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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85화 (296/361)

285화

눈을 뜨자 익숙한 붉은빛이 대번 에 보였다. 굽이치는 듯한 아름다운 장밋빛 머리카락.

이사벨라. 비욘드의 수장인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이사벨라가 내게 손을 뻗었다.

나는 그 손을 마주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창 바쁠 땐데. 내가 시간을 뺏 었네."

이사벨라뿐만이 아니었다.

덥수룩하게 내려온 앞머리의 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올리버까 지.

비욘드의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 는 이 셋이 전부 모여있었다.

"누구의 귀환인데. 당연히 환영해 줘야지."

"맞아. 비욘드의 숨겨진 개국공신

이라 해야 하나?"

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이사벨라에게 혁명을 제안했던 것 도 나고, 셀과 올리버를 비욘드에 끌어들인 것도 나였다.

새삼 이렇게 보니 내가 이번 혁명 에 공을 많이 들였구나 싶다.

"다니엘은?"

"5황자의 공식 업무가 있는 날이 라 뺄 수가 없다 하더라고."

"그래도 연락은 하고 지내는 모양 이네."

"같은 5황자 세력이니까 연락을

안 할 수가 없지."

둘 사이에 얽혀있는 비밀만 생각 하면 머리가 복잡해지지만 말이다.

애써 모르는 척해야지. 제3자가 끼 어들 일은 아니었다.

"앞으로 꽤나 바빠질 테니 오늘 밤은 좀 느긋하게 보내는 게 어때. 마침 좋은 와인을 입수했거든."

"마력석 채취도 활발해서 자금도 문제없단 말씀!"

"물론 마음대로 사용해선 안 되겠 지만, 귀빈을 대접할 정도는 됩니 다."

이사벨라의 제안에 셀과 올리버가 맞장구를 쳤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만, 오기 전 에 테오도르의 절절한 애원까지 들 었는데 팔자 좋게 늘어져 있을 순 없었다.

"……자세한 진행 현황을 듣고 싶 은데. 가볍게 한잔 곁들이는 정도면 괜찮고."

"딱딱하긴."

이사벨라가 작게 타박했다.

"그럼 비욘드에서 얘길 마저 나누 도록 할까. 셀, 준비해줘."

이사벨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셀은 허리춤에서 붓대를 꺼내 들었다.

물감을 찍어내지 않았는데도 붓대 끝에 마력이 서리면서 부드러운 곡 선을 남긴다.

스윽, 슥.

순식간에 그려낸 것은 꽤 고급스 러운 디자인의 문이었다.

셀이 다 그려진 문의 손잡이를 잡 고 돌리자 부드럽게 열렸다.

문 너머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 다.

"와본 적 있겠지? 여기가 비욘드

의 가장 안쪽, 혁명군들의 본부야."

"마력석이 많이 사라졌네."

"부지런히 채집했거든."

전에 왔을 땐 한쪽 벽이 완전히 마력석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훨씬 깔끔해졌다.

셀이 부산스럽게 다과를 준비하는 동안 올리버가 널따란 지도를 테이 블 위로 펼쳤다.

톨룩의 지도였다.

수도. 그러니까 왕이 직접 통치하 는 중앙을 기점으로 동, 서, 남, 북 부가 나뉘어 있었다.

비욘드는 개중 중앙에서 서부로 가는 길 사이에 존재했고, 드문드문 이종족들의 땅도 보였다.

"우선 동부는 혁명에 협력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 평민들 사이에서 도 혁명 사상이 은밀하게 퍼져 있 고, 귀족들 중에서도 그나마 호의적 인 이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거든."

이사벨라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 작했다.

북부는 원체 중앙과 분리된 채 자 체적으로 지낸 지 오래됐으니 이번 에도 중앙의 일에 개입할 가능성이 낮았다.

동부는 호의적이고, 서부는 비교적 배타적이다. 남부는 중립을 표방하 면서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 다고 한다.

"물론 각 지역에도 여러 귀족들이 있으니 그 안에서도 분쟁이 많아. 대략적인 분위기만 설명한 거야."

"그래도 나쁘지 않네."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성과다.

"또 모르지. 이건 사전 조사라, 실 제로 까보면 어떨지는."

결국 어디까지나 확률에 가깝단 얘기였다.

당장 동부가 호의적이긴 하나, 막 상 혁명이 일어나면 숨어있던 반대 세력이 고개를 들지도 모르니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황태자 즉 위식 날입니다."

군사를 이끌고 있는 올리버가 나 섰다.

"이날 황족들을 몰살해서 '가호'가 어느 황족에게도 깃들지 않게 하는 게 핵심입니다."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안 돼. 땅의 가호가 황제의 몸에서 빠져나온 그 직후에 모든 황족들이 죽어야 해."

조금이라도 실수가 발생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황족이 하나라도 가호를 이어 살 아남으면, 나머지 귀족들도 구심점 을 찾아 뭉칠 거야. 그렇게 되 면…… 혁명이 실패로 돌아갈지도 몰라."

"황태자 즉위식 날 투입할 수 있 는 병력을 얼마나 있지?"

비욘드의 규모가 커지긴 했지만 과연 황실의 기사단들을 상대로 얼 마나 버틸 수 있을지. 그게 관건이 었다.

"황태자 즉위식 당일. 기사단들의

이목을 끌 만한 사건을 황궁 외곽 쪽에 하나 만들 겁니다."

올리버는 병력을 뜻하는 작은 깃 발 모형을 지도 위로 옮겼다.

빨간 깃발 모형이 황궁 옆에 옮겨 지자, 파란 깃발을 단 모형들 3개 가 따라붙는다.

"그럼 시선이 우선 이쪽으로 쏠리 겠죠. 나머지 병력들은 황태자 즉위 식이 거행되는 곳을 지키고 있겠고 요."

나머지 파란 깃발들이 즉위관 주 변을 둘러싼다.

"이때 우리는 허술해진 보안을 뚫

고 들어와, 즉위관을 뚫어낼 겁니 다."

"가능하겠어요? 상대는 기사단입 니다."

이 제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실 력자들이란 의미였다.

그러자 셀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 다.

"나만 들어갈 거야!"

"……셀만?"

"웅. 난 한번 가본 곳으로만 통로 를 연결할 수 있거든. 그 안에 들 어가서, 혁명군들이 모여 있는 곳까

지 문을 열 거야."

셀이 비욘드 안으로 들어올 때 그 렸던 그 문을 말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꽤나 승산이 있다.

"셀이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열고, 혁명군이 불시에 들이닥 쳐 황족들을 제거한다……

"셀은 고위 마법사니 불가능한 일 은 아닙니다. 만약을 대비해 기사단 들의 시선을 끌 부대도 따로 편성 해둘 거고요."

그렇다면 침입까진 성공이다. 그런 데 문제가 하나 남았다.

"황제가 위협을 느끼면 가호를 내 보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정확한 타이밍에 문을 열고 황족들을 제거 하는 게 핵심인데. 가능하겠어요?"

내 물음에 셀이 고개를 크게 끄덕 였다. 반면에 올리버는 어렵다는 듯 턱을 매만진다.

"된다는 겁니까, 안 된다는 겁니 까."

내 물음에 둘이 투닥대기 시작했 다.

"뭐야, 올리버 형! 나 믿는다며!"

"믿는 것과 성공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몇 번 연습을 해보긴 했지 만 아직까진 부족해."

"즉위식 전까진 어떻게든 합을 맞 추면 될 거야!"

"'어떻게든'이라는 말은 무책임하 지. 만약을 대비한 작전도 짜두긴 하겠지만, 병력이 황실만큼 여유로 운 게 아니라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배치를 해야……

올리버가 여러모로 고생이 많은 것 같았다.

혁명 시뮬레이션을 얼마나 여러 번 돌려본 건지, 깃발 모형들이 죄 다 조금씩 닳아있었다.

그가 수도 없이 옮겨보고 고심한 흔적이 겠지.

"아직 전략은 더 고민 중에 있어."

이사벨라가 올리버 대신 발표를 이었다.

"우리 행동대장님께서 더 효율적 인 방법이 있을 거라고 골머리를 썩고 계시거든."

올리버가 무어라 중얼중얼 거리면 서 지도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니 대충 예상이 갔다.

"다들 전부를 걸고 있으니까. 그만 큼 책임이 무거운 거겠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둘을 바라보는 이사벨라의 눈빛은 무척 따스했다.

그건 아마 톨룩에 뿌리를 둔 이들 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유대감이 었을 거다.

나는 이 혁명에 참여하고 있긴 했 지만 이들과는 각오의 깊이부터가 달랐으니까.

그날 저녁 모처럼 돌아온 나를 위 해 환영회가 열렸다.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마력석 채취 법을 알려준 덕에 큰 도움을 얻었 다며 다들 막무가내였다.

잘 쌓아올린 장작에 불꽃은 타오 르고, 그 위로 직접 잡아온 고기들 이 노릇노릇하게 익어갔다.

사람들은 저마다 술 한잔 기울이 며 회포를 풀고 있었다.

나는 구석진 곳에서 그들을 바라 보며 분위기를 즐겼다.

"왜 혼자 있어?"

그때 셀이 불쑥 튀어나왔다.

뭐라 말하기도 전에 옆에 풀썩 붙

어 앉는다.

뺨은 달아올라 있었고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만면에 미소가 한가 득이었다.

"환영회 주인공이 여기 있으면 어 떡 해?"

"나 없이도 신나 보이던데."

"나야 어디서나 재밌게 노는 편이 긴 흐}지. 언제나 웃고 다니잖아! 별 일 없어도."

그것도 맞는 말이라 입을 다물었 다.

"왜 안 어울리고 혼자 있어? 내가

술친구라도 해줄까?"

"아니. 미성년자 주제에 무슨."

그러자 셀은 말없이 빤히 날 응시 했다. 노골적인 눈빛에 무시하고 싶 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저기 가서 마저 즐기지 그래."

"이름이 서하라고 그랬지. 한서 하."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내 이름이라니.

"다시 들어도 특이해. 성씨가 앞에 붙는 것도 그렇고. 어디 소수민족 출신이야?"

"……그런 셈이지."

역서 지구인은 소수 민족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나 혼자일 테니 까.

"그럼 그 슉! 슉! 하는 능력도?"

"아마?"

"뭐야. 그게."

고유 스킬을 갖는 게 지구인의 특 징이라면 특징이겠지만, 공간 간섭 을 가진 건 순전히 우연이니까 말 이다.

내 애매한 대꾸에 셀이 그런 게 어딨냐며 툴툴거렸다.

"그럼 서하 너는 왜 이 혁명에 참 여한 거야?"

갑작스러운 질문이다. 무슨 의도인 가 싶어 셀을 바라보자 그는 발갛 게 달아오른 얼굴로 날 똑바로 웅 시하고 있었다.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 사이로, 그 선명한 눈동자가 보였다.

"매번 신출귀몰하고. 내가 길바닥 에서 구걸이나 하고 다닐 때에 날 찾아와서 마법에 재능이 있다고 해 주고……. 전부터 궁금했어. 네 정 체가 뭔지."

너무 수상쩍게 행동하긴 했지. 특

히나 셀에겐 더 이상해 보였을 거 다.

"그런데 이사벨라 누님은 아무리 물어도 대꾸도 안 해주시고. 그러니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지. 안 그 래?"

그러면서 배시시 웃는다.

"뭐라 말해도 안 놀랄 자신 있어! 정말로! 네가 어디 마왕이라 해도 상관없어."

마왕하고 여러 번 싸워보긴 했지 만 마왕은 아니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할 텐데 이만 들어가.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야지."

내가 괜히 말을 돌리자 셀이 삐쭉 입을 내민다.

"말해줄 생각이 없나 보네? 올리 버 형도 모르는 눈치던데. 대체 정 체가 뭐냐고오."

지구에서 왔다고 말해도 놀라지 않으려나.

사실 너희와 전쟁을 치르는 중이 라고, 혁명이 끝나면 우리도 적으로 돌아설지도 모른다고 말하면.

그때도 지금처럼 친근하게 말을 걸어올 수 있을까.

"좋아! 그럼 나부터 말해줄까?"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이 얘긴 전부터 궁금했었다. 나는 셀이 잠시 비욘드에 머물다가 떠나 갈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의외로 그는 비욘드에 정 착했고 핵심 전력이 되기까지 했다.

굳이 혁명에 참여하지 않아도 마 법사로 호의호식할 수 있는 그가 이곳에 뿌리내린 이유가 대체 뭐였 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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