다.
"저자를 잡아 오거라."
시온의 명에 다니엘이 고개를 숙 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