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마녀가 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해. 인간을 증오하고, 혐오하고, 견딜 수 없어 하면 되지."
"난 아니야."
"넌 마녀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 어."
"아니라니까."
난 혜원 언니를 증오하지도, 이운 우를 혐오하지도, 다정 언니를 견딜 수 없어 하지도 않았다!
"내 말이 맞아."
레태흐태드는 내 의견은 필요하지 않다며 작게 키득거렸다.
"이해해. 지구에는 '마녀'라는 개념 이 따로 없는 것 같으니까. 아무리 괴로운 일을 당해도 그저 참고 견 뎌내는 것 말곤 선택지가 없었겠 지."
"나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굴지 마. 넌 아무것도 몰라."
고작해야 내 기억의 단편을 읽은 것으로 나에 대해 논하다니.
내가 본 것들이 정확히 뭔진 모른 다.
여긴 어차피 깊은 꿈속이니까, 그 저 저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감 정의 응어리에 불과하겠지.
왜. 꿈에는 간혹 나조차도 잊어버 린 것들이 나오곤 하지 않는가.
"그야 나는 그렇지. 하지만 너 자 신은 너에 대해서 잘 알 거 아냐."
"아까 본 그것들? 어차피 그건 다 회귀 전 일들이야. 지금은 없는 일
이고, 난 다 잊었어."
모처럼 새로운 삶을 살게 됐는데 언제까지 과거에 매몰되어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제는 혜원 언니도 살아있고, 내 끔찍한 실수도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데.
"'그것들'이라니. 너무 매정하다."
레태흐태드가 바람처럼 속살거렸 다.
"억지로 묻어둔 것을 잊었다 착각 했던 거지."
"말장난하지 마. 영원히 꺼내보지
않으면 잊은 것과 다를 바 없으니 까."
내 단호한 말에도 레태흐태드는 고개를 저었다.
"억지로 묻은 것은 무덤일 뿐인 걸."
"보통은 무덤을 도로 파보진 않거 드 "
레태흐태드는 그런 의미에서 아주 악질이었다.
묫자리를 파 아주 깊게 파묻은 것 을 도로 퍼내 내게 보여주고 있으 니까.
"마녀는 인간을 증오하는 존재지."
노래하는 것처럼 가락을 붙여 읊 조린다.
"넌 특이하게도, 너 자신을 지독히 싫어하는구나."
나는 부정하지 못했다.
적어도 회귀 전의, 치명적인 실수 로 혜원 언니를 죽게 만든 어린 시 절의 '나'를 증오하는 건 맞았으니 까.
"이젠 없는 일이야."
스스로에게 되새기는 것처럼 중얼 거렸다.
"결국 너 자신도 인간이니, 넌 마 녀가 되기에 충분하지."
"노이트!"
더 이상 이 헛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소리 내어 노이트를 부르짖었다.
[알림: '노이트 리볼버'가 사용자 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노이트, 한 번 더 날 쏴! 아무렴 죽기 싫으면 일어나겠지!"
[알림: '노이트 리볼버'가 미쳤냐 고 되묻습니다.]
"진심이야."
이 끔찍한 꿈에서 깨어난 다음에, 곤죽이 된 육신은 어떻게든 성수로 치료하면 된다.
노이트도 진짜 날 죽일 작정으로 쏘진 않겠지.
"소용없어. 육신의 고통과 별개라 니까. 이곳을 나가는 파훼법은 따로 있지."
[알림: '노이트 리볼버'가 다른 방 법을 찾는 게 낫겠다고 조언합니 다.]
노이트도 한마디 거든다.
"그 방법이 뭔데."
레태흐태드가 살풋 웃었다.
"비밀이라니까."
나는 코앞에 있는 레태흐태드의 머리카락이라도 움켜쥐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헛손질만 할 뿐이었다.
레태흐태드는 번번이 사라졌다가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났으니까.
이 안에서 레태흐태드와 술래잡기 를 해봤자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 다.
노이트의 말대로 다른 방법을 찾 아야 했다.
"한서하."
레태흐태드가 내게 제안했다.
"나와 함께 마녀가 되자."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모르는 척하기도 힘들었다.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말을
이었다.
"나와 자매가 되자. 너라면 인간들 을 대량으로 학살할 수 있을 정도 로 강력한 마녀가 될 거야."
"그런 힘 필요 없어."
난 그냥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을 뿐이었다.
"왜? 원망스럽지 않아?"
"이젠 일어난 적도 없는 일이야."
"하지만 넌 겪은 적 있잖아."
레태흐태드가 핵심을 찔러왔다.
"모두가 잊어도, 넌 기억하고 있잖 아. 다른 이들에겐 몰라도 그게 어
떻게 네게 '없는 일'이 될 수 있 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 었으니까."
내 말에 레태흐태드는 흐음〜, 하 고 콧소리를 냈다.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태도였다.
"그냥 네 감정에 몸을 맡겨. 모두 를 증오하면 돼. 그게 훨씬 편한 길이잖아."
그럴지도 모르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내가 그랬 던 것처럼,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미룰 수도 있었다.
"누군갈 의심할 필요도 없고, 배신 당할 일도 없지. 왜냐하면 모든 인 간은 어차피 본질적으로 쓰레기거 든 "
"너도 인간이었으면서."
"그래서 마녀가 되기로 한 거지."
레태흐태드는 무언갈 되새기는 듯 한 얼굴을 했다.
어쩌면 평소처럼 꿈결을 그리는 표정이었는데 내가 잘못 봤을지도 모른다.
"누군갈 다시 믿고, 의지하고, 사 랑하는 것보단 실패할 확률이 적은
선택지잖아. 안 그래?"
믿지 않으면 배신당할 일도 없다, 그런 간단한 논리였다.
"난 그렇게 못해."
"왜? 너도 추악한 모습을 많이 봤 잖아. 실제로 가슴 깊이 원망한 적 도 있고."
"그랬지. 하지만……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난 이미 소중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생겼거든."
회귀 전의 나라면 어땠을지 몰라 도.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가족 같은 이들이 주는 사랑, 날 믿고 따르는 이에게서 오는 온정.
내 도움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이 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물론 네 말대로 내가 '나'를 싫어 할지도 모르지."
무수히 많은 내가 있지만 개중에 서도 게이트 안에서 어설프게 굴던 '나'를 특히 더.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다른 '사 람'들도 여전히 많아. 그러니까, 네 말은 틀렸어. 레태흐태드."
레태흐태드는 잠시 침묵했다.
무언갈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기 도 했고, 날 통해서 다른 누군갈 겹쳐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너와 비슷한 말을 하던 사람이 있었어. 아주 오래전에."
그녀는 보라색 머리카락을 사르륵 손으로 빗어 내렸다.
"이상론에 불과하거든. 그런 건."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 어. 중요한 건, 내가 네 자매가 될 일은 없단 거지."
"그래?"
레태흐태드가 서늘하게 웃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콱!
"커흡……!"
레태흐태드가 내 목덜미를 한 손 으로 쥐었다.
숨이 턱 막히면서 고통스러운 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갑자기, 무슨……! 으윽!"
레태흐태드의 손을 떼려고 발버둥 쳤지만 꿈쩍도 하질 않았다!
악력으로 못 이기자 숨이 턱 막혀 와 손톱을 세워 팔을 긁었다.
레태흐태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 는 것처럼 멍한 얼굴을 했다.
내가 실제로 레태흐태드보다 힘이 약한 건 아닐 거다.
그저,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이 꿈 안에서 레태흐태드가 전지전능 에 가까울 뿐인 거지!
"그 사람은 고통 속에서 죽어갔어. 타오르는 불길에 죽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허억, 큽……!"
"내가 어리석었지. 인간들은 죄다 끔찍하고 사악한 놈들이라고, 희망
을 가질 여지조차 없으니 포기하라 고 말해야 했는데."
벅벅, 레태흐태드의 팔뚝을 긁다 내 손톱이 다 짓물렀다.
손끝에서 핏물이 배어나왔지만 멈 출 수가 없었다.
숨이, 정말 한계까지 막혀왔다.
"그러니까."
탁!
"허억, 허억!"
겨우 숨통이 트였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눈앞이 하얗게 점멸하다 겨우 시
야를 되찾는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처럼 거센 통 증이 일었다. 정신없이 숨을 긁어모 았다.
"네게 선택지를 줄게."
나는 고개를 들어 레태흐태드를 올려다봤다. 그녀는 늘 짓던 몽롱한 표정 대신 아주 싸늘한 낯을 하고 있었다.
"마녀가 될래? 아님, 여기서 죽을 래?"
나는 멍청하게 되물을 수밖에 없 었다.
"……뭐라고?"
"청각은 건드린 적 없는데. 다시 말해줄까?"
"아니. 됐어. 너무 황당해서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거든."
레태흐태드는 다시 꿈속을 거니는 듯한 얼굴을 했다.
초점이 살짝 흐리고, 어딜 보는지 알 수 없는 특유의 눈빛 말이다.
"……네가 누구 얘길 하는진 모르 겠는데 난 그 사람이 아니야."
" 알아."
"그러니까, 내가 마녀가 된다고 해
서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라고."
" 알아."
레태흐태드는 기계적으로 대답했 다.
알면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 아야지. 죽은 이를 내게 겹쳐 보면 서 마녀가 되라고 협박질이라니.
"아, 그렇지. 차라리 이게 낫겠다."
레태흐태드는 딱, 손가락을 튕겼 다.
그러자 사방에 깔려있던 어둠이 걷히며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혜원 언니, 표연원. 그리고 내 부 대원들까지.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시간이 멈춘 듯 딱딱하게 굳은 채였다.
"안 속아. 이것도 네 환상이잖아."
"게이트에 들어오자마자 너흰 전 부 내 손바닥 안이었어. 다른 이들 이라고 다를 거 같아?"
애써 부정했지만, 레태흐태드의 말 대로일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더욱 아니길 바랐는데.
"다들 깊〜은 꿈에 빠져있거든. 누 군가는 로또에 당첨되고, 누군간 그
리운 이를 다시 만나고, 또 누군가 는 원하는 것을 이루는…… 그런 꿈들."
"협박하는 거군."
" 맞아."
깔끔한 인정이었다.
"네가 마녀가 된다고 하면. 이들에 게도 아무 일 없을 거야."
"거절하면? 네 본체가 들어와 있 는 나면 몰라도, 다른 이들까지 죽 이진 못할 텐데."
레태흐태드는 꿈과 환상의 마녀지, 살육의 마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그녀는 전지전능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꿈속에서의 이야 기다.
현실의 죽음에 관여하려면 이렇게 본체가 직접 깃드는 수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알고 있네."
당연하지. 회귀 전까지 합치면 널 상대한 게 몇 번인데.
"그래. 네 말대로 이들을 전부 죽 일 순 없지. 하지만…… 아주아주 끔찍한 악몽을 꾸게 해줄 순 있거 든."
레태흐태드가 보장하는 끔찍한 악 몽이라.
얼마나 정신적으로 한계까지 몰아 붙일지 벌써부터 아찔하다.
"자. 시간벌기는 여기까지야. 이제 선택해야지?"
레태흐태드가 짐짓 상냥한 체하며 웃었다.
"네 죽음과 끔찍한 악몽. 또는…… 내 손을 잡고, 내 자매가 되는 것."
레태흐태드는 내게 제 손을 내밀 었다.
"둘중 뭘고를 거야?"
고민할 것도 없었다.
지구에 '마녀'가 없다는 건 뭐겠는 가. 마녀는 필시 톨룩에 종속된 존 재다.
애초에 계약하는 '사념체'가 톨룩 의 것일 테니까.
마녀가 되는 건 단순히 내 종족이 인간에서 마녀로 탈바꿈하는 게 전 부가 아니다.
내 영혼의 소속이 바뀐단 얘기다.
그리고 난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톨룩으로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나는 픽, 헛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급박하게 넘어갈 생각은 없었는데.'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어 쩔 수 없지.
"날 죽여."
"장난하는 거 아니야. 더 신중하게 생각해."
"나도 장난하는 거 아니야."
나는 차게 굳은 입매를 겨우 움직 여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죽으면 죽었지, 네 자매가 되진 않을 거야."
레태흐태드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작별인사를 고했다.
"안녕. 이상한 인간."
흐려지는 말꼬리를 끝으로, 서걱.
m & rz 드 =?, -r-r-=5".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시 야가 암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