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챕터: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검은 화산 게이트 공략에 실패한 이후, 1년이 흘렀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도 그 정도 됐단 얘기였다.
이운우가 지휘봉을 잡은 것도, 그 쯤이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고착화된 게이 트는 총 3개. 개중 한국의 검은 화 산 게이트가 가장 고난도라고 판단 되어, 국제 연합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되었습니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벨제부브의 위용을 봤던 이들이라 면 누구라도 동의할 내용이었다.
"한 달 뒤, 국제 연합 소속 헌터들 과 각국 헌터들의 도움을 받아. 검 은 화산 게이트 2차 공략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긴장감이 묵직하게 흘렀다.
검은 화산 게이트 이후 수많은 게 이트들이 나타났었지만, 한국의 헌 터들이 총력으로 맞부딪친 게이트 는 검은 화산 게이트가 유일했다.
"드디어 그 악명 높은 게이트에 들어가 보는군."
진성연이 씨익 웃었다. 호승심이 끓어 넘치는 모양이었다.
"게이트 외곽 지역에 우리가 지켜 낸 요새가 있습니다. 게이트 공략이 시작되기 전까지 핵심 요새를 세 군데 더 확보하는 걸 목표로 하겠 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게이트 클 리어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설명을 이어가던 이운우가 힐끗 내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이곳의 보스 몬스터는 마왕 '벨제부브'입니다."
그래.
다시 한번 녀석을 볼 수 있는 거 다.
'저번엔 허무하게 놓쳤지만. 이번 엔...
4세대 헌터도 막 배출된 참이다. 이전과 다르게 외부 인력도 투입되 니,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이번 공략에 실패하면 언제 다시
공략을 시도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국제 연합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으니까요."
"그러니 반드시. 이번에 공략하는 걸 목표로 한다."
윤강백이 단호한 목소리로 얘기했 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는 국제 연합에서 파견해주 기로 한 헌터들의 정보와 보급 물 자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이들의 계획에 최대한 협력 하면서도 여차하면 따로 움직일 예 정이었기에 적당히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마지막으로, 한서하 헌터."
이운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벨제부브 관련해서 협력 요청할 게 있으니 남아주세요. 이상입니 다."
탁.
테이블을 가볍게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회의가 끝났다.
"서하야. 오래 걸릴 거 같아?"
혜원 언니의 물음에 나는 잠시 고 민했다.
"잘 모르겠어요. 언니 먼저 들어가 요. 저는 따로 갈게요."
"으음, 그래, 그럼."
혜원 언니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 다.
"이상한 거 부탁하면 거절하고. 알 겠지?"
"음……. 그럴게요."
"저번엔, 한국 헌터들끼리 상대하 려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만... 이번엔 아니잖아."
언니가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저번 계획에서도 언니는 불만스러운 기 색이 역력했었지.
어쩔 수 없으니 말없이 협력했지
만.
"알겠지? 응?"
꽈악.
걱정스러운 음성과 별개로 손에는 힘이 가득하다.
으드득, 살벌한 소리가 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 아파요."
"대답해. 알겠지?"
내가 손을 빼려 하자 도리어 잡아 당긴다. 알겠다고 하기 전엔 놔주지 않을 것 같았다.
"……알겠어요."
"그래!"
내 대답에 언니가 한충 밝아진 얼 굴을 했다.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 며 먼저 들어가 보겠다며, 오늘 저 녁은 연원이가 만든 볶음밥이니 빨 리 들어오라고 이른다.
'언니도 참. 걱정도 많다니까.'
내가 설마 그렇게 무모하게 행동 하겠는가.
나는 발길을 돌려 이운우에게 향 했다.
달칵.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몇 사람이 더
있었다.
"윤강백 길드장님. 전청운 씨."
홍염의 쌍두마차인 둘이었다.
"왔네."
이운우가 먼저 날 반겼다.
"우선, 지난번 게이트 클리어부터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군."
윤강백이 서두를 열었다. 5황자에 게 공로를 돌렸던 그 게이트를 말 하는 걸 거다.
"별말씀을요."
"꽤 절묘했어."
윤강백의 칭찬에 고개를 까딱했다. 감사하다는 표시였다.
"오늘 이렇게 넷이 모인 이유는 벨제부브를 상대하기 위해서입니 다."
이운우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 뜨렸다. 이게 본론이긴 했다.
"제가 알기로 벨제부브를 가장 가 까이서 마주했던 게 여기 계시는 세 분입니다."
그래. 제일 먼저 벨제부브와 마주 하고, 부상을 입은 채 실려왔던 윤 강백.
연화도 게이트에서도 봤었고, 그를 유인하는 미끼 역할을 했던 나.
마지막으로 벨제부브가 후방을 공 격했을 때 정면으로 승부했던 전청 운까지.
이렇게 셋 다 벨제부브 탓에 씻을 수 없는 악몽을 겪은 이들이었다.
"당시 지휘권을 제가 가지고 있었 기 때문에 저는 직접적으로 상대해 본 적은 없어서요. 세 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려고 합니다."
"그런 이유군. 자세한 전략은 국제 연합 측 인사가 도착하면 한 번 더 다듬어야겠지만 미리 준비해둬야겠
지."
"네. 국제 연합에서 추구하는 방식 이 한국의 클리어 방식과는 좀 다 르니까요. 설득력이 높은 작전을 미 리 구성해둬야, 지휘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여러 나라가 관여하게 되면 누가 우두머리에 서느냐가 문제가 되기 마련이었다.
"저번처럼 한서하 헌터가 미끼로 나서도 되겠지만…… 이미 썼던 방 법이니 기각하도록 하죠. 한 번 더 당해줄지도 의문이고요."
"아마 따라오긴 할 텐데."
내가 아는 벨제부브라면.
첫 작전도 벨제부브가 우리의 함 정을 눈치채지 못해서 걸려든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작게 항변했지만 이운우가 차갑게 묵살했다.
"국제 연합 앞에서 벨제부브와 한 서하 헌터 사이의 관계성을 설명하 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요."
"그런 감정적인 이유보단 객관적 인 근거를 원할 테니까."
윤강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를 3군데 더 만들려는 걸 보
면 이미 기초적인 계획은 짜여 있 는 것 같던데."
내 말에 이운우가 설핏 웃었다.
"맞습니다."
이운우는 작게 속삭였다.
"연금술과 마법의 합작을 전부터 연구해왔는데, 최근에 결실을 맺었 거든요."
정부에서 그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곤 들었다. 테오도르가 귀찮게 됐다며 투덜거리던데.
"보고 듣긴 했다만. 아직 실전에서 쓸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하던
데."
"안정성 검증이 더 필요하단 얘깁 니다."
그 말인즉, 살상력은 충분히 검증 됐다는 뜻이었다.
"방법은?"
"이 요새를 기점으로 거대한 마법 진을 그릴 겁니다. 마법진 위로 연 금술로 만들어진 '마력 증폭 가루' 를 뿌리고, 대량의 마력석을 이용하 면…… 마법진이 발동합니다."
"마법진의 내용은?"
"'섬멸'입니다."
그것 참 모호한 설명이었다.
"마법진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 체를 갈가리 찢어버리는 것. 그게 마법진의 내용입니다."
"……안정성 검증이 다 끝나지 않 았는데 사용해도 되는 건가."
"마법 효과는 마법진 안에만 적용 되니 안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됩니 다. 위력도 살상용으로는 충분하고 요."
안에 들어가 있으면 절대 살아 돌 아올 수 없단 소리였다.
오싹,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게이트 안에 있는 대부분의 생명체를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적들의 주둔 지이니 병력 손실도 심할 거고, 아 무리 강한 적이어도 직접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죠."
그 정도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 하더라도 사용할 만한 것 같았다.
"이미 작전이 다 정해진 것 같은 데. 뭐가 문제지?"
전청운의 물음에 이운우가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이 마법진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 습니다."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그 말에, 다 들 주의를 기울였다.
"대규모인 만큼, 발동에 오랜 시간 이 걸립니다. 마력석은 마나만 제공 할 뿐이니 그 거대한 마나를 깎고 조각하는 건 마법사들이 해야 할 일인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 하기 어려울 정돕니다."
"적군이 마법진 밖으로 빠져나오 지 못하도록 싸워야겠군."
국제 연합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었나.
'단순히 마법진을 그리는 것뿐이라 면 현재 전력으로도 충분했을 테니
까.'
하지만 마법진의 규모가 게이트 대부분을 뒤덮는 만큼, 놈들이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범위 도 상당했다.
"맞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력 이 아마 거기에 사용될 겁니다."
"약한 마물들이 조금 빠져나오는 건 상관없으니 마족들 위주로 방어 해야겠어."
"그러니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이 생기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마족은 어떻게든 헌터 병력을 집중시키면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벨제부브는?
"누가 벨제부브를 그 발동 시간 동안 마법진 안에 묶어둘 것인 가..J윤강백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게 문제로군."
"네. 그게 문제죠."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확 인차 다시 물었다.
"이 마법진 안에선 모든 생명체가 넝마조각이 될 거고 말이지."
"그렇지."
그래. 그렇다면.
자기 목숨을 걸고 벨제부브와 맞 서 싸우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마법 진 밖으로 도망칠 수 있는 사람 이..
몇이나 될까?
"차라리 그냥 죽으라 하지 그래?"
그냥 들어가서 벨제부브와 함께 목숨을 바치란 소리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중얼거 리자, 이운우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러게. 그냥 죽으라 할까?"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 다.
벨제부브를 그 긴 시간 동안 묶어 두는 것도 고역인데, 묶어둔 다음엔 그대로 갈기갈기 찢겨 죽어야 한다 니.
"당연히 단신으론 벨제부브를 막 을 수 없을 테니 발동 직전까진 대 적 부대를 따로 구성해 상대하도록 할 겁니다."
"문제는 마지막에 남는 사람인 건 가."
"그렇죠."
윤강백이 턱을 살살 쓸었다.
"마지막 사람을 남기고 다들 후퇴 할 때까지 시간은 어느 정도로 잡 고 있지?"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최소 1분, 최대 10분으로 잡고 있습니 다."
"1분에서 10분......
대적부대도 무사히 빠져나가지 못 하고 어딘가에 발목이 잡히면 그대 로 죽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촉박한 시간이었다.
'기동성이 좋은 이들로 구성해야겠 네.'
어쩌면 내 부대원들도 합류하라고 권유를 받을 수도 있겠다.
그걸 수락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본인들의 선택이겠지만.
나는 이운우가 날 부른 이유를 대 충 알 것 같았다.
기동성이 뛰어나고, 벨제부브를 묶 어둘 수 있으며, 제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
이건 날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말인데, 한서하 헌터
"알겠어."
내가 긍정을 표하자 이운우가 살 짝 눈살을 찌푸렸다.
"뭔 줄 알고?"
"뻔하지. 내가 할게."
내 말에 이운우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아냐. 틀렸어, 한서하."
그가 차게 날 비웃었다.
"널 말한 게 아니야. 네가 끔찍이 도 아끼는 동생, 표연원에 대한 얘 기지."
뭐라고……?
나는 멍청하게 되물을 수밖에 없 었다.
"......누구?"
"표연원. 4세대 중 루키에, 식물을 다룬다며. 누군가를 묶고 포박하기 에 최적인 고유 스킬이잖아."
이운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연원이를?"
"그래. 그 헌터를. 표혜원 헌터는 자기 동생에 대해서 감정적인 태도 를 취하곤 하니까, 네가 최대한 그
헌터를 설득해줬으면 하는데."
나는 도무지, '그래'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