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맨 처음에 열렸던 게이트?"
"네. 뭔가 알고 계시는 건 없나 요'?"
"갑자기 찾아와서 그건 뭔 소리 냐?"
손이석이 미심쩍다는 듯 날 바라 본다. 애써 아닌 척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급하게 좀 찾고 있는 게 있어서 요."
"글쎄다. 최초의 게이트라……
그도 한참 전의 일이라 그런지 잠 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각성했던 게이트는 그래도 '게이트'라는 미지의 현상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생기던 무렵이었 다."
그가 불길에 파닥파닥 부채질을 했다.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처음엔 도시괴담 같은 건 줄 알
았는데, 알고 보니 진짜였지. 그 얘 기가 언제부터 시작됐냐면……
그는 눈을 감고 곰곰이 회상했다.
"……잘 모르겠다!"
"더 잘 생각해보세요. 아주 중요한 거라고요."
"예끼. 욘석아. 난 당장 오늘 저녁 밥이 더 중하니까 방해하지 말고 좀 비켜라."
간만에 닭을 얻어 푹 고아 먹으려 한다면서, 내게 휘휘 손짓했다.
어서 나가라는 축객령에 가까웠다.
"그럼 이 얘길 알 것 같은 1세대
다른 헌터분은 모르세요?"
"그놈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
"이름만이라도 알려주세요!"
간곡하게 부탁하자 손이석이 휴우 한숨을 내뱉더니 날 똑바로 응시했 다.
"뭔진 몰라도 아주 급한 모양이 지?"
"네.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한국대 병원에 가서 내 이름을 말하고 개인 병실에 들어가고 싶다 고 하거라."
갑자기 한국대 병원을?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손이석이 작게 덧붙였다.
"수요일 오전 10시. 거기 가보면 알 거다."
나는 얼결에 알겠다고 대꾸했다.
"오랜만에 뵀는데 식사라도 같이 하시……
그러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 이석이 가차 없이 나를 쫓아냈다.
"난 헌터 놈들이랑 겸상 안 한다! 같이 밥을 먹으면 재수가 없어!"
쾅!
닫힌 문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 고 말았다.
* * *
한국대 병원, 수요일, 오전 10시.
데스크에 가 손이석의 이름을 대 자 미리 얘길 들었다며 나를 개인 실로 안내했다.
평소 나도 이곳을 제집 드나들듯 이 했지만 이렇게 깊게 들어온 적 은 없었다.
"꽤 안쪽에 있네요."
"장기 입원 환자분들을 위한 특별 시설입니다. 보안에 민감하신 분들 이 많아 가장 안쪽에 배치되어 있 고요."
장기 입원 환자라.
"이곳입니다."
스윽, 문고리를 돌렸다.
배], 삐, 삐.
바이탈을 체크하는 기계 특유의 규칙적인 기계음이 울렸다.
그 안에는 핏기 없는 얼굴로 침상 에 누워있는 노인과, 내가 이미 알 고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최석철 헌터."
"이게 누구야."
길게 기른 흰 수염에 동그란 선글 라스. 마치 정비공이라도 되는 것처 럼 상하의가 연결되는 점프수트를 입었다.
씨익 웃는 장난스러운 미소까지.
내가 아는 '천리안'의 최석철. 그 가 맞았다.
"여왕개미의 방까지 굴러들어갔던 재수 없는 신입헌터 아닌가."
"이제는 신입 딱지를 뗀 지 좀 됐 습니다."
"나한텐 아직 햇병아리지!"
누군들 1세대의 살아있는 전설들 앞에선 햇병아리일 것이다.
"손이석이 보냈나?"
"예. 이곳으로 와보면 제가 묻는 것의 대답을 알 수 있을 거라 하셨 거든요."
나는 고개를 돌려 침상에 누워있 는 사람을 살폈다.
"이분이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겠 습니까?"
"내 친구 녀석이지. 못 움직이게 된 지 한참 됐지만."
"그 말씀은……
"식물인간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일 텐데도 그 의 말투엔 씁쓸함이 배어있었다.
"한창때인 20대에 몸져누워 이 나 이까지 이러고 있으니. 아주 게으른 녀석이야."
애써 웃으며 덧붙이는 내용이 무 겁기만 했다.
어색한 표정을 짓자 최석철이 껄 껄 웃으며 내 등을 두어 번 내려쳤 다.
"너무 어두운 얼굴 하지 말게! 그
래도 모처럼 새로운 얼굴을 봤으니 녀석도 기뻐하겠지."
그러더니 내게 뒤이어 물었다.
"그래. 자넬 여기까지 오게 만든 질문은 대체 뭔가?"
"제가 찾고 싶은 건 '최초의 게이 트'입니다."
내 말에 최석철이 얼굴을 딱딱하 게 굳혔다.
"꽤나 위험한 걸 찾으려 하는군."
"방산비리나, 정부의 어두운 면 같 은 거엔 관심 없습니다. 다른 목적 으로 찾으려는 거고요."
그가 오해할까 봐 황급히 덧붙였 다.
그러자 최석철이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그 녀석이 자넬 여기로 보낸 거구만."
"이분께서 혹시 최초의 게이트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나도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나나 손이석 그 녀석보다 일찍이 헌터를 시작한 몇 안 되는 1세대 헌터들 중 한 명이긴 하네."
그렇다면 그나마 알고 있을 확률
이 가장 높았다!
가능성 있는 이를 찾은 건 좋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분은 지금 말을……
"못하지. 식물인간인데."
대체 손이석이 날 왜 여기로 보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진짜 그냥 날 쫓아내려고 아무 말 이나 한 건가?
그러자 최석철이 씨익 웃으며 호 탕하게 자신의 가슴을 두어 번 두 드렸다.
"내가 있지 않나!"
"……최석철 헌터께서요?"
"그래!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못 보는 게 없다고."
나는 그제야 그가 하는 말이 뭔지 이해했다.
최석철.
그는 이전에도 나와 이운우의 기 억을 헤집은 적이 있지 않았던가!
"이분의 기억을 읽을 수 있습니 까?"
"물론이지."
"그럼……
"단, 자네가 직접 찾아야 해."
최석철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 제가요?"
프라이버시를 생각하면 차라리 친 우인 최석철이 보는 편이 나을 텐 데.
"이 녀석은 이 병실에서 한 발자 국도 옮길 수 없거든. 자네들 기억 을 살피는 데 얼마나 큰 기계가 필 요했는지 기억하나?"
마치 치과 의자 같은 곳에 눕혀져 서 엄청 큰 헬멧 같은 걸 썼던 기 억이 있다.
그때도 뭔가 수상한 건 아닌지 의 심했었는데.
"그게 괜히 필요한 게 아니거든. 나 혼자서 기억에 들어가서, 혼자 읽고 오는 건 불가능하다. 보조가 필요해."
"제가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요."
내가 선뜻 호응하자 최석철이 씨 익 웃었다.
* * *
나는 곧장 후회했다.
"우욱......!"
"속이 뒤집어지지?"
금방이라도 위장에 있는 걸 다 쏟 아낼 것만 같았다.
극심한 뱃멀미를 웅축해서 경험하 는 것처럼 골이 아파 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제대로 된 안전장치 없이 남의 기억을 보는 게 쉬운 줄 알았나?"
"아무리, 우욱……. 그래도 이건
좀……
이 상태로 뭔갈 본다는 게 가능한 일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자. 잘 기억하게. 내가 운전자고, 자네는 조수석에 탄 거야. 난 목적 지에 잘 데려다주는 것만으로도 벅 차니 자네가 직접! 잘 살펴야지."
"예. 저도 아는데 그게 생각대로 되지 않네요……
나는 후우, 한숨을 내쉬고 다시 일 어섰다.
"원래 이렇게 심한가요? 최석철 헌터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멀쩡하 신 거죠."
"나야 익숙해졌지! 뭐, 경험의 차 이도 있고 이 녀석이 유독 심하기 도 하고."
최석철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낼 뻔했다.
"전에도 설명한 적이 있을 텐데. '경중'에 대해서."
"네. 기억에도 일종의 중력 같은 게 있다고요."
"그래! 무거운 기억과 가벼운 기억 이 있지. 원래는 무거운 기억 쪽으 로 휩쓸려 가는 게 정상이고 말이 야."
그래서 그가 내 기억을 읽었을 때, 나는 회귀 전 혜원 언니의 죽음까 지 보고 말았다.
그건 아주 오래된 기억이지만 그 만큼 강렬했으니까.
"이 녀석의 기억은 20대에 끊겨있 는데 육신은 100살도 넘게 먹었으 니……. 이 육신은 영원히 같은 기 억을 반복하게 되지. 그만큼 무거운 기억은 더욱 무겁게, 가벼운 기억은 더욱 가볍게 변해버린 거야."
"저분은 그 중력이란 게 더 극심 하단 소리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멀미를 심하게 느끼는 거고요."
"이해가 빠르니 가르치는 재미가 있군."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개고생해
야 하는 건 변치 않는단 얘기였다.
후우.
한 번 더 숨을 고른 다음 최석철 의 어깨에 손을 댔다.
"가시죠."
그러자 최석철도 이름 모를 헌터 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극심한 어지럼 증이 몰려왔다.
구토가 치밀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지만 겨우 꾹 눌러 내렸다.
'조금만 더!'
그의 기억 속에 뭐라도 작은 힌트
가 남아있길 바라면서 나는 두 눈 을 꼭 감았다.
* * *
-야! 최석철!
젊은 청년이 앞서가는 이를 불러 세웠다.
- 뭐야?
획 뒤도는 이의 얼굴이 낯선 듯 익숙했다. 젊은 시절의 최석철이다.
특유의 동그란 선글라스는 그대로 인데, 코끝까지 한껏 내려썼다. 의외로 눈매가 날카로워서 인상이 전 반적으로 사나운 편이었다.
-아까 나온 뉴스 속보 들었냐? 마 력석을 이용한 발전소가 지어진단 다!
-한참 전부터 연구하던 기술이구 만, 뭐가 그렇게 신기하다고.
-그동안 우리가 버린 마력석이 몇 갠데! 그것도 다 팔면 돈이었을 텐 데. 아깝지 않냐?
그 말에 최석철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거 팔아봤자 푼돈 얼마나 한다 고.
현대인으로선 이해 못 할 소리다.
'마력석 개당 가격이 요즘 얼마나 하더라. 물론 게이트가 자주 나타나 서 요즘 값이 좀 떨어지긴 했는 데……
그래도 최소 수백에서 최대 수천 만 원까지 호가하는 게 마력석이다.
아직 기술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야 구르는 돌멩 이만도 못하겠지만.
- 준비나 빨리 해. 곧 게이트 열릴 테니까.
- 알았어〜. 어차피 예상 구역에 다
들어와 있어서 그냥 기다리기만 하 면 되는걸.
그러고 보니 주변에 이 둘을 제외 하면 아무도 없었다.
게이트 발생을 예측하는 기술은 예전에도 꽤나 정교했다고 하니, 아 마 다들 도망간 이후일 것이다.
- 클리어 건당 정부 지원금이나 좀 올려줬으면 좋겠네.
- 그건 인정.
대화하는 걸 들어보면 각성자 특 별법이 막 제정된 시점 같았다.
게이트 클리어에 헌터가 필수불가
결한 존재라는 게 입증되면서, 정부 는 급박하게 무보수로 일하던 헌터 들을 위한 지원금 정책에 나섰다.
개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클리어 지원금'. 당시 헌터 길드 라는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에 헌터는 지원금을 받고 일하는 일종의 프리랜서였다.
'최초의 게이트보다 한참 뒤인 시 점인데.'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대화를 나 누던 최석철과 이름 모를 사내의 신형이 흐려졌다.
지지직.
마치 비디오 화면이 멎은 것처럼.
그리고 뭔지 모를 것들이 내 몸을 통과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시간을 되돌리고 있는 거야.'
더 뒤편으로!
마치 걷잡을 수 없이 강력한 강풍 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것 같았다.
양팔을 교차하고 머리를 가리면서 겨우 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순간 바람 이 멎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이번엔 주변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키에에엑! 케에에엑!
거대한 괴물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웠다.
드높은 몸체에 단단한 겉면. 나 역 시 회귀 전 이 몬스터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다.
'땅장군!'
_ 젠장...
이름 모를 사내가 땅장군을 보며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의 눈빛에 절망이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