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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09화 (187/361)

309화

화악!

엘리사는 자신의 귀가 드러나지 않게 로브를 푹 눌러썼다.

"무슨 말씀이세요? 엘프라니……

"맞는 거 같은데. 아냐?"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

애써 아닌 척 침착하게 대응하자

눈앞의 사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더니 한 번 더 눈을 감고 뭔 가 감각을 느끼는 듯하더니, 다시 확신 어린 말을 내뱉는다.

"아. 하프 엘프?"

"아니라고요!"

엘리사가 발작적으로 그 말을 부 정했다.

"하프 엘프 맞지 않아? 느낌이 그 런데. 아까부터 왜 자꾸 부정하는 거야? 같은 종족끼리 의미 없는 거 알면서."

"같은 종족이요……?"

엘리사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사내를 살폈다.

머리카락 사이로 뭉뚝한 귓가가 보였다. 하프 엘프인 그녀보다도 훨 씬 짧은 길이였다.

"하지만, 귀가……

"아, 이거?"

에드문드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귓가를 매만졌다.

"좀 짧긴 하지. 사정이 있어서 귀 가 잘렸거든."

엘리사는 흠칫 놀란 기색으로 에 드문드를 바라보다가 이내 사과를건넸다.

"죄송해요. 제가 괜한 걸 물어서."

"아냐. 귀가 잘린

데, 뭐."

정작 에드문드는 역력했다.

"그럼…… 다크 요?"

"응. 그런데?"

그 말에 엘리사의 롱하게 변했다가。 다.

게 비밀도 아닌 태연한 기색이 엘프이신 건가

눈빛이 초롱초 내 확 어두워졌

같은 엘프라 하더라도 그녀는 '하

프 엘프'인 사실이 변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뭐, 숲만큼은 아니긴 해도 엘프끼 리 있으면 어느 정도 '공명'이 되잖 아. 안 느껴져?"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 음, 그럴 수도 있지. 중요 한 건 아니니까."

엘리사가 속으로 자신의 절반이 인간이라 그런 것 같다고 자책하려 는데, 에드문드가 먼저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그 생소한 반응에 엘리사가 고개 를 번쩍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 뭐가?"

"전…… 하프 엘프잖아요."

"그게 왜?"

" 네?"

둘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평 행선 같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엘프의 핏줄은 고귀하잖아요. 인 간 따위와 섞이면 안 되는……

"뭐? 너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 어? 인간들하고 같이 다니면서?"

에드문드가 화들짝 놀라자 엘리사

도 황급히 부정했다.

"아니요! 제가 생각하는 게 아니 라, 다른 순수 엘프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시잖아요!"

그 말에 에드문드가 헛웃음을 내 뱉었다.

"바깥 엘프들은 그런가 봐?"

"마계의 엘프는…… 안 그런가 요?"

"우린 혼혈이 이상한 일도 아닌걸. 애초에 다크 엘프는 '마족'의 하위 분류니까."

에드문드는 마족 안에서도 종종

다른 족끼리 뒤섞여 아이를 낳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아, 그러고 보니 마을에서 몇몇 꼰대 같은 양반들은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다들 듣는 시늉도 안 했걸랑."

"그럼......

엘리사의 얼굴에 희망이 깃들었다.

"그럼 저도 여기선 이상한 게 아 니겠네요?"

"바깥 엘프인 게 좀 특이하긴 하 지만. 아, 오히려 반이 인간인 게 독특한 점 아닌가? 나도 인간 혼혈 인 반인반마는 본 적이 없는데."

에드문드가 곰곰이 생각을 되짚으 며 대꾸했다.

엘리사가 잔뜩 기대에 부푼 표정 을 하자, 에드문드도 대충 사정을 눈치챘다.

이 바깥에서 꽤나 고충이 많았던 모양이지.

"난 에드문드. 넌?"

"저는 엘리사라고 해요. 하프 엘 프……구요."

그 말에 에드문드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뒤에 종족은 왜 붙여?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네? 그치만……

"여기 다른 녀석들이 그렇게 인사 하는 거 봤어? 그래, 테토 봤지! 테 토!"

"아, 네. 저흴 여기로 안내해주신 분이죠."

"걔가 자길 '테토'라고 소개하고 뒤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엘리사는 그 광경을 똑똑히 기억 하고 있었다. 쉽게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마왕님의 직속 하수인이라고요."

"그렇지. 너 그럼 테토가 무슨 종 족인지 알아?"

엘리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 테토도 고유의 종족이 있을 텐데, 그런 설명은 하나도 하지 않 았다.

"거봐. 알겠어? 여기서 그런 건 하 등 중요치 않다고. 힘밖에 모르는 무식한 놈들이긴 하지만. 그만큼 단 순하지."

"그, 그렇군요."

엘리사에겐 무척 낯선 방식이었다. 인간 세계나 엘프 세계나, 그곳에선엘리사의 이름 따위보다 '하프 엘 프'라는 종족이 훨씬 중요하게 여 겨졌기 때문이다.

"자. 그럼 다시 인사해봐. 네가 누 구라고?"

"저는 엘리사예요. 또……

뒤에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엘 리사는 알 수 없었다.

사형수? 하지만 제국에서 도망쳤 는걸.

에녹의 여동생? 이 사람이 그를 알기나 할까.

'대체 난 뭐지?'

엘리사는 불현듯,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을 소개할 방법이 전무하 다는 걸 깨달았다.

"뒷말은 천천히 생각해도 되고."

에드문드가 자연스럽게 생각의 고 리를 끊어냈다.

상념에 젖었던 엘리사가 현실로 돌아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무튼! 마침 잘됐네. 너희들의 대표자에게 전해줘야 할 말이 있거 든. 안내해 줄 수 있지?"

"네? 아, 네에……

엘리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에드문드와 잡다한 이야기들을 나 눴다.

그와 얘기하다 보니 잠시나마 자 신이 처한 현실을 잊을 수가 있었 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중앙 홀로 돌 아왔을 때, 잠시 싸늘한 정적이 그 녀를 반겼다.

"아까 봤던 그……

"다시 돌아왔네. 로브도 벗고 있

"귀가

주변에서 들끓는 수군거림에 엘리

사가 급격히 자신감을 잃으려는 찰 나.

에드문드가 엘리사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그 따스한 손길에 엘리사는 용기 를 잃지 않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 다.

* * *

다음 날 새벽, 에녹이 마왕성에 끌 려왔다.

그는 보초를 서던 마왕군들에게 발견되었고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 해 사지가 구속된 상태였다.

그는 질질 끌려와 무릎 꿇려졌다.

"에녹. 제국군이 따라 붙었다고 한 말은 전부 거짓이었습니까?"

올리버의 추궁에 에녹은 침묵으로 답했다. 그 속에 담긴 긍정을 모르 는 이는 없었다.

"무단으로 이탈한 죄를 그냥 넘어 갈 순 없습니다. 특히 지금 같은 위급 상황에서는요."

올리버가 으름장을 놓았다.

"모두 감내하겠습니다."

에녹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도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독단 적이었는지 잘 아는 까닭이었다.

"처분은 사정을 전부 듣고 난 다 음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체 어 딜 다녀온 겁니까?"

올리버의 물음에 에녹은 잠시 뜸 을 들였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엘 리사가 함께 들어도 되겠냐 물었다.

올리버의 허락하에 엘리사가 안으 로 들어왔다.

w 오빠..

엘리사가 와락 에녹에게 달려들었 다. 에녹은 엘리사를 마주 안아주고 싶었지만 손발이 묶인 탓에 그러지 못했다.

"엘리사. 네게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어 같이 불렀어."

"무슨 일인데 그래?"

엘리사는 딱딱하게 굳은 분위기에 살짝 몸을 움츠렸다.

"제가 다녀온 곳은 이 인근에 있 는 다크 엘프 마을이었습니다."

엘리사가 먼저 흠칫 놀랐다.

마침 어제, 귀가 잘린 다크 엘프

사내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바깥 에서 온 엘프긴 하지만 뿌리는 같 으니 그곳에서 함께할 순 없냐고 부탁드렸고 그 결과……

엘리사는 고갤 들어 에녹을 바라 봤다.

"허락을 받았습니다."

분명 기쁜 일이어야 하는데. 왜 기 쁘지가 않을까.

엘리사는 인간들 틈바구니에 있는 것을 못내 괴로워했는데 말이다.

"크게 실례인 것을 알지만. 애초부

터 저희는 혁명군 소속이라기보단 잠시 협력하는 관계 아니었습니까."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이들은 혁명군의 이념에 반해 들어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한서하가 알 수 없는 방법으 로 잠시 협조를 구했을 뿐이었다.

"그러니 가능하면…… 제 어린 동 생을 위해서라도 이제 한 곳에 정 착하여 일상을 누리고 싶습니다."

에녹이 엘리사의 머리카락을 부드 럽게 쓰다듬었다.

"다크 엘프는 그 성격이 일반 엘

프들과 많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괜 찮으시겠습니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겁니다. 훨씬 개방적인 분위기라 엘 리사도 어렵지 않게 녹아들 수 있 을 것 같습니다."

에녹은 이제야 가족끼리 지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한층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오래도록 꿈꿔왔던 생활이었 다.

그와 그의 동생을 배척하지 않는 곳에 오래도록 머무르며 삶의 터전 을 꾸려나가는 것 말이다.

엘리사도 분명 다르지 않았을 텐 데.

'이 느낌은 뭘까.'

엘리사는 속에서부터 치닫는 이상 한 감정을 깨닫고 있었다.

그건 치기 어린 반항심도, 막 찾게 된 보금자리를 향한 기대감도 아니 었다.

알 수 없는 찝찝함이 가슴속에 웅 어리 졌다.

"그런 이유라면…… 거짓을 고할 것 같진 않군요. 두 분께서 그렇게 하시는 게 마음 편하..

"싫어요."

엘리사가 저도 모르게 툭 내뱉었 다.

에녹의 시선이 엘리사에게 내리꽂 혔다.

"오빠. 난 거기 가고 싶지 않아."

"엘리사……. 걱정되는 것도 이해 해. 하지만 너도 가보면 이전에 지 냈던 곳들과는 다르단 걸 알 수 있 을 거야."

에녹은 그녀가 두려움 때문에 그 러는 줄 알고 다정하게 달래기 시 작했다.

하지만 엘리사는 더욱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 때문이 아니야. 나는……

엘리사는 이걸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서툴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도망치고 싶지 않아."

엘리사는 에드문드를 떠올렸다. 자 신의 종족이 무엇인지에 좌우되지 않는 그자를 말이다.

"그곳으로 가게 되면 또 '하프 엘 프'인 나 자신에게 갇히게 될 것

같아. 나는 이제 오빠의 동생이나, 하프 엘프 같은 수식어에서 벗어나 고 싶어."

여태까지 엘리사는 에녹의 보호 아래서 살아왔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뭐든 에녹이 구해다 줬고, 에녹이 엘리사를 가엾 게 여길수록 엘리사는 자기연민에 깊게 빠져들었다.

"이제 그 탑에서 벗어났잖아. 늘 방 안에 앉아서 오빠를 기다리기만 하고 싶진 않아."

"엘리사. 그런 건 그 마을에 가서 도 얼마든지……

"정말 그럴까?"

엘리사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 보며 물었다.

"나는 지금 최초로 '선택'을 한 거 야."

지금까지 그녀는 모든 것으로부터 쫓겨 왔다.

사람들의 시선, 핏줄에 대한 천대 로부터 쫓기듯이 도망쳐야만 했다.

탑에 들어가는 것도, 탑에서 나오 는 것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그녀의 대리인, 에녹이 결정했다.

그는 순수하게 자신의 여동생을 위해 한 행동들이었지만.

도리어 그것들이 엘리사를 '에녹의 여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만들고 있었다.

"당장은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지 만…… 적어도 이곳에서 머무르면 서 좀 더 고민하고 싶어."

엘리사의 진지한 눈빛에 에녹은 끝내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언제라도 마음이 바뀌 면 얘기해줘."

그렇게 엘리사가 도망칠 수 있는

작은 쥐구멍을 만들어주면서 말이 다.

"응! 고마워, 오빠!"

그들도 이제 막 한 걸음 나아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오빠, 누군가의 동생이 아닌 자신의 삶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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