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끝까지 잠겨있던 마지막 칭호까지 모두 해제됐다.
[칭호를 확인합니다.]
〈전장의 서막을 여는 자〉
설명: 대규모 전쟁에서 이견이 없 을 정도로 강력한 인상을 남겼을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아군과 적 군을 가리지 않고 당신을 기억합니 다.
부가 스킬: 승리의 여신(패시브/아 군의 사기가 150% 향상됩니다! 아 군의 능력치가 전반적으로 미약하 게 상승합니다.)
이니시에이터(패시브/전쟁이 시작 되고 30분 간 능력치가 2배로 향상 됩니다! 단, 대규모 전투일 때만 적 용됩니다.)
이로써 회귀 전에 얻었던 칭호들 을 모두 다시 갖게 된 셈이다.
딱 최후의 결전 때 완성된 게, 타 이밍이 공교롭다.
10년 넘게 걸린 업적이 회귀하자 이렇게 단기간 안에 끝났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감탄도 잠시. 나는 날 기다리고 있 는 팀에 합류했다.
"준비는 다 됐겠죠?"
"네! 폭탄도 널널해요."
"서두르지."
13부대 전원이 다 모였다.
이운우가 인원을 보강해준다 했지 만 기동성을 중시하는 우리 부대특성상 짐만 될 것 같아 열심히 설 득했다.
나는 이운우 쪽을 살짝 살폈다. 그 는 전투태세를 갖추는 진영에 이런 저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출발하죠."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저 산꼭대기에 있는 옥수리. 지금 은 게이트가 펼쳐지면서 지형이 좀 바뀌었지만 그 위치는 그대로일 것 이다.
* * *
전서호가 한바탕 앞을 휘저은 다 음엔 톨룩 측의 반격이 있었다.
수적으로 우세한 톨룩이 지구군을 반원 모양으로 감싼 다음 원거리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마법진이 하늘 위에서 요동치고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허억……
"크으윽!"
생각보다 적군의 마법사들 실력이 출중했다. 이운우는 마법진에 디스 펠을 걸려고 갖은 애를 쓰면서, 다른 한편으론 전장을 지휘했다.
"한결 길드장! 버틸 수 있습니까!"
-아직까진 괜찮습니다!
"언제까지 가능하겠습니까."
-앞으로…… 10분! 아니, 5분 정 도!
가장 최전방에 서 있는 탱커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해야 5분.
이운우는 당장 모든 길드장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플랜 D 실시합니다."
-역천, 확인했습니다!
-나이트워커, 확인했습니다.
-홍염, 확인했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일사천리로 사람 들이 움직인다. 가장 외곽 쪽에 위 치한 한결은 최대한 버티면서 그 뒤로 모든 준비가 끝난다.
"한결 측, 준비됐습니까?"
- 네!
"플랜 D 실시!"
그러자 견고했던 외곽 방어막에 점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방패끼리 접합하여 무너지지 않게 견디던 이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쓰 러진다.
그 방벽을 넘고 적군들이 내부까 지 침입하기 시작했다.
"뚫렸다! 안으로 들어가 지휘관의 목을 베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 다!"
"우와아아아아!"
분위기가 자신들 쪽으로 넘어왔다 는 생각에 톨룩군이 신나서 덤벼들 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쿵 쿵!
"으윽!"
병사들 일부가 안으로 흘러들어간 상태에서 방어막이 다시 견고해진 다.
안으로 침입한 병사들의 퇴로가 막히고 순식간에 고립된다.
아차 하는 순간 이미 늦었다.
푸욱!
촤아악!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이운우는 안도 어린 미소를 지었 다.
"작전이 성공적……
콰아아아앙!
그때 어디선가 굉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좌측의 방어선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으윽……. 여기는 A-116. 적군 사이에 폭탄을 짊어진 병사들이 있 습니다!
"폭탄......?"
게다가 폭탄을 던지는 것도 아니
고 '짊어진'이라니.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자폭합니 다! 주의하셔야 합니다!
이 윤리도 법도 없는 자식들이 기 어이 선을 넘는 방법을 쓰고야 만 것이다.
톨룩이야 물러서면 죽음뿐인 전쟁 이니 가릴 것도 없었다.
이운우는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다시 말문을 텄다.
"자폭군단에게 다른 병사들과 구 별되는 특이점은 없습니까?"
-자, 잘 모르겠습니다! 뒤에 가방
같은 걸 짊어지고 있긴 하지만…… 안에 든 계 폭탄인지, 포션인지 분 간이 어렵습니다!
육안으로 분간하지 못하게 신경을 많이 쓴 모양이지. 저 많은 병사들 사이에서 자폭병을 찾아내는 건 불 가능에 가깝다.
콰아아아앙!
다른 고민을 할 새도 없이 뒤이어 폭발음이 들렸다.
이운우는 서둘러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톨룩군 사이에 자폭병이 섞여 있 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특별히 분간
할 방법이 없습니다!"
-나이트워커입니다. 물을 끼얹어 무력화할 순 없습니까?
"말이 폭탄이지 화약을 쓰는 게 아닙니다. 마력을 이용하는 방식일 겁니다."
이미 물은 전서호가 한번 신나게 흩뿌리지 않았던가. 그런 걸로 예방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때 한 번 더 하늘 위로 광활한 마법진이 펼쳐졌다.
-전방에 마법진 발견! 최소 6개 이상 중첩으로 관측됩니다!
"확인했습니다. 마법 1군단 쪽에서 디스펠 가능합니까?"
-이미 공격용 마법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간에 포기하면 마력 손실이 너무 큽니다. 시행해야 합니다!
"2군단은요!"
-아까 공격의 후유증으로 마력 회 복 중입니다. 움직일 수 있는 마법 사가 몇 안 됩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저 수많은 마법들에 헌 터들이 죄다 맞고 죽게 내버려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부관!"
"네!"
결국 이운우는 부관을 불러냈다.
"잠시 맡길게요. 현상 유지만 부탁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운우는 터벅터벅 걸어 밖으로 나갔다.
임시로 만든 막사 밖에 서자, 보고 로만 들었던 마법진이 두 눈 가득 들어찼다.
각 마법사들의 마력 색깔에 따라 마법진마다 형형색색이었다. 얼핏보면 정교한 예술작품처럼 보이기 도 했다.
이운우는 눈을 감고 마력의 흐름 을 느꼈다.
'복잡하긴 하지만 분명 처음과 끝 이 있을 거야.'
마법진은 이를테면 한붓그리기와 같다.
마력을 이리저리 얽어서 만들어내 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 마법사가 그 끄트머리를 잡아내면 디스펠이 쉬울 수밖에 없다.
이운우는 마력의 흐름을 긴밀하게 느끼려고 노력했다.
우우우웅!
마법진에 마력이 돌면서 그 빛깔 이 한층 짙어지고 있었다.
마법이 발동될 조짐이었다.
'여기도 아니고. 저쪽인가? 아니. 만약 나라면……
상대와 치밀한 심리전이 오간다.
시간만 충분하면 모든 곳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둘 중 하나야. 왼쪽? 아니면 오른 쪽?'
식은땀이 흘렀다.
겨우 상대 마법사 측에서 숨겨놓 은 마지막 관문까지 왔는데, 둘 중 어느 것을 잘라내야 마법진의 가동 이 멈출지 알 수가 없었다.
우우우우우우웅!
마법진이 막 발동되려는 듯 덜덜 떨리고 있었다.
결단의 순간이었다.
'왼쪽? 오른쪽?'
이 한 번의 선택에 수도 없이 많 은 이들의 목숨이 걸려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운우는 미약 한 마력의 뒤틀림을 읽어냈다.
서걱!
우우웅……!
왼쪽을 잘라내고 고개를 드니, 마 법진이 작동을 멈춘 채 허공에 떠 있었다.
파스슥.
그러더니 조각조각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잘못 선택했으면 그야말로 참사가 일어났으리라.
이운우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현재 폭탄병을 분간할 만한 특징이 있는지 조사 중입니 다."
부관으로부터 다시 지휘권을 넘겨 받는다.
이운우는 속으로 다짐했다.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피해를 최 소한으로 줄이는 게 목표야. 거기에 집중하자.'
그는 힐끗 한쪽 방향을 바라봤다.
'진짜 승부는 저곳에서 가려질 테 니까.'
본래 게이트가 열리기 전엔 높은 산꼭대기였는데, 지형이 바뀌면서 소금사막으로 변해버렸다.
발밑은 푹푹 빠지고 조금만 바람 이 불어도 소금기가 피부를 따갑게 공격했다.
"에퉤퉤!"
류라임이 또 소금을 씹었는지 거
하게 뱉어냈다.
"으……. 정말 여기 있는 게 맞나 요'?"
정로운도 두건으로 얼굴을 꽁꽁 싸맨 채로 물었다.
"일단 받은 지도에 표시된 위치는 그래요."
나는 무전기를 꺼내봤다. 게이트에 서 유일하게 신호가 터지는 물건은 무전기뿐이라서 별별 기능이 다 들 어 있었다.
개중 지도 송신 기능도 있었다.
내 현 위치와 목적지의 위치를 실
시간으로 주고받는 것이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긴 한데……
어째 걸어도 걸어도 이 근처를 빙 빙 도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일단 이 방향으로 쭉…… 윽!"
발밑이 푹푹 꺼지다 못해 갑자기 아래로 쑥 빨려 들어간다.
'공간 간섭!'
"서하 님!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그런데 여기 바닥 에 함정이 좀 있는 것 같네요."
나는 내가 빠졌던 구덩이를 발로
휘휘 저어 소금을 젖혀냈다.
그러자 교묘하게도 사람 하나가 쏙 떨어질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 는 게 보였다.
구멍 안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 도로 깊었다.
"왜 이런 데 함정이 있는 거죠?"
"글쎄요. 게이트를 만든 누군가의 안배인 모양이죠."
지금까지 왜 이렇게 평화로운가 했다.
"어쩔 수 없죠. 최대한 마력을 아 끼고 싶었지만 위로 가는 수밖에
요."
다른 이들이면 곤란했겠지만 우린 기동성에 특화된 부대였다.
공중을 날아서 가는 것쯤이야 어 려울 것도 없었다.
"좋아요! 그럼 서둘러서.. 으아 악!"
지이잉!
정로운이 아이템을 이용해 공중에 뜨자마자 기겁을 했다.
그가 어느 정도 날아오르자 어디 선가 날아온 광선이 그의 머리 위 를 스쳤기 때문이다.
광선이 날아온 곳을 다시 봤지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어라'?'
아무리 기존의 법칙들이 통하지 않는 게이트라지만 아무것도 없는 데서 불쑥 광선이 생겨날 순 없는 거다.
"정로운 씨. 한 번 더 올라가 볼래 요'?"
내 말에 정로운이 알겠다며 긴장 감 어린 표정을 했다.
"흡!"
지이이잉!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우리가 가 야 할 방향이 어딘지 더 명확해진 것 같았다.
"이 공격, 저 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은데요."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군."
신도아도 나와 같은 걸 보고 있었 는지 동의를 표한다.
"저 공격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건지 알아야겠어요. 아마 저 위에 뭔가 있는 것 같거든요."
"저쪽으로 가봐야겠네요!"
"하지만 이 위로 올라가면 이렇게
공격이 쏟아지는데요?"
지이잉!
정로운이 슬쩍 경계선에 서서 손 을 올리자 곧바로 공격이 날아와 소금 더미 사이를 가른다.
"제가 선두에 설게요."
나는 노이트에 총알을 장전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선선히 고갤 끄덕였다.
이미 나와 여러 번 전투를 함께하 면서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덕이었 다.
[알림: '아늑한 바람'이 사용자에 게 자신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릅니다.]
바람이 날 지켜주리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