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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67화 (278/361)

267화

챕터: 조연의 발악

권성민이 나른하게 웃었다. 보기 드물게도 권성민은 무척 여유로워 하고 있었다.

늘 누군가를 쫓아가기 급급했던 그가, 드디어 제 표적을 정확하게 맞혔을 때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 다.

"내가 준비한 게 호문쿨루스 하나 뿐인 줄 알았다면 오산이지."

"무슨 짓을 한 거야."

불안감이 엄습했다.

류라임이 사라진 걸 더 일찍 눈치 챘어야 했는데!

"아무 것도."

"웃기지 마."

"정말이야. 난 손끝 하나 건들지 않았거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권성민이 뭔가 수를 쓴 것

만은 분명했다.

철컥.

내가 대꾸 없이 노이트를 들자 권 성민이 급하게 뒷말을 이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려줄까?"

"널 족치면 어떻게든 알게 되겠 지."

"아니. 설령 내가 죽는다 해도 돌 아오지 않을걸? 그럼 정말로 영영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고."

나는 노이트를 손에 쥔 채 멈춰 섰다. 권성민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 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말을 모두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그럼? 어디로 갔는지 순순히 알 려주겠다고?"

"못 할 것도 없지. 옛정도 있는 데."

"헛소리는 그만하고. 어디로 갔는 지 얼른 말해."

권성민이 씨익 웃었다.

마치 내가 이 말을 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 주인이신 베아트리스 님은 인 간들의 '정신'에 관심이 많으시거 든."

이거 시작부터 불안했다.

류라임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정신 적으로 불안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다.

지금이야 비교적 사회화도 잘 되 었고 정상인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그녀의 이면을 나는 이미 엿본 적 있지 않은가.

잔혹한 연쇄 살인마로 살아가던 류라임을 말이다.

"류라임……이라고 했던가. 그 인 간의 정신세계가 꽤나 흥미를 자극 한 모양이야."

"그래서? 본론부터 말해."

"성질이 급하네. 마음이 조급하긴 한가 봐."

권성민이 잔뜩 이죽거렸다. 노이트 를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그냥 이대로 쏴버리고 싶지만 겨 우 참아냈다.

"이 녀석들과 내가 다른 점이 뭔 데?"

" 뭐?"

"……이제 와선, 별 의미 없는 얘 기지."

그가 작게 중얼거린다.

딱딱하게 굳었던 얼굴이 언제 그 랬냐는 듯 능글맞게 변한다.

"그 여자는 지금 베아트리스 님께 서 가지고 놀고 계시거든. 한번 장 난감을 가지면 망가질 때까지 갖고 놀아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이라. 얼 마나 걸릴진 나도 잘 모르겠는걸."

"'망가질 때까지'? 그런……

정로운의 낯빛이 사색이 됐다.

정확히 어떤 의미의 '망가짐'인지 는 몰라도 적어도 좋은 꼴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권성민이 절망의 틈을 비집고 들 어왔다.

"내가 바로 베아트리스 님의 충실 한 심복이잖아? 내가 도와준다면 베아트리스 님의 놀이 공간에 접근 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뭘 원하지?"

"얘기가 빨라서 좋다니까."

권성민 이 자식이 호의를 베풀 리 는 없으니 뭔가 원하는 바가 있겠 지.

헤실헤실 웃는 낯짝이 두껍기 그 지 없다.

"아주 간단한 일이야.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시간 끌지 마."

매섭게 반응하자 권성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원하는 건 언제나 하나였 어."

그의 눈동자가 알 수 없는 욕망으 로 번들거렸다.

"너 말이야. 한서하."

저번에 권성민과 마주했을 때, 그 가 했던 말은 기억하고 있다.

나와 동등한 위치에 서고 싶어 이

모든 것들이 시작됐다던 이야기 말 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최악의 패만 뒤집었고, 그 결과 그는 인류의 배 신자가 되어 내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만족할 건데."

"그 잘난 한서하가 무너지는 게 보고 싶거든."

정로운이 울컥하는 게 느껴졌으나 눈빛으로 그를 말렸다.

권성민을 자극해서 좋을 게 없었 다.

"제3자는 빠져. 이건 나랑 한서하

사이의 일이니까."

정로운이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여기선 일단 권성민의 말에 따르 는 게 최선이란 걸 그도 아는 탓이 었다.

"간단해. 마지막으로, 너랑 내가 맞붙어 보는 거야."

"내가 이기면 베아트리스에게 가 는 통로를 열어줄 건가?"

"물론이지. 반대로 내가 이기 면…… 네 영혼을 내게 줘."

그는 상상만 해도 황홀한지 눈빛 이 반쯤 풀려있었다.

"네 영혼을 아름답게 박제해서 매 일 들여다볼 거야. 결국 패배한 너 를 전리품으로 삼고, 영혼을 가공해 서 작은 구슬로 만들어도 좋겠네."

"미쳤군."

적어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제 영혼을 팔아넘겨 혹마법사가 된 시점부터 이미 정상인이라고 보 긴 어렵겠지만.

"좋아. 해보자고."

처음부터 내게 선택의 여지는 없 었다.

"쉽지 않을걸? 왜냐면 베아트리스

님께서 내게 무한한 힘을 허락해주 셨거든……

파지직!

그의 뿔 사이로 정전기 같은 게 일어났다. 마력이 시각화될 정도로 넘쳐난다는 증거였다.

"베아트리스 님께선 지금 장난감 을 가지고 노느라 바쁘실 테니. 얼 마를 가져다 써도 모르실 거야."

"남의 힘을 도둑놈처럼 훔쳐다 쓴 다는 말을 꽤 자랑스럽게 하네."

"끝을 모를 정도로 깊은 우물에서 마력을 퍼 올리는 느낌을 알아?"

뿔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권성민의 오른팔을 감싸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그래. 내가 마력을 끌 어다 쓰는 게 아니라, 마력의 바닷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느낌이야!"

휙!

쿠구구구궁!

권성민이 손짓하자 내가 서 있던 자리가 순식간에 반파됐다.

땅이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 럼 움푹 패어 있었다.

'저걸 잘못 맞았다간…… 그야말로 곤죽이 되겠는데.'

등을 타고 오싹 소름이 돋았다.

"정로운 씨. 지원군이 오고 있을 겁니다. 지원 온 헌터들에게 상황 설명과 좌표 공유 부탁드립니다."

"예? 하지만 제가 가면……

" 어서요!"

콰과과광!

나는 권성민의 공격을 한 번 더 피하면서 고함을 질렀다.

권성민이 바라는 게 그와 나의 싸 움이라면 정로운을 여기서 놀리고 있는 게 오히려 손해다.

"……금방 돌아올게요!"

탓!

정로운이 결연한 얼굴로 뒤돌아섰 다. 권성민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 린다.

'공간 간섭'

나는 권성민의 정면으로 이동했다.

철컥.

"어딜 가려고."

탕!

한 발 쏘긴 했지만 권성민의 손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나부터 상대해야지."

내 말에 권성민이 정로운을 힐끗 보더니 이내 내게로 시선을 고정했 다.

"그깟 총으론 나한테 상처 하나 못 낼 텐데."

"과연 그럴까?"

태연한 척하지만 권성민의 약점은 이미 드러난 지 오래였다.

마력의 원천. 그의 끝없는 힘의 우 _물

이마에 돋은 저 뿔!

저 뿔만 어떻게 없앨 수 있다면 권성민도 모든 힘을 잃고 초라하게변할 테니까.

'공간 간섭!'

탓, 뒤로 물러서자 권성민이 잔뜩 이죽거렸다.

"도망치기만 해선 승부가 안 나지. 급한 건 내가 아니라 너 아니었 나?"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고."

철컥.

나는 다시 한번 총을 장전했다.

* * *

"흐흐흠〜."

이그니스는 작게 콧노래를 불렀다. 그가 생각하기에, 오늘은 참 기분 좋은 날이었다.

"찾던 녀석도 바로 만났고, 새로운 녀석도 찾았고! 베아트리스의 장난 감한테 다른 재밌는 녀석을 빼앗기 긴 했지만. 이 정도면 만족스럽지."

암, 그렇고말고.

이그니스는 자문자답을 하면서 고 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상하단 말이야. 전엔 분명

이렇게 하면 그 사슴 녀석이 나왔 던 것 같은데."

이그니스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로 순진무구하게 묻는다.

"아직도 사슴이 나올 기미가 보이 질 않아?"

이그니스의 시선 끝에는, 신도아가 엉망이 된 채로 그의 손에 매달려 있었다.

날갯죽지가 꺾이고 화염에 그을린 채로, 작게 몸을 떠는 게 고작이었 다.

슈우욱!

팍!

바닥에서 솟아오른 식물 줄기가 이그니스를 노렸지만 그것도 이그 니스의 화려한 손놀림 끝에 죄다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소용없다는 걸 알 때도 된 것 같 은데."

이그니스의 시선이 정확하게 수풀 사이로 숨어있는 표연원 일행에게 닿았다.

화르륵!

그의 문신 사이로 화염이 한 번 더 제 몸집을 불렸다.

"좀 더 절박하게 만들어 줘야 하 나?"

뜨거운 열기에 신도아가 게슴츠레 하게 눈을 떴다.

이글거리는 불길이 눈앞에 어른거 리자, 본능적인 두려움이 몰려왔다.

"우선은 그럼 한쪽 날개부터……

투둑.

투두둑.

그때였다. 빗줄기가 그의 손끝을 두드린 것은.

갑작스러운 빗물에 이그니스가 저 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구름 하나 없는 하늘에서 빗물 만 주룩주룩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 아하."

그 기묘한 광경에 이그니스는 다 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 짓이구나."

이그니스와 눈이 마주친 경진아가 흠칫 몸을 떨었다.

물의 마법사, 경진아.

그녀의 고유 스킬 '비바라기'가 발 동된 것이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잔재주일 뿐인

걸. 나한테 평범한 빗줄기는 아무 소용 없으니까."

이그니스의 말대로였다. 빗물은 그 의 몸에 닿는 순간 곧장 기화하고 있었다.

이그니스의 몸에서 계속 수증기가 발생하고 있을 뿐. 그 이상의 피해 는 없어 보였다.

화려한 불길도 그대로였다.

이그니스가 그들의 무의미한 발악 에 실망을 표하려는 순간. 표연원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웃어?'

기이함을 느낀 것도 잠시.

이그니스는 제 손등에서 따끔거리 는 통증을 느꼈다.

" 어?"

빗방울이 두드리는 곳에서부터 통 증이 시작됐다.

처음엔 단순히 따끔거리는 수준이 었지만 통증은 점점 강도를 높여만 갔다.

순식간에 빗줄기가 송곳처럼 느껴 졌다.

"아, 아파…… 아프잖아! 왜? 그 냥, 일개 물방울일 뿐인데……

혼란스러워하는 이그니스에게 표 연원이 보란 듯이 빈 병들을 흔들 었다.

"그냥 물이 아니야. 성수지."

"뭐? 성수?"

"그래. 알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는 세계 최다 성수 보유국이거든."

그걸 이그니스가 알 리가 없었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지구에 도 성수가 있냐고 되물었다.

"아쉽지만 널 바로 녹여버릴 정도 의 양은 아니어도, 고통을 줄 정도 는 되지."

경진아가 표연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성배가 아니라 직접 성수 를 생산하진 못해도 이미 존재하는 성수를 자신의 능력에 섞어 사용하 는 재능은 탁월했다.

한정된 양의 성수를 희석해서 사 용하느라 각각의 빗방울들이 강력 한 신성 작용을 갖고 있진 않지만, 이그니스에겐 이 정도로도 충분한 고문 기구였다.

"그리고 이 성수는 너한테만 효과 가 있는 게 아니거든."

이그니스는 그제야 극심한 고통

탓에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을 인식해냈다.

지척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살기였 다.

"우리한텐 탁월한 치료제이기도 해서 말이야."

우드득!

다음 순간, 매의 발톱이 이그니스 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날개가 꺾였던 매가 다시 비상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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