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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24화 (235/361)

224화

챕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자그마한 박쥐는 내 피를 받아먹 더니 어깨 위로 올라와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그 위협적인 메테오를 날렸 던 장면과, 그가 기다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위엄 있게 행동하던 모 습이 생각나면서 기분이 무척 묘해졌다.

'……무력화될 거라고 하던 게, 이 런 의미였어?'

나는 그냥 인간 모습인데 힘만 사 라지는 건 줄 알았지!

아무래도 본체가 저 박쥐고 평소 의 모습은 마법으로 만들어낸 것이 었던 모양이다.

다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는 듯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그때 였다.

우우우웅!

바닥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내 발밑만 그런 게 아니다. 사방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법진이 발동되기 직전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곧 마법진이 발동될 거예요! 아이 템 눌러요!"

나는 품속에 준비해둔 아이템을 쥐고 발동시켰다.

날 따라서 혜원 언니와 표연원도 아이템을 찾아 손에 쥐었다.

벨제부브로 추정되는 박쥐로 퍼드 득 하늘을 날아올랐다.

사르르, 아이템이 녹아내리는 것과

동시에 빛이 점점 더 환해졌다.

"탈리, 빨리!"

마음이 조급해져서 아이템을 꼭 쥐었다.

외부로 한 번에 이동하게 해주는 아이템이었는데, 오늘따라 그 발동 이 거북이처럼 느리게 보였다.

화아아악!

바닥의 빛이 더욱 환해졌다. 사방 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혜원 언니와 표연원의 모습이 사 라지자, 이 공간에 나 혼자 남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혜원 언니! 연원아!"

크게 외쳐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머 릿속을 스쳤다.

운 나쁘게도 내 아이템이 충분히 빠르지 못했던 모양이지.

그래도 다행이었다.

'혜원 언니랑 연원이는…… 무사히 빠져나갔나 봐.'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셋 중 하나가 죽어야 한다 면,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나으니까.

'그 둘 없이 살아남는다면. 나는

다시 회귀 전처럼 분노에 가득 차 게이트에 미친 헌터가 되겠지.'

그런 삶은 저번 생으로 충분하다.

나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손끝 감각이 흐려지고, 중력을 받 던 몸이 자유로워지는 게 느껴졌다.

흙 내음이 콧속을 파고들었다.

웅?

흙 내음?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상황을 파 악하기 위해서였다.

[알림: 게이트가 클리어되었습니 다.]

[기여도를 측정합니다.]

[기여도가 265,990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기여도 2순위를 달 성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아이템이 배분됩니 다.]

익숙한 알림이 시야를 가득 채웠 다.

깨달음은 한 걸음 늦게 찾아왔다.

" 아."

나, 살았구나.

스르륵 상체를 들어올렸다. 나는 숲이라기엔 한참 작은 흙더미 위에 앉아있었다.

바로 옆에 낡은 아파트 건물이 보 였다.

검은 화산 게이트가 오랜 시간 클 리어되지 못하면서, 게이트가 차지 하고 있던 공간도 고스란히 방치됐 었다.

그 탓에 아파트는 한층 낡았고 아 파트 화단은 잡초투성이였다.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 한 명 보이 질 않았다.

나는 품을 뒤져 아이템을 찾았다.

[아이템을 확인합니다.]

〈바꿔치기 구슬(사용불가)〉

등급: B

설명: 아이템을 사용하면 지정된 물건과 사용자의 위치를 바꿔치기 합니다. 1회용 아이템입니다. 더 이 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늦게라도 아이템이 발동했던 모양 이다.

덕분에 살아남았고, 마법진이 발동 하면서 게이트가 클리어된 것 같았 다.

나는 구슬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풀썩 드러누웠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햇볕이 어 슴푸레하게 비췄다.

성공했다.

검은 화산 게이트가, 클리어됐다.

와락!

류라임이 내게 매달렸다. 온 힘을 실어 달려와 안긴 탓에 살짝 휘청 일 정도였다.

"류라임 씨."

내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링거 달고 이러시면 어떡해요."

"흐급그그거 거……?"

" 네?"

옷에 고개를 파묻고 대꾸하는 통

에 대체 뭐라고 하는 건지 알아들 을 수가 없었다.

"왜…… 저희한텐 말 안 했어 요……?"

류라임이 고개를 떼고 날 올려다 보며 말했다.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날 보는 류라임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 혀 있었기 때문이다.

"류라임 씨. 울어요?"

"저희는 서하 님한테 동료가 아니 에요?"

내 물음엔 제대로 대답도 않으면

서 류라임이 따져 물었다.

그 옆에서 우릴 바라보던 정로운 과 신도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번 일은 너무했어요, 대장."

"지나치게 독단적이었지."

나를 힐난하는 어조다. 하지만, 나 도 억울한 구석이 있었다.

"실패하면 다 같이 죽었을 거예 요."

"죽을 것 같은 계획을 실행에 옮 기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은 안 드나?"

신도아가 신랄한 어조로 물었다. 나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흐그그그급그그……

"류라임 씨, 고개는 떼고 말해주세 요."

"저희 말고 그 사람들한텐 말했잖 아요."

류라임은 여전히 불퉁한 표정이었 다.

"……혜원 언니랑 연원이요?"

내 물음에 류라임이 고개를 끄덕 인다.

"그야…… 연원이와 관계된 일이

었고, 이 일에 제 부대원까지 끌어 들이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 으니까요."

"왜 걔는 연원이에요?"

" 예'?"

류라임의 대화 방식이 일반인과 좀 다른 게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유독 따라가기가 어려웠 다.

"왜 저는 류라임 '씨'고. 걔는 연 원이냐구요."

"……걔는 제 친동생 같은 애라서

요."

"저도 서하 님 동생이었잖아요. 가 짜긴 했지만, 잠깐은."

5황자 앞에서 연극할 때 얘기 같 은데 갑자기 그게 왜 튀어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자 류 라임은 됐다며 다시 얼굴을 파묻었 다.

"적어도 이런 일을 벌일 거면 우 리랑 상의는 해야 했던 거 아닌가? 아무리 상하 관계가 명확하다곤 하 지만, 이렇게 돌발 행동을 하면 우 리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맞아요, 맞아요!"

신도아가 본격적으로 내게 따져 묻자 정로운이 옳다며 뒤에서 고개 를 끄덕끄덕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본부와도 협의된 사안이 아니라 여러분을 끌 어들이기가……

우당탕탕!

"한서하!"

그때 병실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낯익다.

"한서하 어딨어!"

"이운우 길드장님! 이곳엔 아직 치 료가 필요한 분들이 많습니다. 아니

그 전에 길드장님도 마력 과부하를 치료하셔야……!"

"한서하 씨만 잠시 볼 겁니다. 응 급처치는 끝났죠?"

"그렇긴 한데요. 헉, 잠시만요!"

의료진이 말리는 소리가 잠깐 들 리고는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가 가 까워졌다.

벌컥!

나는 뒤돌아보지 않아도 내 뒤에 선 이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파지직.

스파크 튀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

렸으니까.

"……이운우."

"할 얘기가 있는데."

그가 애써 꾹꾹 참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부대원들 앞에서 하긴 부적절한 대화일 것 같네. 나오는 게 너한테 도 좋을 거야."

간신히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힐끗 고개를 돌려보니 뺨까지 타 고 올라온 문양을 보아 그도 치료 받다가 뛰쳐나온 모양이었다.

"잠깐만요. 길드장님."

그때 정로운이 끼어들었다.

"아직 저희도 얘기가 안 끝나서 요."

"부대원끼리 할 얘기가 많으니 잠 시 자리를 비켜줬으면 하는데."

신도아가 자리에서 일어서 이운우 의 앞에 섰다. 둘이 눈을 마주치자 스파크가 튀는 것 같았다.

용과 호랑이…… 아니, 뱀과 호랑 이인가.

둘이 눈싸움을 하는 그 뒤로 맹수 들이 싸우는 이미지 같은 게 얼핏보인 것도 같았다.

"신도아 씨. 정로운 씨. 부대원끼 리는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시죠. 저 는 지금 총사령부 대표로, 13부대 의 대장인 한서하 헌터의 개인행동 을 지적하러 온 거니까."

"우리도 13부대의 부대원으로서 부대를 이끄는 대장이 보여야 할 모범에 대해서 지적하려고 한다만."

그야말로 용호상박이었다.

둘이 살벌한 기 싸움을 벌이는 동 안, 류라임이 내 품 안에서 작게 꿈틀거렸다.

"도아 씨, 로운 씨. 그리고 운우

길드장님."

류라임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여기서 다들 나가주세요."

"뭐?"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류라임이 갑자기 허리춤에서 폭탄 을 꺼내 들었다. 아니 저건 어떻게 들고 온 거지?

"빨리요. 안 그럼, 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슬쩍 본 류라임의 눈이 완전 맛이 갔다!

진짜로 폭탄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는 생각에 나는 황급히 외쳤다.

"당장 나가요!"

"라임 씨! 저, 저희는 왜요? 저희 는?"

정로운이 애처롭게 외쳤지만 류라 임은 모두 나가라는 입장을 고수했 다.

결국 소란을 피운 탓에 의료진들 까지 합세해 다들 다른 병실로 쫓 겨나 버렸다.

류라임과 나만 같은 병실에 남았 다. 덕분에 사방이 조용했다.

침묵이 내려앉은 병실 안에서, 류

라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서하 님."

" 네?"

"저는요. 정말로, 서하 님을 존경 하고 있거든요."

류라임의 목소리는 작지만 깊은 감정을 내포하고 있어서, 듣는 사람 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그러니까, 제 목숨은 서하 님의 것이나 다름없어요. 만약 이번 같은 일이 또 생기면…… 차라리 절 이 용해주세요. 제발요."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단순히 날 '존경'한다고 말하기 엔…… 너무도 깊은 감정이었으니 까.

"류라임 씨. 대체 왜 그렇게까 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류라임이 이제까지 내게 충성을 바친 건, 그녀가 원체 이해하기 어 려운 사람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제 목숨을 바칠 정도인 줄은 몰랐 다.

'날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잘

따르긴 했지만, 그냥 단순한 동경인 줄 알았는데.'

내 물음에 류라임이 잠시 주저하 다 입을 열었다.

"이 얘기는 원래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이젠 말씀드려 야 할 것 같아요."

심상치 않은 서두였다.

"아시겠지만…… 저는 원래 밑바 닥 헌터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렇 게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이 유는, 바로 제 특이한 고유 스킬 때문이에요."

나는 류라임이 털어놓으려는 얘기

가 뭔지 눈치챘다.

식인. 그 능력에 대한 얘길 하려는 거였다.

'위험한 얘기야. 자칫하면 국가적 으로 악용하려 들 수도 있고, 위험 분자로 낙인찍히기도 쉬우니까.'

그런데 그 얘길 내게 꺼내려 하다 니. 날 향한 신뢰가 아주 두텁다는 뜻이었다.

"……제 고유 스킬은, '식인'이에 요."

뒤이어 황급히 말을 잇는다.

"진짜로 사람을 먹는 건 아니고,

제가 죽인 사람의 능력치 일부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고요."

"……그렇군요."

"놀라지 않으시네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 긴 했어요. 성장 속도가 너무 빨랐 으니까요."

내 대답에 류라임은 힘없이 웃었 다.

어딘가 허탈하다는 듯이.

"이렇게 쉬운 걸, 왜 이제까지 망 설였나 몰라요."

"다른 사람들에겐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 당연하죠."

류라임이 차게 대꾸했다.

"이미 한번 큰코다친 적이 있는걸 요."

"……뭐라고요?"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큰코다친 적 있다니?

"다른 사람한테 말한 적이 있어 요?"

" 있었죠."

류라임을 활짝 웃었다.

"지금은 다 죽었지만."

섬뜩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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