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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37화 (248/361)

237화

올리버는 떠나가는 이들의 등을 멍하니 바라봤다. 한 박자 늦게 상 황파악이 됐다.

'영주가 배신했나?'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비욘드 측에서 섭외한 인물 이었고, 얼얼한 턱과 뺨은 서로 협의된 사항이었는데.

마지막에 돌연 마음을 바꾼 이유 가 무엇이란 말인가.

혼란이 그를 휩쓸고 지나가는데, 다른 이들은 그것을 다른 의미로 해석했다.

"아이고. 이를 어째……

"남은 이만 안타깝게 됐지."

"그래도 영주님이, 새댁을 아주 데 려가려는 건 아닐 거야. 그치?"

올리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보는 눈이 많았다.

그는 갑자기 감독이 사라진 연기

자가 되어 조금 멍해졌다.

"아, 네에……

자신감 없이 대답하자 그 모습이 어떻게 비쳤는지, 하나같이 올리버 를 안타까워하며 말을 얹었다.

"둘이 참 사이가 좋았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제 막 시작 하는 젊은이들을!"

올리버는 본래 한서하가 수행했어 야 하는 역할을 대신 맡았다.

멍하던 얼굴에 점점 절망이 깃들 고, 그 직후에 분노 서린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이렇게 살 순 없습니다."

그가 주먹을 꽉 쥐고, 벌겋게 충혈 된 눈으로 중얼거렸다.

"저는, 저는 제 아내를 되찾아 오 고! 그놈의 별채 공사에 끌려간 이 들도 돌려놓으라고 요구할 겁니다."

올리버의 공격적인 선언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두려움이 앞선 탓이 었다.

누군가 물었다.

"하지만 상대는 귀족일세. 안에 기 사가 많은데,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 가."

"마을 외곽에 불을 내면 됩니다. 그럼 불을 끄러 병사들 대부분이 밖으로 나오겠죠."

또 다른 누군가가 외쳤다.

"나, 나도 영주에게 따질 것이 있 네! 이 죽일 놈의 관세 좀 어떻게 해달라고 말해야겠어! 이러다 올겨 울이 오기 전에 파산할 지경이오."

"어쩐 일로 주정뱅이 한스가 맞는 말을 하는군."

미리 심어뒀던 비욘드의 사람이었 다. 바람잡이가 되어 울분을 토해낸 다.

미리 심어둔 이들이 웅성거리며 동의를 표하자, 진짜 주민들도 하나 둘 끼어들기 시작했다.

"맞아. 이번 영주님은 정말 너무하 시지."

"차라리 다른 영지로 옮기고 싶은 데, 그마저도 허가를 내주질 않으 니. 이 안에서 죄다 죽으란 소린 가?"

술렁술렁 불만어린 목소리들이 크기를 키웠다.

"난 돕겠네!"

"나도!"

"이대론 다 같이 굶어 죽을 거야!"

올리버는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며, 남몰래 미소 지었다.

* * *

철컹.

수갑이 서로 부딪히며 차가운 금 속음을 냈다.

"오셨군요."

일부러 낸 소음에, 내가 찾아올 것 을 예상하고 있던 사내가 대꾸를했다.

모두가 깊게 잠든 밤, 나는 지하 감옥에서 벗어나 영주의 침실을 찾 아갔다.

"정식으로 뵙는 건 처음이네요."

갑작스레 극에서 벗어난 영주, 사 하라가 내게 눈인사를 건넸다.

"왜 갑자기 마지막에 계획에서 벗 어난 짓을 한 겁니까."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그의 목숨도 달려있을 것이다.

내 양손엔 수갑이 채워져 있지만, 이 정도 구속을 벗어나는 건 간단한 일이다.

공간 간섭을 한번 펼치기만 하면 되니까.

아니. 수갑을 찬 채로도 얼마든지 사람 하나쯤은 죽일 수 있었다.

"앉으시죠. 이야기가 길어질 텐 데."

사하라는 태연하게 제 건너편을 가리켰다.

귀족이긴 하나 서자 출신이라 그 런 걸까. 일단 날 평민으로 알고 있을 텐데, 맞은편을 권하는 게 자 연스럽다.

스르륵.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 의자를 빼 앉았다.

사하라는 내게 와인도 한잔 마시 겠냐고 권했으나 거절했다. 그와 시 시덕거리려고 찾아온 게 아니었으 니까.

"그럼 저 혼자 한잔하죠."

그는 스스로 와인을 따라 한 모금 마셨다.

"다시 묻죠. 왜 마지막에 계획대로 하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크게 연관 없는 부분 아

닌가요? 두 분 중 누가 남더라도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요."

그건 그렇지만, 그게 대답이 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배신으 로 간주하겠습니다."

"살벌하네요."

그를 죽이겠다는 소리였는데도 그 는 태연했다. 내 말을 알아듣긴 한 건가 싶을 정도였다.

"좋아요. 사실대로 말하죠."

사하라가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그 이름대로, 사막의 모래 같은 머리카락이 사르륵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색깔이었다.

"당신을 따로 보고 싶어서 그랬다 고 하면, 믿을 건가요?"

철컥.

나는 노이트를 장전해 그에게 겨 눴다.

"장난할 때가 아닙니다."

"저도 장난치는 거 아닌데요."

뻔뻔하게 대꾸하는 모습을 보니 거짓인지 아닌지 가늠하기가 어려 웠다.

내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자 도리 어 그는 설핏 웃었다.

"진심입니다. 이사벨라에게 종종 얘길 듣곤 했거든요."

이사벨라가 나에 대해서 발설했 나? 하지만 내가 지구에서 왔다는 것까지 아는 눈치는 아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녀가 말해 준 건 아니고 그녀가 흘린 단서 조 각들을 끼워 맞춰 알아낸 것이긴 하지만요."

"……저는 그렇게 대단할 것 없는 사람입니다."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비욘 드의 일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적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사하라는 웃으며 내 말을 부정했다.

"겸손이 지나치시네요. 혁명의 틀 을 제시하고, 대마법사를 영입하고, 5황자를 손아귀에 쥐고 흔드시는 분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니 뭔가 대단한 인물 같았다. 뒷세계의 이름 없는 지배자 같은 행적 아닌가.

나는 어쩐지 할 말이 없어서 잠시 침묵했다.

"사실 그 모든 인물이 동일인물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지만요. 최근에 야 눈치챘는데 그걸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과 잠깐이라도 좋으니 대화를 나누고 싶었죠."

"고작 그런 이유입니까?"

"고작이라뇨. 저에겐 중요한 이유 였습니다."

나는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칫 하면 배신자로 몰려 바로 처단당할 수도 있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날 보고 싶었다고?

너무 터무니없어서 도리어 진실 같았다.

최소한 그럴듯한 명분이라도 갖다 붙여야 진짜 배신자인지 의심스러 웠을 텐데.

나는 노이트를 거둬들였다.

"……내게 묻고 싶은 게 있습니 까?"

"물론 아주 많죠!"

내가 대화를 해주려는 뉘앙스로 말을 꺼내자, 사하라가 무척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물어보려고 엄선한 질문 100선이

있었지만, 직접 당신을 마주하니 그 런 건 잘 생각나지도 않는군요."

질문 100선? 나는 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우선, 이것부터 묻겠습니다."

그가 눈매를 둥글게 휘며 웃는 것 을 그만두고, 나를 똑바로 응시했 다.

마치 내 속내를 헤집는 것처럼 아 주 집요한 눈빛이었다.

"이름이 뭡니까?"

"……한서하. 서하가 이름입니다."

"좋습니다. 서하."

내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이사벨라가 나에 대해서 발설한 게 아니라 혼자서 추측했다는 게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져도 되겠 습니까? 내가 분노한 민중에게 붙 잡히기 전에 말입니다. 당신이 만들 어갈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서 궁금 한 점이 많거든요."

아마도 저 아래 마을에선 나 대신 올리버가 사람들을 이끌고 있겠지.

사하라는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이 계획을 실행시키고 있었다.

'아니. 그 자신의 목숨뿐만이 아니 지.'

본디 이 성의 주인이었던 사하라 의 아버지와 그 안주인, 적장자들까 지.

그 모두의 목숨을 희생시킨 다음 에야 서자에게 차례가 돌아오는 것 이다.

'그나마도 임시직일 뿐이고.'

지금 당장 다스릴 이가 필요하니 사하라에게 전권이 위임되어 있는 거지, 앞으로 몇 개월이 더 지나면 전대 영주의 친인척들을 뒤져 적임 자를 찾아낼 것이다.

그러니 그는 말 그대로, 자신의 모 든 것을 불살라 이 계획의 밑거름 으로 썼다.

그에 대한 예를 갖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얼마든지요."

사하라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 * *

그 다음은 예정대로였다.

불길이 치솟았고, 병사들이 달려

나갔다. 이 세계에 불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직업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불을 끄는 데 필요한 마법 용품들 은 꽤 많았다.

그러니 불은 순식간에 잡혔지만 병사들이 돌아왔을 때 성은 이미 점령당한 뒤였다.

악덕 영주 사하라는 포박끈에 묶 였고 성난 민중들에게 두들겨 맞았 다.

이는 반란으로 규정되어 중앙으로 보고가 됐고, 황제는 이 반란을 잠 재울 이를 파견하기로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충직한 기

사 다니엘을 말이다.

톡톡, 서신을 다리에 맨 새가 창문 을 두드렸다.

나는 창을 열어 새를 맞이했다.

녀석은 총총 걸어오더니 내가 주 는 먹이를 좀 먹고는 포르르 날아 가 버렸다.

바닥에 남은 쪽지를 들어 펼쳐봤 다.

" 흐음."

"뭐라고 얘기하던가요?"

사하라가 퉁퉁 부은 얼굴로 물었 다.

"중앙군이 파견됐다는군요."

"이런. 생각보다 빠르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나는 한 손에 들고 먹던 빵을 한 조각 잘라 내어 그에게 건넸다.

하지만 이내 포박끈에 묶인 것을 보고 직접 입 안에 집어넣어줬다.

일주일 정도였다. 사하라가 붙잡혀 이곳에서 감시받기 시작한 게 말이다.

"우움. 감사합니다."

요 며칠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사 하라가 감사 인사를 건넸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됩니다."

"전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예상한 일이었으니까요."

사하라가 다 갈라지는 목소리로 태연하게 대꾸했다.

"곧 퇴각할 겁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중앙군과 마주 하면 피해가 극심하겠죠."

"당신은 무능하고, 탐욕스러웠던

영주로 기억될 겁니다."

"각오했던 일이네요."

그가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후회하지 않습니까?"

내 질문에 사하라는 입매를 굳혔 다.

그는 뭔가를 가늠하는 것처럼 허 공을 응시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 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단호한 어투였기 때문에 나는 무 어라 더 말을 얹을 수 없었다.

쾅쾅!

"교대여, 교대애!"

감시역을 교대할 때가 됐는지 누 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나는 문을 열어 그를 맞이했고, 그 는 내게 반갑게 인사하고는 곧장 뒤에 있던 사하라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허이고, 요놈 보소. 아직도 눈빛 이 팔팔〜하네. 고생을 덜 했어!"

그는 이것저것 툴툴대기 시작했다.

"우리는 네놈 자식 때문에 다 같 이 죽을 줄 알고 묫자리 파고 있었 는데 말이여. 이렇게 상황이 뒤바뀔

줄 너라고 알았겄어?"

"……전 이만 가볼게요."

"어어. 그려, 가봐!"

끼이익.

닫히는 문 사이로, 사하라가 쓰게 미소 짓는 것이 보였다.

* * *

쾅! 누군가 책상을 세게 내려쳤다.

"맞서 싸워야 혀!"

그는 침을 튀기면서까지 강력하게

주장했다.

"우리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숨는단 말인가? 잘못이 있으면 저, 저놈 자슥이 했지! 암만 중앙에서 오신 분들이라 해도 난 그렇겐 못 하겠구만!"

"하지만 상대는 기사님들인데, 우 리가 무슨 수로 상대한단 말이요."

"슬슬 농사일도 걱정되구……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누군가는 당장 저들과 맞서 싸워 야 한다고 외쳤고, 누군가는 그렇게 하다간 다 개죽음당할 거라며 반대 했다.

중앙군이 마을 외부에 진을 친 지 벌써 이틀째였다.

그들이 언제 이곳으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려니, 다들 피가 말랐 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내가 툭 내뱉자 시끄럽게 일던 소 란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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