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65화 (276/361)

265화

류라임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자 하늘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성수다. 몸부터 회복해."

신도아가 안부 인사도 없이 대뜸 성수부터 내밀었다. 쓸데없는 말이 오갈 시간이 없었다.

나 역시 별말 없이 성수를 받고는 품에 있는 표연원에게 먹였다.

"연원아! 정신 차려봐!"

원우태가 신도아의 발톱에 매달린 채로 소리 질렀다. 정로운도 경진아 와 함께인 채였다.

" 저들은?"

"같이 가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 하더군."

원우태와 경진아.

이 둘은 표연원의 절친한 친우로 여러 번 합을 같이 맞춘 동료였다.

"어지간한 헌터들보다 실력이 나

아.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지경이니 급한 대로 데려온 것뿐이 야."

"알아요. 이 셋이 다음 세대의 중 심이 될 거란 얘기가 돌고 있단 거."

그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신입들 이었다.

" o으." - 丁그..

성수가 효과가 있었는지 표연원이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성수 여분이 더 있죠?"

내 말이 끝나자마자 신도아가 성

수를 건넸다.

나 역시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기 때문에 곧장 성수를 벌컥벌컥 마셨 다.

"그래서. 상대는?"

"마왕과 마왕의 최측근. 이렇게 둘 입니다."

"생각보다 더 심각하네요."

정로운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도 마왕의 저력을 이미 몸소 체 험해본 바 있었다.

"이번엔 사전에 준비한 것도 없는 데. 이대로 후퇴하는 게 낫지 않을

까요?"

"우리가 물러서면 민간인들은요?"

내 물음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도망치면, 이 도시를 벗어 나 다른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몰라 요."

그렇게 되면 잡기 어려워지는 건 둘째 치고 희생자들이 수없이 발생 할 거다.

"녀석들이 노리는 건 나랑 표연원 헌터입니다. 적어도 우리 둘은 여기 남아야 해요."

"너희 둘을?"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죠."

이그니스와 권성민이 왜 우리 둘 을 노리는지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슬슬 폭발의 여파가 가시고 있었 다. 놈들이 일어나 다시 공격을 재 개할 때가 됐단 말이었다.

"우리 부대가 제일 앞에서 맞대응 합니다. 기동성이 좋으니 그게 나아 요."

그리고 시선을 돌려 원우태와 경 진아를 바라봤다.

"둘은 뒤에서 서포트하는 데 집중 해주세요."

"네, 넵!"

" 연원아."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표연원 이 번쩍 눈을 떴다. 아까부터 정신 을 차리긴 한 것 같았다.

"다시 일어날 수 있겠어?"

"……할 수, 있어요."

쩍쩍 갈라진 목소리로 대꾸한다.

흐릿한 눈동자 안에 연두색 빛이 감돌고, 손등을 가득 채운 문양이 은은하게 빛을 냈다.

"좋아. 이그니스 상대로 오더는 네 가 내리는 거야. 할 수 있겠지?"

"네……!"

"대신 근접전에 능하고, 경험이 많 은 신도아 씨가 함께할 거야."

내가 눈짓하자 신도아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류라임 씨, 정로운 씨. 두 분은 저랑 같이 움직이죠."

"네!"

"좋아요!"

팀이 완전히 둘로 나뉘었다.

이그니스를 상대할 이들은 표연원, 경진아, 원우태 그리고 신도아.

권성민은 나, 류라임 그리고 정로 운 이렇게 셋이 상대할 거다.

밸런스는 나쁘지 않다. 경진아와 원우태는 둘이 합쳐 한 사람 몫을 해낼 테니 인원 배분도 이 정도면 됐다.

"류라임 씨. 폭탄은 얼마나 남았 죠'?"

"아까 대부분 터뜨려서 얼마 남진 않았어요."

아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나 는 좌중을 둘러보며 건투를 빌었다.

"살아서 다시 봅시다."

다들 굳은 의지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과 마왕의 보좌관을 상대로, 고작 7명.

승산이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해내야만 했다.

"켁, 으브틉!"

이그니스는 퉤퉤 입 안에 들어온 흙더미를 뱉어냈다.

화염 속에서 태어난 그는 폭발로 인한 대미지를 거의 받지 않았으나,대신 폭발의 여파로 바닥을 구른 탓에 기분이 영 나빴다.

"으으음〜. 이걸 어쩐다."

게다가 희뿌연 연기가 가득해서 사방이 분간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동료들인가? 이거 재밌게 됐는 데."

기척을 느껴보니 한두 명이 아니 었다.

이 폭발도 아마 그들의 소행일 터 였다. 나쁘지 않은 수법이다.

"기다려줄까? 말까?"

자기들끼리 뭔가 대책을 짜고 있

는 것 같은데, 하며 작게 중얼거렸 다.

이그니스는 이내 조금 인내심을 갖기로 했다.

그들이 치밀하게 준비해서 이그니 스를 놀라게 하면 할수록 그의 즐 거움 또한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 정도 면 됐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이그 니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르륵!

그는 하늘을 향해 불꽃을 쏘아올 렸다.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나는 이곳에 있으니 올 테면 와보 라는 도발.

긴장감 서린 공기가 흘렀다. 그리 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투가 시작됐다.

슈우우욱!

탓, 화르륵!

바닥에서 솟아오른 식물 줄기에 이그니스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 랐다.

넝쿨에 발목이 붙잡히자 순도 높 은 화염이 불태워버린다.

이그니스는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 로 곧장 달려갔다.

그러나 그의 앞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퍼억!

탓!

단단한 날갯죽지가 이그니스의 가 슴팍을 밀어냈다.

가볍게 뒤로 착지한 이그니스는 상대방을 살폈다.

"인간치고는 신기한 모습이네. 하 피?"

",매'다.

신도아가 냉담하게 대꾸했다.

이그니스가 재밌다는 듯 씨익 웃 었다.

"이렇게 생긴 인간은 처음 보는데. 너도 꽤나 재밌어 보여."

"덤벼. 상대해주지."

슈우욱!

신도아의 발밑에서 식물 줄기들이 솟아올라 넘실거렸다.

"나 혼자는 아니겠지만."

* * *

연기 속에서 권성민을 찾아냈을 땐, 그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였다.

"발밑 조심해요."

내 말에 정로운이 반사적으로 바 닥을 내려다봤다가 화들짝 놀라 움 찔했다.

"이, 이게 뭐죠?"

"마법진인가요?"

검붉은 빛으로 번들거리는 마법진 은 썩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 다.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작자가 이 마에 뿔이 돋은 인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흑마법사입니다. 마법사긴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마법사들과 는 많이 다를 겁니다."

흑마법사.

그들은 기본적으로 마법사들보다 폭발적인 위력을 내며, 잔혹한 수단 을 이용해 살상력 높은 마법을 사 용한다.

지금까지 권성민이 보여준 건 마 력을 응축한 마력파들이었지만 이 제부턴 완전히 얘기가 다르다.

마법사란 기본적으로 마력을 섬세 하게 조각하는 이들이니까.

"이 농축액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희생됐는지. 짐작이 나 할까."

권성민은 품 안에서 진한 보라색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꺼내 보였다.

한눈에 봐도 불길한 물건이다.

"인간 황제의 허가 아래 변방에 있던 영지 세 개 정도를 정리했지. 이 농축액 하나면, 귀찮게 제물을 준비할 필요도 없거든."

똑.

농축액 한 방울이 마법진 위로 떨 어진다.

화아악!

그러자 마법진이 환하게 빛이 나 면서 바쁘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마법진이지?'

그는 베아트리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심복이니 그녀의 주종목과 연 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저건……?"

마법진 위에서 꾸물거리면서 생성 된 건 마치 슬라임처럼 보였다.

흐물흐물한 액체 같은 것이 점성

을 띠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그 모습도 잠시.

슬라임은 순식간에 모습을 바꿨다. 촤르륵 겹겹이 쌓아올려지더니 사 람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 여자아이?"

그냥 여자아이도 아니었다.

내가 익히 아는 누군갈 닮아있었 으니까.

황급히 고갤 돌려 정로운을 바라 보니 그는 무척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로나?"

정로나. 정로운의 하나뿐인 여동 생.

병상에 누워 있는 그의 하나뿐인 혈육이었다.

"왜 로나가 여기에……. 분명, 오 늘 수술에 들어간다고……

"정신 차려요. 진짜 동생이 아니에 요!"

내가 고함을 지르자 정로운도 그 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다.

"여동생인 모양이네. 안타깝게도, 몸이 약한가 보지?"

권성민이 작게 히죽거렸다.

"자. 제대로 소개할까. 내가 만든 '호문쿨루스'! 만들어진 인간! 적군 이 정신적으로 가장 아끼는 대상을 모티브 삼아 모습을 바꾸지. 재밌지 않아?"

"헛소리하지 마. 본모습은 아까 그 슬라임 같은 모습이잖아. 만들어진 '인간'이 아니라 그냥 인간 흉내를 내는 몬스터겠지."

권성민은 정로나의 모습을 한 몬 스터의 턱을 우악스럽게 쥐었다.

정로운이 저도 모르게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겉모습은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

거든. 머리로는 알아도 사랑하는 여 동생을 칼로 찌르기가 과연 쉬울 까?"

"윽.."

정로운이 미처 부정하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권성민의 손길이 정로나에게 닿는 걸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 분히 고통스러워 보였다.

"뒤로 물러나 있어요."

나는 정로운에게 경고했다.

"도움이 되지 못하는 건 괜찮아도 방해가 되면 안 됩니다."

그가 스스로 정로나의 모습을 한 몬스터를 해치지 못하는 건 괜찮지 만. 그것 때문에 팀의 전투에 악영 향을 줘선 안 된다.

내가 매섭게 경고하자 정로운도 수긍하고는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 섰다.

그러자 표적을 잃은 몬스터가 고 개를 갸웃, 하더니 시선을 돌린다.

"어라."

류라임이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 리를 냈다.

나도 이번엔 뭐라 말해야 할지 가

늠하기가 어려웠다.

류라임과 눈을 마주했던 몬스터가 대번에 내 모습으로 변한 탓이었다.

"충성심이 대단도 하셔라."

그 모습이 아니꼬운지 권성민도 있는 힘껏 비꼬는 말투로 대응했다.

"류라임 씨. 공격할 수 있겠어요?"

"서하 님 모습을 한 저 몬스터를 요'?"

류라임이 얼마나 나를 따르는지 알기에 반쯤은 기대를 접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류라임도 어렵다고 하면 그

냥 내가 싸울 작정이었다.

혜원 언니의 모습으로 변한다 하 더라도 나는 제대로 상대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할 수 있어요!"

"정말이죠?"

"네! 단번에! 한 치의 주저도 없 이!"

나는 좀 떨떠름한 표정이 됐다.

공사 구분을 제대로 하는 건 좋지 만, 내 모습을 한 몬스터를 망설임 없이 찌를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듣 는 것도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마침 잘됐어. 단순히 모습을 바꾸 는 것뿐이면 쉐입쉬프터를 데려오 면 그만이지. 안 그래?"

"그럼?"

나는 나와 똑 닮은 얼굴을 하고 서 있는 호문쿨루스를 바라보며 되 물었다.

"또 뭐가 특별한 게 있…… 윽!"

갑자기 불에라도 덴 것처럼 화끈 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아랫배를 움켜쥐고 신음하자 권성 민이 보란 듯이 피 묻은 단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프지?"

칼에 찔린 건 내가 아니다. 저 호 문쿨루스지.

그런데 그 통증은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통증을 느낀 부위를 살펴 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설마…… 대상자와 감각이 연결 되어 있다고?"

"정답이야, 한서하. 상황 파악이 느리진 않네."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