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챕터: 귀환자의 일상
"제 딸아이처럼 여겼던 아이를 한 순간에 잃은 제 심정을 누가 알겠 습니까……. 그 아이가 남긴 유품까 지 이렇게 잃을 순 없는 노릇 아닙 니까……!"
한 중년 여인이 손수건으로 눈물 을 찍어내며 겨우 말을 이었다.
진심으로 제 조카를 잃은 슬픔에 잠긴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찰칵, 찰칵.
그 훌륭한 연기에 찬사를 보내는 것처럼 카메라 플래시가 여러 차례 터졌다.
"하지만 역천 측은 모든 논란을 부정하고 있는데요. 서로 대화나 협 의는 일절 없었던 겁니까?"
"현재 재판 중이긴 하나 유서가 효력을 발휘하면 유산은 그대로 역 천 길드장이 가지게 될 거란 말이 많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 니까?"
기자들이 자극적인 기사를 뽑아내 기 위해 열성을 다해 질문을 쏟아 냈다.
"저는 돈 욕심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궁하지도 않고요. 다만 그 어린 것이 목숨 걸고 모은 돈을 피 한 방울 안 섞인 여자가 가로채는 꼴을 볼 수 없을 뿐입니다!"
"그럼 만약 재판 결과가……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맨 앞에 앉아 있던 기자가 후다닥 짐을 챙겨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어서 뒤편에 있던 기자들이 우 르르 사라졌다.
"아니. 이게 지금 무슨……
한창 언성을 높이다가 당황스럽다 는 듯 말끝을 흐린다.
남아있던 기자가 의아해하며 휴대 폰을 꺼내 들더니 안색이 휙 변하 면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 이봐요! 아직 내 말이 다 끝 나지도 않았는데 이게 뭐 하는 ...
"지금 그게 대숩니까? 하, 미치겠 네."
" 뭐요?"
기자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
으며 응수했다.
"특종이 터졌단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듯 바쁘 게 손가락을 놀린다.
"특종? 아니, 내 조카가 죽은 것보 다 더한 특종이 어딨다고! 내 조카 유산을 그 파렴치한 것들이 빼앗으 려 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특종이죠."
기자가 아리송하게 툭 말을 내뱉 었다.
이윽고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 며,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여자에게 쏘아붙였다.
"당신 조카. 한서하 헌터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이니까."
"뭐……?"
그 얘길 들은 여인의 얼굴에 비친 것은 살아 돌아온 조카의 소식에 감격한 표정이 아니었다.
도리어 당혹스러움에 가까웠다.
"갑자기 그 애가 왜……?"
"저라고 뭐 압니까. 나 참. 박 기 자가 잘 도착했어야 할 텐데……
기자는 괜히 아까운 시간을 날렸 다며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텅 빈 공간에 중년의 여인 홀로 덩그러니 남았다.
덜컹, 덜컹!
병원 문이 부서질 것처럼 흔들렸 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며 정문 을 틀어막고 있는데도 몰린 인파가 상당했다.
"저 사람들은?"
이운우가 뒷문을 통해 몰래 들어 오면서 힐끗 그들을 쳐다봤다.
"여기저기서 왔습니다. 기자도 있 고, 팬이라는 사람도 있고, 뭐 어디 방송국에서 왔다고도 하고……
"난리군요."
"난리죠."
이운우를 안내하던 병원 관계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어디서 샌 건지……
아니. 애초에 갑작스레 길 한복판 에서 나타나 목격자가 너무 많았다.
어떻게든 입을 틀어막으려고 노력 했지만 결국 무의미했다.
"다른 사람들은 왔습니까?"
"홍염 길드장님께선 급한 일이 있 어 나중에 찾아오겠다 하셨고, 역천 길드장님도 게이트에 들어가 계셨 던지라……
"금방 을겁니다."
"클리어까지 예상 소요 시간이 일 주일도 넘게 걸리는 게이트라고 하 던걸요. 그곳 총 책임자로 가셨으니 당장 오시기는 힘들 겁니다."
"아뇨. 당장 을 겁니다."
이운우는 아주 단호하게 대꾸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올 테니, 역 천 쪽 말곤 출입 전부 통제해주세
요."
"예. 알겠습니다."
저벅, 저벅.
이운우는 드디어 병실 문 앞에 섰 다.
후우, 작게 심호흡을 했다.
죽지 않았을 거란 희망을 잡고 달 려왔건만. 실제로 살아있는 한서하 를 보려니 왜 이렇게 떨려오는지.
달칵.
문고리를 돌리면서 두려움이 용솟 음쳤다.
'이 문을 열었는데 모든 게 신기루
였던 것처럼 안에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아니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냥 한서하와 닮은 것뿐인 일반 인이면?'
그도 아니면 이런 가능성도 있었 다.
'내가 지금 환각을 쓰는 몬스터에 게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레태흐 태드의 달콤한 꿈일 수도 있잖아.'
이운우는 문고리를 쥐지 않은 반 대편 손으로 작게 번개를 생성해 자기 자신에게 쏘아냈다.
파지직, 번쩍!
한쪽 팔이 화상을 입고 정신이 번 쩍 들 정도로 통증이 일었다.
'깨어나지 않았어.'
이만큼 육체적인 통증을 가했는데 도 깨지 않았다면 환각일 확률은 낮았다.
두근, 두근.
마치 귓가에서 심장이 뛰는 것처 럼 심장 소리가 크게 울렸다.
스으윽.
문이 열리자 하얀 병실 한가운데 에 놓인 침상이 보였다.
환자복을 입은 채로 반쯤 침상에 걸터앉은 여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허리춤에는 늘 그랬던 것처럼 노이 트 리볼버가 달려있었다.
사라졌던 그 모습 그대로 되돌아 왔다.
마법처럼.
"아, 이 길드장님 오셨군요."
있는 줄도 몰랐던 의사가 그를 반 겼다.
어쩐지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검사 결과는 어떻죠?"
"모두 정상입니다. 오히려 건강한 쪽에 속하죠."
"그거 다행이군요..
뭐라고 내뱉고 있는지도 잘 모를 지경이었다.
의사는 무어라 더 말을 이은 뒤 이만 가보겠다며 방을 나섰고, 비로 소 방 안에 이운우와 한서하 단둘 이 남았다.
"오랜만이네."
한서하는 너무도 태연하게 인사했 다.
죽었다 돌아온 사람치곤 지나치게
뻔뻔한 낯빛이었다.
"너..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이 상황을 수없이 상상했고, 몇 번 이고 바라왔지만 직접 마주하자 말 문이 턱 막혔다.
한서하를 찾아 헤맬 때는 만나면 반드시 온갖 잔소리를 해주겠노라 다짐했고, 정말로 돌아왔다는 소식 을 들었을 땐 아무래도 좋으니 살 아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게 하얗게 새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너, 정말……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이운우는 한 서하 앞에서 무너지듯이 주저앉았 다.
돌아오자마자 길 한복판이라 당황 했던 것도 잠시.
나는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건지 모 를 청사 측 헌터의 안내에 따라 병 원으로 옮겨졌다.
이런저런 건강 검진까지 모두 받
은 다음에야 이운우를 만날 수 있 었다.
반가운 마음도 잠깐이었다. 그가 생각보다 절절하게 내게 애원했다.
"두 번 다시 이러지 마."
"응. 안 그럴게."
"내가 후회하게 하지 말아줘."
이운우의 보라색 눈동자가 눈물을 머금고 영롱하게 빛났다.
-막을 수 있었는데 널 그냥 가게 내버려둬서 평생 후회할까 봐 불안 하다고.
그가 날 막아섰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그는 이렇게 감정에 호소하 며 날 붙잡았었지.
그는 회귀 전 내 죽음을 목격한 다음 간혹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 이곤 했다.
"네 책임이 아니라니까."
"알고 있어……
눈물에 반쯤 젖어든 목소리로는 설득력이 없었다.
그 아름다운 빛깔에 흘려 손가락 으로 눈물을 훔쳐내자 이운우가 놀 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혜원 언니는?"
곧이어 꺼낸 이름에 이내 팍 인상 을 찌푸리긴 했지만.
"아직 게이트 안에 있을 거야. 지 금쯤 소식을 들었으니 어떻게든 돌 아오고 있겠지."
"어떻게든, 이라……
그것 참 의미심장한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 밖은 온통 난리야."
이운우가 손가락으로 창가를 가리 키길래 슬쩍 커튼을 젖혀서 눈만 빼꼼 내밀었다.
"와……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병실이 여기란 걸 알면 아마 건너 편 건물에 잠복해서라도 이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 할 거다.
나는 누구랑 눈 마주치기 전에 황 급히 커튼을 쳤다.
"이게 무슨 일이야?"
"말하자면 복잡한데……
"아니. 실종 헌터가 살아 돌아오는 일이 드물긴 해도 아예 없는 건 아 니잖아?"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 었단 말인가.
임무 도중 사망한 헌터를 직접적 으로 언급하는 일은 지양하고 있으 니, 내 사망 소식도 시간이 흐르면 서 잊혔을 텐데.
이운우도 영 설명하기 곤란하단 눈치였다.
"뭔데 그래?"
"하아. 네 가족에 대한 얘기야."
이운우가 그 말을 꺼내자마자 상 황이 대충 이해가 갔다.
테오도르에게 언질을 받은 적도
있었으니까.
"네 유가족들이 네 유산을 걸고 넘어졌어."
" 아하......
이거 참. 짜증나게 구는군.
사실 돈이야 내게 큰 의미가 없다. 돈을 쓸 시간이 없으니까.
다른 헌터들은 더 좋은 무기를 사 거나 더 좋은 집을 사는 데 돈을 쓸지도 모르지만, 내겐 어느 것도 의미가 없었다.
노이트가 있었고 돌아갈 곳은 혜 원 언니네 집이면 충분했으니까.
그래도 내가 번 돈이니 기왕이면 내 가족과도 같은 이들에게 돌아가 길 원했는데.
"물론 법적으론 네 유서가 있으니 역천 쪽으로 가는 게 맞지만, 상대 편에서 여론전을 펼쳤거든."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갔겠네."
"덕분에 네 사망 소식이 연일 뉴 스를 장식하고 있던 참이었지……
그래서 이렇게까지 반응이 뜨거운 모양이다.
남들이 보기엔 얼마나 웃기겠는가.
죽은 헌터 유산 문제로 한창 박
터지게 난리였는데 그 죽은 헌터가 살아 돌아왔다니.
아주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되겠지.
"뉴스 좀 보고 싶은데."
"자극적인 기사들이 많아. 상대방 이 언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했고, 너도 알다시피 반헌터주의인 언론사가 많아서 좀 편향적인 내용 도 많고."
"알아. 그래도 봐야겠어."
이운우는 영 탐탁지 않다는 표정 이었다.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그래
도 혹시 모르니 좀 더 안정을 취하 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내 가족에 대한 일이잖아."
물론, 내 혈육 말고 혜원 언니와 연원이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내가 이런 문제엔 한없이 단호하 단 걸 그도 알았는지 조용히 TV 전원을 틀어준다.
-……속보입니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던 한서하 헌터가 생환했다 는 소식입니다. 최근 이슈가 됐던 한서하 헌터 유산 논쟁도 이로써 끝을 맺게 됐는데요…….
-유가족과 역천 길드가 서로를 명
예 훼손으로 고소한 바가 있는데요. '허위사실 유포죄'와 '모욕죄'인 만 큼, 어느 쪽의 말이 진실인지 밝히 는 게....
뉴스를 두어 개 보니 상황이 어떻 게 돌아가는지 대충 파악됐다.
그냥 난리를 친 수준이 아니었다.
혜원 언니를 붙들고 진창으로 끌 어들이려고 악을 썼다, 아주.
나는 머리가 차갑게 식는 걸 느꼈 다.
"이운우."
"왜?"
그가 불안하다는 듯 날 바라봤다.
"나도 열어야겠어."
그가 작게 고개를 저었지만, 내 결 심은 여전했다.
"열자고, 기자회견. 나도 할 말이 많은데."
이운우가 이마를 짚었다. 벌써부터 골머리가 아픈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