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42화 (253/361)

242화

화려한 드레스 자락이 펄럭이고, 아름다운 선율이 연회장을 가득 채 웠다.

황제가 자신이 아끼는 기사를 5황 자에게 하사하는 수여식이 있는 날 이었다.

"'그' 다니엘 경이라니. 황제 폐하 께선 대체 무슨 생각이실까요?"

"대놓고 5황자 노선을 밟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내치신 걸지도 모르죠. 황제 폐하께서 3황자 저하 를 아끼시는 건 유명하지 않습니 까."

속닥속닥. 저마다 떠들어대는 말들 이 많았다.

대부분 황제와 다니엘의 의중을 가늠하려고 애쓰는 것들이었다.

"제국의 태양께서 들어오십니다! 다들 예를 갖추십시오!"

황제의 입장을 알리는 말에 다들 황급히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조아 렸다.

"……에녹 경이잖아."

"전쟁터를 전전하는 줄 알았는데. 언제 돌아온 거지?"

황제를 호위하는 기사가 간만에 보는 얼굴이라 다들 수군거렸다.

감출 수 없는 기다란 귀가 그의 종족을 드러내고 있었다.

황제의 하나뿐인 엘프 기사, 에녹 클라우드였다.

"고개를 들라."

황제가 엄숙하게 선언했다. 미리 준비된 선언문을 읊고는, 다니엘을 불렀다.

그가 예를 갖춰 한쪽 무릎을 꿇자 카를로스는 예식검을 역수로 쥐고 는 그의 양 어깨와 머리 위를 가볍 게 스쳤다.

"그대는 이제부터 나의 기사가 아 니고."

그는 울상을 한 채로 옆에 서 있 는 시온에게 검을 건넸다.

"새로운 주인을 섬길 것을 공식적 으로 허락하는 바이다."

카를로스가 힐끗 시온에게 눈짓하 자, 시온이 건네받은 검을 제대로 쥐고서 황제가 했던 순서와 반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대를…… 나의 기사로 임명하 노라."

목소리가 살짝 떨리긴 했지만 멀 쩡히 끝마쳤다.

그와 동시에 경건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새로운 주인을 섬기게 된 기사에 게 보내는 위로의 음악이었다.

"경축드립니다."

이사벨라 멜몬드. 사교계의 가시 달린 장미가 먼저 시온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멜몬드 백작부인."

"다니엘 경은 황제 폐하께서 가장 총애하시는 기사 아닙니까. 그런 기 사님을 저하께 하사하신 것을 보면, 폐하께서 저하를 많이 아끼시는 모 양입니다."

이사벨라는 좌르륵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시온의 뒤편에 서 있던 다니엘은 이사벨라와 눈을 마주치고 살짝 인 상을 찌푸렸다.

"다니엘 경. 오랜만에 뵙는군요."

"오랜만에 뵙게 되어 기쁩니다. 백 작부인."

다니엘이 가볍게 이사벨라의 손등 에 입 맞췄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싸늘하지 만, 주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도 록 미소로 눈동자를 감춘다.

"5황자 저하. 제가 드린 선물은 마 음에 드셨습니까?"

"무슨 소.아!"

-잘 알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제 충정을 증명하는 증거를 들고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저번에 다니엘이 찾아왔을 때 그 는 자신의 충성을 증명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는 황제가 아니 라 시온의 기사가 되었고, 다니엘이 나섰다는 반란군 진압은 어째선지 시온의 공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전부 자네가……!"

시온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애 써 뒷말을 삼켰다.

'내 평온한 한량 라이프를 방해한 주범!'

왜 밖에 잘 나가지도, 누굴 만나지 도 않는데 갈수록 일이 꼬이나 했 더니.

그 범인이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그 정도면 제법 정성을 들였더군 요."

반면에 세드릭은 흡족스러운 얼굴 로 고개를 끄덕였다.

"5황자 저하의 기사가 되기 위한 작은 성의 표현이었을 뿐입니다."

"훌륭한 마음가짐입니다."

세드릭은 이전과 다르게 다니엘에 게 상호 존대를 썼다.

같은 주군을 모시는 기사들끼리는 그 직위가 동등하기 때문이었다.

"고, 고생했군……

시온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니엘 의 노고를 치하했다. 반쯤은 울먹이 는 것 같았다.

"5황자 저하! 최근에 제가 동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귀한 찻잎을 구 했는데, 언제 한번 저희 저택에 들 러서……

"훌륭한 기사를 두셔서 마음이 든 든하시겠습니다! 제 기사들에게도 한 수 가르침을 주시면……

"저하! 첫 춤은 제 여식과 함께 주시는 것이...."

곧이어 기회를 엿보던 이들이 물 밀 듯이 몰려들었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5황 자에게 어떻게든 연줄을 대고 싶어 안달이 난 이들이었다.

"어, 어어?"

시온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세드릭 을 바라봤다.

그는 인자하게 웃으며 흐뭇한 미 소를 짓고 있었다.

"윽, 다니엘 경!"

"예. 저하. 부르셨습니까."

반대로 고개를 돌려 다니엘을 바 라보자 이번엔 말문이 막혔다.

세드릭과 달리 다니엘에겐 차마

'한량이 되고 싶으니 이들을 전부 물려주게.'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으윽……

시온은 고통에 겨운 신음을 냈다.

"대체 왜 일이 이렇게 된 거 야……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작게 중얼 거린다. 일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k * *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에 하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石}o}* . . . . . 石}o"|■.....흐 "

거칠게 내쉬는 숨결을 따라 등줄 기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청록색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이 마에 달라붙었다.

"도대체…… 왜! 왜 갑자기!"

콰앙! 쨍그랑!

한 번 더 책상을 내려치자 그 반 동으로 꽃병이 떨어졌다.

물이 바닥을 적시고, 꽃잎들이 바 닥을 나뒹굴었다.

"저하. 진정하시지요."

방 한구석,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있던 이가 슬쩍 한 발자국 다가섰 다.

엷은 백금발이 달빛을 받아 반짝 거렸다.

"조슈아……

황제의 책사, 조슈아가 3황자 빈센 트와 함께하고 있었다.

"하아. 내가, 지금 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압니다. 그래도 기분 정도는 가다 듬을 수 있어야, 황제가 되시지 않

겠습니까."

조슈아의 말에 빈센트도 후욱, 후 욱 심호흡을 했다.

"그래. 그 말이 맞지. ……이 정도 감정은, 가다듬을 수 있어야……

"다니엘 경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 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 다."

".왜?"

"다니엘 경이 5황자의 호위가 된 건 황제 폐하의 뜻이 아니라, 다니 엘 경의 뜻이었습니다."

그 말에 빈센트가 인상을 팍 구겼

다.

"다니엘 경의?"

"예. 직접 찾아와 자신을 5황자에 게 하사해 달라고 요청했다더군요."

"그러니까 대체 왜!"

콰앙!

쩌저적.

책상에 반쯤 금이 갔다.

조슈아는 감흥 없이 그것을 내려 다보곤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건 알 수 없지만, 5황자가 최근 다른 동향을 보이고 있는 건 확실 합니다. 다니엘 경까지 자신의 편으

로 끌어들였으니, 더더욱 속도를 높 이겠죠."

"크윽......

"그래도 황제 폐하께서 5황자를 지지하는 의미로 다니엘 경을 하사 하신 것은 아니니 다행인 일입니 다."

"그건…… 그렇지만."

다니엘이 스스로 시온에게 간 것 도 배 아픈 일이지만, 적어도 황제 가 5황자를 직접적으로 밀어줄 생 각에 그런 건 아님을 확인했으니 그나마 나았다.

"어차피 저하의 세력에 비하면 터

무니없이 적은 수입니다."

".맞0}" "

"그리고 결국 선택은, '가호'가 하 는 것 아니겠습니까."

황태자 즉위식의 관건은 그것이었 다.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누군 지. 그런 건 예선전에 불과하다.

결국 땅의 가호가 가장 황제에 적 합한 그릇을 선택해 그에게 깃들게 되니까.

"5황자 저하를 신경 쓸 시간에 스 스로를 더 갈고닦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1황녀 저하께서 이 시간에 도 열심히 학식을 쌓고 있을 테니

까요."

"알고 있어!"

빈센트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자네는 너무 맞는 말만 해서 짜 증 난다니까."

"그 점이 황제 폐하께서 절 총애 하시는 이유죠."

빈센트의 빈정거림에 조슈아가 생 긋 웃으며 대꾸했다.

빈센트는 뒤돌아서 걸어가다, 발에 채는 하인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비켜!"

퍽!

"걸리적거리게……. 쯧."

하인은 신음도 흘리지 못하고 흩 뿌려진 꽃병 조각 위로 나뒹굴었다. 핏물이 양탄자에 스며들었지만, 빈 센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휘리릭, 휙!

셀이 허공에 대고 커다란 문을 그 려 냈다.

아름다운 세공까지 섬세하게 그려 낸 다음에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붓을 다시 허리춤에 매달자 허공 에 그려진 그림이 실체화되면서 진 짜 문으로 변했다.

익숙한 문이다.

이사벨라의 방으로 향하는 문이었 으니까.

스으윽.

"짜잔〜. 나 왔어요〜."

"셀. 왔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이사벨라는 잠 들지 않고 깨어 있었다.

동그란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서

류 작업에 한창이다.

"오늘 파티는 어땠어?"

"똑같지, 뭐. 아, 블랑슈 후작가 좀 조사해봐. 은근히 이쪽에 관심을 보 이는 게, 3황자랑 사이가 틀어졌을 지도 모르겠어."

"네네, 알겠습니다."

업무적인 이야기로 넘어가자 셀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 조사는 좀 어때."

"나쁘지 않아! 사하라 씨의 일로 참기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란 인 식도 좀 생긴 것 같고."

"불편하지 않게 잘 대접하고 있겠 지?"

"고럼, 고럼. 최근엔 감자 모종이 랑 고구마 모종 구분하는 법도 배 웠어!"

귀족 작위를 빼앗긴 사하라는 이 제 비욘드의 일원이 되어 생활하고 있었다.

이사벨라는 그에게 금화를 적당히 내줄 테니 어디든 도망치라고 권유 했으나, 그는 비욘드에 남는 걸 선 택했다.

"아직 북부 쪽은 유동 인구가 적 어서 입소문이 잘 안 퍼지는 것 같

아. 그래서 조만간 잡상인으로 분장 시켜서 혁명군을 파견할 예정이고."

"좋아. 잘하고 있네. 별다른 사안 은 없고?"

이사벨라의 물음에 셀이 한참을 고민했다.

"으으음〜. 올리버 형이 요즘 사하 라 씨를 탐내던데. 머리 쓰는 일에 능한 것 같다고."

"그야 그렇겠지. 그래도 일단은 참 으라 해."

이제야 겨우 안정을 되찾은 이에 게 너무 가혹한 처사일 테니까.

"그거 말고 다른 건?"

"다른 거라면……

셀은 그제야 진짜 궁금해하던 사 안을 입에 담았다.

"서하는 어디 갔어?"

"아. 너희한테 말도 없이 떠났니?"

"응. 다들 궁금해해. 올리버 형도 말은 없지만 은근히 신경 쓰는 것 같고."

프로젝트가 끝난 직후, 한서하는 잠시 혁명군과 함께 생활하다가 어 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물론 능력이 능력이니, 어디에 붙

잡아 둘 수 없는 바람 같은 사람이 란 건 알지만…… 그래도 너무 갑 작스럽게 사라져서."

이사벨라는 이걸 말해야 할지, 말 아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좀 터무니없게 들릴 수도 있 는데."

"뭐야. 이사벨라한테는 말하고 떠 난 거야? 너무하네. 우리한텐 한마 디도 안 했으면서!"

셀이 툴툴거렸지만, 이사벨라는 그 런 그를 달래줄 여력이 없었다.

"그게…… 말하면 너희가 전부 말 릴 거라고, 그냥 말없이 가겠다 하

더라고."

"응? 우리가?"

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린 이미 반역자들인데?"

이미 세상의 율법을 어긴 이들이 반대할 만한 일이라니. 대체 무엇이 길래 그런단 말인가.

이사벨라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놀라지 말고 들어."

"뭔데 그래?"

자꾸 뜸 들이는 이사벨라가 답답 한지 셀이 연신 재촉했다.

"……한서하는 지금…… 마계에 가 있어."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 뭐'?"

셀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겨우 툭 내뱉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