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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47화 (258/361)

247화

제복이 물에 젖어 뻑뻑한 소리를 내는데도 다니엘이 고집을 부렸다.

"하루 묵고 가죠. 이렇게 늦은 시 간에 손님을 밖으로 쫓아낸 걸 알 면 이사벨라의 명예에 흠집이 생길 테니."

"홀로 지내는 백작부인이 외간 남 자를 저택에서 재운 일이야말로 남

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딱 좋지. 난 그건 사양이라서."

번쩍!

콰과광!

번개가 내리치면서 일순 창문이 반짝했다. 뒤이어 사방이 뒤흔들리 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 졌다.

"정말로?"

다니엘의 얼굴이 꽤나 착잡해졌다.

밖은 여전히 비가 듬뿍 내렸고, 그 의 옷자락에선 빗물이 뚝뚝 떨어지 고 있었다.

이사벨라는 하녀의 부축을 받고 침실로 올라간 뒤였다.

"..잠시 비가 그칠 때까지만 신 세를 지도록 하지."

결국 다니엘도 백기를 들었다.

일단 평민 출신 기사인 그에게 이 늦은 시간 부를 만한 마차가 있을 리 없었다.

이사벨라의 자택까지는 멜몬드 백 작가의 마차를 타고 왔다지만, 이 날씨에 돌아갈 생각을 하면 눈앞이 깜깜할 거다.

다니엘은 하녀의 안내에 따라 갈

아입을 옷을 받고 가볍게 샤워를 했다.

일단 내가 이사벨라를 대신해 집 주인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가 이 저택 밖으로 나설 때까지 응 접해야 했다.

간단한 다과상이 차려지고, 다니엘 이 제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채로 나타났다.

고급스러운 비단옷을 걸쳐 입으니 영락없는 귀족가의 영식 같았다.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네 요."

" 하아......

다니엘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한숨을 내뱉었다.

"그 여자는 대체 이걸 어떻게 하 는지 모르겠군."

"그 여자?"

"이 집의 주인 말이다."

이사벨라를 부르는 호칭이 꽤 무 례하다. 둘 사이가 아직도 엉망인 모양이다.

"귀족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하하 호호 웃고, 은근슬쩍 떠보고……. 짜증스러운 일이야."

다니엘에게서도 은은한 알코올 냄

새가 났다.

달큰한 과일향이 뒤섞여 있는 게 포도주를 마신 것 같았다.

이사벨라만큼은 아니지만 그도 살 짝 술기운이 도는지 평소답지 않게 말이 많았다.

"그래도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 가지 않았습니까."

5황자의 세력도 이제 규모가 제법 커졌다고 들었다.

거기다 이사벨라와 다니엘은 개중 핵심 인물이고, 5황자는 세드릭 말 고 개인 호위 기사가 없어 다니엘 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을 텐데.

"그렇지……

다니엘이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 는 것처럼 아련한 눈빛을 했다.

그런데 평소엔 제복 때문에 보이 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실크 셔츠 사이로 낯익은 펜 던트가 보였다.

"그 펜던트. 감추지 않아도 되겠어 요?"

로스 가문의 문장이 떡하니 새겨 져 있는데 말이다. 들키기라도 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텐데.

다니엘이 흠칫 놀라며 펜던트를

손으로 쥐었다.

"..조심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조심했다기엔 너무 눈에 띄는데 요."

"여기엔 너와 나뿐이니까."

뭐, 그렇다면야. 이렇게 말했으니 그도 다음부턴 더 조심하겠지.

달칵.

다니엘이 펜던트를 열어 안을 보 여준다. 내가 가져다주긴 했지만 그 내용물은 처음 봤다.

"내 누님이다."

얼굴 부분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 사진이었다.

미안하지만 저 사진으론 알 수 있 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묘한 얼굴을 하자 다니엘이 쓰게 웃었다.

"그래. 나도 이젠 얼굴도 잘 기억 나지 않지. 너무 오래전에 헤어졌으 니까……

로스 가문은 모조리 몰살당했으니. 저 사진 속 주인공도 그 운명을 피 해 가진 못했으리라.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어."

다니엘이 작게 중얼거렸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 합니까?''

"어쩌면."

그렇게 말하면서도 썩 믿음직스럽 지 않은지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사실이라기보단 희망사항에 가까 워 보였다.

그러나 그가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니라 제 누님을 붙잡고 놓지 못 하는 데는 그 얄팍한 희망이 큰 몫 을 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얼굴도 모르면, 다시 만난

다 해도 알아볼 수가 없을 텐데요."

"아니. 가능해."

다니엘이 제 심장께를 툭툭 쳤다.

"로스 가문의 상징은 뼈에 새겨지 고, 피를 타고 흐르거든."

아하.

나는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다니엘이 로스 가문 사람이란 걸 알게 된 계기도 그것 때문이었으니 까.

로스 가문의 직계 혈통은 몸 어딘 가에 가문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고한다.

어디에 발현되는지는 사람마다 다 른데 회귀 전 다니엘의 시신을 수 습할 때 발견했던 바로는…….

'심장 부근.'

심장에 가장 가까운 가슴께에 그 문양이 새겨져 있다고 들었다.

"문양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지 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다른 이는 몰라도 로젤리타의 문 양이 어디 있었는지는 똑똑히 기억 하고 있어."

그가 왼쪽 귓불 뒤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귀 뒤쪽 목덜미에, 마치 귀걸이를 한 것처럼 새겨져 있었으니까."

그 위치라면 단번에 알 수 있겠다.

'살아서 만난다면 말이야.'

그렇게 눈에 띄는 곳에 문양이 있 다면, 살아남았을 확률은 더더욱 희 박하다.

"행운을 빌죠."

"고맙군."

그렇게 답하는 다니엘도 얼굴빛이 좋진 않았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란 걸 그도 알기 때문이었다.

"저는 곧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 갈 거예요."

"황태자 즉위식이 얼마 남지 않았 는데."

"그때에 맞춰 다시 찾아올 겁니 다."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안 된다 해도 가능하게 만들어야 지. 다른 이들보다 내가 움직이는 게 훨씬 낫다.

'테오도르도 내 영혼의 오염 때문 에 일이 수월해졌다고 했으니까.'

그때는 이렇게 갑작스레 넘어올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잘 설 명해둬야겠지.

테오도르가 겁주던 말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뭘까.

-네 팔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얌 전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거든.

꽤나 진심 어린 말이었지. 돌아가 면 한참 고생할 것 같다.

"여전히 생각은 바뀌지 않았나 봅 니다."

"무슨 생각?"

"혁명에 대한 생각 말입니다."

내 말에 다니엘이 곧장 인상을 찌 푸렸다.

가뜩이나 이 둘은 그 문제로 갈등 을 빚고 있었다.

마주치는 일이 잦을수록 둘은 물 과 기름처럼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탓에 자주 다투곤 했다.

"난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 아."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장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니까.

그가 마주했던 평민들은 죄다 귀 족을 향한 적의로 가득차서, 몰락귀 족인 그를 어떻게든 해치고 싶어 하는 이들이었을 거다.

그런 작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 으리란 기대는 안 하는 게 좋다.

"그리고 이사벨라도 자신이 틀렸 다고 생각하지 않지."

"공통적인 목표가 같다는 점이 중 요한 거죠."

"맞아. 그러니 내가 그 멜몬드 백 작부인의 저택에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겠어……

다니엘이 다 식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귀족다운 자태로 아주 완벽한 예 법이었다.

"결전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 요? 그날을 기다리며 한잔할까요."

와인도 아니고 그냥 차였지만 건 배하는 것처럼 내밀었다.

다니엘도 설핏 웃더니 내 찻잔에 자신의 것을 가볍게 가져다 댄다.

챙.

찻잔 부딪치는 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자 다니엘은 예법 따위 집어던지고 차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비가 그쳤군."

어느새 배경음처럼 깔리던 빗소리 가 멎어있었다. 잠깐 내리는 소나기 였던 걸까.

"이만 가봐야겠어."

다니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복은 아직 세탁 중일 텐데요."

"우선은 이 웃을 입고 가지. 나중 에 돌려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나야 상관없지만. 옷을 돌려주려면 둘이 다시 만나야 할 텐데.

내심 다니엘도 이사벨라를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닐지도 몰랐다.

정말 싫어했다면 다니엘은 비누칠 을 한 옷이라도 그냥 입고 간다고 말했을 거다.

다니엘은 저택을 나서기 전에 마 지막으로 이사벨라를 향한 충고를 덧붙였다.

"다음부턴 과음하지 않는 게 좋겠 어."

"전해주도록 하죠."

"주변에 호시탐탐 침을 흘리는 잔 챙이들이 많아서 말이야."

사교계의 가시 달린 장미. 그런 이 사벨라를 사모하는 이들도 셀 수 없이 많겠지.

그리고 그들이 다 선량한 사람은 아닐 테고 말이다.

"명심하라고 할게요."

"그럼, 이만."

그는 아닌 척 이사벨라를 향한 걱 정을 잔뜩 흘리고 떠나갔다.

탁.

문이 닫히자 나는 곧장 이사벨라 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가 술에 취한 채로 곯아떨어

진 모습을 확인한 다음 나도 내 방 으로 가려는 참이었다.

* * *

어두운 방 안에서 이사벨라가 침 대에 누워있었다. 화려한 드레스는 어느새 잠옷으로 바뀌어 있다.

늘 뿌리는 은은한 향유 사이로 술 냄새가 났다.

잘 자는 것 같아 이만 돌아서려는 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탁!

나도 모르게 이사벨라의 손을 빠 르게 내쳤다.

아직 술이 덜 깨서 몽롱한 이사벨 라가 한 박자 늦게 '아야' 하고 소 리를 냈다.

"미안."

이사벨라는 답이 없었다. 반쯤 풀 린 눈동자를 보면 아직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마저 자. 나도 이만 들어갈게."

"한서하."

의외로 발음이 멀쩡해서, 나는 한 번 더 이사벨라의 얼굴빛을 살폈다.

살짝 발갛게 달아오른 뺨이 그녀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상하다……. 난 분명, 무도회장 이었는데...

"지금은 집이야. 다니엘이 데려다 줬거든."

"다니에엘……'?"

진득하게 늘어지는 말투였다. 이사 벨라는 뒤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 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왜 그래. 뭐 필요한 거라도 있 어?"

"으응…… 답답해애……

이사벨라가 뒤척이더니 늘 손가락 에 끼고 다니던 화려한 보석 반지 를 빼냈다.

그러자, 이상한 게 눈에 들어왔다.

"……이사벨라."

" 으응?"

"그 목에 흉터. 언제부터 있었어?"

"으으웅?"

이사벨라가 이해하기 어려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런 어리광을 받아줄 여 유가 없었다.

"이사벨라. 대답해. 그 흉터, 언제 부터 있었어?"

"흉터? 몰라……. 그냥, 어릴 때부 터……

나는 머리가 차갑게 식는 걸 느꼈 다.

누군가 내 정수리부터 찬물을 쏟 아 낸 것처럼, 서늘한 감각이 등골 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사벨라가 벗어낸 반지가 마법아 이템이었는지 곧장 목덜미에 감춰 뒀던 화상 흉터가 드러난 것이다.

거기까진 이상할 게 없었다.

'화상 흉터가 콤플렉스일 수도 있 으니까.'

다만, 그 흉터 밑으로 살짝 보이는 것이 있었으니.

'일부분뿐이지만 이건…… 로스 가 문의 문장이잖아.'

펜던트를 찾느라 수십 번 눈에 익 혀 겨우 알아챌 수 있었다.

이 곡선, 이 모양. 밑 부분만 남았 지만 분명했다.

로스 가문의 문장이다.

'……왜 이사벨라에게, 이게……?'

더구나 위치가 참 공교롭게도 다

니엘이 말했던 그곳이었다.

귀 뒤편 목덜미. 잘못 보면 마치 귀걸이를 한 것 같은 부위.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딱 들어맞았다.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했다.

'다니엘이 찾는 잃어버린 혈육이, 이사벨라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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