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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58화 (269/361)

258화

챕터: 시간의 수레바퀴

커피에서 모락모락 김이 났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타 온 백목 련이 단번에 커피를 원샷했다.

"……목말랐어요?"

"아뇨. 혈중 카페인 농도가 좀 부 족해져서요."

카페인이 무슨 필수 영양소인 것 처럼 말한다.

그러나 뒤에서 좀비처럼 기어다니 는 박노아를 발견했기 때문에 조용 히 입 다물었다.

"귀환한 지 좀 된 걸로 아는데. 생 각보다 늦었네요."

"사정이 좀 있었거든요."

납치, 감금 비슷한 일을 당했다고 말할 순 없어서 대충 둘러댔다.

백목련도 자세히 캐묻고 싶진 않 은 것 같았다.

"그보다 저한테 알려줘야 할 내용

이 있다고요."

"네. 게이트 안에서 출토된 비석이 하나 더 있거든요. 아직까지 비밀리 에 연구 중인데, 그래도 비교적 성 과라고 할 법한 해석이 나와서 불 렀어요."

게이트에서 출토된 비석은 하나같 이 진귀한 내용을 품고 있었지.

이번 비석이 어떤 진실을 알려줄 지, 나는 좀 긴장됐다.

"아직 해석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 만 핵심적인 내용은 이거 같아요."

「오염이 극에 달하면 방법은 하 나뿐이니. 시간의 수레바퀴를 역으로 행하라.」

시간의 수레바퀴. 나는 이 내용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 '■세상이 타락하고 오염하여 그 끝이 보일 때, 시간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행하라.」

새하나교에서 발견한 내용이었는 데, 이 부분과 아주 흡사했다.

'그때는 이 시간의 수레바퀴가 날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뒤이은 해석을 보니 생각이 변했 다.

「시간의 수레바퀴는 신의 조각이

니, 멀고도 가까운 곳, 한 꺼풀 넘 어 도달한 곳에 있을지어다.」

'시간의 수레바퀴가 신의 조각이라 고?'

그러자 그동안 보고 들은 것이 모 두 짜 맞춰지는 것만 같았다.

비드리아의 예언, 새하나교에서 봤 던 예언석 그리고 이 비석까지.

이들이 가리키는 내용을 모두 종 합하면 아주 놀라운 사실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이제야 알겠어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톨룩이 왜 지구를 오염시키는 방 법으로 침범했는지. 비르디아가 했 던 말이 뭔지. 그 모든 걸요."

"대체 무슨 소리죠?"

백목련의 물음에 나는 차근차근 내 생각을 정리해서 들려줬다.

"생각해보면 이상하잖아요. 오염으 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지구를 침범 했는데, 게이트를 통해 지구를 오염 시키고 있는 게."

"그야 오염만큼 강력한 에너지원 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었 을까요."

"지금까지는 다들 그렇게 생각했 죠."

당장 오염이 턱 끝까지 차올랐으 니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장 편한 방 법을 선택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방금 새로운 가설이 떠올 랐다.

"오염시켜도 돌이킬 방법이 있으 니까 그랬던 거라면요?"

"……이 '시간의 수레바퀴' 말하는 건가요."

"네. 신의 조각, 그러니까 아이템 이잖아요."

백목련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슨 소린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지구로 넘어오기만 하면 그 아이 템을 찾아서 오염을 되돌리면 되니 까, 그래서 망설임 없이 지구에 오 염을 뿌렸다…… 하지만 그런 방법 이 있으면 그냥 톨룩의 오염을 되 돌리면 되……

백목련은 깨달음을 얻은 얼굴을 했다.

"……지구에 있는 거군요."

"맞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든 게 설명이 된다.

"그리고 그런 일이 가능한 아이템 이면, 당연히 SSS급 성물이겠죠."

"자아도 있을 테고요."

"비르디아가 말한 것도 그.럼 대충 이해가 가요."

-「성좌에 오르려는 욕심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으니.」

노이트는 성좌에 관심이 없다 했 으니, 누구의 욕심이겠는가.

"그냥 SSS급도 아닐 거예요. 성좌 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아이템이겠죠."

"그 아이템이 성좌에 오르려는 욕 심을 부렸고, 그게 모든 것의 시작 이었다……. 대체 무슨 시작이요?"

나는 백목련의 말에 말문이 턱 막 혔다.

차마 입 밖으로 낼 순 없지만 대 충 예상이 갔다.

'모든 것의 시작은 내 회귀였으니 까.'

이미 숨이 끊어졌던 내가 과거로 돌아와 한 번 더 살아가고 있는 것. 그 자체가 너무도 명확한 이상 현상 아니던가.

'아니. 애초에 내 회귀가…… 그 아이템에 의한 일이었다면?'

소름 돋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개연성 있는 얘기 였다.

'모래시계! 비르디아도 모래시계라 그랬고, 나도 모래시계를 본 적이 있잖아!'

화려한 모양의 모래시계를 회귀 전 기억을 엿보면서 봤던 적이 있 다.

그때는 너무 뜬금없는 등장이라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다.

w..한서하 씨'?"

백목련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불 렀다.

그러나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무 는 생각 탓에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제야 알겠어.'

노이트가 말한 바 있다. 인간의 영 혼을 잡아먹는 게 '격'을 올리는 지 름길이라고.

회귀 전의 내가 분명 그 모래시계 를 찾아갔던 거다.

-가능성은 적지만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힌트야.

환상이라기엔 현실적이고 내가 잊 은 기억이라기엔 너무 중요한 내용 이었던 기억들.

그래. 그건 분명 회귀 전 나였다.

이운우가 만류하는데도 나는 전쟁 을 끝낼 가능성이 있다며 강경하게 대꾸했었지.

'회귀 전의 나도 그 모래시계를 찾 아갔고, 모래시계는 내 영혼을 탐냈

던 거야.'

새하나교 때도 그렇고 여러 번 내 영혼이 남들보다 비대하단 얘길 들 었으니까.

성좌에 오르고 싶었던 모래시계는 내 영혼이 아주 먹음직스럽게 보였 을 거다.

그리고 내 영혼을 먹기 위해 '거 래'를 제안했을 거다.

'내용은 기억이 안 나. 하지만 결 국 그로 인해 내가 회귀했으니 까..

내 회귀와 관련된 모종의 거래였 다고 할 수 있겠지.

"이봐요. 내 말 듣고 있는 거예 요?"

그 순간 불쑥 백목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네. 죄송해요. 잠시 다른 생각 을 하느군}...

"뭐예요. 갑자기?"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보다 이 아이템. 위치까지 그 비석에 적혀있는 것 같나요?"

"으음…… 아마도요. 다만 정확한 위치가 적혀있는 건 아니고 무슨 수수께끼 같은 아리송한 말들뿐이

에요."

"그거면 돼요. 해석까진 얼마나 걸 리죠?"

내가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묻자 백목련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왜 그래요?"

"모르겠어요? 이 아이템이 전쟁을 끝낼 수도 있단 말이에요."

내 말이 끝나자 백목련은 퍼뜩 놀 란 얼굴을 했다.

"그렇네요……!"

그래. 애초에 전쟁이 시작된 건 다 름 아니라 '오염' 때문이었다.

지구의 오염 농도가 높아지면서 톨룩과 유사성이 높아졌고, 또 톨룩 의 오염과 지구의 오염이 서로 끌 어당기면서 전쟁 게이트의 동력원 이 되어주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먼저 이 아이템을 발견해서 써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지구의 오염은 다시 0으로 돌아 갈 테고 그럼 톨룩과의 연결도......

백목련이 낮게 속삭였다.

"완전히 끊기겠죠."

"맞아요."

그러니 이건 정말 파격적인 발견 이었다.

"해석까진 적어도 3달은 걸려요."

"더 당길 순 없어요?"

"으음……

백목련은 말없이 커피를 한잔 더 타와서 목구멍에 때려 넣듯이 원샷 했다.

"두 달로 하죠. 그게 최대예요."

"감사합니다."

위치를 알아낸다면 나는 다시 그 모래시계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아마 회귀 전의 나 역시 비슷한 수순으로 모래시계를 찾아갔겠지.

그렇다면 남은 의문은 하나다.

'대체 무슨 거래를 했길래 지구의 오염만 되돌아간 게 아니라 시간이 통째로 돌려진 거지?'

게다가 내 기억은 거의 그대로 남 아있는 채로 말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기억이 지워졌 다.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한두 가지 떠올린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회귀 전 기억을 모른 채로 살아간단 말이다.

'내가 거래의 주체라서?'

아니면 이것까지도 거래의 내용에 포함된 걸까?

'대체 무슨 거래를 한 거야, 회귀 전의 나는.'

어차피 둘 다 '나'지만 지금은 조 금 회귀 전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모든 건 그 모래시계를 찾아가면 더 명확해지겠지.'

그래. 회귀 전의 나도, 끝내 내가 그 모래시계를 찾아내 도달하리란 걸 예상했을 거다.

그러니 그곳에 뭔가 안배가 숨겨 져 있겠지.

그도 아니라면 거래의 승리 키워 드가 그곳에 있던가.

'비르디아도 비슷한 얘길 했었지.'

-「욕심을 버릴 때, 승리가 그대 와 함께하리라.」

그때는 그 승리가 톨룩과의 전쟁 과 관련된 말인 줄 알았는데.

혹시 모래시계와 한 모종의 거래 와 관련된 말인 걸까.

'욕심을 버리라니. 무슨 욕심?'

난 객관적으로 탐욕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돈을 쓰는 데도, 모으는 데도 큰 관심이 없고. 식탐이 있는 것도 아 니다.

대체 무슨 말을 의미하는 건지 도 통 알 수가 없었다.

"박노아 씨."

"옙……

뒤에서 기어 다니던 박노아가 백 목련의 부름에 순식간에 이족보행 을 시작했다.

"오늘부터 다시 철야예요."

"네? 하지만 지난 한 달 동안도

계속 철야를……

"불만 있나요?"

백목련이 반쯤 이를 악물고 묻자 박노아가 울며 겨자 먹기로 괜찮다 고 외쳤다.

"할 수 있습니다!"

"좋아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해 야죠."

완전 악덕 고용주다.

'……고용 노동부에 신고해야 할 건 이쪽같은데.'

백목련도 초췌한 몰골이었지만 박 노아는 그야말로 당장 쓰러질것같았다.

원래는 성좌에 대해서 자세히 연 구하려고 들어온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백목련의 충실한 심복이 된 모양이었다.

"후후후…… 박노아 씨를 120% 활용하면, 2주를 줄일 수 있죠. 거 기다 제가 150% 정도 효율을 끌어 내면……

끔찍한 소릴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니 얼른 도망가고 싶어졌다.

박노아가 간절한 눈빛으로 날 바 라봤지만, 나는 애써 모르는 척했 다.

'최대한 빨리 알아내서 전쟁을 종 식시키는 게 나으니까.'

그렇게 합리화를 하면서 시선을 피하자, 박노아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얼굴을 했다.

"흠흠.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 다."

"벌써 가게요? 한서하 씨도 일을 도와주면 3시간 정도는 더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요!"

급기야는 나까지 동원하려고 하는 바람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시게요……

박노아가 처절한 목소리로 묻기에 나는 애써 웃으며 다음 행선지를 대답했다.

"테오도르에게 갈 겁니다."

"아. 그 연금술사. 그분껜 어쩐 일 로?"

"실험을 도와준 게 있는데 그 결 과 보고를 아직 안 주어서요. 안 그래도 얼른 오라고 성화에요."

"프로토 타입 초기 테스트는 중요 한 일이죠. 얼른 가보셔야겠네요."

백목련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습니 다."

"한서하 씨이이이……

박노아의 기나긴 신음을 모르는 체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휴우. 나도 바쁘게 살긴 하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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