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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33화 (244/361)

233화

챕터: 사기꾼 신혼부부

슈우욱!

허공에 걸린 실을 따라 바구니가 이동했다.

슈욱, 다른 곳에선 옷가지 두어 개 가 걸려서 움직였다.

드래곤 산맥의 좁은 골짜기, '비욘

드'. 그곳에 터전을 꾸린 이들의 삶 은 참으로 다채로웠다.

"이봐, 제임스! 하나 더!"

"알겠다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집과 상점 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누군가 크게 외치자, 슈욱, 허공에 달린 가는 실을 따라 물건이 내려 왔다.

"신기하지?"

셀이 불쑥 내게 물었다.

"나도 처음엔 이게 신기했거든. 물 건들이 하늘을 막 날아다니잖아. 근

데 아무래도 좁고 높으니까, 이런 게 필요하더라고. 편하기도 하고."

셀이 휘익, 휘파람을 불자 바로 위 에 있던 곳에서 중년의 사내가 얼 굴을 내밀어 우릴 바라본다.

"뭐냐, 셀. 하나 줄까?"

"두 개 줘요."

"오냐"

스윽, 슥.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에 따끈한 빵조각이 쥐어졌다. 빵 가운데 정체 모를 속이 들어있었는데, 한국으로 따지면 야채호빵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여기 명물이거든. 관광지는 아니지만."

그러면서 셀은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나도 셀을 따라 거닐면서 조 금씩 입에 넣었다.

내가 아는 그 맛보다는 좀 싱겁긴 하지만 그래도 따뜻하고 속이 든든 해지는 맛이었다.

그때 위에서 누군가 또 고함을 질 렀다.

"셀! 너 이 자식, 외상값은 언제 갚을 거야!"

"톰 아저씨, 좋은 아침이네요!"

"아침은 개뿔. 해가 중천이다!"

셀은 웃으며 빌의 호통을 넘겼다. 톰도 씩씩거리면서도 '다음엔 꼭 외상값 내고 가, 자식아!' 하고는 말았다.

"여기는 그냥 시장이고, 저 안쪽으 로 들어가면 광장이 나와. 혁명군은 대부분 거기 모여있어."

셀이 허리춤에서 붓을 꺼내 휙휙 허공에 휘두른다.

"올리버 형한테 도착했다고 말 좀 전해줘. 손님도 같이 있다고."

짹짹!

유려하게 그린 곡선이 새의 형상 을 이룬다. 새는 셀의 말을 알아들 은 것처럼 푸드덕 날아갔다.

"규모가 생각보다 크네."

"사람이 많이 늘었지. 요즘 세상이 미쳐 돌아가잖아."

"그런가'?"

나야 톨룩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으니 그런 사정은 모른다.

"전쟁 통이라고 젊은이들은 온갖 핑계를 대면서 징집해가거든."

"징집을 피해 도망쳐온 이들인가? 그렇다기엔 젊은이는 몇 없어 보이

던데."

그들은 대부분 중년 정도로 보였 다.

"그야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비욘드 안쪽으로 들어서자 천장이 있는 동굴 형태의 지역이 나타났다.

그 안은 촘촘하게 박힌 랜턴과 발 광버섯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무척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대부분…… 혁명군에서 일하거 드 "

검은색 두건을 목에 두르고 일하 는 이들이 보였다. 그들은 뭔갈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바깥보단 나이 대가 어려 보였다.

나는 그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 다.

-우리도 생명이고, 같은 붉은 피 가 흐르는 이들인데! 대체 뭐가 다 르냔 말이다!

내게 이건 잘못되었다고 소리치던 사내가 그곳에 있었다.

-내가, 우리가 이 부조리를 바로 잡을 것이다!

내가 심었던 혁명의 불씨가 어느 새 몸집을 불려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올리 버."

짧게 깎은 머리에, 어느새 눈가에 길게 흉터까지 생긴 채로.

나는 감회가 무척 새로웠다.

종종 이사벨라를 통해 그의 안위 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마주하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올리버는 검 을 들어 내게 겨눴다.

"셀. 이게 무슨 짓이지?"

"올리버 형! 검 내려. 이게 뭐야? 손님한테 무례하게!"

셀이 화들짝 놀라 그를 말렸지만

올리버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리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셀을 바라본다.

"이 여자는 5황자의 끄나풀이야. 전에 본 적 있거든."

"뭐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이분은 이사벨라 님의 손님이 라고!"

"내가 똑똑히 봤다. 확실해."

내가 기억하는 올리버는 좀 더 시 골 청년 같은 인물이었는데.

혁명군을 이끄는 사이 어느새 딱 딱하게 굳은 얼굴로 내 목에 칼을겨누는 이가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수순이겠지.

"반가워요. 올리버 씨."

내가 입을 열자 올리버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좋게 끝난 인연은 아니었지만 여 기서 다시 보네요."

"무슨 수작이지?"

그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 라봤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다른 혁 명군들도 우릴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었다.

"형! 이사벨라 님이 신분을 보증한 다니까요!"

"그분도 이자에게 속고 있는 걸 수도 있어. 5황자를 손아귀에 넣고 뒤흔들던 인물이다. 방심할 수 없 어."

올리버의 말이 어느 정도 정론이 었기 때문에 셀은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을 했다.

"이사벨라에게 듣지 못했나요? 5 황자에 대한 얘기."

어디까지 이 기밀사항이 얘기되었 는지 몰라 두루뭉술하게 말을 꺼냈 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올리버는 알 고 있겠지. 혁명군은 5황자가 황태 자 즉위식에 참여하도록 돕고 있지 않은가.

올리버도 눈썹 한쪽을 치켜올렸다.

"..하지만 그땐... 나도 혁명 군에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그가 흠칫 놀라 날 바라봤다.

"설마. 너.

내가 5황자에게 했던 행동들, 올리 버와 나눴던 대화들이 뭔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 다.

"다시 한번, 반갑습니다. 올리버 씨."

나는 재차 인사를 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드래곤 협곡 의 '비욘드'를 잘 찾아오신 모양이 네요."

"너……!"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너. 그 모든 게. 전부……

나는 대답 대신 생긋 웃었다. 그에 겐 미안하지만 모든 건 내 손바닥 위였다.

5황자를 부추긴 것도, 그로 인해

탈영병들이 속출한 것도.

그리고 그 탈영병을 이끌고 5황자 를 다시 공격한 것까지 말이다.

"네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게 5황 자 혼자만이 아니었군."

그가 씁쓸한 어조로 뒷말을 이었 다.

"나 역시 같은 처지였어."

"대체 그게 뭔 소리야?"

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어 리등절해하고 있었다.

"……우선 따라와."

그가 획 뒤돌았다. 셀이 내게 따라

오라며 손짓했다.

우리는 동굴 안쪽에 샛길처럼 나 있는 길을 통해 안쪽 회의실로 들 어섰다.

보랏빛 자수정이 사방에 박혀 있 는 곳이었는데, 자수정이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이거…… 마력석이네요."

이 많은 게 다 마력석이라니. 호화 롭기 그지없는 회의실이었다.

"우리에겐 마력석을 채굴할 기술 력이 없어서 완전 그림의 떡이야. 아직 연구 중이거든. 그것만 캐낼 수 있으면 이사벨라의 부담도 줄어

들 텐데."

셀이 안타깝다는 듯 마력석을 보 며 울상을 지었다.

"형, 그래서 이사벨라 님한테 연락 해서 신분 확인부터... 형?"

셀의 부름에도 올리버는 대꾸하지 않고 여전히 멍했다.

충격이 상당한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지. 모든 걸 뒤로한 채 달려왔을 테고, 나도 그 원동력 중 하나였을 텐데.'

그게 모조리 거짓이었단 걸 알아 버리면 혼란이 클 거다.

"올리버 씨.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내가 한 일은 그저 어차피 벌어질 일들을 조금 앞당긴 것뿐이에요."

결국 5황자의 패악을 견디지 못하 고 병사들은 나가떨어졌을 테니까.

"시작은 어땠을지 몰라도 여기서 당신이 일군 것들이 모두 거짓은 아닐 텐데요."

"뚫린 입이라고 잘도 말하는군."

올리버가 차게 일갈했다.

"대체 네 녀석의 목적이 뭐지? 이 번엔 또 누굴 갖고 놀려고 여기에

나타난 거냐."

그는 나를 거의 증오하는 것 같았 다. 이거 곤란하다.

혁명군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그 가 내게 적개심을 가지면, 앞으로 여러모로 일에 지장이 많은데.

'아니지. 오히려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흔들리지 않아서 다행인가.'

황태자 즉위식 당일에 날 만났더 라면 정말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 갈 뻔했다.

"제 목적은 처음부터 하나였습니 다."

나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이 땅에 혁명의 바람이 부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혁명으로 인해 이 땅에 생겨날 혼란. 그게 목적이 었다.

"그것만큼은 서로 일치하는 부분 이니 이사벨라도 제 손을 잡은 거 죠."

올리버는 잠시 날 빤히 바라보다 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고민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왜 하필 나였습니까."

그가 존대로 말을 바꿨다. 나를 이 사벨라의 손님으로 인정한다는 뜻 이었다.

"뭣 때문에 날 혁명군으로 이끈 겁니까."

"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옆에서 입김을 좀 불었을지 언정 선택을 한 건 올리버 당신이 아니던가.

"나는 그저 길을 제시했고, 그 길 을 따라 걷는 게 누가 될진 전혀 모르고 있었거든요."

나는 힐끗 셀을 바라봤다. 그도 비

슷한 산물 중 하나였으니까.

"나한테 누군가의 운명을 뒤바꿀 정도로 강력한 힘은 없습니다. 누군 가의 의지에 반하는 걸 선택하게 만드는 재주도 없고요."

내 말에 올리버의 표정이 좀 펴졌 다.

결국 모든 것은 그가 만들어낸 길 이었으니, 그 계기가 나였다고 해서 후회할 이유는 없었다.

"어찌 됐든 제가 이곳에 온 이유 는 따로 있습니다."

올리버의 자아 탐험을 하러 온 게 아니라 슬슬 본론에 들어가야 했다.

"혹시, 술은 좀 마십니까?"

" 예?"

내 뜬금없는 질문에 올리버가 황 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마십니까?"

"못 마시는 건 아니지만…… 즐기 는 편도 아닙니다."

그가 미심쩍어하며서도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런 올리버 옆에서 셀이 천진하 게 대꾸했다.

"나도 술 잘 마시는데."

그렇군, 하고 넘기려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불쑥 질문을 던졌다.

"셀. 네가 성인이던가?"

"아니."

나는 올리버를 들여다봤다. 그는 슬그머니 내 시선을 피했다.

"애초에 우린 불법적인 집단입니 다……

그가 미약하게 변명했다. 그래, 이 런 내부 사정까지 내가 간섭할 건 없겠지.

나는 뒷말을 이었다.

"주당인 이들 위주로 5명 정도 선

발해주세요. 술을 잘 마실수록 좋 고, 아니더라도 술에 취한 척 잘하 면 됩니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될 거거 든요. 마을에 자연스럽게 잠입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남한테 의심 도 안 사고, 정보도 금방 얻어올 수 있는 인물들로요."

여기까지 말하자 올리버도 대충 왜 술고래들이 필요한지 알아챈 모 양이었다.

"여관. 그리고 술집."

"그 두 곳에서 하루 종일 술만 퍼

마셔도 이틀이면 웬만한 정보는 다 들을 수 있기 마련이죠."

내 말에 올리버도 고개를 끄덕였 다.

"자세한 사안은 가면서 얘기하죠. 꽤나 멀거든요."

"잠시만요. 당신도 가는 겁니까?"

올리버의 질문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신혼부부만큼 의심받지 않는 이 들도 없죠."

" 신혼부부요……'?"

"네. 신혼부부요."

나는 그와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내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 던 올리버가 큰 소리로 되물었다.

"당신이랑 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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