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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13화 (319/361)

313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침샘을 자극 한다. 화려한 손놀림이 볶음밥에 불 맛을 입힌다.

"다 됐어요."

"와! 맛있는 냄새!"

다정 언니가 잔뜩 신나서 방방 뛰 었다. 혜원 언니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식기를 세팅했다.

"다 같이 모여서 저녁 먹는 게 대 체 얼마 만이야?"

"그러게요. 다들 바쁘니까요."

달그락.

표연원표 볶음밥이 눈앞에 놓이자 정말 군침이 돌았다.

표연원, 혜원 언니, 다정 언니 그 리고 나까지. 이렇게 넷이 모이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서하도 해외 출장 다녀온 지 얼 마 안 됐는데 또 한참 바빴고."

그 해외 출장이 진짜 해외 출장이 아닌지라 양심이 찔렸다.

"맞아. 출장은 어땠어? 해외 상황 도 썩 좋지 않은 모양이던데."

"어떻게든 국제 연합 헌터들로 게 이트 클리어는 하고 있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민간인 피해가 심각하죠."

우리나라처럼 전산화가 잘된 곳이 면 모를까. 파장을 읽고 예측해도 국민들에게 대피하라는 명령을 내 리는 데 여러 불편함이 있는 나라 들은 정말 피해가 심했다.

"우리나라도 지금 코가 석 잔데, 누가 누굴 돕는지. 하여튼 이해가

안 간다니까."

오하하..

우리나라의 게이트 피해가 심각하 다 보니 되도록 자국 헌터 유출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러니 나처럼 해외 파견을 나가 는 이가 적어서 더욱 신기하다는 반응이 었다.

"헌터들은 아예 출국 금지 아니야, 지금?"

"급하게 나가야 해도 아마 며칠 이내로 다시 돌아온다는 확인서 찍 어야 할걸요. 그나마도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다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데. 그럴수록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걔는 왜 안 온대? 테오도 르 말이야."

"더 연구할 게 있다나 봐요."

혜원 언니가 원래 테오도르도 초 대하려고 했는데 그가 먼저 거절했 다.

"처음엔 테오도르 싫어하지 않았 어요?"

"그랬지. 근데 볼수록 애가 나쁜 애는 아닌 거 같아서. 또 밥도 잘 안 챙겨 먹는 거 보면 마음 쓰이기

도 하고."

표연원도 그렇고, 혜원 언니도 그 렇고. 다들 밥에 엄청 집착하는 것 같다.

"진짜 곧 전쟁이 끝날지도 모른다 고 생각하니까 느낌이 좀 이상하네 요."

표연원이 멋쩍게 웃으며 불쑥 딴 얘길 꺼냈다.

이렇게 모인 이유 자체가 곧 있을 최후의 결전 때문이었다.

"뭐야. 우울한 얘기 하지 말라구."

"뭐가 우울한 애기야! 좋은 얘기

지. 전쟁만 끝나면 연원이도 학교 다시 다닐 수 있을 테고."

"응? 진짜?"

다정 언니가 화들짝 놀랐다. 나도 놀란 기색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어떻게 헌터 생활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굳 이 제가 그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 잖아요."

게이트 자체가 사라지면 애초에 헌터라는 직업이 존속될지도 모르 겠지만.

"원래부터 저는 연구원이 되고 싶 었으니까. 다시 대학에 가려고요."

" 연구원이라……

나는 백목련과 박노아를 떠올리자 조금 말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표연원이 진짜 연구원이 되지 않더라도 대학에 가서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 을 것이다.

"난 지금이랑 크게 다를 거 없을 것 같은데."

"손이석 대장장이님께서 전쟁 끝 나면 한번 찾아오라고 전해달라 하 셨는데."

"뭐어?!"

내 말에 다정 언니가 기겁을 했다.

"싫어어. 못 들은 걸로 할래……

크게 좌절하는 모습을 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 지금 심각해. 웃지 마……

"홈, 미안."

겨우 새어 나오는 미소를 다잡았 다.

"역천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네. 기왕이면 이름만이라도 유지해서 다른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떤 일이요?"

"경호 업체 같은 거?"

나는 순간 경호원처럼 정장을 쫙 빼입은 혜원 언니를 상상해봤다.

"엄청 잘 어울려요."

"그래?"

나도 모르게 진심이 툭 튀어나왔 다.

"그럼 서하도 계속 내 밑에서 일 할래?"

"경호원이라……

내가 할 줄 아는 거야 몸 쓰는 일 뿐이니 나쁘지 않은 선택지긴 할 거다.

"각성자는 운동선수 못 하는 게 아쉽네."

그러게 말이다.

여차하면 사격 국가대표 선수라도 도전해보는 건데.

아쉬워하며 뒤늦게 볶음밥을 크게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부드러운 계란의 맛과 감칠맛이 한데 어우러진다. 이걸 볶음밥이라 고 해도 되는 걸까?

평범한 이름으로 부르기가 미안할 정도다.

"그런데 정말 볶음밥으로 되겠어

요? 원래는 다른 걸 준비하려고 했 는데……

우리가 다들 한 입씩 먹고 말이 없어지자 표연원이 불안한 듯 말을 꺼낸다.

"연원이는…… 요리를 배워보는 것도 좋겠다."

"에이. 요리는 그냥 취미일 뿐인걸 요."

다들 내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이 재능을 이렇게 썩혀도 되는 걸까……. 역시 가게라도 하나 차리 는게……

혜원 언니가 진지하게 중얼거린다.

"진짜 가게 차리면 이 맛 안 나올 걸요?"

그러더니 웃으며 뒷말을 덧붙인다.

"지금이야, 제게 소중한 사람들을 대접하는 자리니까 더 신경 써서 그런 거죠."

그 말에 다정 언니의 표정이 뭉클 해졌다.

"어쩜 이렇게 말도 예쁘게 할까! 누구 동생이길래!"

혜원 언니는 표연원에게 장난스럽 게 헤드락을 걸면서 미소를 감추지못했다.

"전쟁이 끝나면, 제가 식사 자리를 한 번 더 만들게요."

표연원이 잔뜩 흐트러진 머리카락 을 슥슥 정리한다.

"그때도 모두 참석해주셔야 해요."

그 말 속에 담긴 당부를 못 알아 들을 사람은 없었다.

"꼭이요."

표연원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그때는 볶음밥보다 훨씬 더 맛있 는 걸로 해드릴게요."

"기대되는데?"

혜원 언니가 부러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연원이 요리도 못 먹고 죽을 순 없지.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 다던데."

혜원 언니의 말에 표연원의 안색 이 밝아졌다.

"맞아! 그땐 내가 고기도 사 오고, 와인도 준비할게."

"엄청 큰 고기 통째로 굽자! 요즘 그런 거 많이 하더라."

"소 한 마리 통째로 사 올게요!"

"아니, 그건 좀……

다정 언니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 길래 살짝 만류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내 쪽으로 쏠 렸다.

내게도 뭐라 한마디 하라는 무언 의 압박이 실린다.

"……저는 소보단 돼지고기가 더 좋아요."

"그럼 돼지로 잡자!"

"돼지고기 요리라……. 잘 생각해 볼게요."

내 말에 다들 맞장구를 친다.

그 속에 담겨있는 불안감을 애써

모르는 척했다.

다들 웃고 떠들지만, 속으로는 어 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이사벨라는 지구에 대해서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특히나 먼저 와 있던 테오도르가 그녀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재밌어?"

테오도르의 연구실 옆방은 거의 이사벨라의 방이 됐는데, 테오도르 가 빌려준 각종 게임기와 영화로 넘쳐났다.

오늘도 이사벨라에게 가보니 방 안을 어둡게 하고 영화를 한 편 보 고 있었다.

심지어 레미제라블이다.

"여기도 처음부터 민주주의 사회 였던 건 아니란 게 신기해서."

"다 선조들이 쟁취해낸 거지."

내 말에 이사벨라는 잠시 침묵했 다.

그녀는 아마도, 두고 온 혁명군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실패 해버린 자신들의 세계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올리버랑 셀하고 연락은 했지? 특별한 일은 없대?"

"응. 별일 없다더라. 그, 테토인 가…… 하는 마족이 엄청 신경 써 준다고 했어."

"다행이네."

"거품 목욕을 하게 해주겠다고 나 섰다가 목욕탕이 완전히 거품으로 가득 차버렸다지 뭐야."

"……다행인 건가?"

테토가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긴 한데 이것저것 서투른 모양이다.

이사벨라가 혹여나 소외감이나 외 로움을 느끼고 있을까 봐 뭐라 말 을 건네려는 순간. 테오도르가 벌컥 문을 열었다.

"해냈다! 내가 해냈어!"

"들어올 땐 노크를 해야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테오도르가 잔뜩 흥분해 있었다.

원래는 차준이 상대해주었을 텐데, 그는 전쟁 준비로 공방이 더 바빠져서 자주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그 덕에 자주 옆에 있는 이사벨라 가 테오도르의 말동무가 됐다.

"서하, 네 말대로다! 에드문드, 그 는 내가 인정한 몇 안 되는 천재 야! 그의 공학과 내 연금술을 접목 시키고자 하는 아이디어는 가히 천 재적이었어!"

에드문드를 소개해준 게 큰 자극 이 된 모양이다.

둘 다 각각 제국와 마계에서 내로 라하는 천재였으니. 서로를 보고 영 감을 많이 얻는 것 같다.

"알았어. 잠시만. 신발 좀 신

*7?.."

"그럴 새가 없다니까!"

테오도르가 하도 보채길래 어쩔 수 없이 신발도 대충 구겨 신고 옆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처음 보는 구조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야?"

"보면 모르겠느냐? 일명…… '죽음 의 문턱'이다!"

"공격용이야?"

"그렇게 위협적으로 보이느냐?"

웅, 아주.

죽음의 문턱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아주 살벌해 보였다.

붉은색과 검은색의 조화. 거기다 음산하게 안개가 사방으로 깔려있 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 고, 거대한 문 틈새로 살짝 보이는 안쪽은 까만색 일색이다.

"잘못 들어가면 크게 다칠 것 같 은데……

"그렇게 위험한 물건은 아니니 걱 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체 뭐 하는 물건인데?"

내 물음에 테오도르가 또 장황하 게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연금술이 어쩌고, 공학이 어쩌고. 나는 하나도 알아듣질 못했다.

대충 기나긴 이야기 끝에 마지막 결론만 새겨들었다.

"……해서! 게이트가 열리면 그 n 차원을 이용해 톨룩과 지구를 연결 하는 통로가 되어준단 얘기다!"

"오염을 매개로 하는 게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오염을 매개로 하 는 '게이트'를 이용한 것이니…… 오염을 이용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게이트만큼 거대한 흐름을 만들진 못하고, 샛길 정도다."

그러더니 테오도르가 이렇게 말하 는 것이다.

"다음 게이트가 열리면 나머지 혁 명군도 지구로 넘어올 수 있을 게 야."

그 말에 이사벨라가 크게 놀란 얼 굴을 했다.

"영원히 마계에서 살 생각은 아니 지 않느냐."

"……고마워, 테오도르."

이사벨라는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

럽게 그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맨 처음에 둘이 만났을 때 테오도 르에게 극존칭을 썼던 걸 생각하면 좋은 신호였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 이건 게이트 를 이용하기 때문에 중간에 무조건 게이트를 한번 거쳐서 와야 한다."

그러면서 테오도르가 간단한 그림 을 그려 설명해준다.

"저쪽 톨룩에서 에드문드가 만든 첫 번째 문을 통과하면, 우리가 빌 려 쓰는 게이트에 도착할 거다. 그 게이트 안에서 이 문을 열고 들어 오면! 그제야 지구에 도착할 수 있

는 거다."

"부작용은?"

"지구로 향하는 문을 찾기 전에 게이트가 닫히면 그대로 갇히게 된 다."

위험 부담이 꽤 크다.

게다가 이번에 열릴 게이트는 일 반적인 게이트도 아닐 텐데…….

나는 걱정 어린 생각부터 먼저 들 었지만 이사벨라는 도리어 생긋 웃 었다.

"마침 잘됐어."

그녀의 눈빛에는 여전히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열정이 담겨있었다.

"끝마쳐야 하는 일이 있거든."

다시금, 혁명군이 그 불꽃을 피워 낼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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