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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01화 (310/361)

301 화

챕터: 혁명의 깃발

1황녀 샬럿의 생일이자, 황실 전체 가 떠들썩하게 움직일 날이 찾아왔 다.

기사단은 꼭두새벽부터 자신의 자 리를 지키며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카를로스도 집무실에서 서류 정리 를 하다가 잠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황태자 즉위식 날의 아침이 밝았 다.

5황자, 시온은 느릿느릿 숟가락을 들었다. 도무지 입맛이 돌질 않았 다.

세드릭이 서둘러야 한다고 재촉해 왔지만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시온은 저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 렸다.

분명 처음 시작은, 형편없는 지휘 관이란 걸 보여주고 싶어서 좀 과 격하게 장난질을 쳤던 것부터였다.

실제로 하극상이 일어나 탈영병들 이 그들의 전지를 덮쳤으니. 그야말 로 대성공이었다.

이대로 쓸모없는 황자로 인식되나 싶었는데 갑자기 공적이 생겨버렸 다.

황제와 그의 측근인 책사는 시온 에게서 알 수 없는 가능성을 본 모 양이었다.

그 외에도 시온이 뭔가 일을 망치 려고 하면 도리어 일이 잘 풀리고, 적들은 시시할 정도로 금방 쓰러지 고, 또 가만히 있어도 남의 공적이 자신의 것으로 바뀌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었단 말이 다.

그런 여파들이 흐르고 흘러 황태 자 후보에까지 오르더니 이젠 황태 자 즉위식에 참석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있나……?"

정말 의아할 따름이다.

옆에서 세드릭과 다니엘이 그를 호위하면서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 고 있었다.

"저하. 이만 일어나시죠."

시온이 굼벵이 기어가듯 식사하는 걸 보고 결국 다니엘이 식사를 끊 어 냈다.

더 이상 지체하면 정말 즉위식에 지각할지도 몰랐다.

숙련된 도우미들의 손길 아래 시 온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서제법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가시죠."

좌 세드릭, 우 다니엘을 거느리니 그야말로 두려울 것이 없었다.

가는 길에 3황자, 빈센트와 마주치 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내 친애하는 동생아."

빈센트가 가식적인 미소를 날렸다.

"마침 가는 길이 같구나. 잠시 함 께 걷겠느냐?"

"예, 형님. 그러시죠."

빈센트는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아 다리 한쪽이 성치 않았다.

조금 절뚝거리는 그의 보폭에 맞 춰 걸으면서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오늘이 즉위식이라니 정말 실감 이 나질 않는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대체 어떤 시험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이 많다."

"형님께선 어떤 시험이 나와도 잘 이겨내실 겁니다."

그런 형식적인 이야기들이 오가다 가 빈센트가 다소 민감한 주제를꺼냈다.

"내 독살 미수 사건 피의자로 네 가 기소됐었단 얘긴 들었다."

그 저의를 알 수 없어 시온이 멈 칫하자, 빈센트가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현명하게 오해를 잘 풀었 다지. 잘했다. 나도 네가 그랬을 거 라 생각하진 않는다."

"제가 어찌 형님께 그런 짓을 하 겠습니까."

"그럼.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너 같은 반편이가 무슨 재주로 내 함정을 피해갔나 싶기도 하구나."

"예, 저 같은 반편이가……. 네?"

시온은 넋을 놓고 대충 반응하다 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빈센트가 아주 부드러운 어조로 말해서 자칫하면 그것마저 칭찬인 줄 알 뻔했다.

"세드릭 경이나 다니엘 경이 널 도와주더냐."

"형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저는 잘……

"이제 보니 시치미 떼는 것도 일 품이군."

말에 뼈가 한가득이었다.

잔뜩 비꼬는 말에 시온은 잠시 입 을 다물었다.

"그때 그 하녀가 찾아와 건네는 단서가 아주 먹음직스러웠을 텐데. 궁금하구나, 네가 정말 몰라서 거절 한 건지 아니면 눈치를 채고 내친 건지."

"그 하녀라고 하면……. 저는 그 저, 형님과 저 사이를 이간질하는 작자의 짓이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빈센트는 시온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픽 웃었다.

"그랬겠지."

퍽이나 그랬겠다는 비꼼이었다.

"네가 그냥 먹을 거나 축내는 머 저리인 줄 알았는데. 순진한 척 남 을 안심시켜놓고 뒤통수치는 재주 가 있구나."

" 예?"

"나는 이쪽으로 가마. 들러야 할 곳이 있어서. 이따 즉위관에서 보자 꾸나."

"예? 아, 예. 형님……

시온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빈센트는 생글 웃으며 다른 길로 빠졌다.

길을 가다가 느닷없이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시온은 잠시 멍하 니 빈센트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황족들과 나란히 걸을 수 없으니 뒤에서 따라 걷던 다니엘과 세드릭 이 시온을 달랬다.

"3황자 저하께서 성격이 온전치 못하다는 건 익히 아시던 일 아닙 니까. 그냥 그러려니 넘기십시오."

세드릭도 만만치 않게 말에 뼈가 있었다.

그렇게 즉위관을 향해 걷던 도중 이번엔 1황녀, 샬럿과 마주했다.

샬럿이 먼저 손위 형제에게 공손 히 인사를 올렸다.

"5황자 저하를 뵙습니다."

"편하게 해도 된다니까."

"즉위관으로 가는 길이신가요?"

샬럿이 자연스럽게 동행했다.

즉위관에 도착하면 경쟁자가 될 사이인데 이렇게 마주치니 어색하 기 그지없었다.

"저번 재판은 인상 깊게 봤습니 다."

"너도 방청했나 보구나."

"예. 오라버니의 일이니 참석해야 죠."

마치 당연한 황족의 의무라는 듯 얘기한다.

물론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지 만. 이곳 황궁에서 그런 사사로운 법도를 철저하게 지키는 이는 아마 샬럿뿐일 것이다.

"저도 평민 출신 기사를 하나 옆 에 두어야 하나 고민했답니다. 죄를 지었으면 그보다 큰 실책이 없지만, 누명을 쓸 경우엔 그보다 좋은 방 어책도 없더군요."

"하하……. 운이 좋았지."

샬럿은 다니엘을 옆에 둔 것부터 가 시온의 묘수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 같았다.

시온은 그런 샬럿의 기대를 깨고 싶지 않아 어색하게 웃었다.

"즉위관에 들어가면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겠죠. 기대가 됩니다."

"위험한 것만 아니면 좋겠는 데……

"선대 황제 폐하들을 되짚어볼 때 어떤 시험이 나올지 종잡기 어려우 니 완전히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 겠죠."

그러면서 샬럿은 역대 황제들의 이름을 줄줄 읊었다.

누구는 무예가 뛰어났고, 누구는 지식이 뛰어났고, 누구는 예술성이 가장 뛰어났다면서 말이다.

"기준을 알 수 없으니 두루 준비 할 수밖에요."

"무예도?"

"부족한 실력이지만 가볍게 검을 다루는 법은 배웠습니다. 호신술도 겸해서요."

"처음 듣는데."

"대외적으론 비밀로 했으니까요."

샬럿은 그야말로 준비된 황제 같 았다.

시온은 그런 샬럿을 보며 한 번 더 감탄했다.

"그럼 안에서 뵙지요."

샬럿이 인사를 건네고 다른 방향 으로 총총 걸어갔다.

각각의 후보자들에게 배정된 대기 실이 달랐던 탓이다.

"후우. 제발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 네."

시온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

* * *

황태자 즉위식의 시작은 황제가 선언문을 읊는 것이다.

그리고 각 후보자들이 차례로 입 장한 뒤,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여 러 가지 예식을 치른다.

톡.

성수로 손을 적신 카를로스가 시 온의 이마를 짚었다.

차가운 기운과 함께 긴장감 때문 에 쌓였던 피로가 사르르 녹는다.

이것 역시 준비된 예식 중 하나였 다.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길게 늘어지는 예식에 점점 지루 함을 느낄 즈음 카를로스가 마침내 예식 순서가 적힌 책을 덮었다.

탁.

"후보자와 최소한의 기사들을 제 외하면 모두 퇴장하도록. 이제부터 는 후보자들의 자질을 시험하도록 할 것이다."

드디어 때가 다가왔다.

시온은 대체 어떤 시험을 통과해

야 할지 알 수 없어 덜덜 떨었다.

빈센트도 흥분감에 젖어 있었고 샬럿도 미약하지만 볼이 상기되어 있었다.

오늘 이 셋의 운명이 모두 결정되 는 것이었다.

귀족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커다란 즉위관에 몇 안 되는 인원들만 남 았다.

"봉쇄하라."

쿵! 쿵! 쿵! 쿵!

카를로스가 명하자 사방으로 뚫려 있던 문이 거센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냥 나무문을 닫는 수준이 아니 었다.

두터운 철문이 위에서 아래로 내 려와 안과 밖을 철저하게 분리한다.

생각보다 살벌한 분위기에 시온은 꼴깍 침을 삼켰다.

"지금부터 여기서 일어난 일은 모 두 1급 기밀이다. 혹여나 밖에서 세 치 혀를 놀린다면 그 혀를 뽑고 일가족이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니 명심하도록."

살벌한 협박에 기사들이 모두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 말에 따르겠다는 뜻이었다.

"그럼…… 빈센트, 시온, 샬럿. 너 희들에게 황태자 시험을 치르는 방 식에 대해 설명해주겠다."

두근, 두근, 두근.

대체 어떤 시험일까?

빈센트와 샬럿은 수백, 수천 가지 의 시험을 상상하며 각각의 대처법 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만약의 경우 순발력을 테 스트하는 시험일 것을 대비해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얼마든지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카를로스의 말이 마치 저속 재생한 것처럼 들 렸다.

"황제에게 필요한 덕목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빈센트, 너처럼 무예 를 단련할 수도 있고. 샬럿,너처럼 지혜를 갈고닦을 수도 있겠지. 또 시온 너처럼……

카를로스는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는 아직까지도 시온이 진짜 멍 청이인지 멍청이 흉내를 내는 소름 끼치는 천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할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어느 한 가지가 특출하다고 황제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 요한 것은 따로 있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고요한 정적이 흘 렀다.

"바로 이 땅의 주인으로 선택받는 것이다."

"……죄송하지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샬럿이 모범생처럼 물었다.

"이 땅에 오염이 도사리게 된 이

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샬멋."

"그야…… 원인 불명의 자연현상 아닌가요?"

"그렇게 알려져 있지. 하지만 그건 틀렸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과 결과 가 있기 마련이니까."

마치 세상의 비밀을 엿듣는 것과 같았다.

오염의 비밀이라니.

대체 그 원인이 무엇이길래 이토 록 극심해질 때까지 해결하지 못했 을까?

"그 얘길 하려면 우선 '가호'에 대

해서 설명해야겠군. '황제는 신께서 선택한 인물이라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썼지만 인간이 아니다. 그래 서 죽이려 해도 죽일 수 없다'…… 이 이야기는 다들 제왕학 수업 때 들었겠지."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 문구에 대한 보충 설명은 언제 나 똑같았다.

"황권을 드높이기 위해 만든 일종 의 선전문구 아니었습니까?"

"아니다. 반쯤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역대 황제 중엔 타살로 사망한 분들도 계시는데요."

샬럿의 물음에 카를로스가 태연하 게 대꾸했다.

"왜냐하면 황태자 즉위식 때 이 '땅의 가호'를 황태자에게 물려주기 때문이다."

그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극소수의 고위 귀족들과 황족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다니엘이 그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한때는 그 역시 그 '고위 귀족'에 속하는 이였으니까.

카를로스는 놀란 이들이 무어라

더 말을 꺼내기 전에 뒷말을 이었 다.

"황제가 가진 '땅의 가호'는 황태 자에게 전승된다. 그러니 이 황태자 즉위식은…… 너희 중 누가 땅의 가호의 선택을 받느냐, 그게 관건이 란 말이다."

"폐하. 그럼 대체 그 '땅의 가호' 와 오염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단 말씀이십니까?"

빈센트가 빈틈을 놓치지 않고 물 었다.

"그래. 여기부터가 진정 너희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카를로스만이 알고 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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