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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46화 (257/361)

246화

"요정님……?"

엘리사가 겁먹은 얼굴로 내 안색 을 살폈다. 너무 굳은 얼굴로 있던 탓이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애써 웃어 보 였다.

"다른 얘기는 더 없었고?"

"네에. 그게 전부였어요."

"그래. 얘기해줘서 고마워. 근데 오늘은 내가 너무 늦었나? 졸리지 않아?"

내 걱정 어린 말에 엘리사가 용수 철이 튀는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멀쩡해요! 하~나도 안 졸려요!"

엘리사는 이내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했다.

"참, 요정님은 잠에 들지 않나요? 다른 요정님들도 전부 다요?"

"우리도 잠을 자기도 하지. 남들보

단 좀 적게 잘 뿐이야."

"요정님은 어디서 자요? 저희처럼 집이란 게 있는 건가요?"

"우리도 집이 있어. 남들이 발견하 지 못하는 곳에. 어딘지는 비밀이 야."

"우와!"

이게 요정인지 헌터인지 모르겠다. 내용이 섞여 뒤죽박죽이었다.

그래도 재밌는지 엘리사는 함박웃 음을 지었다.

달이 저물고 해가 다시 떠오르는 시간까지 우린 함께했다.

새액, 새액.

엘리사가 제풀에 지쳐 잠에 빠져 들 때까지, 나는 옆에서 그녀를 바 라봤다.

고른 숨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는 엘리사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 었다.

"잘 지내."

다음에 보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 기약 없는 약속인 데다, 엘리사가 날 기다리며 애달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리사를 안타까워하는 것과 별개

로, 그녀는 내 적인 에녹의 여동생 이다.

언젠가는 그게 서로의 발목을 잡 을지도 몰랐다.

'그보다…… 에녹이 죽음을 각오할 정도의 일이라. 좀 알아봐야겠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엘리사의 말에 의하면 최근 게이 트가 줄어서 에녹이 꽤 여유로웠던 것 같은데…….

'회귀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지.'

게이트 규모와 숫자가 줄어들더니, 여태까지 본 적 없는 거대한 게이트가 나타난 적이 있었다.

이른바, '블랙홀 게이트'.

모든 것을 흡수하고 빨아들인다는 그 이름대로,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 지 못한 헌터가 셀 수 없이 많았 다.

'이게 정말 블랙홀 게이트 출현 전 조라면, 인명 피해가 심각할 거야.'

회귀 전, 블랙홀 게이트의 규모는 거의 한반도 전체와 맞먹었다!

한반도에서 열린 게이트는 아니지 만, 한 국가와 맞먹을 정도의 규모 라 그 수많은 민간인들을 전부 대 피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더구나 게이트의 일부가 대서양까 지 잡아먹은 탓에 생태계가 파괴되 고, 일부 해협이 텅텅 비는 등의 부작용까지 나타났다.

'어떻게든 막아야 해.'

그래. 나는 게이트가 어디서 만들 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오로굴드의 탑.

그곳으로 갈 차례였다.

♦ * *

-흐음……. 막으려 해도 듣지 않 겠지.

"잘 아네."

테오도르가 드디어 날 제대로 파 악했다.

그는 작게 침음성을 흘리고는 뒷 말을 이었다.

-그다지 추천하고 싶진 않구나.

" 왜?"

-너도 본 적 있지 않느냐. 그곳에 서 벌어졌던 참극을.

테오도르는 담담하게 대꾸했지만, 나는 스테이지형 게이트에서 이미그 내막을 본 바 있었다.

-아아아아! 클로에! 내가, 내가 너

-그, 그럴 리가 없네. 그럴 리 없 어……. 분명 내가, 예를 차려 장례 를 치러달라고……. 따로 구분하라 고 명령을...

울부짖던 댄버, 당혹스러워하던 테 오도르.

그리고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 희 생당한 댄버의 딸, 클로에까지.

그보다 더한 비극이 또 있을까.

- 단순히 그것 때문만이 아니다. 그 인공지능은……. 클로에는, 오로 굴드 탑의 주인으로 성장했으니까.

전에 테오도르가 언급한 바 있었 다.

- 오로굴드의 모든 장치들이 그 애 의 의지대로 움직인다. 그 탑 자체 가 그 애의 수족과 다름없는 수준 이야.

"알아. 마왕이라도 오지 않으면 그 애를 상처 입힐 수 없을 거라 그랬 잖아."

- 알면서도 가려는 거냐.

어쩐지 혼나는 것 같아서 면목 없 지만, 그래도 가야만 했다.

"그래서 네게 연락한 거야. 돌아갈 준비를 해줘."

- 그곳에서 한번 죽을 생각이구나.

"죽지 않을 거야."

그걸 죽음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 가. 그저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 는 것뿐인데.

-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 인간 으로 이 실험을 하는 건 처음이고, 오염끼리 서로 끌리는 힘을 이용해서 지구에서 톨룩으로 넘어가는 덴 성공했지만 지구는 톨룩만큼 오염 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반 대는 성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에 가깝…….

또 테오도르가 혼자 이론적인 얘 길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는 거잖아?"

-그렇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네 영혼은 다른 이들보다 심하게 오염 되어 있으니까. 오염끼리 끌어당기 는 힘이 기본 원리니 그럴 수…….

나는 대충 알겠다며 넘기고는 당

부의 말을 남겼다.

"믿을게.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줘."

실패하면 톨룩에서 완전히 죽을 수도 있고, 영원히 이곳에서 살아가 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테오도르라면 어떻게든 해 낼 수 있을 거다.

그는 자신의 본신도 톨룩에서 지 구로 옮기지 않았던가.

-조심하거라. 나도 이미 경험해봐 서 알지만 완전한 죽음이 아니라 해도 그 감각은 꽤나 끔찍했거든.

" 알아."

레태흐태드의 손 안에서 숨이 끊 어졌을 때, 그 더러운 느낌은 똑똑 히 기억한다.

수없이 많은 목숨의 위협들을 넘 겨왔지만 진짜로 죽어본 건 처음이 었거든.

직후에 톨룩에서 눈을 뜨긴 했지 만.

-이 실험을 여러 번 겪은 후에 인 간이 어떻게 망가질지는 아무도 모 르는 일이다. 명심해. 인간은 단순 한 기계 장치와 달라서 아주 섬세 하게 다뤄야 한단 말이다.

죽음과 유사한 경험을 여러 번 겪 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진 않겠지.

어깨를 으쓱하자 테오도르가 호통 을 쳤다.

-넌 좀 더 자기 자신을 섬세하게 다룰 필요가 있단 얘기다!

"알겠다고……

그래도 지구로 넘어가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인걸, 하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삼켰다.

"오로굴드의 탑 위치부터 알려줘. 규모가 상당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째 코빼기도 보이질 않아."

이사벨라도 오로굴드의 탑 존재 자체를 잘 모르는 듯했고 말이다.

하긴. 그런 기술은 최대한 숨겨두 는 게 상책이다. 다른 이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든 악용하려고 애를 쓸 테니까.

-비밀스러운 곳이니……. 네가 지 금 어디에 있지?

"수도야. 이사벨라의 저택이거든."

-그럼 그다지 멀지도 않구나.

수도 근처에 있다고? 하지만 탑으 로 불릴 정도로 높은 건물은 본 적 이 없는데.

-본래는 마탑으로 사용되던 곳이 었지. 그 덕분에 신기한 장치들이 많거든. 시선을 왜곡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허가 없이 접근하는 방법은?"

테오도르가 살살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않았느냐. 그 탑은 이제 그 애의 수족이나 다름없다고.

테오도르의 말에 따르면 클로에는 이제 고작해야 10살 남짓한 어린아 이 외양을 하고 있을 텐데.

그 거대한 탑의 주인이 됐다고 생 각하니 어쩐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서 탑의 주인 이 모르길 바라지 말거라. 네 손등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를 네가 모 를 수 있겠느냐.

기감이 예민한 헌터가 그걸 모를 수 있을 리가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으로 몰래 잠입하는 건 허황된 일이니, 차라리 정면돌파가 낫겠다.

'내 능력을 활용하면 아예 정면돌 파도 아닐 거야.'

여기저기 신출귀몰하게 나타난다 면 클로에도 별수 없을 거다.

-오로굴드의 탑을 공격해 일시적 으로 게이트 생성을 멈추려는 계획 은 훌륭하다만…… 굳이 네가 그렇 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 이구나.

"무슨 소리야?"

-게이트가 생성되면 수십, 수백, 수천 명의 헌터들이 달려들어 해결 하면 될 일이지 않느냐.

태평한 얘기군.

아직까진 게이트가 대부분 어떻게 든 클리어되고 있으니 그런 얘길 하는 거다.

"클리어되지 않으면?"

- 2차, 3차 토벌을 계획하면 되겠 지.

"인적 자원은 한정적이야. 게다가 소모적이지. 전쟁이 얼마나 길게 이 어질지 모르는데 그런 낭비를 할 순 없어."

내가 단호하게 대꾸하자 테오도르 도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물었 다.

"그리고 기세가 심상치 않아."

차마 회귀 전에 겪었던 일을 얘기 할 순 없는지라 대충 그렇게 얼버무렸다.

- 돌아오면 각오해야 할 거야.

그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야말로 심상치 않았다.

드물게도 진지하게 화를 내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 네 팔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얌 전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거든.

"……그거 무섭네."

위험성이 조금 따르긴 하지만, 테 오도르의 기술력이 있으면 여기서 완전히 죽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지구로 넘어가려면 한번 죽음을 겪어야 하는 거, 지구의 위 협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쓰려는 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내 항변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는 지 테오도르의 반응은 싸늘했다.

-돌아오면 다시 얘기하지.

술 내음이 짙게 풍겼다.

달콤한 향수로도 가릴 수 없을 정 도로 진한 향이었다.

쏴아아아.

비가 쏟아져 내리는 밤, 이사벨라 의 먼 친척 신분으로 그녀의 저택 에서 머물다 한밤중에 끌려 나간 참이었다.

주인 없는 저택을 찾아온 손님이 있는 탓이었다.

추적추적 빗물이 흘러내리고 나는 쫄딱 젖은 채로 이사벨라를 부축하 고 있는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붉은 머리카락의 기사. 다니엘이었 다.

빗소리를 배경으로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차 한 잔 준비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내 부탁에 하녀가 먼저 자리를 떴 다.

기사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 말하 자 응접실에 나와 다니엘과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이사벨라만 남았 다.

"……술을 많이 마셨나 보네요."

"제법 마셨지."

의외의 조합이라 묻지 않을 수 없 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제법 친해진 모양인데요."

"그럴 리가."

다니엘이 딱 잘라 대꾸했다.

"같은 5황자 진영이니, 마주칠 일 이 많을 뿐이야."

"뭐, 그렇다고 말한다면야."

설득력 없는 이야기였다. 그는 이 사벨라를 마차에서 저택 안까지 데 려오는 동안 비에 흠뻑 젖은 채였 으니까.

다니엘은 호의 없는 상대를 위해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정 넘치는사람이 아니었다.

"가끔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쓸데 없는 추문이 돌아서 말이야. 황제 폐하의 귀에도 들어갔는지 나보고 데려다주고 오라고 명하시더군."

그가 내 생각을 꿰뚫어 본 것처럼 대답했다.

원치 않은 일이었다는 변명이 듬 뿍 담긴 답변이었다.

"이사벨라가 대책 없이 취할 때까 지 마실 사람은 아닌데. 어쩌다 이 렇게 된 거죠?"

"아직 중립인 이들 중 우두머리인 작자가 술 마시길 즐겨 하는 주당

이거든."

그렇다면야 안 봐도 뻔했다.

"애썼네요. 이사벨라도."

원해서 이렇게 잔뜩 마신 것도 아 니겠지. 분위기를 맞춰주다 보니 좀 과하게 마신 모양이다.

"늦었는데, 하루 묵고 가시죠."

내 제안에 다니엘이 빗물에 젖은 머리를 손으로 대충 털어냈다.

"아니. 이만 돌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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