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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74화 (285/361)

274화

챕터: 그들의 행방

"마력 포션을 대체 몇 개를 쓴 겁 니까?"

의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묻 는다. 나는 산처럼 쌓여있던 마력 포션을 떠올리며 뒷말을 흐렸다.

"그게…… 잘은 모르고……

"마력 포션이 만능은 아니란 거 아시지 않습니까. 오히려 몸에서 만 들어낼 수 있는 마력보다 더 많은 양을 쓰게 되니 마력 통로도 상하 고요."

"예. 알죠. 그런데 상황이……

"중심부뿐만 아니라 전신의 마력 통로가 다 엉망이에요!"

왜 내가 혼나고 있는진 모르겠지 만 일단 연신 죄송하다고 답했다.

의사는 몸에 무리가 많이 갔으니 최소 한 달은 쉬어야 한다고 으름 장을 놨다.

한참 의사에게 잔소리를 들은 다 음에야 표연원이 입원해 있는 병실 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직 정신을 잃은 표연원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까 그건 뭐였을까.'

이렇게 잠들어 있는 표연원을 보 면 아까 그 모습은 마치 신기루 같 았다.

드라이어드가 지켜보고 있다더니.

그 월계관인지 왕관인지 헷갈리는 것도 처음엔 드라이어드의 뿔을 닮 은 형상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드라이어드의 힘을 잠시 빌린, 뭐 그런 걸까?

그렇게 고민 중인데 혜원 언니가 뒤늦게 병원으로 뛰쳐 들어왔다. 게 이트를 클리어하고 곧장 왔는지 헌 터 복장 그대로였다.

"서하야! 연원이는?"

"목숨엔 지장 없대요. 많이 무리했 고, 마력 통로가 심하게 상했으니 오래 쉬어야 하긴 하지만요."

혜원 언니는 갑작스러운 소식들에 무척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표연원의 손을 꽉 쥔 채로 내게

이것저것 캐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 레이트홀■도 사라지고. SSS급 게이 트도 클리어됐다고 들었는데."

"그레이트홀을 통해서 SSS급 게이 트에 있던 톨룩군이 튀어나온 거였 어요. 그게…… 권성민과 이그니스 였고요."

둘의 이름을 듣자 혜원 언니가 움 찔했다.

"권성민? 새하나교 때 실종됐던? 그 자식이 왜 그레이트 홀에서 ……?"

"지구를 배신하고 톨룩 측에 선

거겠죠. 테오도르처럼요."

내 짧은 설명에 혜원 언니가 알겠 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두 놈 다 작살을 내줬겠지?"

혜원 언니가 아드득 이를 가는 소 리가 들렸다.

"이그니스 그놈은 연원이가 한참 마음 고생하게 만든 놈이고, 권성민 그 개자식은 새하나교 때부터 시작 해서 사사건건 너한테 시비를 걸던 놈이었잖아!"

"고전하긴 했지만 결국 우리가 이 겼어요."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처참 하게 짓밟아 줬냐고!"

"어……. 아마도요."

이그니스는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한 채로 죽었고, 권성민은 베아트 리스에게 버림받고 내 손에 끝을 봤으니까 말이다.

"뭐어? 너무 편하게 죽었네! 나 같았으면 그놈 자식 사지를……!"

혜원 언니가 잔뜩 흥분하기에 나 는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베아트리스의 거래에 응하려면 서 둘러 이그니스 쪽으로 이동해야 했으니. 권성민을 고문하고 있을 시간 은 없었을 거다.

그래도 혜원 언니가 나 대신 화내 주는 걸 보니 속이 시원하긴 했다.

나는 그제야 긴장이 풀려 살며시 웃었다.

"기억이 안 난다고?"

혜원 언니가 사과를 깎으며 되물 었다. 표연원은 도리어 어리둥절하 게 대꾸했다.

"응……. 내가, 이그니스를 상대로 이겼어?"

"와. 하나도 기억 안 나? 다들 손 도 못 대고 거의 너 혼자 상대했다 던데?"

"정말이에요?"

표연원이 내 쪽으로 고갤 돌렸다.

내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 자 표연원의 얼굴이 복잡미묘하게 바뀌었다.

"그, 제 실수를 결국 수습했다니 기쁘기도 한데. 기억이 하나도 안나 니 뭔가 실감이 안 나네요."

표연원은 붕대로 칭칭 감은 제 손 을 내려다봤다.

이럴 줄은 몰랐는데.

표연원은 드라이어드의 힘을 빌려 월계관 같은 걸 썼던 기억이 하나 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럼 다시 그 힘을 쓸 순 없는 거야?"

"그 힘이라 해도…… 기억이 하나 도 안 나는걸."

"답답하네! 마왕을 단숨에 제압할 정도였다는데? 그게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 으응......

만약 표연원이 언제든 그 힘을 빌 려올 수 있다면 큰 전력이 됐겠지 만.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진 않는 법이다.

"그럴 수 있죠. 헌터들 중에 종종 있잖아요. 극적인 상황에서만 각성 해서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

"그런 타입이 금방 죽는 것도 알 잖아. 헌터가 힘을 다루는 게 아니 라, 힘이 헌터를 다루게 되면 얼마 나 위험한 줄 알아?"

이건 혜원 언니의 말이 맞았다.

적절한 때에 힘을 발휘할 줄도 모 르면서 '난 위기 상황에서만 잘 싸 울 수 있어!'라며 스스로 사지에 들 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헌터들이 얼마나 많던가.

제대로 다룰 수 없는 힘은 자신의 것이 아닌 법이다.

"내가 이그니스를……

표연원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잘했어. 덕분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거고. 경진아 헌터랑 원우태

헌터가 좀 다치긴 했지만."

"헌터 생활엔 지장 없다면서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진아는 목덜미에, 원우태는 손에 심한 화상을 입긴 했지만 헌터 생 활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흉터만 좀 남겠지.

"이그니스가 진아한테 다가간 것 까진 기억이 나요. 그 다음엔 진아 를 어떻게든 구해야겠다는 생각뿐 이었고요. 정신을 차렸을 땐…… 이 미 모든 게 끝나있었어요."

"그 애들도 기특하지. 베테랑 헌터

들도 출전하길 기피했는데. 연원이 너 살리려고 따라온 거 아니야."

"고맙죠. 괜히 저 때문에 다친 것 같아서 미안하고."

"걔네도 헌턴데 뭘. 자기 몸은 자 기가 지켜야지."

혜원 언니의 말에도 표연원은 멋 쩍게 웃었다.

경진아와 원우태가 흉터를 달고 살게 된 게 영 미안한 모양이다.

"저는 잠시 옆 병실 좀 다녀올게 요."

"아, 맞아. 이 옆은 류라임 헌터

병실이었지? 나도 같이 갈까?"

"아니에요. 저 혼자 다녀올게요."

혜원 언니가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었고, 나는 표연원에게 인사하 며 옆 병실로 향했다.

"서하 님! 서하 님!"

류라임은 날 보자마자 신나서 방 방 뛰다시피 했다.

"진정해요. 그러다 링거 주사 빠지 겠어요."

"저 병문안 와주신 거예요? 너무 감사해요!"

막 즐거워하는 류라임 옆에 너무 의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

그래서 모르는 척 하고 싶어도 묻 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근데…… 카멜롯 씨는 왜 여기 계시는 거죠?"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한 카멜롯이 었다. 처음 그를 발견했을 때 봤던 그 모습이라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제가 오면 안 되는 곳에 왔어

요'?"

"그건 아니지만…… 국제 연합은 철수한 줄 알았는데요."

"개인적인 용무로 남았다고 하죠."

그 개인적인 용무가 류라임의 병 문안이란 말인가? 둘이 저번에 처 음 봤을 텐데 그 정도로 친해졌나?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 자 류라임이 생긋 웃었다.

"별 거 아니에요! 이분이 서하 님 모습을 따라할 수 있다고 해서 제 가 부탁드렸거든요."

그 말을 듣자 퍼뜩 카멜롯이 류라

임의 모습을 복사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번 경험에 따르면 대상 의 모습을 복제할 때 최근 기억까 지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아마 그게 목적이었을 거다.

내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자 카 멜롯이 능청맞게 웃었다.

"……앞으론 더 조심해야겠네요."

언제 카멜롯이 류라임의 모습을 하고 내 옆에 숨어들지 모르니까 말이다.

"뭘요. 평소처럼 지내시면 되는데 요."

"다음에도 총으로 한번 겨눠보면 되겠죠."

내 말에 카멜롯의 안색이 살짝 파 리해졌다. 아찔했던 과거가 떠오른 모양이다.

"두 분 사이가 안 좋으신가요?"

류라임이 고개를 갸웃, 하며 묻길 래 나는 카멜롯과 잠시 시선을 마 주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고개 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사이 나쁠 이유가 없는걸요."

그 말에 류라임이 '역시 그렇죠?' 하며 활짝 웃었다.

우리는 자식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다 걸린 것처럼 어색하게 웃었다.

짹짹짹.

새 지저귀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 려 퍼졌다. 이른 아침의 서늘한 공 기가 폐부에 깊이 스며든다.

캉! 캉! 캉!

쇳덩이들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 음을 냈다.

내가 인기척을 내자, 한창 무쇠를 두드리던 이가 고개를 들었다.

"잠시 기다리거라."

손이석이 날 힐끗 보더니 무심하 게 툭 내뱉었다.

한창 작업 중인 것 같기에 나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마루에 자리 잡자 어디선가 바람 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삐이 이익!

"파이로!"

-삐이! 삐이이이!

파이로가 집채만 한 몸집을 날렵 하게 움직여 내 앞에 내려앉았다.

쿠웅, 하고 둔탁한 소리가 파이로 의 무게를 짐작하게 했다.

"예끼! 이 녀석! 애써 만든 게 다 녹아내리잖냐!"

손이석이 호통을 쳤지만 파이로는 들리지도 않는지 날 보며 제 부리 를 부비기 바빴다.

"에잉! 그래도 제 주인이라고. 제 대로 얼굴 보여주지도 않는 게 뭐 이쁘다고 이 난리인지."

손이석은 결국 망치를 내려놓았다.

그의 볼멘소리에 난 어색하게 하 하, 웃었다.

"잘 지내셨죠?"

"살아 돌아온 지 꽤 됐다고 들었 는데. 이제야 얼굴을 비치는구나."

"꽤 바빴거든요."

"죄다 그 핑계지."

툴툴 대면서도 내가 찾아오자 능 숙하게 찻잔을 내온다.

"그런데, 그 뭐냐. 그 녀석은 같이 오지 않은 모양이구나."

"다정 언니요? 언니는 아직도 밀 린 업무가 많아서요."

"에잉, 쯧. 아직 부족하니 올라와 서 수련을 마저 끝내야 할 텐데."

글쎄다. 혹시나 싶어 오기 전에 물 어봤더니 기겁을 하던데.

-나, 나나나는 괜찮아! 바쁘기도 하고. 물론 파이로도 보면 좋겠지 만, 가면 또 몇 시간이고 풀무질에 망치를 두드리고 또 두드리고, 쉬는 시간도 없이…….

이것저것 중얼거리던 모습이 영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손이석의 훈련이 많이 힘들긴 한 가 보다.

"어디. 온 김에 총이나 한번 보여 주거라."

나는 노이트를 꺼내 그에게 건넸 다. 손이석은 노이트를 자세히 관찰 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봐도 훌륭한 총이야."

"상태는 좀 괜찮은가요?"

"괜찮고말고. 무기란 자고로 현역 으로 활발히 활동할 때 가장 빛나 는 법이다."

슬쩍 미소 짓는 얼굴엔 흐뭇함이

가득했다. 천생 대장장이인 탓인지, 그는 노이트를 볼 때면 자식을 보 는 부모처럼 굴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무기 공 급은 왜 끊으셨던 거예요."

"윤강백 그 녀석이 또 고스란히 일러바쳤구만?"

"일러바치다뇨. 무기 공급에 차질 이 생기니 당연히 알 수밖에요."

다녀와서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 가 바로 무기 공급의 단절이었다.

장기간 이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물자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큰 낭패를 볼 뻔했다.

"진즉 말하지 않았더냐. 처음부터 이 계약은 오로지 널 보고 시작한 것이라고. 난 세상살이 돌아가는 데 관심 없다!"

그가 콧방귀를 뀌며 단호하게 대 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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