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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05화 (314/361)

305화

"부상자 준비!"

올리버가 외치자 저마다 소리 높 여 대꾸한다.

"예!"

"알겠습니다!"

한 명씩 부상자를 들쳐 업자 이곳 저곳에서 앓는 소리가 울렸다.

상처 부위가 자극받으면서 극심한 통증이 더해진 탓이다.

"힘들겠지만 최대한 참아보게!"

" 크으으윽……

준비가 대충 끝났을 때쯤 올리버 가 셀에게 손짓했다.

셀은 호흡을 가다듬더니 허리춤에 서 붓을 꺼내 허공에 문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번 다녀온 곳은 문으로 연결할 수 있으니, 도망치는 건 진입할 때 보다 훨씬 수월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부족한 마력

이다.

'안색이 창백하고, 번개 맞은 것 같은 자국이 뺨까지 올라오고 있 어.'

전형적인 마력통로 과부하 현상이 다.

나뭇가지처럼 이리저리 얽혀있는 문양이 뺨과 손등에서 나타났다. 이 미 마력을 운용하는 것만으로도 극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부상자부터 옮긴다!"

문을 넘어가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셀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부상자들을 다 옮기자 올리버가 운신하기 어려운 순서대로 혁명군 들을 넘겨 보냈다.

가장 먼저 마력이 얼마 안 남은 셀을 문 너머로 보냈고, 잔뜩 지쳐 있는 여러 혁명군들도 그 대상이었 다.

나는 힐끗 5황자 쪽을 살폈다가 급박하게 외쳤다.

"5황자가 곧 깨어날 겁니다. 서두 르세요!"

그를 둘러싸고 있는 희뿌연 연기 가 거의 다 흡수되고 얼마 남지 않 았다.

곧 그가 깨어나리란 신호였다.

"당황하지 마라! 충분히 다 넘어갈 수 있어!"

올리버가 그렇게 사람들을 안심시 켰지만,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문을 넘기 전 셀이 곧 죽을 것처 럼 헐떡거리고 있었으니까.

살아남은 혁명군들이 모두 넘어가 고 남은 건 단 3명뿐이었다.

지휘하던 올리버와, 공간 간섭 능 력이 있는 나. 그리고 황제의 시신 에 분풀이를 하던 다니엘.

셀이 그린 문이 반쯤 흐릿해졌다.

정말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셀. 남은 마력은?"

"딱…… 한 명 더요."

셀이 문 너머에서 작게 신음했다.

남은 3명끼리 눈을 마주쳤다.

'여기 남는다는 건, 곧 죽는다는 얘기.'

셀 없이 이곳을 탈출할 경로가 있 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셋 중 나갈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이다.

올리버가 결연하게 선언했다.

"제가 여기 남겠습니다."

즉각 내가 반발했다.

"지휘관이 빠질 순 없어요."

"이번 패배는 제 잘못이기도 합니 다."

올리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책임을 져 제가 여기 남는 게 맞습니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 혁명 군에겐 지휘관이 없어선 안 됩니다. 이사벨라도...... 그렇게 된 와중에, 구심점 없이 혁명군이 어떻게 움직 인단 말이에요."

내 말을 부정할 순 없는지 올리버 가 고개를 푹 숙였다.

책임을 지고 싶은 그 심정은 알겠 지만 현실적으로 이 셋 중 혁명군 에 가장 필요한 건 올리버였다.

우선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얘길 꺼냈다.

"저는 이 길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애초에 이번 일이 끝나면 돌아갈 생각이었고요."

멀쩡히 살아서 돌아가니 이 정도 면 임무 성공이라 할 수 있겠다.

남은 건 둘. 다니엘과 올리버였다.

'무력적으로는 다니엘이 우위지만, 혁명군을 생각하면 올리버가 더 나 아. 하지만 이 시점에서 혁명군이 더 의미가 있을까?'

혁명군의 효용은 이 체제를 전복 했을 때 야기될 여러 가지 혼란들 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미 체제전복이 실패한 이상 혁 명군의 존속에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적어도 지구의 입장에선 그랬다.

그렇기에 사실 내겐 둘 중 누가 살아남는다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 었다.

다니엘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남지."

그건 꽤나 의외였다.

귀족적인 마인드가 뿌리째 박혀있 는 그가, 평민들이 대부분인 혁명군 을 위해 자리를 양보할 줄은 몰랐 기 때문이다.

분명 평민 여럿보다 귀족 하나의 목숨이 더 귀하다 여기고 있을 텐 데?

그런 내 의문을 읽기라도 한 듯 다니엘이 뒷말을 덧붙였다.

"난 원하는 것을 다 이뤘다."

다니엘이 툭, 바닥을 나뒹구는 황 제의 시신을 발로 건드렸다.

"이 이상 미련은 없군.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양보가 아니라, 삶의 목표를 잃어 버린 거였다.

다니엘의 눈빛이 텅 비어있었다.

가문이 멸문당한 그 순간부터 그 는 이 순간을 위해 살아왔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황제가 죽자, 그는 끈이 떨어진 마리오네트처럼 힘없 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내 미래가 살짝 엿보

였다고 하면 조금 서글플까.

그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주고 싶 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때가 아니었 다.

" O O 으." ' -. ,- 丁□..

5황자가 정말 곧 깨어날 것처럼 신음을 흘렸다.

그가 깨어나 이 문 너머를 약간이 라도 목격하면 혁명군의 덜미가 잡 히는 데 일조할지도 몰랐다.

"올리버 씨. 넘어가시죠."

"그럴 순 없습니다. 제가 남……! 잠깐만요!"

덥석, 나는 올리버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올리버가 저항하려고 내 팔을 꽉 쥐었지만 나를 막아서기엔 역부족 이었다.

휙!

그를 저 너머로 던져버리자 자동 으로 문이 사르르 녹아내리기 시작 했다.

"잠깐! 이사벨라 누님은? 누님은 어떻게 된……!"

셀이 다급하게 물었지만 대꾸하기 도 전에 문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이사벨라 얘긴 나중에 해줘야겠는 걸.

"저도 이만 가보죠."

"난 성공했는데, 넌 실패했군."

말을 참 얄밉게 한다.

나는 손끝부터 서서히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지구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게다가…… 늘 자신만만하던 그 여자도 죽어버렸고."

아닌 척해도 다니엘 역시 이사벨 라의 죽음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그에게 무언가 말을 해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미 나는 내게 주 어진 반지 3개를 전부 써버렸다.

여기서 그에게 뭔가 더 말해봤자 기만일 뿐이겠지.

대신 나는 화제를 돌리는 걸 택했 다.

"남의 죽음에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요."

황궁 한가운데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고, 그는 이곳에 고립될 예정이었 으니까.

당장은 급하게 외벽을 막아놨지만

곧 기사들이 몰려들면 그것도 무의 미해질 텐데.

그럼 다니엘은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이곳에 남겠다는 선택지 자체가 그의 죽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말하지 않았나. 원하는 건 다 이 뤘다고."

그러더니 이내 하늘을 바라본다.

"아니지. 딱 한 가지 남은 짐이 있 군. 끝내 누님은 찾지 못한 것 말 이야."

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에게 이사벨라가 그의 혈육이란 걸 말해줄까, 하다가 곧 죽을 이에 게 너무 가혹한 처사인 것 같아 말 을 아꼈다.

이제 와서 아는 것보단 영원히 모 르는 게 나을 것이다.

그와 이사벨라의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저 막연히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게끔 두는 게 나을지 도 모른다.

"어쩌면 과한 부탁일지도 모르겠 지만……

그가 내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말을 꺼냈다.

"이 펜던트를 맡아줄 수 있겠나."

나는 말없이 그의 펜던트를 받아 들었다.

나와 거래를 하면서까지 찾아냈던 그 펜던트를 그가 스스로 목에서 빼내, 내게 건넨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 쩐지 너라면 언젠가 누님도 찾아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둣 스스로 픽 웃었다.

"아주 만약에. 누님을 만나게 된다 면..

그가 덧없는 미래를 그리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 펜던트를 전해줬으면 해. 부탁 한다. 한서하."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다음 순간 눈을 감았다 뜨자, 나는 테오 도르의 연구실에 있었다.

"퉤!"

그 이상한 점액질을 토해내면서 말이다.

* * *

"한서하! 돌아왔군!"

테오도르가 화들짝 놀라 내게 달 려왔다. 그는 불빛을 내 동공에 비 추며 이것저것 질문했다.

"정신은 좀 어떤가? 오늘이 며칠 인지 말할 수 있겠나? 아니지. 모 르는 게 맞겠군. 그럼 숫자를 10부 터 1까지 천천히 세어보게!"

"10, 9, 8, 7, 6……. 아니, 이건 왜 시키는 거야?"

나도 모르게 시키는 대로 하고 있

었다. 그가 하도 진지한 얼굴을 하 고 있길래 휩쓸리고 말았다.

"다행히 머리는 멀쩡한 모양이야!"

철벅.

나는 점액질 수조에서 천천히 일 어났다.

"죽음의 요람이라 했나. 잘못 먹으 면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맛없긴 하네."

저 수조에 누우면 코, 입, 귀를 가 리지 않고 점액질이 안으로 밀려들 어 오는데, 특히 입 안으로 들어가 는 게 문제다.

세상에 이런 맛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악이다.

"사용자 편의를 위해 그 부분을 개선해보도록 하지."

테오도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 에 뭔가를 끄적였다.

"아, 그렇지. 방금 도착한 손님이 있던데."

"상태는 어때 보여?"

"방금 막 깨어나서 준이에게 설명 을 듣고 있다."

다행히 부작용은 없는 것 같다.

"처음에 정신 착란 증세를 약간

보이길래 혹시나 너도 그럴까 봐 걱정했다. 아니라서 다행이구나."

"다행이 아니잖아. 지금은 괜찮은 거 맞아?"

"물론이지."

테오도르의 '괜찮다'의 범주는 어 느 정도 정상일까?

사지만 멀쩡히 붙어있으면 괜찮다 고 말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내가 직접 봐야겠어. 어디 있어?"

"바로 이 옆 방이다."

"옆방도 있어?"

"새로 만들었지!"

그가 의기양양하게 대꾸한다.

대체 이 지하실은 어디까지 넓어 지려는 건지.

이거 불법중축은 아닌가. 돈은 대 체 어디서 나는 건가. 그런 생각들 이 들었지만 일단 입을 다물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테오도르의 안내에 따라 옆 방으로 향했다.

벌컥.

문을 열자 가장 먼저 차준이 누군 가에게 뭔가를 길게 설명하고 있는게 보였다.

"그러니 여기 대한민국의 헌법 제 1조 1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 오셨어요, 헌터 님!"

그가 내게 아는 체를 해왔다.

차준도 한 달 만에 보는 거니 반 가운 얼굴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 한 용건이 있었다.

차준의 옆자리에 앉아 그에게 설 명을 듣고 있던 이가, 내게 아주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강렬한 붉은 머리카락.

이제는 단발이지만 그 상징성은 여전했다.

"이거 놀랍네."

그녀가 날 보며 웃었다.

"정말로 이런 세계가 실존할 줄이 야. 목숨을 걸어가면서 이루려고 했 던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인걸."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손가락엔 내가 건네줬던 반지가 끼워져있었 다.

"멀쩡한 모양이네."

태연한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 게 허탈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 이사벨라."

모두가 전투 중 세드릭의 칼에 맞 아 사망한 줄로 알았던 사람.

혁명군의 수장, 이사벨라 비욘드.

그녀가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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