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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93화 (304/361)

293화

깨질 듯이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 잡고 주변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홀로 누워있었다.

벨제부브는 다시금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베아트리스를 만났고. 눈이 마주 쳤지.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 라……

대충 뻔했다.

베아트리스의 공격에 당한 것이다.

'훨씬 빠르고 강해졌어.'

본래 베아트리스는 이 정도로 강 력한 힘은 없었다.

그게 이그니스의 성을 흡수한 탓 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갑자기 발밑이 푹 꺼지기 시작했다.

늪지대에 빠진 것처럼 스멀스멀 아래로 빨려 들어간다. 벨제부브는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

- 베아트리스!

-웅? 벨제! 무슨 일이야?

-어디 갔던 거야. 한참 찾았잖아.

어린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왕성 뒤편 정원에서 뛰노는 베 아트리스와 어린 벨제부브였다.

-에드문드가 찾고 있어. 뭘 하고 있었....

-아! 이거?

베아트리스가 해맑게 웃는다.

-요 앞에서 주웠어. 눈이 세 개인 토끼! 신기하지?

- 이 ......

벨제부브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눈이 세 개인 토끼가 아니었다. 피 투성이인 토끼 시신을 들고서, 벨제 부브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 웅?

그러다 퍼뜩 베아트리스가 정신을 차린 것처럼 눈을 뜬다.

-아, 아아아으]'! 이게 뭐야!

들고 있던 토끼 시신을 바닥에 떨 어뜨리면서 벌벌 떤다.

피로 붉게 물든 두 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내려다보기까지 했다.

-베, 벨제. 내가…… 내가 지금 무 슨 짓을…….

벨제부브는 마치 연극을 보는 것 처럼 베아트리스를 바라보고 있었 다.

그녀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작 게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 야..?

그대로 시야가 까맣게 물든다.

이게 첫 번째 징조였다. 벨제부브 가 처음으로 그녀의 광기를 훔쳐본 날이었다.

-말도 안 돼. 정말 그렇다고?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이야. 그 애가 호수 앞에서 날 밀었다고!

-하지만 베아트리스는 그럴 애가 아닌데....

-넌 아직도 그걸 믿어? 그 영악한 게 도련님 앞에서 잘 보이려고 연 기하는 거라니까!

벨제부브는 하인들이 떠드는 것을

몰래 숨어 듣고 있었다.

다과를 준비해줄 수 있냐고 물어 보려다가 뜻밖의 이야길 듣고 말았 다.

옆에서 얼결에 같이 숨었던 에드 문드는 당장 뛰쳐나가 불같이 화를 냈다.

- 베아트리스한테 사과해! 사과하 라고!

- 으악! 뭐 하는 짓이야!

- 기껏 만들어둔 재료들이!

- 한 번만 더 그런 헛소문을 퍼뜨 리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두고 봐! 가자, 벨제.

_ 응.

벨제부브는 씩씩거리는 에드문드 의 뒤를 따라나서면서도, 잔뜩 울상 이 된 하인들을 뒤돌아봤다.

그들은 억울하다는 듯 작게 쑥덕 거리고 있었다.

그게 정말 헛소문일까?

벨제부브는 선뜻 그렇다고 확답할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베아트리스는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평소에는 알 수 없지만 깨진 틈으

로 그 진실을 엿보는 것처럼, 아주 은밀하게 말이다.

한 번 더 시야가 암전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한 의심이었 다.

"베아트리스. 언제까지 숨어 있을 거지?"

벨제부브는 슬슬 과거의 기억들을 다시 보는 게 지겨워졌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다시 들여다 보고 있는 건 꽤나 곤욕스러운 일 이었으니까.

이 모든 것을 베아트리스가 지켜

보고 있으리라.

그러나 베아트리스는 대답이 없었 고 대신 다음 장면이 펼쳐졌다.

-우와. 이 성에 이런 곳도 있었네.

베아트리스가 신기하단 듯 감탄사 를 연신 내뱉었다.

그래. 어릴 적의 그들이었다.

비밀통로로 몰래 숨어들었던 그날 의 기억이다.

-이만 돌아가자. 마왕님께서 잘 모르는 곳은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 라고 하셨잖아.

-뭐어? 아무것도 없는데 위험한

게 뭐 있다고. 게다가 이 성에서 마왕님 말고 너보다 센 마족도 없 잖아.

베아트리스가 배시시 웃으며 벨제 부브를 끌어당겼다.

- 우리가 탐험하고 에드한테도 알 려주자! 비밀 아지트로 쓰는 거야!

- 난 말렸다, 분명.

- 빨리 따라오기나 해!

어린아이 둘이 한참을 걸어 도달 한 곳은, 벨제부브도 익히 아는 그 곳이었다.

마지막 방.

석판 하나만 홀로 세워져 있는 그 곳 말이다.

_ 우와.

그 장엄한 광경에 베아트리스가 입을 헤 벌렸다.

-이 손바닥 자국은 뭘까?

-함부로 손대지 마.

벨제부브가 그녀를 제지했다.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게 뭔가 느 낌이 좋지 않았다.

-너무 깊숙이 들어왔어. 돌아가자. 위험해 보여.

-위험할 게 뭐가 있다고? 그냥 석 판일 뿐인데.

-이 성은 오래돼서 고대 마술이 담긴 곳도 많단 말이야. 고대 마술 은 강한 만큼 제어가 어려우니 조 심해야지.

벨제부브는 침착하게 설명하면서 최대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 다.

그런데 그때, 베아트리스의 분위기 가 급변했다.

헤실헤실 웃던 얼굴이 싹 바뀌고 입가에 비웃음을 걸었다.

_베아...

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베아트리스가 그의 손을 이끌어 석판에 가져다댄 것은 말이다.

-뭐 하는 짓……! 허억!

평소 베아트리스는 그보다 근력이 약한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옴짝달 싹할 수가 없었다.

마력이 쑤욱 빠져나가는 느낌에 전신에 힘이 빠지고 휘청했다.

-베아트리스! 베아트리스!

벨제부브의 부름에 그녀가 대답하 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저 위에서부터 내려온 뱀 머리를 향해 능숙하게 인사를 건넸 다.

-바실리스크. 재밌는 몰골이구나.

-으응? 간만에 날 깨우는 녀석이 누구인가 했더니.

쉭쉭.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소리가 소름끼치도록 선명했다.

-너구나. 릴리스.

릴리스! 그 이름에 벨제부브가 눈

을 부릅떴다.

드록만큼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 니지만, 그는 이곳의 도서관에서 그 이름을 본 적이 있었다.

드록이 사랑했던 여인, 릴리스!

악신의 연인답게 아주 악독하고 잔인했다고 전해진다.

'그게…… 베아트리스라고?'

벨제부브는 눈동자를 굴려 베아트 리스를 바라봤다.

그녀는 아주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내 꼴도 우습지만 네 모습도 만 만치 않구나! 그래, 네가 이 아이에 게 기생할 수 있는 이유는…… 핏 줄! 그런가!

뱀이 입을 쩍 벌리고 깔깔대며 웃 었다.

-네 머나먼 후손이로구나!

-운이 좋았지.

베아트리스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 다.

아드득.

-으아아악'!

-하필 내 혈육이 이 마왕성에 다

시 돌아올 줄이야. 이건 예상 못 했나 봐.

베아트리스의 탈을 뒤집어쓴 릴리 스가, 벨제부브의 손목을 박살내곤 바닥에 휙 내던졌다.

극심한 고통에 반사적으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 네 부탁이라면 뭐든 혼쾌히 들어 줄 수 있지. 누굴 데려와 줄까, 릴 리스.

-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세 명의 열쇠지기를 모두 죽이고 내 남편을 부활시키고 싶지만, 아직은 그럴 만 한 힘을 되찾진 못했어.

릴리스가 입맛을 다신다.

- 이 성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녀 석으로 골라와 줘. 열쇠지기는 빼고 말이야.

- 살이 통통하게 오른 놈으로 골라 주지.

- 누구라도 뼈째 씹어 먹어 버리고 싶거든.

스르르륵.

바실리스크는 기다란 몸을 바삐 움직여 빈 공간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릴리스가 시선을 돌려 벨 제부브를 바라봤다.

-네가 이 다음 대 열쇠지기인가?

벨제부브는 입을 다물었다.

그도 어지간한 성인 고위 마족 못 지않은 실력을 지녔지만, 지금 릴리 스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릴리스는 짙게 미소 지었다.

-널 잡아먹어도 나쁘지 않겠지만. 아직 때가 아니군.

퍼억!

-허……억……!

릴리스가 강하게 벨제부브의 명치 를 가격했다.

일순 숨이 턱 막히면서, 그는 그대 로 기절했다.

마력까지 극심하게 소모한 탓에 온몸에 기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벨제부브는 뭔가 씹어 먹는 소리 에 눈을 떴다.

아드득. 그 리듬감 있는 소리가 자 꾸만 귓가를 맴돌았다.

그는 목을 움직여 등 뒤를 돌아볼 힘은 없었지만, 고개를 움직이지 않 아도 정면의 벽에 비치는 그림자가 보였다.

벨제부브는 뜬 눈으로, 사람의 형 상이 통째로 잡아먹히는 것을 보았 다.

차라리 귀를 막고만 싶었다.

아니면 다시 기절하고 싶었다.

둘 중 무엇도 하지 못한 채로 벨 제부브는 눈물만 흘렸다.

- 웅?

벨제부브가 어깨를 가늘게 뜨자 뒤에서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렸 다.

- 깨어났구나?

그 다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난 뒤였다.

이 둘은 숨겨진 방 안에서 발견됐 고, 발할라의 충실한 심복 하나는 시신조차 남기지 못한 채로 실종됐 다.

그 진범으로, 베아트리스가 지목됐 다.

:k * *

카뤼센은 좁고 긴 통로를 걷고 있 었다.

자신의 주인에게 바칠 선물을 준

비했다는 기쁨과, 실책을 저질렀다 는 슬픔을 동시에 맛보면서 말이다.

그는 저 뒤에서 자신을 쫓아오는 기척을 느꼈다.

아직 저 멀리 있었지만, 빠른 속도 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기척은 카뤼 센의 등 뒤에 있었다.

콰앙!

그가 빠르게 반응해 팔을 꺾어 공 격했지만 헛손질만 했다.

기척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한 뒤였다.

"이거 끈질기군요."

카뤼센은 속으로 지형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테토를 어떻게 이겨내고 온 모양 입니다."

넓은 공간에 있을 때와 달리 이렇 게 한정된 공간에선 그의 실력을 마음껏 펼칠 수가 없었다.

반면에 상대는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자였고 말이다.

'차라리 다른 곳이었으면 이곳을 통째로 무너뜨렸을 텐데.'

이 비밀통로를 완전히 망가뜨리면

고성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고성에는 그의 주인이 원하는 것이 잠들어 있으니, 섣불리 주변을 파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 다.

슉!

철컥, 탕!

그가 고민하는 사이에 한 번 더 총알이 날아왔다.

그는 날아온 총알을 탁 잡아냈다.

"아니면 테토가 날 배신했을지도 모르겠군요."

탕, 탕!

두어 발 쏘아진 총알도 곧바로 잡 아냈다.

그러다 문득 그는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총이, 원래 총알이 남았던가?'

그리고 그때는 이미 늦었다.

그가 반사적으로 날아오는 총알을 잡아채려고 손을 뻗자, 등 뒤에서 누군가 새로이 나타났다.

'기척이 둘?'

의문을 표할 새도 없었다.

타앙!

총알이 그의 뿔을 꺾어내며 지나 갔다.

"크으으윽!"

카뤼센은 이마를 부여잡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거…… 한 방 먹었습니다."

저벅, 저벅.

그런 그의 앞과 뒤에서 한 명씩 모습을 드러냈다.

"죄, 죄송해요! 하지만, 저 테토는, 역시 벨제부브 님의 편이라고요!"

덜덜 떨면서 총을 손에 쥔 테토가 앞에서 나타났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뒤에 있는 이는 한서하였다.

"그렇군요. 당신의 총은 마력탄을 쓰니…… 총알이 남지 않죠."

그림자를 통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테토는 이런 좁고 어두운 공간에선 한서하의 능력과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런 그에게 총까지 쥐여주어 혼 란을 야기했고, 카뤼센은 그 수작에 고스란히 넘어가고 만 것이다.

"저의 패배입니다."

카뤼센이 패배를 인정했다. 그의

뿔이 꺾인 것처럼, 그의 의지도 꺾 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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