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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62화 (273/361)

262화

곧게 뻗은 팔뚝에 잘게 근육이 붙 어 있었다. 정갈한 손톱, 기다란 손 가락 마디.

그건 누가 봐도 인간의 팔이었다.

하지만 단언할 순 없다. 톨룩엔 인 간과 유사하게 생긴 종족들이 많으 니까.

저 팔의 주인이 엘프일지, 마족일 지, 인간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었다.

-우우우우우!

-케르륵! 케륵!

몬스터들이 드러난 팔을 향해 경 배하듯 고개를 조아렸다.

기이한 장면이었다. 가느다란 팔뚝 하나에 흉악한 A급 몬스터들까지 모두 숨죽이고 있었으니까.

나 역시 잔뜩 긴장한 채로 그 광 경을 지켜보았다.

- 끼루룩?

정체 모를 팔뚝이 손가락으로 한 괴물을 가리켰다.

C등급의 붉은깃인면조였다.

사람의 얼굴을 단 거대한 새가 자 신을 가리키는 게 맞냐는 듯 고개 를 갸웃한다.

-끼룩! 까루룩!

인면조가 후다닥 날아 그레이트홀 근처로 다가갔다. 그러자 팔이 한 번 더 까딱한다.

가까이 오라는 듯한 제스처에 인 면조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더 가까이 날아갔다.

- 콰득!

팔뚝이 순식간에 인면조의 목덜미 를 낚아챘다!

- 끼루루룩!

인면조도 황급히 퍼덕거려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우드득, 살벌한 소리가 크게 울렸 다.

'저건……!'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붉은깃인면조의 깃털이 검게 물들 고 얼굴만 사람을 닮았던 게 주욱 늘어나 인간의 상반신을 달았다.

위는 인간이면서 아래는 새인 종 족.

하급 마족에 속하는 '하피'였다!

- 나의 왕이시여!

C급 마물에서 마족으로 변화한 하 피가 기쁘게 제 주인을 칭송했다.

- 제 영혼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팔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스르륵 그레이트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순간에 신분 상승한 하피만 신 이 나서 하늘을 빙글빙글 돌았다.

'이번 게이트의 주인은…… 마족인 가.'

그것도 그냥 마족이 아니다.

마물을 순식간에 마족으로 만들 정도면 마족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 할 거다.

'최소 마왕의 수족. 아니, 어쩌면 마왕일지도 몰라.'

이번 게이트는 정말 쉽지 않은 싸 움이 될 것 같았다.

* * *

-마왕. 또는 그 직속 수하라.

이운우가 심각한 목소리로 대꾸했 다.

-우린 이미 마왕을 둘 마주한 적 이 있잖아.

검은 화산 게이트 얘기였다. 그곳 에서 우리는 벨제부브와 센티피드 를 상대했으니까.

-하지만 검은 화산 게이트도 등급 이 SSS는 아니었어.

"그야 게이트의 수준을 정하는 게 그 우두머리뿐인 건 아니니까."

-그럼?

"지금 사태를 봐."

나는 이운우에게 대답하면서 노이 트로 뒤를 겨눴다.

탕!

- 키에엑!

하급 몬스터 하나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도시 한복판에서 몬스터들이 뛰 어놀고 있잖아."

-'브레이크 아웃'이 등급에 반영됐 다……. 가능성은 있어.

브레이크 아웃.

말 그대로 던전 내 몬스터들이 바 깥으로 쏟아져 나온 지금 사태를이르는 말이다.

외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할 정도 로 유례없는 이상 현상이다.

-하아. 일단은 구조 작업에 집중 해줘. 국제연합에서 각국의 헌터들 을 파견 나가게 해준다 했으니까, 조만간 게이트 클리어 작전 회의가 있을 거야. 그 전까지 민간인들부터 모두 구출하는 게 우리의 목표야.

"알겠어. 샅샅이 수색하고 있으니 까 걱정 말고."

삑.

무전을 끝내자 몬스터의 피 냄새 를 맡고 몰려온 놈들이 있었다.

-위이이이잉!

모기를 닮은 몬스터들이 떼를 지 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날갯짓 소 리가 요란하게 사방을 울린다.

철컥.

나는 노이트를 장전하고, 하늘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쏟아지는 불꽃'

슈욱!

총알 하나가 허공을 가르며 날았 다.

그리고 이내 불꽃비가 사방을 휩 쓸었다.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곳에 남은 건 몬스터들의 잔해뿐이었다.

'한 번 더 생존자들을 찾아볼까. 몬스터라도 보이면 잡아다 대피소 에 건네주면 되니까.'

나는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후두둑.

나는 떨어지는 석판 가루를 맞아 내며 아이에게 물었다.

"괜찮니?"

아이는 겁에 질린 채 소리조차 지 르지 못하고 있었다.

구조가 불안정해서 자칫 내가 기 어 올라갔다간 천장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상냥한 표정을 지으 려고 노력하면서 아이에게 한 번 더 물었다.

"이쪽으로 올 수 있겠어?"

아이는 며칠을 굶었는지 홀쭉해진 뺨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

" 엄마가……

목소리가 잔뜩 갈라졌다.

"엄마가…… 나오지 말랬어요 아 »

이 어린아이가 혼자 화장실 환풍 구를 열고 천장에 들어갔을 리는 없으니, 누군가 아이를 이 안에 밀 어 넣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화장실 문 앞에 선명하게 나 있던 몬스터의 발톱 자국과, 바 닥을 구르던 여자의 시신도.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식을 살리려고 자기를 희생한

어머니였겠지.

"엄마가 이제 나와도 된대."

"……엄 D} 가요?''

아이가 작게 희망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가 밖에 있어요?"

나는 차마 그 말에 진실을 답하지 못한 채 말을 돌렸다.

"가자. 밖으로 나가야지. 배도 많 이 고프잖아."

깡마른 팔목이 꼭 나뭇가지 같았 다. 아이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천천 히 기어왔다.

"천천히…… 옳지."

품에 안긴 아이가 터무니없이 가 벼웠다.

나는 아이의 눈을 가린 채 집 안 을 빠져나왔다. 단란했던 가정의 흔 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더욱 안타 까뭤다.

"이제 어디로 가요?"

"대피소로."

"거기엔 엄마도 있어요?"

"……글쎄다."

아이는 두어 번 더 엄마를 찾더니 그대로 까무룩 잠들었다.

곤히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서 나 는 대피소로 향했다.

쿠구구궁!

한 손으로 철판을 들고 안으로 들 어서자마자 나는 뭔가 이상함을 감 지 했다.

'피비린내.'

지하철 내부가 온통 피비린내로 진동을 했다. 불안감이 저릿하게 가 슴을 울렸다.

나는 천천히 대피소를 향해 걸었 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을 해야 했다.

피 냄새가 짙어질수록 걸음이 빨 라졌다. 나중엔 거의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대피소 문 앞에 섰을 때, 나도 모 르게 숨이 턱 막혔다.

" 으응?"

퉤,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하고 서 녀석이 날 바라봤다.

"뭐야. 인간이 제 발로 걸어 들어 왔네?"

인간을 닮은 상체에 새의 몸통이 달린 마족.

하피.

녀석이 대피소를 완전히 박살내고 사람들을 학살한 뒤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난 역시 운이 좋다니까."

씨익, 드러난 이빨 사이사이로 핏 물이 배어 있었다.

"네가......

나는 시체 더미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퉁하게 대꾸하던 중학생 아이와, 날 알아보고 살갑게 굴던 회사원과 감사 인사를 건네던 박병관까지.

"네가 한 짓이야?"

"혹시 아는 사이였어? 이거 미안 해서 어쩌지."

하피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다.

"내가 다 죽여버렸는데."

대피소는 줄입문을 수동으로 조작 할 수 있다.

그리고 대피소는 문 사이에서 암 호를 말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안과 밖의 소리가 어느 정도 들리 게 설계되어있다.

마지막으로 하피는 목소리로 인간

을 조종하는 정신계 스킬을 쓸 줄 안다.

그 모든 퍼즐들이 한데 맞춰지자 대피소가 어이없게 뚫린 이유가 훤 히 드러났다.

"그때 널 죽였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죽여? 날?"

하피가 찢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웃었다.

"너 제법 웃기는 소릴 하는구나, 인간!"

철컥.

더 이상의 잡담은 필요 없었다. 나 는 노이트를 장전하고 놈에게 겨눴 다.

"홍. 총이라. 그래도 제법 무장을 한 모양이지만, 이 몸은 무려 '마 족'이라 자가 치유력이……I"

탕!

콰과과과광!

놈의 뺨을 스쳐 지나간 탄환이 광 음을 내며 뒤 벽을 무너뜨렸다.

기고만장하게 미소 짓던 놈의 표 정에 살짝 금이 갔다.

"뭐야. 그 총……. 아이템? 주제에

꽤나 좋은 아이템을 쓰잖아."

대답해줄 이유는 없겠지. 나는 대 꾸 없이 한 번 더 총을 장전했다.

철컥.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녀석이 다급하게 외쳤다.

"아이템은 반칙이지!"

탕!

"라고 할 줄 알았어?"

총알이 허공을 꿰뚫었다.

하반신에 달린 새 몸통은 장식이 아닌 모양이다. 녀석은 천장에 드러난 파이프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총이라 해도 못 맞히면 의미가 없거든!"

맞는 말이다.

나는 품 안에 있던 아이를 살며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푸른 불빛 이 동공 안에 서린다.

그리고 한 번 더 눈을 깜빡이는 순간.

"어?"

철컥.

놈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었

다.

어리둥절해하는 목소리와 함께.

탕!

총성이 울렸다.

"허억, 허억."

놈이 가쁜 숨을 몰아쉰다. 가까스 로 피해냈다.

의식하고 피한 건 아닌 것 같고 아마 반사적으로 도망친 모양이다.

"너, 너 뭐야? 인간 주제에 대체 무슨……

상투적인 대사를 들어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허공을 향해 뒤돌려차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동시에 공간 간섭 을 발동한다.

퍼억!

허공을 가르던 발차기는 녀석의 안면에 적중했다.

"으윽! 이럴 리 없어!"

놈이 제대로 현실을 부정하며 내 게 달려들었다. 인간 따위에게 한 대 얻어맞은 걸 믿을 수 없다는 눈 치였다.

"하아압!"

달려드는 녀석의 품 안으로 파고

든다.

놀란 눈을 하는 녀석의 입에 그대 로 총구를 집어넣었다.

탕!

"커……허억.…"

녀석이 바닥을 기었다. 머리가 박 살났지만 마족의 생명력 덕인지 아 직 숨이 끊어지진 않았다.

"말......도......

말도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 이다. 녀석은 자신의 죽음을 믿기 어려운지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그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물에

서 마족이 되는 행운을 누렸는데, 한순간에 다 물거품이 됐으니까 말 이다.

허무할 법도 하지. 내가 그런 것처 럼.

턱.

놈의 머리 위에 발을 올린 뒤 한 번 더 총을 쏴 마무리했다.

탕!

그게 끝이었다.

죽은 이들이 돌아올 리 없으니 복 수가 끝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아이를

다시 품에 안은 채 무고한 시신들 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눈을 채 감지 못한 이들에게 마지 막 예의로 눈을 감겨줬다.

차례차례 움직이다 박병관을 마주 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박병관의 핏발 선 눈을 감겨주며, 나는 마음 깊이 그의 명복을 빌었 다.

나는 대피소에 남은 식량을 챙긴 뒤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미 며칠을 굶었을 아이가 잘못

되기 전에 가장 가까운 대피소에라 도 가서 아이의 상태를 살펴야 했 다.

* * *

"D-15가......

인근 대피소의 행정관이 내 얘길 듣고 심각한 얼굴을 했다. 남 일처 럼 느껴지지 않은 탓이겠지.

"일단 보고를 올려두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곧이어 의료진이 아이의 상태를

다 살핀 뒤 진단을 내렸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습니다. 영양실조 상태니 당분간 잘 먹기만 하면 될 겁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여기는 식량 상태가 어떻죠?"

"원래는 일주일 치뿐이었습니다."

그래. '원래는' 말이다. 그 말투가 제법 묘했다.

내가 이전 대피소에서 식량들을 챙겨 온 덕에 여유분이 많이 생겼 을 것이다.

"이제는 한 달하고도 3일 정도 더

버틸 수 있겠군요."

누군가의 죽음이 다른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곤 한다.

행정관의 얼굴에 슬며시 기쁨의 빛이 서렸다.

"잘된 일입니다. 당장 식량이 부족 한 게 아니니 이 아이도 금방 회복 할 거고요."

"예. 그렇겠네요."

나는 그것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 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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