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26화 (237/361)

226화

"어, 오셨슴까!"

김태병이 환하게 웃으며 날 반겼 다. 꽤나 오랜만에 보는 건데도 여 전히 해맑은 미소였다.

"서하도 왔네?"

다정 언니도 미리 와 있었는지 날 보며 웃는다. 나는 살짝 눈인사를한 다음 주변을 둘러봤다.

"과일 바구니를 좀 사왔는데…… 다른 걸 사을 걸 그랬네요."

김태병의 1인실이 온통 병문안 선 물로 가득했다. 얼핏 봐도 과일 바 구니만 열 개는 족히 넘어 보였다.

"냉장고에 넣어둘게요. 나중에 꺼 내서 먹..

벌컥,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 안도 형형색색 각종 과일로 가득했다.

사과, 딸기, 복숭아부터 시작해서 망고스틴, 패션프루츠 같은 과일까 지. 거의 청과물 시장이었다.

"하하. 정리해야 하는데, 냉장고도 가득 차서 말임다. 좀 곤란하던 참 임다."

"……그래 보이네요."

나는 결국 바깥에 쌓인 과일 바구 니 더미 사이에 내 것도 끼워 넣었 다.

"대단하지?"

다정 언니가 동의를 구하며 슬쩍 웃는다.

"그러게."

"응? 무슨 말임까?"

"아니에요."

김태병이 친화력 좋고 사회성 좋 다고 느끼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 이야.

하긴 게이트가 끝난 다음에도 체 육관 사람들하고 온전히 연락하는 건 김태병이 유일했었지.

"나도 처음엔 많이 놀랐어."

다정 언니가 작게 속삭였다. 이 광 경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더 드물 거다.

"몸은 좀 어때요?"

"괜찮슴다! 선배님들도 같은 병원 에 입원해 있어서 심심하지도 않슴

다."

"한결에서 많이 고생했단 얘긴 들 었어요."

우리 쪽에서 벨제부브와 센티피드 를 상대할 때, 그 외 나머지 마족 들은 죄다 최전선에 섰던 이들이 막아냈으니까.

개중 탱커들의 부담이 상당했다고 들었다.

단순히 싸우는 게 아니라 그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아내는 게 주요 임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크게 다친 건 오랜만이 죠?"

"초보 시절을 빼면 거의 처음임 다."

김태병이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뭔가, 한계까지 맞부딪쳐 본 느낌임다."

김태병은 몸이 곤죽이 됐다가 다 시 살아난 사람치곤 환하게 웃었다.

조각조각 난 뼈를 맞추느라 수십 시간이나 걸리는 대수술을 했다고 들었는데.

"전 그냥 단순한 놈이라 복잡한 건 잘 모름다. 전쟁이 어떻게 돌아 가는지도 잘 모르고, 그냥 위에서

명령 오는 대로 따를 뿐임다."

김태병다운 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도 편하고, 이게 더 저한테 맞는 것 같슴다."

"김태병 씨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하죠."

나는 항상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 는지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 는데 말이다.

"뭐. 저랑 다르게 서하 씨는 이제 한 부대를 이끄는 부대장 아니심 까."

"그렇기도 하죠."

나는 짊어진 것이 많으니까. 김태 병은 씨익 웃었다.

"저도 그건 한서하 씨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함다."

"맞아, 맞아."

다정 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 장구를 쳤다.

"다정 누나도 똑같슴다. 누나가 그 때 탱커가 됐으면 정말 국가적 손 실일 뻔했슴다!"

"히히. 그런 얘기 들으니 기분은 좋네."

"진심임다!"

"너야말로〜. 난 적성에 안 맞아서 도망친 거나 다름없으니까. 여전히 탱커 일을 계속하고 있는 네가 대 단하다고 생각해."

둘이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하며 꺄르르 웃는다.

나는 그런 둘을 보며 고개를 저었 다. 게이트가 클리어된 직후라 가능 한 평화로운 한때였다.

* * *

누군가 책상을 내리쳤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단 독행동에도 정도가 있는 거죠!"

"하지만 상황이 바뀌지 않았습니 까. 하나뿐인 줄 알았던 마왕이 둘 이나 나타난 그 순간 기존의 계획 은 무용지물이 된 겁니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둘 중 하나를 해치웠으니 된 거 아닙니까?"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됩 니다. 결론이 나쁘지 않으니 망정이 지 아니었으면 당장 구속감입니다. 단독행동이 가능한 건 어디까지나 독립 부대로 행동할 때만이지, 공식

적인 업무에서 이러면 곤란하죠."

사람들이 이런저런 의견을 내며 제각기 떠들어댔다.

내 공을 칭송하는 이와, 그렇다 하 더라도 독단적인 행동으로 타인까 지 위험에 끌어들였으니 엄벌해야 한다는 이로 나뉘었다.

혜원 언니는 이미 처분이 결정됐 다던데. 당분간 역천이 게이트에 참 가할 때 아이템 배분에서 불이익을 받기로 한 것이다.

목숨 걸고 싸웠는데 왜 우리가 벌 을 받는가.

그게 참 모순적이지만, 어쩔 수 없

는 노릇이기도 했다.

기존의 명령을 어기고 다 같이 남 아서 표연원만 죽고 끝날 일을 하 마터면 셋 다 죽을 뻔했으니까.

게다가 그 둘이 역천의 길드장에 13부대의 대장인 나였으니.

만약 우리 둘이 죽었으면 그 피해 가 아주 막심했을 거다.

'특히 내 쪽이 위험하지.'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이 꽤 많 았으니까. 가장 대표적인 게 SSS급 아이템인 노이트 리볼버였다.

'지루하네.'

내 청문회지만 내게 발언권은 없 었다.

"그러나 현장은 늘 급박하게 돌아 가지 않습니까. 그때마다 이렇게 보 수적으로 처벌하면, 융통성 있고 유 연하게 움직이기 어려워집니다."

"탁상공론이라곤 하지만 이런 행 위를 눈감아주면 미리 계획을 수립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개개인의 즉각적인 판단도 중요 하지만, 전문가들이 고심하여 설계 한 공략 방법을 따르지 않는 것은 마냥 옹호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회의는 지지부진 끝났다.

단순히 내 행동만 두고 판단하는 사람은 몇 없다.

이들 중 대부분은 내가 청사와 홍 염과 맺은 친분, 역천의 에이스라는 점 그리고 그동안 쌓아온 업적 등 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특별히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친헌터주의 세력은 내 편일 거고 반대로 헌터가 권력을 잡는 게 싫은 쪽은 날 깎아내리겠 지.'

당연한 수순이다.

5황자가 권력을 잡게 할 방법으로 전쟁 영웅을 내세운 것처럼, 우리쪽도 같은 이치가 적용되니까.

'전쟁 영웅이 탄생하는 걸 막고 싶 은 거야.'

그러니 앞으로도 내 업적은 평가 절하당할 것이고, 이들은 여러 가지 꼬투리를 잡겠지.

그러나 그게 얼마나 갈까?

결국 헌터는 실력으로 평가받기 마련이다.

'당신들도 결국 인정하게 될 거 야.'

별이 하늘에서 반짝이는 것처럼, 나도 드높게 설 테니까.

역천의 별. 그 칭호처럼.

* * *

"서하야!"

내가 회의실에서 나오자 혜원 언 니가 다가왔다.

"언니?"

나는 어리둥절하게 그녀를 바라봤 다. 끝나고 테오도르의 공방에 들렀 다 갈 거라고 말했었는데?

"언니도 공방에 갈 일이 있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아직 몸도 멀쩡하지 않으니까 걱정돼서 찾아 왔지. 좀 괜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센티피드의 마비독을 해독하느라 성수를 링거처럼 맞고 있긴 하지만, 움직이는 데 불편한 건 거의 없었 다.

"집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아, 오늘 역천 회의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회의는요?"

"네가 너무 걱정돼서 회의에 집중 이 안 되더라고."

웅? 언니가?

나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혜원 언 니를 바라봤다.

집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데리러 오고. 회의도 내팽개치고 왔다 하 고.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연호가 그냥 보내줬어요?"

"걔도 아닌 척하지만 널 많이 아 끼잖아."

조연호가 잔걱정이 많긴 해도, 공 과 사를 구분 못 할 정도는 아닌 데.

특히나 혜원 언니는 아무리 내가

걱정된다 해도 회의를 때려치우고 내게 올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심증만 있을 뿐이라 나는 노이트를 살살 쓰다듬었다.

"이번 게이트 공략 일로 말이 많 지? 결과적으로 잘 끝났는데 말이 야."

혜원 언니가 일상적인 말을 꺼냈 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언니를 떠봤다.

"그러게요.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그보다 오늘 저녁은 뭐래 요? 연원이가 차려준다 했던 거 같

은데."

"응? 딱히 들은 건 없는데."

무난한 대답이었다.

나는 이어서 한 번 더 미끼를 던 졌다.

"이번에 게이트에서 고기수프 만 들어준 것도 맛이 괜찮았는데. 꼭 소고기 같았잖아요."

"어어〜, 맞아. 난 몬스터 고기가 그런 맛도 낼 수 있는 줄 처음 알 았다니까?"

"무슨 몬스터 고기였죠? 다음에 게이트 들어가면 직접 해 먹어볼까

하는데."

"뭐였더라……

나는 혜원 언니가 내뱉는 말에 집 중했다.

"화산암전갈이었던가?"

"……네, 그랬던 거 같아요."

나는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혜원 언니가 맞나?

이건 함께 게이트에 들어간 사람 이 아니면 모를 텐데.

'과민반응이었나?'

언니도 한 번쯤은 역천 회의를 그 만두고 달려올 수도 있는 건데. 내가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서 이상하 게 느낀 걸까?

"언니. 잠시 할 얘기가 있는데요."

"뭔데 그래?"

"여기서 하긴 좀 그렇고, 이 회의 실 빈 것 같은데 잠깐 안으로 들어 가죠."

내 말에 혜원 언니도 굳은 낯빛을 하고서 날 따라 들어왔다.

"무슨 얘기길래 그……

철컥.

나는 혜원 언니의 등 뒤에 노이트 를 겨눴다.

"언니. 저 믿죠?"

혜원 언니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 본다.

"무슨 소리야. 서하야, 이 총을 일 단 내려놓고……

"이 총 맞아도 안 아플 거예요."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아니. 혜원 언니라면 알고 있다.

내 탄환 중 하나가 '아늑한 바람' 이라 모든 대미지를 무효화해주는 스킬이 있다는 걸.

물론 노이트에 담긴 게 일반 탄환 일지, 아늑한 바람일지는 나만 아는거지만.

"절 믿으면, 받아줘요."

내가 아는 혜원 언니는 기꺼이 맞 아줬을 거다.

부러 등에 총구를 가까이 댔다. 여 길 잘못 맞으면 바로 폐가 다친다.

갈비뼈 사이로 폐가 아주 가깝게 붙어있거든. 일반 탄환이라도 기흉 정도는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탕!

총알이, 애꿎은 벽에 꽂혔다.

"대단하십니다. 아주."

사내가 비꼬는 어조로 툭 내뱉었

다.

감쪽같이 혜원 언니와 똑같던 겉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은회색 눈동 자가 날 똑바로 마주했다.

"내 변신술을 알아차린 사람이 당 신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으 로 확인할 줄이야."

변신술의 귀재, 카멜롯.

전에 만났던 그 사내였다. 초등학 생 남짓한 모습으로 보였지만.

"정말 맞아도 안 아팠을 겁니다."

"맞아도 안 아픈 총알이라. 그거 참 재밌네요! 말장난인가?"

"말장난 아닙니다. 평범한 탄환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카멜롯은 믿는 기색이 아 니었다.

"그냥 날 쏘고 싶었다고 말하지 그래요?"

비꼬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사실 난 정말로 기회만 된다면 그를 한 방 갈겨주고 싶었다.

"왜 저한테 접근한 겁니까?"

그것도 내게 소중한 이의 얼굴을 하고서.

내 경계심을 풀 작전이었다면 오

히려 역효과였다. 차라리 그가 이운 우로 변신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 지도 모른다.

'이운우는 오래 봐왔지만 나도 그 속내를 잘 모르겠거든.'

내게 우호적인가 하면 갑자기 뒤 통수를 치기도 하니까.

"그리고, 게이트 안에서 있었던 일 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내 질문에 카멜롯은 짐짓 모르는 체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게이트에 들어갔던 이들 중에 카 멜롯과 친분 있는 사람이 있나?'

아니. 아무리 친분이 있다 해도 표 연원이 조리한 음식의 재료가 뭔지 까지 말했을 리가.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설마……

"카멜롯 씨. 당신, 우리랑 같이 게 이트 안에 있었던 겁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