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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49화 (260/361)

249화

"도대체 거기서 뭘 하는 건지

백목련은 작게 중얼거렸다.

"성좌들이 뭐라 하는지 더 들은 건 없죠?"

"네. 아직은요."

"뭐라도 들리면 바로 알려줘요."

박노아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 다.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백목련도 꼼짝없이 한서하가 죽은 줄 알았을 거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비록 사적인 대화를 자주 나눈 편 은 아니지만, 백목련에게 한서하는 믿음직한 비즈니스 파트너였고 함 께 진리를 파헤치는 동료였다.

지금 한서하에 대한 잡스러운 소 리가 옮겨 다니는 것도 짜증스러운 데.

만약 그게 정말로 고인에 대한 얘 기인 줄 알았다면 스트레스로 쓰러 졌을지도 모른다.

그 '성좌'라는 이들은 지구뿐만 아 니라 톨룩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그래서 백목련은 박노아를 통해 한서하의 행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 톨룩에 가 있는 걸까요?"

"직접 들었다면서요."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좀 터무 니없는 얘기잖아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긴 하다.

게이트에서 실종된 헌터가 갑자기 톨룩에서 나타나다니.

진위 여부를 떠나서 진짜라 하더 라도 배신자가 아닌지 의심해야 하 는 수준이다.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한서하라서 가능할 수도 있겠단 생 각이 드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하하……. 어떻 게 거기까지 갔는진 몰라도 말이에 요."

그 이름 석 자가 뭐라고.

백목련은 이제 한서하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크게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우리는 그저 믿고 기다리면서 우 리가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수밖에 요."

비전투직의 설움이라면 설움이다.

목숨이 위태로운 일은 없지만, 반 대로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도 없었다.

역천은 한서하의 시신을 찾기 위 해 동분서주하고, 노이트 리볼버의 흔적이라도 캐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하는데.

백목련은 자리에 앉아서 연구를

계속하는 것 말곤 선택지가 없었다.

한서하의 생존을 알리려면 박노아 의 '고장 난 라디오'부터 성좌까지 줄줄이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뼈아프긴 했다.

"톨룩의 고대어는 아직까지도 해 석의 여지가 분분하죠. 우리는 최대 한 이 비석에 새겨진 글이 뭔 지…… 정확히 알아내는 걸 목표로 합시다."

"넵!"

백목련은 고개를 들어 눈앞의 비 석을 바라봤다.

최근에 게이트에서 출토된 유물로, 아이템 감정 결과 이름이 '예언석' 이라고 표기되어 큰 논란을 빚고 있는 물건이다.

국립 게이트 연구소로 일단 넘겨 졌지만 아직까지도 해석에 큰 난항 을 겪고 있었다.

"분명하게 해석된 글자들을 조합 해 보면…… '수레바퀴', '신', '조 각' 그리고 '오염'.

그 단어들의 조합만으로도 이게 심상치 않은 내용을 내포하고 있단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신의 조각."

에고를 가진 아이템들이 '격'을 쌓 아 벽을 넘으면 들어서는 신의 경 지, 성좌.

이를 암시하는 것처럼 톨룩은 아 이템을 신의 조각이라 불러왔었다.

'오염과 그 신의 조각이 무슨 연관 성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자세한 건 이 비석을 전부 해석하 면 더 명확해지겠지.

어쩌면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 른다.

백목련은 머리카락을 뒤로 묶어 꽁지머리를 만들고, 테가 얇은 안경을 썼다.

"오늘도 야근입니다."

"으으윽……

박노아가 반쯤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불만 있나요? 박노아 씨는 아직 고대어 해석에 약해서 비교적 쉬운 파트만 배분해드렸는데요."

"아, 아닙니다!"

백목련이 날카롭게 응시하자 박노 아는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곧게 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

으로 다시 이마에 맨 라이트를 켠 다.

"누구는 목숨 걸고 싸우고 있으니, 우리도 목숨은 아니더라도 수명은 걸어야죠."

"네, 맞죠……. 그렇죠."

박노아가 울음을 삼키며 대꾸했다. 그러나 백목련은 여전히 가차 없었 다.

"그럼 성과가 나올 때까지, 퇴근은 없습니다."

* * *

찰칵, 찰칵! 찰칵!

팡, 팡!

카메라 셔터 소리가 사방에서 울 려 퍼지고, 플래시가 팡팡 터졌다.

표혜원은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걸 애써 감췄다.

건수 하나 제대로 물어 어떻게든 자극적인 기사를 쓰기 위해서 기자 들이 바글거렸다.

"우선 길드 '역천'은, 고인……의 명예를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이들에게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먼

저 알려드립니다."

찰칵찰칵!

표혜원 옆에서 조연호가 입을 열 자마자 다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더불어 역천 측은 고인에게 유서 작성을 강제한 적이 없으며 해당 과정은 어디까지나 직업 특성상 관 례적인 것으……

"유가족 측과 얘기가 다른데요?"

기자 하나가 말을 끊고 질문을 던 지자, 무례한 말들이 빗발치듯이 쏟 아졌다.

"이미 보호가 필요하지 않은 성인 이었던 고 한서하 헌터를 집 안으 로 들인 이유가 뭡니까?"

"청사나 홍염 같은 거대 길드에서 온 제안을 거절하고 역천을 선택한 점도 상당히 의아한데요! 관련해서 하실 말씀 없으십……!"

"한서하 헌터가 쌓아둔 재산의 규 모는 얼마 정도 됩니까? 추정되는 바로는 대략 삼십....*

웅성웅성. 제각기 하고 싶은 말을 꺼내놓느라 이리저리 뒤섞였다.

예민한 기감의 표혜원은 그 자체 로도 충분히 신경줄이 아슬아슬했다.

표혜원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조 연호가 먼저 나서서 상황을 수습하 기 시작했다.

"질의웅답은 공식 입장 발표가 끝 난 다음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무례 한 언사는 삼가주시기 바라며, 고인 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도……

"유가족들은 고의적인 방조였다고 주장하는데요!"

싸늘한 정적이 휼렀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맨 뒤에 서 있는 기자를 바라봤다.

아직 초보인지 앳된 얼굴의 기자 가 눈초리에 홈칫 놀란다.

그러나 이내 다시 용기내서 말을 이었다.

"한서하 헌터의 게이트 출입 기록 을 살펴보면 대부분 개인이 감당하 기 어려운 게이트거나, 그 난도가 상당한 곳으로 보입니다."

조연호가 말리기도 전에 마이크를 표혜원이 가져갔다.

"그래서요?"

표혜원이 싸늘하게 대꾸하자, 기자 도 심기가 불편했는지 살짝 얼굴을찡그린 채로 뒷말을 이었다.

"물론 헌터는 위험과 함께하는 직 업이지만, 지난 행적이 너무 과합니 다. 마치 누군가 한서하 헌터를 죽 음의 길로 밀어 넣는 것처럼 보일 정도……

"책임질 수 있습니까?"

" 예'?"

"그 말, 책임질 수 있냐고요."

차가운 분노가 비로소 그 이빨을 드러냈다.

"아니, 저는 어디까지나 게이트 출 입 기록에 의거해서 그렇게 해석될여지가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자……

"기왕이면 제 게이트 출입 기록도 한번 뜯어보세요. 어디 그게 살고 싶은 사람 기록인지, 아닌지."

조연호가 꾸욱 표혜원의 발을 밟 았지만, 근력이 부족한 힐러인 탓인 지 표혜원의 얼굴엔 미동도 없었다.

"원래부터가 게이트 사회라 뒤송 숭했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게 없 으니 다들 실감이 안 나시는 것 같 은데. 우린 지금 전쟁 중입니다."

"여태까지 다 잘 해결해오지 않았 습니까."

"예. 지금까진 잘 클리어해왔죠. 앞으로도 그럴진 모르겠지만."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자 표 혜원의 냉담한 어조가 뾰족하게 들 렸다.

"장례식 때 동료였던 류 헌터가 난동을 부린 일도 크게 화제가 됐 었는데요. 그게 한서하 헌터의 억울 한 죽음에 대한 무언의 항의 아니 었냐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에 맞춰 기자들의 질문도 수위 를 점점 높여갔다.

"게다가 하필! 관례적으로 작성한 유서가 역천 측에 유리한 내용뿐이

고, 어린 시절 그녀를 돌봤던 유가 족에 대한 내용은 일절 없는 게 아 무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유가족이란 사람들 이……

표혜원이 심상치 않은 말을 쏟아 낼 것 같은 기미가 보이자, 조연호 가 빠르게 마이크를 빼앗아왔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질의응답 은 공식 입장 발표 후에 있을 예정 이오니 잠시 기다려주시기 바랍니 다."

"논란으로부터 도망치는 게 능사 는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

해서 알 권리가 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 말입니다!"

"예. 이따 질문해주시죠."

조연호가 능숙하게 넘겨내자 기자 는 무어라 더 말하고 싶은지 입술 을 달싹거렸다.

그러다 이내 꾹 다물었다.

"그럼 이어서 공식 입장 발표가 있겠습니다. '역천'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그 뒤로 차분히 이어지는 말들은 모두 뻔하고 상투적인 말들이었다.

유가족들이 어린 시절 사진을 끌

어오고, 그 애가 어린 시절에 생선 구이를 참 좋아했는데 가난해서 잘 해주지 못한 게 아직도 너무 후회 가 된다는 등의 자극적인 사연을 팔아넘긴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었 다.

4서 히'이......'

표혜원은 문득 울컥 치솟는 것 때 문에 주먹을 꽉 쥐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직까지도 발견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허공에서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네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이런 수 모쯤은 얼마든지 더 견딜 수 있어.'

그러나 표혜원을 정말로 아프게 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혹 시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정말로 넌 죽었는데, 내가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아직 널 놓지 못 하는 걸까 봐. 내가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걸까 봐.'

표혜원은 좀처럼 두려운 것이 없 는 사람인데도, 가끔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면 몹시 가슴이 답답해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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