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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84화 (295/361)

284화

챕터: 사연 없는 불꽃은 없다

톨룩으로 넘어가는 덴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했다.

앞서 겪은 여러 가지 불상사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상사에게 양 해를 구하는 것.

"......한 달?"

"응. 아마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 아."

이운우가 내 직속상관은 아니지만 일단 국내 헌터들을 운용하는 총책 임자이니, 그는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잠깐만. 그러니까…… 저번에 네 가 실종됐던 것도 전부…… 톨룩에 다녀왔던 거라고?"

"국가에는 기밀로 해줘. 어차피 대 규모로 사용할 수도 없고, 그 기술 을 제일 잘 활용할 수 있는 것도 나야."

이운우는 갑작스러운 소식들에 머 리가 아픈지 이마를 부여잡았다.

"전에 말했던 그 5황자를 황태자 로 올리는 계획이 잘 진행되고 있 다는 건 꽤나 반가운 일이지만. 이 런 중대한 사안은 미리 의논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정보를 아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약점만 늘어난다는 걸 너 도 알잖아."

이운우는 할 말이 많은 듯 뚱한 얼굴이었다.

"역시 그 자식이 알고 있었잖 아.."

"테오도르한테 뭐라 할 생각 하지 마. 기밀로 하는 게 당연한걸."

이운우와 혜원 언니가 테오도르를 잔뜩 채근했던 걸 떠올린 모양이다.

더 협박한다고 해서 테오도르가 입을 열었을 리는 없지만 말이다.

"다시 톨룩으로 넘어간다니. 너무 위험한 계획 같은데."

"내가 가서 혁명의 승률이 높아진 다면 훨씬 이득이야. 지금 우리가 전쟁을 하고 있는 건 제국의 황제 를 중심으로 한 '연합군'인데, 이 황제가 혁명으로 사라지면 연합군 은 구심점을 잃고 흩어질 게 뻔하

거든."

게다가 체제가 전복된 직후 평화 로운 시대가 이어질 리 없으니, 잘 하면 손도 안 대고 코풀 수도 있었 다.

톨룩이 자기들끼리 충돌하다 자멸 할 수도 있으니까.

"그걸 해외 파견으로 처리해달 라……. 주변인들에겐 말하지 않을 생각인가?"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 다고 말했잖아. 혜원 언니라고 예외 는 아니야."

냉정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말이

다. 5황자를 황태자 자리에 올리려 하는 내 계획을 아는 건 이운우와 윤강백 정도다.

이 둘 이외에 톨룩으로 가는 기술 이 있단 사실을 알릴 생각은 없었 다.

"브레이크 아웃 뒤로 특별한 현상 을 보이는 게이트가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현장 인력에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야.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만."

이운우가 서류 더미를 넘겨보며 뒷말을 이었다.

"한 달. 한 달이라. 눈속임으로 어

찌해볼 순 있겠는데. 대신 조건이 있어."

"뭔데?"

"죽으면 안 돼."

당연한 말이었다. 나라고 고국도 아닌 적국에서 목숨을 잃고 싶겠는 가.

"내 사적인 감정으로 하는 말이 아니야. 지금 내가 하는 건 일종의 횡령이라고. 전시 상황 중에 핵심 전력을 외부로 빼돌리는 횡령."

외국에 보냈다고 서류 처리만 하 고 실제론 다른 곳으로 돌리는 거 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네가 정해진 기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아주 곤란해 진단 말이지."

톡톡.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그의 손 가락이 책상 위를 노닐었다.

"할 수 있겠어?"

이운우의 보라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잠시 침묵하다 물었 다.

"다치는 거 정도는?"

"살아만 돌아오면 돼. 나머진 어떻 게든 얼버무릴 수 있겠지."

이 정도면 이운우도 날 많이 배려 해주고 있었다.

자칫하면 그가 청사에서 이룬 모 든 것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었 다. 성공한다면, 전쟁의 판도를 순 식간에 바꿔놓겠지만.

"놈들은 끊임없이 침략하고. 우린 방어에 급급하지. 최근 들어 놈들의 전략이 훨씬 대담하고 공격적이야."

그건 클로에의 영향인 걸까.

아니면 전략상의 문제니 톨룩 쪽 마음이 급해진 걸까?

저번에 봤을 때 톨룩의 오염이 심

각한 것 같긴 했다. 클로에가 있는 오로굴드의 탑 바로 앞까지 오염이 도사렸으니 말이다.

"이런 때에 네 계획이 성공하면 분위기는 반전된다. 지금 이 타이밍 에 딱 필요한 전략이야."

그도 마냥 사적인 감정과 신뢰만 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란 소리였다.

현 판세를 읽고 다음 수를 짜는 전략가로서, 그는 이번 강수가 필요 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명심해. 이번 계획은, 무사히 살 아 돌아오는 것까지가 성공이야."

" 명심할게.

내가 진지한 얼굴로 약속하자 이 운우도 겨우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위조된 헌터 차출 증명서였다.

이전에 톨룩으로 넘어갔을 때 쓴 방법은 꽤나 원시적이고 과격했다.

내 목숨을 직접 끊어내야 했고, 그 고통도 직접적으로 느껴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목숨을 잃 을 가능성도 컸다.

그래서 그걸 보완하여 만든 게 이 번 테오도르의 새로운 발명품, '죽 음의 요람'이었다.

"이름이 좀 이상한데."

"이름 그대로다. 최대한 사용감을 좋게 하게 위해 인간이 가장 원초 적인 포근함을 느끼는 요람 형태로 제작했지."

요람? 저걸 요람이라고 불러야 하 나.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종종 봤던 비주얼인데.

"……이 액체 코랑 입으로 들어가

도 되는 거야?"

"물론이다. 이거야말로 희대의 발 명품이지. 사용자가 다른 세계로 넘 어갔다 돌아올 때 발생하는 여러 충격을 최소화해주고, 무엇보다 다 른 세계로 넘어갈 때 느낄 수 있는 불쾌감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거 든!"

테오도르가 눈을 반짝 반짝 빛내 며 설명을 했지만 영 미심쩍었다.

반투명한 녹색 액체는 아무리 봐 도 실험실에서 뭔가 생체실험을 할 때나 쓸 법하게 생겼다.

"이 안에 누우면 액체가 몸 안으

로 들어가 서서히 감각을 마비시키 고 천천히 죽음으로 인도하지. 그 모든 생체 반응을 기록해서 최적의 타이밍에 톨룩으로 널 전송할거다."

"어쨌든 성능은 저번보다 좋아 보 이네."

일단 내 머리에 총을 들이미는 짓 은 안 해도 되는 것 같았다.

"참. 말했던 건?"

"여기 있다."

테오도르가 내게 반지 3개를 건넸 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축소한

모양이다. 이 작은 반지에 얼마나 신묘한 원리가 함축되어 있는지 알 면 너도 깜짝 놀랄 텐데!"

그는 이것저것 설명하고 싶어서 눈을 반짝였지만 난 애써 모르는 척 반지만 받아들었다.

"고마워. 잘 쓸게. 혹여나 나보다 먼저 도착하더라도 잘 부탁하고."

"물론이다."

이렇게 지하에서 숨어 지내니 어 느 정도 안심할 수 있을 거다.

보니까 보안장치도 더 강화한 것 같던데. 어지간한 헌터들이 몰려와 도 절대 뚫리지 않을 거다.

"가능하면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 만. 만약 내가 한 달이 지나도 돌 아오지 않으면, 이쪽으로 연락해."

나는 테오도르에게 백목련의 명함 을 건넸다.

"내가 이쪽에도 부탁해둔 게 있거 든. 네가 사정을 설명하고 이 사람 과 앞으로 어떻게 할지 잘 상의해 보면 될 거야."

그때쯤이면 비석의 문구들도 전부 해석했겠지.

오염을 되돌릴 수 있는 아이템의 위치도 나왔을 거다.

내가 아는 한 가장 똑똑한 이들이 니, 백목련과 테오도르가 머리를 맞 대면 가장 현명한 해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내가 없더라도.

"그리고 돌아오지 않으면…… 이 운우한테 미안하다고도 전해주고."

나 때문에 그가 쌓아올린 모든 공 적이 와르르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되도록 무사히 돌아와야겠 지.

"불길한 소린 하지 말거라."

"나도 되도록 네가 여기에 연락하

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그래도 언제나 플랜B는 필요하니까. 일단 받아만 둬."

내 말에 테오도르가 마지못해 명 함을 챙겼다.

"실패해도 좋으니 살아서 돌아오 기만 하면 된다."

내가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 말을 하자 테오도르도 불쑥 이 일의 위 험성이 실감났는지 불안한 얼굴을 했다.

"아니면 굳이 네가 가야 할 이유 도 없지 않느냐. 혁명군도 따로 있 는데 너 하나 더해진다고 얼마나

달라진다고."

이것 참.

테오도르가 연구실에만 박혀 있어 서 내가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거 의 없었던 모양이다.

하긴. 테오도르를 처음에 지구로 데뷔시킬 때나 싸우는 시늉을 좀 했지.

"많이 달라져. 최상위권 헌터 숫자 가 몇 명이나 되냐가 승패를 결정 하기도 하거든."

여전히 테오도르는 좀 망설이는 것 같았다.

이제 와서 돌이킬 순 없는 노릇이 다.

나는 테오도르를 똑바로 보며, 결 국 그 이름을 꺼냈다.

"클로에가 그곳에 있잖아."

내 말에 테오도르가 흠칫 놀랐다.

"단순히 클로에의 일로 제국이 미 워져서, 원망스러워서 여기로 넘어 온 게 아니란 걸 알아. 물론 그것 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처음에는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클로에는 영원히 그곳에 남아있는

데, 댄버의 유산이자 테오도르의 실 수와도 같은 클로에를 그냥 나 몰 라라 하고 이곳으로 넘어와 버린 게.

테오도르가 그렇게 자신의 실수를 모르는 척할 사내가 아닌데.

그렇다면 반대 아니겠는가. 테오도 르가 갑자기 지구의 편으로 돌아선 이유부터가 클로에 때문이라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나는 이미 한번 클로에를 파괴해 봤지. 그런데 지금은 다시 수복됐잖 아."

테오도르도 이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을 거다.

"결국, 제국이 멸망하지 않는 한 클로에는 영원히 고통받을 테지. 고 장 난 부품은 다른 걸로 교체되면 서."

게다가 톨룩의 대륙은 하나로 정 복된 지 너무 오래라 나라의 이름 조차 잊히고 그저 '제국'이라고 불 리는 실정이지 않은가.

그 제국이 멸망하는 것보단 차라 리 톨룩이 망하는 게 더 빠를 거 다.

"그래서 지구로 넘어온 거잖아. 톨 룩을 멸망시켜서 클로에를 자유롭

게 하려고."

톨룩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야말로 클로에는 죽지도 못한 채 영원히 살아가는 인공지능으로…… 제국의 역사와 함께할 테니.

"내 말이 틀렸나?"

테오도르는 정곡을 찔렸다는 듯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정확해서 좀 질릴 지경이구 나."

"칭찬으로 들을게."

나는 천천히 죽음의 요람 속에 발 을 집어넣었다.

끈적한 액체가 살갗을 휘감는 게 기분 좋은 감촉은 아니지만, 묵묵히 다리까지 담갔다.

"그러니까 테오도르. 망설여지면 클로에를 떠올려."

내가 하는 일이 톨룩의 멸망에 한 발 더 다가가게 할 테니까.

찰박.

가슴께까지 잠기자 숨을 쉬는 게 버거워졌다. 갈비뼈 부근을 묵직하 게 내리누르는 감각에 숨이 찬다.

정신이 점점 흐려지는 와중에 테 오도르가 요람 밖으로 나와 있는내 손을 꽉 붙잡았다.

그가 드물게도 만면에 드리운 미 소를 지우고 날 응시하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가 작게 요동친다. 그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무엇인지 헤 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었다.

"부디. 제국을 멸망시키고 클로에 의 영혼을 구원해줘."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몹시 괴로 운 듯 울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고향을 멸해 달라고 말해야 하는 괴로움인지, 두고 온 친우의 딸아이를 생각하는 슬픔인지.

나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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