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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06화 (315/361)

306화

테오도르가 개발한 '차원의 반지' 는 차원 이동 기계의 축소판 버전 과 다를 바 없었다.

사용자가 톨룩에서 지구로 넘어온 다는 점만 빼면.

이사벨라가 참전한다는 소식에 미 리 건네주었던 반지가 이렇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사벨라가 톨룩에서 완전히 '죽 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녀는 지구 로 옮겨진 것이다.

테오도르가 이사벨라에게 이것저 것 물었다.

"몸 상태는 좀 어떤가? 숫자는 셀 수 있나? 내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겠어?"

"4황자 저하를 뵙습니다."

이사벨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약식 으로 인사를 올렸다.

"아니. 그런 건 됐다."

테오도르가 그런 그녀를 말렸다.

"여기선 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니."

지구에서 그는 4황자 테오도르가 아니라 그냥 '테오도르'였으니까.

"그냥 테오도르라고 불러다오."

그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자 이사벨라는 잠시 멍했다가 이내 그 손을 받아들였다.

" 이사벨라예요."

그녀가 작게 덧붙인다.

"그냥, 이사벨라."

이사벨라는 어쩐지 벅차 보였다. 그러더니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려반짝반짝한 눈빛을 보내는 것이다.

"앞으로 제국도 이렇게 변하게 되 는 걸까? 제국이 변해가는 모습을 못 보는 게 아쉬울 지경인걸."

이런.

이사벨라는 혁명이 실패한 걸 모 르고 있었다.

내가 무사히 돌아온 데다, 그녀가 죽기 전쯤에 5황자밖에 남질 않았 으니…….

당연히 성공했다고 여기는 것 같 았다.

"내가 지구로 넘어올 수 있었던

건 다 이 반지 덕인 거지? 그럼 네 가 톨룩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나도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이사벨라가 내 손을 꼭 붙잡았다.

"날 다시 톨룩으로 보내줘. 아직 많이 혼란스러울 텐데. 나까지 없으 면 안 될 거야."

나는 차마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 다.

"물론 톨룩이 빨리 안정을 되찾게 해달라는 내 부탁이 뻔뻔하게 들리 겠지만. 적어도 내가 맡은 바는 마 무리 짓고 와야 하잖아. 그러니까 부디……."

" 이사벨라."

더 이상 그녀의 애원을 가만히 듣 고 있을 순 없었다.

"혁명은…… 실패했어."

내 말에 이사벨라가 눈을 깜빡, 감 았다 떴다.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 하는 표정이었다.

" 뭐?"

마침내 그녀가 의문을 내뱉었을 땐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다시 말해봐. 뭐라고?"

"혁명은 실패했어. 가호가 이변을 일으켰거든. 시간이 5분이나 남았 는데 갑자기 가호가 5황자를 선택 했어."

"그게 말이 돼? 거의 다 잡았었잖 아!"

그래. 총구를 머리에 들이밀고 있 었으니까.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방아쇠만 당기면 우리의 승리였는데.

"……내가 톨룩에 정을 떼게 하려 고 지금 거짓말하는 거지. 알겠어. 다시 돌아가겠다는 말 안 할게. 그 러니까 사실대로 얘기해줘."

이사벨라가 자꾸만 현실을 부정했 다.

".정말이야?"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툭 내 뱉는다.

이사벨라의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 졌다.

혁명 실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도 잘 알 터였다.

"다른 사람들은? 셀이나 올리버는 어쩌고 너 혼자 돌아온 거야!"

이사벨라가 내게 달려들어 채근했 다. 거의 내 멱살을 잡을 것처럼굴었다.

"둘은 무사해! 셀이 문을 열어서 대부분 도망쳤어. 마지막에…… 다 니엘이 남은 것만 빼면."

"……그 남자가?"

"나, 올리버 그리고 다니엘. 이렇 게 셋이 마지막에 남았는데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어. 올 리버가 넘어갔고, 난 지구로 돌아왔 지. 그리고 다니엘은 아마……

나는 뒷말을 흐렸다.

이사벨라도 생략된 내용이 뭔지 짐작한 듯했다.

" 아.

이사벨라는 작게 신음을 내더니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이사벨라!"

"정신 차리세요!"

기절한 이사벨라를 깨우느라 다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 * *

다니엘 블랙.

아니, 다니엘 로스.

그는 아수라장 속에 홀로 남아 자 신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사방에선 기사들이 몰려와 틀어막힌 문을 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주요 병력이 죄다 이 안에서 죽어 버린 탓에 안에서 문을 열어줄 이 가 없었다. 덕분에 그나마 시간을 벌었다.

나뒹구는 시체와 신음을 흘리는 부상자들 사이에서 다니엘은 가만 히 침묵하고 있었다.

아까의 난투 탓에 그도 온몸이 쑤 셨다. 근육의 피로가 급격히 몰려오면서 몸이 천근만큼 무거웠다.

"나도 곧 네 곁으로 가겠군……

다니엘은 이사벨라의 가짜 시신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붉은 머리칼은 짧게 잘려 있었지 만, 얼굴만큼은 으레 아는 그것이었 다.

늘 도도하던 얼굴이 하얗게 죽어 있는 것이 낯설 뿐이다.

다니엘은 근육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이사벨라의 눈 을 감겨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풀어 헤쳐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다가 홈 칫 놀랐다.

'......화상?'

원래 이사벨라에게 화상이 있었던 가?

난생처음 보는 자국에 놀란 것도 잠시.

그는 화상 자국 밑에 일부분 드러 나 있는 어떤 문양을 발견했다.

마치 그 문양을 지우기 위해 일부 러 화상을 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 문양은...

다니엘은 저도 모르게 손끝으로

그 문양을 덧그렸다.

모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이 문양을.

멸문당한 그날부터 시작해서 아주 오랜 시간 그의 심장에 새겨진 것 같은 문양이었는데.

몸을 씻을 때마다 보는 문양인데!

'로스 가문의 상징!'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왜 이사 벨라에게 이 문양이 있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이 문양의 위치가 아 주 절묘했다.

-귀 뒤쪽 목덜미에, 마치 귀걸이 를 한 것처럼 새겨져 있었으니까.

그가 내뱉었던 말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로젤리타.'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자신의 혈육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니.

이런 촌극이 또 있을까.

'바로 앞에 있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구나. 내가.'

아니. 의심은 했었다.

하지만 가장 신원을 확실히 할 수 있는 방법인 '문양'에 너무 매몰되 어 있었던 탓이다.

아니면 그 로젤리타가 백작부인으 로 나타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해 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로스 가문의 여식 이 평민들과 함께 어울리며 혁명 운동을 주도할 줄은 상상도 못 했 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유야 어쨌든 그가 이사벨라를 의심할 여지는 '붉은 머리카락' 하 나뿐이었고, 그 의혹을 부정할 수 있는 단서는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제야 알게 됐는데! 이제야 진정 으로 만났는데. 로젤리타도 죽었고, 곧 나도 죽겠구나……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그 불현듯 알아낸 깨달음이 얼마 나 잔혹한지.

다니엘은 이사벨라의 시신을 앞에 두고 넋을 놓고 말았다.

고개를 푹 숙인 그의 앞에 누군가 다가왔다.

"다니엘 경."

목소리가 귀에 익다. 그는 고개를 들 힘조차 남지 않았기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이대로 목이 떨어지겠군.'

황제는 죽었지만 5황자에게 죽을 줄이야. 예상치 못한 최후지만, 나 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엘이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을 기다리는데 시온이 이상한 말을 꺼 냈다.

"다니엘 경. 경은 무사했군. 정말 다행이야."

뭐?

그는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어 깨를 흠칫 떨었다.

마치... 시온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다니엘이 혁명군 소속이었다는 걸 말이다.

다니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온이 부드러운 손길로 그를 감싸 안았다.

"무뢰배들의 손에 너무 많은 이들 이 목숨을 잃었어. 세드릭까지시온이 작게 흐느꼈다.

그는 다니엘을 꼭 끌어안으며 작 게 중얼거렸다.

"내 아버지는 항상 비정한 분이셨 지. 그분께 내침 당했으니 자네의 심정은 또 어떻겠는가."

다니엘은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황제가 그를 '다니엘 로스' 라고 불렀을 때.

황제는 다니엘의 귓가에 대고 작 계 속삭였다.

그 정도 거리에서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 만한 이들은 기사나기사에 필적하게 몸을 단련한 3황 자 정도였는데…….

'기사들은 귀마개 아이템을 끼고 있었고 3황자는 죽었어.'

시온의 어깨 너머로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3황자의 시신이 보였다.

그래. 시온의 눈에 그건 갑작스러 운 변덕처럼 보였으리라.

황제가 갑자기 다니엘에게 무어라 속삭이더니 그를 공격하라 명한 것 뿐이었고.

그 직후 혁명군이 들이닥쳐 상황 이 엉망으로 흘러갔으니까.

다니엘이 그 혁명군과 협력 관계 라는 걸 그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분간해내긴 어려웠을 거다.

'아직…… 들키지 않았어!'

그 생각에 다니엘은 눈을 번쩍 떴 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에겐 삶의 의지가 없었으나 이젠 얘기가 달랐 다.

'로젤리타. 내가 너의 복수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아직 그에겐 남은 과업이 있었다.

자신의 혈육이 목숨을 바쳐서까지

성공시키고자 했던 그 일을 마무리 짓는 것.

그게 바로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 었다.

"황제 폐하께서 저를 저하께 보내 신 그 순간부터, 저는 이미 저하의 기사였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에도 없는 소릴 줄 줄 읊었다.

"제 주군은 오로지 저하이신데. 다 른 이의 내침이 제게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가 덜덜 떨리는 손발로 한쪽 무 릎을 바닥에 대고 앉았다.

"저하. 저는 여전히 저하의 기사입 니까?"

그 말에 시온이 주변을 나뒹구는 검을 역수로 쥐고 그에게 사사했다.

"이제 내 유일검이 자네일 것이 다."

세드릭이 없는 지금.

다니엘은 그의 가장 가까운 측근 이었다.

♦ * *

시온이 안개 속을 헤맬 때, 그는 가호에게 물었다.

"왜 나를 선택했지?"

그러자 휘이잉, 하는 바람 소리만 가득하던 곳에서 나지막한 목소리 가 울렸다.

바람 소리에 섞여 잘 들리진 않았 지만. 그곳엔 분명 시온 외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네가 가장 적임자였으니까.

" 내가?"

-그래.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 땅의 기억을 읽으면 알 수 있지.

목소리의 주인이 땅의 가호인 것 이 명백해졌다.

- 하지만 네겐 딱 두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두 개밖에 없단 말이야?"

- 하지만 아주 치명적이지.

쉭쉭, 바람 소리가 매섭게 귓가를 스쳤다.

- 하나는 야망이 없다는 것. 하지 만 누군가의 죽음이 네게 계기를 만들어줬으니 이제 문제될 게 없지.

세드릭의 죽음이 떠오르자, 시온은

침묵했다.

-나머지 하나는…… 영특하고 비 정한 것과 별개로, 능력을 감추고 홀로 지낸 시간이 너무긴 탓 에…….

시온은 지난 시간을 대부분 세드 릭과 단둘이 보내왔다.

그의 인생에 다른 인간관계는 거 의 존재하지 않았다.

- 눈치가 조금 없다는 거지.

"내가 눈치가 없다고?"

- 오해하지 말렴. 네가 영특하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하지만 인간을 대할 때 발휘되는 눈치 는 기본적으로 경험을 토대로 하거 든.

시온이 불퉁한 표정을 짓자 가호 는 작게 속삭였다.

- 그 점만 조심하거라……. 네 치 명적인 약점이 될 테니까.

"걱정 마. 난 원래 옆에 사람 잘 안 두거든."

그 의기양양한 말에 가호가 낄낄 거리며 웃었다.

- 어디 두고 보자꾸나…….

사르륵.

안개를 서서히 걷혀갔다.

가호가 그의 안에 전부 흡수된 것 이다.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개운한 느낌과 함께, 시온은 현실에 서 눈을 떴다.

그가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그의 충직한 기사 다니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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