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제가요?"
카멜롯이 능청스럽게 놀란 시늉을 했다.
"에이, 누나. 제가 어떻게요?"
어린 남자아이의 모습을 하고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올려다본 다.
하지만 어린아이인 척하는 수단으 론 내 눈을 속일 수 없다.
"박서희와 마동호. 둘 중 누구였 죠?"
그때 나와 함께했던 이들 중 내가 모르는 인물은 그 둘뿐이었다.
하지만 둘 다 캐릭터가 강해서 누 구였을지 잘 상상이 가질 않았다.
풍수지리를 따지는 카멜롯이냐, 대 인공포증이 있는 카멜롯이냐.
"왜 그 둘일 거라고 생각해요?"
카멜롯이 씨익 웃었다.
"정말로,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뒤바뀌면 눈치챌 수 있을 거 같아 요?"
" 그건......
나는 섣불리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었다.
독립 부대의 사람들과 내가 오래 합을 맞추긴 했지만, 그들의 사적인 부분까지 다 아는 건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표연원은 아니겠지.
그 요리 솜씨를 따라 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아니, 고유 스킬까지 따라 하는 와 중에 요리 솜씨 정도는 문제도 아니려나.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게이트 안에 서 봤던 행동들이 전부 수상쩍게 여겨졌다.
"어때요? 제가 누구인지 알겠나 요?"
카멜롯이 미심쩍게 웃었다.
"……아직 당신은 제 질문에 대답 하지 않았습니다."
"아, 왜 접근했냐고요?"
그는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왜일 거 같아요?"
"당신과 난 개인적인 친분이 없으
니 독단적인 행동이었을 리는 없고. 국제 연합의 지시입니까?"
나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훑었 다. 역시 그럴듯한 가능성은 그것뿐 이었다.
"으음〜. 내가 국제 연합 소속인 건 맞지만, 모든 행동이 그 사람들 입맛에 맞춰져 있는 건 아닌데."
"그럼 이유가 뭡니까. 첫날 이곳에 왔을 때 실종됐던 것도 뭔가 의도 가 있었던 겁니까?"
"그렇다고 하면?"
"하지만 그때 실종된 직후에 한 짓은 고작해야 옥상에서 노닥거리
는 것뿐이었는데요."
카멜롯은 검지를 까딱까딱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하나 더 했는데. 기억 안 나요?"
"그 직후에 절 만났는데 대체 뭘 했다는.... 설마."
나는 아주 느릿하게, 되도록 이게 사실이 아니길 바라면서 뒷말을 이 었다.
"절 만나려고요?"
"정답!"
카멜롯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날 만나려고 했다고. 처음부터. 대
체 왜?
질문의 대답을 들었는데도 전혀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었 다.
"..절 왜요?"
"왜냐하면
그가 작게 뜸을 들였다. 그러더니 활짝 웃으면서 뒷말을 이었다.
"그러게. 왤까요?"
"저랑 장난하는 겁니까?"
슬슬 이 사람의 페이스에 휘말리 는 게 짜증이 났다.
무슨 말 한마디를 똑바로 하는 법
이 없고 빙빙 돌려 말하고 앉았다.
"누나 표정 무서웡!"
"카멜롯 씨, 곧 서른이 되신다고
"아, 그건 반칙이지~!"
그가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길 래 현실을 끼얹어줬더니 콩, 내 다 리를 친다.
어린아이 모습이라 애교로 보일 수도 있지만 꽤 아팠다.
"누나는 내 생각이랑 좀 다르네. 그래서 신기해. 뭔가 더 알아볼 게 있을까 싶어서 다른 모습으로도 접
근했던 건데."
"게이트까지 말입니까?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는데요."
"안 그랬을 수도 있고."
카멜롯은 계속 의미심장한 말만 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의문점만 생겼다.
"국제 연합에 정식으로 항의할 수 도 있습니다."
"어차피 묵살 당할걸요?"
" 예'?"
너무 뻔뻔스러운 목소리였다.
"왜냐면, 거기서 시킨 거거든요.
누나한테 접근하라고."
"아깐 아니라면서요."
"내가 언제 아니라고 했어요? 내 모든 행동이 국제 연합의 입맛에 부합하는 건 아니라고 했지."
나랑 말장난하자는 건가.
"맞는 말인뎅. 그래서 이렇게 누나 한테 말하잖아요. 국제 연합이 시켰 다고."
"국제 연합이 뭣 때문에……
아니지. 한 가지 짐작 가는 게 있 었다.
카멜롯은 국제 연합 소속으로, 아
주 유명한 스파이였다.
그가 국제 연합에 소속되기까지 일대기가 아주 화려하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카멜롯의 주특기는 적진에 몰래 스며들어 비밀을 훔쳐오는 거다.
그가 이번에 스며들었던 곳은 내 옆이었으니, 내 비밀을 훔치려 했겠 지.
그리고 국제 연합이 내게서 무슨 특이점을 발견할 만한 구석은 딱 한 가지다.
'......비르디아 '
날 알고 있는 것처럼 굴던 성물. 그리고 묻지도 않았는데 내려진 예 언.
심지어 그 예언이 '성좌'니 뭐니 하는 이상한 말로 가득 차 있다면?
'나 같아도 공작원 하나 심어둬서 감시하고 싶겠네.'
그렇게 생각하니 도리어 내 옆에 아무도 안 붙여놓는 게 이상한 수 준이었다.
"예상가는 게 있나 봐?"
카멜롯이 씨익 웃었다. 어린아이의 얼굴인데도 묘하게 소름 돋았다.
"이 얼굴은 누나한테 안 통하나? 다음에 더 노력해볼게!"
그가 빙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 자 혜원 언니의 모습으로 변했다.
다시 봐도 소름끼칠 정도로 비슷 하다. 얼마나 연구를 한 건지, 날 보며 살짝 웃는 모습까지도 진짜와 닮았다 .
"대체 얼마나 내 주변에 있었던 거야?"
나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이 얼굴'이라면 다른 얼굴을 통했 단 말인가?
카멜롯은 대체 언제부터 내 주변 을 맴돌았던 거지?
내 물음에 카멜롯은 의뭉스럽게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왜 나한테 이런 걸 알려주는 건 데."
이걸 안 이상 나도 내 주변을 경 계할 텐데.
앞으로 계속 날 감시해야 하는 카 멜롯에게 그건 달갑지 않은 일일 거다.
"으음그러게?"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건가.
철컥.
나는 노이트를 그에게 겨눴다.
"대답해. 네 의도가 뭐지?"
국제 연합의 편이면 입 다물고 있 어야 하고, 내 편에 서고 싶었다면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굴어선 안 됐 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통 모를 녀석이었다.
"진정해요, 누나."
"이번엔 실탄일 거야."
아까처럼 맞아도 안 아픈 총알은 아닐 거란 경고였다.
"모처럼 상냥하게 경고해줬는데, 너무하네."
그가 노이트를 쥔 내 손 위에 자 신의 손을 겹쳤다.
내가 눈썹을 움찔하는 그 사이에, 그는 순식간에 모습이 변해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 무 표정할 땐 차가운 인상이지만, 금방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웃어 보이자 인상이 확 바뀐다.
나였다.
"응?"
카멜롯이 내 모습을 베껴낸 것이
었다!
탕!
반사적인 거부감에 다리를 노려 한 발 겨눴다.
그러나 그곳에 이미 그는 없었다.
"이 능력 재밌네."
목소리는 내 옆에서 들려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을 이동하 는 스킬.
저건 내 공간 간섭 스킬이었다!
"고마워, 언니. 마침 나한테 유용 한 능력을 갖고 있어줘서."
내 얼굴을 하고서 생긋 웃더니, 그 대로 사라졌다.
탕!
애꿎은 벽에 총알이 꽂혔다.
빌어먹을.
나는 발끝부터 진득하게 기어 올 라오는 불쾌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 이, 이게 뭡니까!"
뒤이어 도착한 경비가 창백한 얼 굴로 내게 물었다. 뜬금없이 대낮에 총성이 울려 신고가 들어간 모양이 었다.
"죄송합니다. 배상은 역천의 한서
하 앞으로 달아주세요."
"예? 그게 무슨……
어리둥절해하는 경비를 지나쳐 밖 으로 나갔다. 진짜 혜원 언니에게 뭔가 일이 벌어진 건 아닌가 싶었 다.
"뭐? 그 자식이 그랬단 말이야?"
혜원 언니가 따스한 차 한 잔을 내 앞에 내려놓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같이 게이트까지 들어갔다니……. 대체 그중 누구였는데?"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일단 유력 한 건 제가 원래 모르던 박서희 씨 나 마동호 씨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긴 한데, 확실하진 않아요."
내 말에 혜원 언니도 심각한 얼굴 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 둘하고는 친분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다. 네 부대원들 쪽도 확인해봐. 그쪽이 아니면 남은 둘 중 하나였겠지."
"연원이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내 말에 혜원 언니는 살살 고개를 저었다.
"능력이면 몰라도 계약까지 흉내 낼 순 없을 거야."
"그렇겠죠?"
어떻게 흉내 낼 수 있다 하더라도 드라이어드가 그에게 힘을 빌려줄 것 같진 않았다.
"그나저나 국제 연합에서 카멜롯 을 파견할 정도면 널 많이 신경 쓰 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게 좋은 건 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좋은 일일까요, 이게?"
"양날의 검이지. 그래도 언젠가 네 가 국제 연합에 뭔가 제안하고 싶 은 게 생기면, 적어도 뭣도 없는 한국 헌터인 것보단 낫겠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 장 행동에 제약이 생기는 게 더 불 편했다.
"일단 민감한 얘기는 최대한 가려 서 하고. 믿을 만한 사람한테만 털 어놔."
"그래야겠어요."
"미리 암호를 정해두는 것도 좋 고."
백목련과 박노아 쪽은 반드시 그 래야겠다.
성좌에 대한 정보를 국제 연합도 알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 리가 알고 있는 정보들은 숨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국제 연합이라고 새하나교와 다를 거란 보장은 없지.'
새하나교에서 아이템에 영혼을 먹 여 준성좌급 아이템을 만들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다시 비슷한 비극을 만들어낼 순 없어.'
어쩌면 비르디아에서 예견했던 '성 좌가 되려는 욕심'이 그런 걸 의미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다음 기회엔, 제대로 마무 리를 짓자."
혜원 언니가 내 손을 붙잡으며 말 을 이었다.
"벨제부브 말이야."
그래. 센티피드가 나타나면서 모든 게 틀어졌으니까.
"이번에 힘을 잃었으니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겠네요."
"기왕이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안
보이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정말 좋을 텐데.
아무리 마왕인 그라 하더라도 같 은 마왕인 센티피드를 죽이는 덴 적잖은 힘을 썼을 거다.
나중엔 거의 새끼 박쥐처럼 보이 기까지 했고.
"적어도 한동안은 안 보일 것 같 으니 안심이죠. 벨제부브가 살아있 는 한 제2의 검은 화산 게이트는 언제고 다시 생겨날 수 있으니까 요."
내 말에 혜원 언니도 고개를 끄덕 였다.
"3마왕 중 센티피드는 죽었고, 벨 제부브는 힘을 잃었으니. 이그니스 만 남았네."
그래. 표연원의 복수도 얼마 남지 않았단 소리였다.
"연원이가 이겨낼 수 있을까?"
혜원 언니는 드물게도 조금 불안 해 보였다.
"연원이를 못 믿어서 그러는 게 아니야. 그치만 이그니스도 3마왕 중 하나잖아. 벨제부브나 센티피드 와 동급인. 그런 자를 연원이 혼자 이기는 게…… 가능한 일일까?"
혜원 언니의 말도 타당했다.
그런 존재를 연원이한테만 떠맡기 는 건 좀 부당하지.
"연원이는 혼자가 아니잖아요. 드 라이어드가 있는걸요."
"그래. 설마 자기 계약자가 죽게 내버려 두겠어?"
혜원 언니는 그렇게 믿고 싶은 것 같았다.
사실 드라이어드가 원한다고 도와 줄 수 있는 건 아니고, 표연원이 아주 간절히 원해야 가능한 것 같 았지만…….
'그 말을 굳이 할 필욘 없겠지.'
나는 걱정스러워하는 혜원 언니를 달랬다.
"그리고 마왕이 나오는 게이트가 어디 혼한가요. 마왕이 둘이나 모습 을 감췄으니 마족도 나름대로 재정 비가 필요할 거예요."
내 말에 혜원 언니도 고개를 끄덕 였다.
"하긴. 다음 게이트엔 뭐, 다른 종 족이 나오겠지."
"맞아요. 예를 들면…… 마녀 같
툭 내뱉은 그 말이 화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