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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20화 (192/361)

320화

"……필기가 낙제라고요."

"그래. 내가 받은 결과지에는 그렇 게 쓰여 있구나."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요? 줄리 아가 필기에서 낙제라니 그럴 리 가……

"미안하지만 결과는 정확하단다.

오류가 있을 수가 없어."

교사는 매우 확정적인 어조로 대 꾸했다.

"그럼 졸업을 포기할게요."

" 뭐?"

틸난이 매우 놀란 얼굴로 날 뒤돌 아봤지만 애초부터 염두에 두고 있 던 결말이었다.

결국 이 아카데미에서 나가 여동 생을 구해내기만 하면 되는 것 아 니겠는가. 꼭 졸업을 할 필요는 없 었다.

"그냥 이 아카데미에서 내보내 주

세요."

"줄리아……. 네가 올해도 졸업에 실패한 건 안타깝게 됐지만 우리 학원을 중도 포기하면 네가 한 모 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거다."

"상관없어요."

그건 줄리아의 노력이지 내 노력 이 아니니까.

"중도 포기하고 싶어요. 이만 돌아 가 봐야 해서요."

내가 다시금 내 의사를 강조하자 교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빠져나갈 수 있는가, 했는 데 교사가 다시금 거절의 말을 내 뱉었다.

"그럴 순 없단다."

" 왜죠?"

"이 학원에 중도 포기란 제도는 없다. 졸업을 하거나, 여기 그대로 남거나. 둘 중 하나뿐이지."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학원이 다 있단 말인가.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교사가 태연하게 뒷말을 이었다.

"입학할 때 전부 설명하지 않았 나? 이곳은 몇몇 후원자분들의 기

부로 운영되는 학원이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단다. 그러니 이곳을 나갈 거라면 그 투자금의 열 배를 물고 나가야 하는데. 가능하겠니?"

"제 부모님은 가능하겠죠."

줄리아에겐 귀족 부모가 있다고 했으니 한번 말을 꺼내봤다.

"베넷 부인은 네가 무사히 졸업해 서 하루빨리 집으로 귀환하길 기다 리고 있단다."

교사는 '졸업'이란 말에 특히 강세 를 두었다.

"길바닥에서 죽어가던 아이를 주

워 길러주신 그분께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는 건 아니겠지."

"선생님!"

교사가 도가 지나친 언행을 하자 틸난이 벌떡 일어섰다.

"홈홈. 어찌 됐든 중도 포기는 불 가능하단다. 다음 기회를 노리도록 하렴."

교사는 도망치듯이 양호실을 빠져 나갔다.

"세상에! 저렇게 무례하게 말씀하 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줄리아."

틸난의 위로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나는 다시금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중도 포기 제도가 없는 교육기관 이라. 그런 게 존재할 수가 있나?'

다시 생각해도 아주 미심쩍었다.

* * *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낙제'. 그게 내가 받은 결과였다.

가채점 결과와 실제 점수 차이가 심하게 났다.

그리고 내 가채점 점수와 동일한 성적을 거둔 녀석이 따로 있었다.

「총점 767점 - 페일 레크틉」

페일. 그 자식이었다.

"이번에 페일 걔는 졸업한다던데."

"진짜? 줄리아는 이번에도 낙제던 데……

"그래도 방해꾼이 사라졌으니 내

년에는 쟤도 졸업하겠네."

수군수군.

주변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지나 치게 잘 들렸다.

"줄리아!"

틸난이 한달음에 달려와 내 옆에 섰다. 게시판에 크게 붙은 공지에는 이번 연도 졸업생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여기에도 내 이름은 없었 다.

그걸 깨닫자 털난의 표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미안해."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나 먼저 졸업하는 거랑, 페일을 제대로 못 막은 거."

둘 다 틸난의 잘못은 아니었다. 나 는 그녀를 책망하는 대신 생긋 웃 어 보였다.

"괜찮아."

"정말로? 혹시 네게 실례가 아니 라면, 내가 베넷 가를 찾아가서 네 동생을 살펴볼 수도 있어."

아주 고마운 얘기지만 그런 친절 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도 나갈 거야."

"뭐?"

틸난은 한 템포 쉬었다가 다시 말 을 이었다.

"부모님께서 중도 포기해도 된다 고 하셨어?"

"아니. 난 그분들 주소도 몰라."

" 응?"

줄리아의 방을 샅샅이 뒤져봤는데 도 부모에게서 온 편지는 단 한 장 도 없었다.

'여동생에게서 온 편지뿐이었어.'

그나마도 제대로 된 주소가 적혀 있진 않았고 말이다.

"그럼 어떻게 여길 나간다는 거 야?"

"네 도움이 필요해. 틸난. 날 도와 줄 수 있지?"

내가 그녀의 손을 꽉 붙잡고 묻자, 틸난이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 다.

♦ ♦ ♦

졸업 예정자들이 발표된 직후 졸 업식 일정이 잡혔다.

이 학원의 졸업식은 특이하게도

총 한 달에 걸쳐 진행됐는데, 총 4 개의 그룹으로 나뉜 아이들이 차례 대로 졸업을 했다.

한 주에 한 번 졸업식을 거행하는 날마다 학원은 눈물바다로 가득 찼 다.

"꼭 편지해야 해!"

"네가 졸업할 때 내가 맞이하러 올게."

학원 아이들이 저마다 아쉬움이 가득 담긴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이름을 불린 아이부터 순서대로 졸업식장 안에 입장했기에, 졸업식 장 앞은 아이들의 울음바다였다.

틸난은 4번의 졸업생 그룹 중 3번 째 조에 속해있었다. 하필이면 그 페일과 같은 조였다.

"내가 먼저 졸업하게 됐네."

마지막 날이라 그런가. 페일이 답 지 않게 장난스러움이 없었다.

"누구 놀리러 왔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어서 온 거야."

"내 필기시험 성적 바꿔치기 한 게 너지?"

내 말에 페일이 잠시 입을 다물었 다.

"왜 그런 건데."

"자세히는 얘기 못 해."

잘은 몰라도 이 녀석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미심쩍게 행동하는 것 아니겠는가.

"네 졸업을 미뤄가면서까지 날 방 해한 이유가 뭔데?"

"……내 얘기 잘 들어."

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쏟아냈다.

"절대, 졸업하지 마.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언제가 되더라도."

내가 무어라 입을 열려고 하는데

페일이 뭐라 할 새도 없이 뒷말을 이었다.

"더 이상 내가 널 막을 수 없으니 까 이렇게 부탁하는 거야! 제발. 최 대한 이 학원 안에 남아."

왜 그러냐고 물어도 답해줄 것 같 지가 않았다.

'이미 여길 탈출하려고 계획을 다 짜뒀는데.'

그런 얘길 꺼내면 득달같이 화를 내려나. 하지만 레태흐태드가 제안 한 이 내기가 스테이지형 게이트와 비슷한 형식이라면, 이 학원을 빠져 나가 여동생을 구해내는 게 최종목표일 텐데.

"페일 레크툽! 페일 레크틉 어디 있죠? 졸업식장에 입장할 차례예 요!"

누군가 저 멀리서 페일을 불렀다.

"잘 있어."

페일이 졸업식 선물로 받았을 것 이 분명한 꽃다발을 내게 안겨줬다.

"이거 안 가져가?"

"응. 필요 없거든."

그리고 페일은 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 이상한 녀석

이었다. 다시없을 앙숙인 줄 알았는 데 그리 단순한 관계는 아니는 것 같고.

'졸업식장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

이 학원의 비밀이 무엇인지는 그 곳에서 다 밝혀질 것이다.

페일이 뭣 때문에 내 졸업을 이렇 게 방해하는지. 이 학원은 왜 중도 포기가 불가능한지. 주소도 제대로 모르는 줄리아의 부모는 어떤 이들 인지.

마지막으로 제 하나뿐인 언니의 이름 철자도 틀려먹는 여동생은 단 순히 교육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언니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건지.

"틸난 아나스타샤! 졸업식장으로 입장하세요!"

모든 것이 곧 밝혀질 것이다.

틸난이 내 쪽을 바라보며 긴장감 어린 얼굴을 했다.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살짝 웃어 보였다.

* * *

저벅, 저벅.

깜깜한 어둠 속 한 치 앞도 제대 로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틸난은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저 앞에서 환한 빛이 쏟아지는 게 보였다.

학원에서 바깥으로 연결되는 통로 일 것이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학원에서 있었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동아리 애들은 나 없이도 잘 지내 겠지? 전부 졸업하려면 2년은 걸릴 텐데.'

그 뒤에는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페일 그 녀석이 마지막에 그런 함 정까지 준비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필기 답안지를 바꿔치기하다니.'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각은 이렇게 흘러갔다.

'줄리아는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 걸까? 일단 부탁하는 대로 하긴 했 는데……

어느새 문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틸난은 묘하게 익숙한 느낌을 받 았다. 요 몇 년 동안 매일같이 접 했던 것이었다.

'이 냄새는…… 식당 냄새?'

학원 식당 냄새가 진하게 났다.

의아함도 잠시.

탓.

빛 속으로 발을 딛자 어둠에 익숙 해졌던 눈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 피?"

빛을 피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고 개를 숙였던 틸난은 자신의 신발을 적시는 핏물을 발견했다.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 틸난의 안 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어'?"

주변이 온통 붉은색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가운데에서 지글지글 고기가 익고

있었고, 그 테이블에 둘러앉아 귀족 들이 고상한 체를 하고 있었다.

하얀 테이블과 대비되게 바닥은 온통 핏빛이었다.

"이런. 메인 디시가 아직 나오기 전인데…… 약간 착오가 있었던 모 양입니다."

"괜찮습니다. 이번 메뉴는 아주 기 대가 크네요. 이 안에서 몇 년이나 묵었다고 했죠?"

"무려 7년입니다."

"세상에! 맛이 아주 농익었겠어 요."

마치 틸난이 없는 것처럼 저들끼 리 도란도란 말을 주고받는다.

그제야 틸난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긴 식당이었다.

털썩.

틸난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하다 주저앉았다.

고개를 돌리자 아까까지만 해도 그녀가 생활하던 학원으로 향하는 문이 보였다.

그리고 저긴 정육점이고.

코끝을 지르는 고기의 향이 아주

익숙하다는 걸 깨닫자 틸난은 헛구 역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웩! 우에에엑!"

틸난이 반사적인 거부감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기었다.

알려야 했다.

저 학원에서 하하호호 웃으며 졸 업을 축하하고 있을 학원 생도들에 게. 그리고 졸업을 위해 열심히 스 스로를 갈고닦을 이들에게.

이곳의 실태를 알려야만 했다.

"어딜 도망가려고."

스르르륵.

"시, 싫어! 살려줘! 살려주세요!"

그때 주방장으로 보이는 이가 틸 난의 발목을 붙잡았다.

바닥에 있는 뭐라도 붙잡고 싶은 데 핏물 때문에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오! 드디어 메인 디시가 나오는군 요!"

"맙소사. 저 빛깔 좀 보세요!"

"역시 이 살롱만큼 서비스가 좋은 곳은 없다니까요. 직접 재료를 볼 수 있으니 그 신선도도 확실하고 요."

"늘 최상급 재료만 쓰니 맛도 만 족스럽죠."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귀족들이 시끄럽게 웃어젖혔다.

틸난은 고개를 돌리고 싶지가 않 았다. 메인 디시랍시고 나온 것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짙은 절망감이 그녀를 휘감는 그 때.

탕!

총성과 함께 틸난의 발목을 질질 끌던 악력이 사라졌다.

"뭐, 뭐야! 총?"

"보안 요원들! 대체 여기 시설 관 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저마다 새된 비명을 질렀지만 기 사들이 출동하는 일은 없었다.

저벅, 저벅.

틸난은 누군가의 교복 밑단이 다 른 이의 피로 젖어든 것을 볼 수 있었다.

"……줄리아."

틸난이 고개를 들어 그녀의 이름 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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