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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00화 (309/361)

300화

나는 에녹에게 간단한 설명을 곁 들였다.

즉위식 때 혁명이 일어날 거고, 그 때 황족들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우 고 있다고.

그러니 에녹이 협력하면 성공 가 능성이 훨씬 높아질 거라고 말이다.

"네게 나쁠 거 없는 조건이야. 네 가 협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즉위 식 때 혁명이 일어나는 건 필연적 이거든."

그가 협조를 하건 안 하건 계획은 실행될 예정이었다.

'물론…… 계획을 다 들은 이상 협 조하지 않겠다고 하면 이대로 얌전 히 돌려 보내줄 순 없지만.'

창을 들지 않은 창지기를 상대하 는 것만큼 쉬운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네가 협조하지 않으면 혁 명이 성공했을 때 넌 황제 직속 기 사이니 그대로 즉결처분될 가능성

이 높겠지."

"혁명이 실패하면?"

"실패할 것 같으면 넌 황제만 노 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슥 긋 는 시늉을 했다.

"황제만 없어지면 엘리사는 자유 의 몸이 되겠지."

에녹은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엘리사가 머무는 쪽 방 문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게 돌렸 다.

"단 하루라도 좋아."

절절하게 애원하는 투였다.

"엘리사가 하루라도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좋아. 그럼 얘기는 대충 다 끝났 다.

"그럼 우리 이제 한 팀인가?"

내가 슬쩍 묻자, 그는 침묵하다 고 개를 끄덕였다.

"널 믿을게."

"부담되는데."

"네가 허튼짓에 시간을 쏟을 것

같진 않으니 말이다."

뭐,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에녹은 협력하는 게 무조건 이득인 셈이다.

혁명이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개국공신 대접을 받을 것이고, 실패 한다 해도 혁명 과정 중에 황제만 죽일 수 있다면 엘리사는 자유가 될 테니까.

물론 둘은 서로를 끔찍이 아끼니 엘리사가 과연 그렇게 얻은 자유를 원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가볍게 손을 맞잡았다.

벨제부브에 이어 에녹도 나와 같 은 편에 서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 다.

'늘 미친 듯이 싸우기만 할 줄 알 았는데.'

그와 내가 무기를 들지 않고 차분 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부터 신기한 일이었다.

참, 그렇지.

나는 품에서 반지를 하나 꺼냈다.

챙겨온 세 개의 반지 중 두 번째 였다.

"즉위식 때 이걸 끼고 있는 게 좋

을 거야."

"무슨 반지지?"

"나중에 때가 되면 알게 될걸."

내가 대답을 피하자 에녹은 의아 한 듯 날 바라봤다.

하지만 섣불리 입을 열었다가 곤 란해질 수 있으니 말을 아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이어서 하 자고. 즉위식 이틀 전날, 엘리사의 방에서 만나기로 할까. 그때 더 자 세한 지침을 알려줄게."

그렇게 나는 든든한 아군을 하나 더 포섭했다.

올리버의 수고를 한충 덜어준 셈 이었다.

올리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 었다.

"……그 요정기사 에녹 클라우드 가요?"

요정기사라고 하니 낯간지럽기 그 지없다. 대체 누가 지은 별명이람.

"그래. 협력하겠다고 했어."

"혹시 정신계 마법이라도 쓸 줄 아는 거 아닙니까?"

"그랬으면 좋겠네."

그럼 황족들도 단번에 죽일 수 있 으니 일이 훨씬 수월해질 텐데.

올리버는 연신 말도 안 된다는 듯 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다니엘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가 또 머리를 부여잡고 그 게 말이 되냐며 중얼거린다.

"내 말 믿고 에녹 포함해서 계획 을 짜줘. 혹시 모르니 플랜B로 에 녹이 배신했을 경우도 상정해주고."

"알겠습니다."

내 말에 결국 올리버도 수긍했다.

그때 저벅저벅, 이사벨라가 걸어 들어왔다.

"올리버."

'왜 이 시간에 그녀가 여기에?'라 는 의문이 생기기도 전에 이사벨라 가 올리버의 앞에 서류 뭉치를 쾅! 하고 내려쳤다.

"설명해봐."

"뭘 말입니까?"

"왜 이번 작전에 내가 배제됐는 지."

서류 작업을 하다 따질 게 있어서 곧장 비욘드까지 온 모양이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번 작 전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은 최소 한의 전투가 가능한 이들이어야 합 니다. 그 외는 진입하는 과정 중에 인명 피해만 늘어날 겁니다."

"나도 이곳 비욘드 출신이야. 내 활 솜씨를 보여줘야 하나?"

이사벨라는 당장이라도 활을 들어 올리버를 쏴버릴 것처럼 굴었다.

자신이 무시당했다 생각해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았다.

"혁명의 상징성도 고려했을 때 귀 족으로 추정될 수 있는 이들은 배 제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을 뿐 입니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 니다."

올리버가 결국 사과의 말을 건넸 다.

이번 혁명은 '평등사회'를 표방한 것이니 특권계층인 귀족보다 평민 들을 중심으로 할 때 더 시너지가 극대화될 것이다.

'귀족'이 황족을 쓰러뜨렸다고 알 려지면 평민들은 자기들끼리 권력 다툼을 한 모양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니까.

올리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번 혁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 도한 건 나였어. 그런데 제일 중요 한 마지막 작전에서 날 빼겠다고?"

이사벨라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차라리 거기서 너희랑 같이 죽으 면 죽었지, 비겁하게 혼자 안전하게 뒤로 빠지는 짓은 못 해."

그녀의 거센 반발에 올리버도 가 만있지 않았다.

"고집부리지 마십시오. 혹여나 이 번 작전이 실패하면 다음 기회를

노리기 위해서라도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이사벨라 님은 뒤로 물러나 계셔야 합니다."

"나한테 이 다음은 없어!"

이사벨라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소리쳤다.

"이번에 실패하면 다음 기회는 또 언제 돌아올 것 같은데. 다음 황태 자 즉위식? 그때까지 톨룩이 오염 으로부터 살아남는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래. 이들에겐 시간이 없었다.

"그것 때문에 지구와 전쟁 중인 것 아닙니까."

"지구의 자원은 무한한 줄 알아? 톨룩의 주민 모두가 그곳으로 넘어 갈 수 있는 건 아니야. 맨 처음엔 귀족들이, 그 다음엔 부유한 평민이 넘어가겠지."

이 얘기는 처음 듣는다.

나야 톨룩의 침입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니, 지구가 점령당한 뒤 톨룩 의 주민들이 어떻게 지구에 뿌리내 릴지는 예상해본 적이 없었다.

톨룩 내부에선 저렇게 결론이 내 려졌던 모양이지.

"그게 무슨 말이냐면, 여기서 이렇 게 몰래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땅에 버려지게 된단 소리야."

오염으로 뒤덮인 대륙에서 괴롭게 죽어가겠지.

그 말에 올리버도 놀란 얼굴을 했 다. 그마저도 그런 상황은 가정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알겠어? 우리한테 이 다음은 없 어. 그러니 나도 이 작전에 참여해 야겠어. 얼굴을 가리면 나인 줄도 모르겠지."

"하지만 이사벨라 님. 그렇다 하더 라도....

올리버가 무어라 더 항변하려고 했지만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사벨라가 자신의 탐스러운 붉은 머리칼을 한 손으로 쥐고, 다른 한 손으론 옆에 놓여 있던 검을 들었 다.

바로 옆이 연무장이라 자연스럽게 놓여있던 것이었다.

.....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서걱.

"자. 됐지? 이러고 두건을 뒤집어 쓰면 아무도 나인 줄 모를 거야."

장미꽃잎처럼 탐스러운 머리칼이 단칼에 잘려나갔다.

이사벨라의 상징이자, 귀족 여성의 상징이기도 한 긴 머리칼이 말이다.

삐뚤빼뚤 단발로 잘라낸 머리카락 에, 이사벨라는 어디 더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듯 웃어 보였다.

올리버는 결국 항복 의사를 표했 다.

"……제가 졌습니다."

"두건으로 머리카락을 가리고 얼 굴엔 진흙을 바를게. 맨 뒤에서 활 만 쏠 수 있으면 됐어."

"알겠습니다."

이사벨라는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 가면 성 안의 하녀들이 놀라지 않겠어?"

내가 묻자 이사벨라는 괜찮다고 대꾸했다.

"곧 남편의 기일이라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해뒀어."

그것 참 살벌한 핑계다.

"식사만 문 앞에 가져다 놓을 테 고, 누구도 들어오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뒀으니 괜찮을 거야."

그래서 그녀가 대낮에 비욘드까지 올 수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원하는 것을 얻어내서 기분

이 좋은지 이사벨라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서툰 칼질로 베어낸 탓에 머리카 락이 죄 엉망이었다.

머리 끄트머리를 매만지다가 툭 내뱉었다.

"머리 다듬어줄게. 따라와."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잘하는 건 아니고 시늉만."

좌우 대칭을 맞춰 잘 자르는 정도 로 시늉은 낼 줄 알았다.

어차피 멋을 내려는 건 아니고 남 들이 보기에 이상함이 없을 정도면되니까, 좀 서툴러도 괜찮을 거다.

사각사각. 사각.

근처에서 구해온 가위로 머리끝을 조금씩 다듬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게 무슨 일이냐며 부산을 떨었다. 그때 마다 이사벨라는 생긋 웃어넘길 뿐 이었다.

사각, 사각.

"손재주가 좋네."

"예전엔 내 머리를 직접 자르기도 했었거든."

고작해야 16살에 혼자 나와 살면 서 돈에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미용실에 갈 돈이 없어 주방 가위 로 혼자 머리끝을 다듬곤 했었다.

"지금까지 잊고 있었는데. 서하는 지구에서 왔잖아."

"그렇지."

"이번 혁명이 끝나면 다신 못 보 려나."

이사벨라도 아까 올리버와 다투면 서 지구에 관한 얘기를 한 게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지구 출신을 눈앞에 두고 지구를 점령하면 어떻게 될지 운운하는 게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긴 하지.

"혁명이 일어난다고 오염이 사라 지는 건 아니니까."

"맨 처음에 만났을 때도 했던 얘 기 같은데..

-너랑 손잡으면 우린 전부 개죽음 일 텐데?

-죽더라도 천한 죽음이 아니어야 죠. 모두 공평한 목숨 아닙니까.

그때 이사벨라는 죽을 때 죽더라 도 제국 놈들이 잘되는 걸 볼 순 없다는 생각에 내 손을 잡았었다.

"그래. 혁명이 끝나면, 그냥 죽을 작정이었지."

오염에 좀 먹혀 죽는 게 비천한 죽음보다 낫다 생각했으리라.

"그런데…… 갈수록 이 사람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졌 어."

사각, 사각.

이사벨라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

는지 나도 말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말이기도 했다.

"혁명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난*. 가"두_."

"됐어."

이사벨라의 말을 중도에 끊어냈다.

"혁명이 끝났을 때 얘기잖아."

"……그렇지."

이사벨라를 탓하고 싶진 않았다.

나 역시 비욘드 사람들과 친해지 면서, 이들과 척져야 한다는 사실에 종종 속을 썩이곤 했으니까.

결국 그들은 톨룩에 속해있고 나 는 지구에 속해있는 이상.

서로에게 칼을 겨눌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운명을 뒤틀고 싶 었다.

"자, 다듬는 건 끝났어."

"고마워."

이사벨라가 제 머리를 보려고 마 법 거울을 꺼내들었다.

"깔끔해졌네. 나중에 머리 자르는 걸로…… 웅?"

이사벨라가 거울에 비친 반지를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뭐야? 갑자기 웬 반지?"

"일단 받아둬."

나는 이사벨라의 결혼반지를 빼내 고 내가 가져온 반지를 끼워줬다.

어차피 하녀와 마주칠 일이 없다 했으니 결혼반지도 없어도 되겠지.

"나중에 꼭 필요할 때가 있을 거 야."

내 말에 이사벨라는 도무지 모르 겠다는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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