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95화 (306/361)

295화

후욱!

벨제부브의 공격이 베아트리스의 신형에 적중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모래처럼 사르륵 흘러내린다.

가짜였다.

"하하하! 또 틀렸네?"

벨제부브가 뒤돌아보니 그곳에 수

십,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베아트 리스가 똑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징그러운 수준이었다.

"맞혀봐. 누가 진짜일까?"

"맞혀봐. 누가 진짜일까?"

"맞혀봐. 누가 진짜일까?"

하나의 말도 수백 번씩 겹쳐 들렸 다. 마치 환청을 듣는 것처럼 느껴 지기까지 했다.

벨제부브가 가볍게 손짓하자, 베아 트리스의 분신들 머리 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났다.

2겹, 3겹으로 중첩된 마법진은 한

눈에도 복잡해 보였다.

콰과과과광!

쿠구구구구구구!

마법진에서 쏟아져 내린 마법들이 사방을 휩쓸었다.

베아트리스의 분신들이 마치 파도 에 휩쓸리는 것처럼 흩어졌다.

"어딜 공격하는 거야?"

"우린 여기에 있는데."

"못 찾으면 이곳에 영원히 갇혀있 게 될걸?"

그러나 뒤돌아보면 아까보다 훨씬 많은 분신들이 주르륵 줄지어 서있었다.

씨익 웃는 미소까지도 전부 똑같 다.

"자, 문제야. 누가 진짜일까?"

"누가 진짜일까?"

"누가 진짜일까?"

벨제부브는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 * *

진짜 베아트리스의 설명을 쭉 들 어보니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시도해볼 만하네."

"그쵸?"

내가 긍정을 표하자 베아트리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잖아."

"어떤 문제요?"

"네 말대로 하려면 이 녀석이랑 연락이 돼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어서."

내가 벨제부브를 가리키자 베아트 리스의 안색이 달라졌다.

"……벨제부브?"

"몰랐어?"

"어린 시절 이후로는 처음 봐요."

그녀는 다 커버린 벨제부브가 꽤 낯선 모양이다.

깨어나자마자 내가 총으로 협박한 탓에 미처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다 가 이제야 발견했나 보다.

"많이 컸구나……

베아트리스의 말투에서 씁쓸함이 배어 나왔다.

가짜 베아트리스의 영향인지 어쩐 진 몰라도, 베아트리스는 아직까지도 어린 소녀의 모습 그대로였으니 까.

아마 어린 시절의 모습에서 그다 지 성장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튼. 잠들어 있는 벨제부브와 연락이 닿지 않으면 그 계획도 전 부 무용지물인데……

가만히 중얼거리다 보니 문득 좋 은 생각이 났다.

"잠시만 기다려."

나는 공간 간섭으로 카뤼센이 쓰 러진 곳으로 향했다. 테토가 카뤼센 을 꽁꽁 부여잡은 채 그를 감시하 고 있었다.

그러다 날 발견하자 놀라 제자리 에서 펄쩍 뛰며 일어났다.

"오, 오셨습니까!"

"테토.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그림자가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라 도 갈 수 있는 거야?"

"네? 일단 그런데요."

"그럼 벨제부브가 어디 있더라도 녀석의 그림자로 가는 것도 가능한 거지?"

"네, 물론이죠! 벨제부브 님 그림 자라면 언제라도 갈 수 있어요! 저 는 그분께 종속되어 있는 걸요."

테토가 자신만만하게 외친다. 좋 아, 잘됐다.

"그럼 벨제부브의 그림자로 지금 움직여봐. 전투 중일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고."

"넵!"

테토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바닥 으로 쑥 들어가 사라졌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도로 올라온다.

"허억! 베, 베아트리스 님이 곁에 있어요!"

"싸우고 있었어?"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가만

히 서 계시던데요."

그럼 정신 속으로 다녀온 게 아니 라 육신의 그림자로 다녀온 모양이 다.

가짜가 아니라 진짜 베아트리스를 본 것 같았다.

"거기 말고, 벨제부브의 그림자 다 른 곳은 더 없어?"

"예? 벨제부브 님께서 그곳에 계 시는데 어떻게 그림자가 두 개가 생겨요?"

테토가 의아한 듯 물었지만 자세 히 설명해줄 시간이 없었다.

"더 정신을 집중해봐!"

" O O O 으 O O 으~ " ■ " 丁□ , - ■ 丁□ .

내가 억지를 부리자 테토가 눈을 감고 한참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러다가 번쩍, 눈을 뜬다.

"아! 찾았어요! 희미하지만 느껴져

요!"

"좋아. 거긴 한창 전투 중일 테니 까 가서 내 말을 전해줘. '가짜 베 아트리스를 쓰러뜨릴 계획이 있다' 라고."

" 가짜요?"

"빨리!"

테토가 내 말이 무슨 의민지 궁금 해했지만 서둘러 움직이라고 재촉 했다.

그러자 알겠다며 후다닥 그림자 속으로 퐁당 빠져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토가 가쁜 숨 을 몰아쉬며 겨우겨우 그림자에서 기어 올라왔다.

"허억, 허억. 죽는 줄 알았어요!"

"테토. 대답은?"

"'무슨 방법?'이라고 하셨어요! 그 런데 왜 베아트리스 님도 벨제부브 님도 두 명인 거죠? 이상한 일이네

요!"

테토의 수다는 무시하고 나는 다 음 전언을 남겼다.

"'릴리스'의 신화를 떠올려보라고 전해."

"금방 다녀올게요!"

퐁당.

그림자가 마치 작은 호수처럼 보 였다.

테토가 쏙 빠져들자 마지 호수에 파문이 이는 것처럼 요동치기까지 했다.

잠깐 시간이 흐르자 테토가 다시

쏙 고개를 내밀었다.

"'때가 되면 테토를 보내겠다'고 하셨어요!"

"좋아. 내가 카뤼센을 챙겨서 저 안쪽으로 갈 테니까 넌 벨제부브의 그림자에 숨어있다가 때가 되면 내 그림자로 넘어와. 할 수 있겠지?"

"저쪽은 너무 무서운데…… 꼭 가 야 해요?"

테토가 잔뜩 칭얼거렸다. 아무래도 저곳의 싸움이 한창 치열한 모양이 다.

마왕끼리의 싸움이니 더더욱 그렇 겠지.

"부탁해. 너만 할 수 있는 일이 야."

내가 진지하게 테토의 손을 붙잡 고 얘기하자 테토가 어쩔 수 없다 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퐁당!

테토가 사라지자, 나는 카뤼센을 번쩍 들어 올려 안쪽으로 향했다.

테토가 돌아올 때까지 모든 준비 를 다 끝마쳐야 했다.

테토가 불쑥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한서하의 말을 전했을 때 그는 헛 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상황만 괜찮았다면 정말 큰 소리 로 웃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테토가 '릴리스의 신화'를 운운하자 벨제부브는 그녀 의 계획이 무엇인지 대번에 꿰뚫어 봤다.

드록의 연인, 릴리스.

그녀에게 얽힌 설화들은 구전에 구전을 더해 전해지면서 그 원형을 거의 찾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늘 이야기에 등장하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릴리스를 '두 개의 목숨을 가진 여인'으로 묘사 했다는 것이다.

드물긴 해도 여벌의 목숨을 가진 마족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릴리스의 죽음을 가리키는 설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 영웅이 드록을 봉인하자 무 척 화가 났던 릴리스는 인간 영웅 을 자신의 꿈속에 가둬버린다.

수십, 수백 년을 그곳에서 헤매던 인간 영웅은 마침내 두 개의 영혼 을 가진 릴리스를 죽일 방법을 찾아냈는데.

다름이 아니라…… '두 개의 목숨 을 동시에 취하는 것'이었다.

그래. 두 개의 목숨 말이다.

공교롭게도 베아트리스에겐 지금 하나의 육신에 두 영혼이 머물고 있지 않은가.

베아트리스와 릴리스가.

콰아아앙!

휘익, 화르륵!

그가 고뇌하는 와중에도 싸움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검은 화염이 치솟았고 베아트리스

의 분신은 이리저리 신출귀몰하게 나타나며 벨제부브를 농락했다.

앞에 있는 분신과 싸우고 있으면 양옆에서 다른 분신이 나타난다.

수도 없이 많은 베아트리스와 싸 우고 있는 기분이었다.

"딴생각을 할 여유가 있나 봐?"

귓가에서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었을 땐 이미 늦었다.

촤자자작!

베아트리스의 날카로운 손톱이 그 의 허리를 깊게 긁어낸 뒤였다.

"크윽!"

재빠르게 몸을 뒤틀고 마법을 날 렸지만 이미 베아트리스는 사라지 고 없었다.

화끈한 통증만이 남아있을 뿐이었 다.

주르륵 핏물이 흐르는 옆구리를 부여잡고서, 벨제부브는 눈앞의 일 에 집중했다.

'진짜를 찾아야 해.'

분신을 수없이 죽여도 아무런 의 미가 없었다.

결국 진짜를 찾아내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끝없는 분신들 중 누가 진짜인지 어떻게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숨바꼭질을 해볼까?"

"재밌겠다!"

"내가 술래네?"

베아트리스의 분신들이 저마다 말 을 주고받는다.

한마디 할 때마다 벨제부브의 손 에 죽음을 맞이하는데도 말이다.

마지막까지 까르르 웃는 모습은 그야말로 광기 그 자체였다.

벨제부브는 남은 마력량을 대충

가늠했다.

대략 절반 정도.

그렇다면, 이 이상 질질 끌어봤자 베아트리스만 좋을 뿐이었다.

쿠구구구구구…….

심상치 않은 소리가 울렸다.

수많은 베아트리스들이 고개를 갸 웃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하늘을 빼곡하게 채울 정도로 광 활한 마법진이었다.

마치 시계태엽이 돌아가는 것처럼, 마법진이 서로 맞물려 움직이며 거대한 장관을 그려냈다.

얼핏 봐도 20개는 족히 넘는 마법 진들이 서로 얽혀있었다!

베아트리스는 장담컨대, 그 오랜 세월동안 한 번도 이런 대규모 중 첩 마법진은 본 적이 없었다.

배시시 웃던 얼굴에 처음으로 금 이 갔다.

"미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법이 몰 아쳤다.

콰과과과과과광!

콰드득! 콰직!

쿠우우우웅!

피할 새도 없었고, 피할 곳도 없었 다.

온 천지가 마법진의 범위 안이었 다.

벨제부브는 단번에 마력을 끌어다 써 마력통로가 뻐근한 것을 느꼈다.

짙은 탈력감이 그를 휘감았지만, 멈춰 설 수는 없었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아직 죽지 않은 베아트리스의 분 신들이 저마다 소리 높여 웃었다.

"이거 어떡해? 전부 죽인 정도는 아니었네."

"진짜가 죽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데."

"마력도 다 써버렸지? 우리의 승 리야."

주절주절 저마다 입을 놀린다.

하지만 벨제부브는 조금 시끄럽다 여길 뿐 그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저벅, 저벅.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잔뜩 피를 흘

린 채 쓰러져 있는 베아트리스에게 다가간다.

"찾았다."

그러자 베아트리스가 대꾸했다.

"확실해?"

"확실해?"

"확실해?"

그 주변만 해도 분신이 두어 개는 더 놓여 있었다.

베아트리스가 여유롭게 웃으며 도 발했다.

"기회는 한 번뿐이잖아. 마력이 얼 마 안 남았을 텐데. 신중해야지."

"확신할 수 있어?"

"이번에 실패하면 영원히 이곳에 서 살아야 할 텐데?"

분신들이 뒷말까지 이었다.

벨제부브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확실해. 너다."

파지직!

벨제부브의 손끝에 마지막 마력들 이 그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살벌하게 스파크 튀는 소리가 났 다.

"어떻게 그리 확신하지?"

스파크 튀는 소리는 벨제부브가 테토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벨제부브의 신호에 테토가 서둘러 현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벨제부브는 마지막 안배로 그녀의 말에 대답해줬다.

"피 냄새가 나잖아."

콰드득!

마법이 베아트리스의 명치에 적중 했다.

"가짜랑 바로 구별이 가거든."

베아트리스는 쿨럭 피를 내뱉으며 파르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누가 박쥐…… 아니랄까 봐. 이런 건 귀신같이…… 알아채 네……

그러면서 뜨문뜨문 뒷말을 잇는다.

"하지만…… 난 이대로…… 안 죽 어... 네가 마력을 다 썼으니. 丄세 ...... 느근! ...... 애그러다 번쩍 눈을 뜬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챈 기색 이었다.

"너……

"진짜로 안녕이다. 릴리스."

콰득!

마지막 확인으로 릴리스의 머리까 지 박살 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