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챕터: 되돌아온 충신
5황자가 주둔하고 있는 곳은 서울 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열린 게 이트로, 규모는 중소 정도였다.
파견된 부대는 우리뿐.
휘이이익.
바람이 스치며 거센 소리를 냈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이대로 정 면 돌파인가?"
신도아가 내게 물었다.
"그러면 속도는 훨씬 빨라지겠지 만, 우리가 너무 일방적으로 승리할 지도 몰라요."
"상대는 전략에 무지하다고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는 톨룩 측이 훨씬 많지만, 수 준 이하의 병사는 불쏘시개에 불과 한 법이다.
"우와! 신난다!"
옆에서 즐거워하는 류라임의 먹잇
감밖에 더 되겠는가.
"주의할 만한 인물은 없을까요?"
"굳이 꼽자면.... 5황자의 기사, 세드릭 정도요."
정로운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직접 겨뤄본 적은 없지만 실력이 꽤 괜 찮은 것 같았다.
왜 5황자에게 붙어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류라임 씨."
" 네?"
"저번에 저랑 했던 대로 자매인 척할 수 있겠어요?"
류라임이 눈을 반짝 빛낸다.
"물론이죠! 맡겨만 주세요. 서하 님의 완벽한 여동생이 되어 드릴 테니까요!"
즐기는 것 같으니 잘됐다. 나는 의 욕이 넘치는 류라임에게 계획을 대 충 설명했다.
"저번에 봤다시피 5황자 주변엔 세드릭을 제외하면 따로 측근이 있 는 것 같진 않았어요."
"맞아요. 그래 보였어요."
"일명 '죽음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되돌아온 충신' 컨셉입니다. 할 수
있겠어요?"
류라임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고 개를 끄덕였다.
"조금 무리수인 설정도 뒤섞여 있 으니 훌륭한 연기력도 필요해요."
"열심히 할게요!"
나는 무전기를 귀에 꽂으며 신도 아를 바라봤다.
"안에서 시간이 나면 무전 할게요. 그동안 주변에서 대기해줘요."
" 알겠다."
"알겠습니다, 대장."
정로운까지 대답하는 것을 확인하
고 나서 나는 류라임과 함께 하강 했다.
'모름지기 이런 건 등장이 중요한 법이지.'
테오도르와 자작극 꾸미던 경력이 이럴 때 빛을 발한다.
* * *
5황자, 시온은 또다시 전쟁터로 보 내진 것에 아주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스테이크를 썰
다가, 결국 쾅! 테이블을 내려쳤다.
"위험합니다, 저하."
뒤에 서 있던 세드릭이 시온의 손 에서 나이프를 빼냈다. 혹여나 다치 기라도 할까 조심스러운 손길이었 다.
"경. 경이 생각하기에, 내가 전쟁 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것 같 나'?"
"그건......
세드릭은 잠시 고민했다.
거짓을 고해서 제 주인의 기분을 맞춰야 할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는 충직한 검이 되어야할지 말이다.
"난 분명 최선을 다했어. 머저리 같은 전략에, 게이트에선 늘 패배하 고 병사들도 죄다 몰살이었다고!"
아드득, 시온이 이를 갈았다.
무능한 사령관으로 보이기 위해 그렇게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 돌 고 돌아 다시 전쟁터라니. 끔찍한 일이었다.
"난 그냥 황궁으로 돌아가, 책이나 읽고 햇볕 받으면서 낮잠이나 자고 싶단 말이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세드릭, 웅?"
"황제 폐하께서 저하의 능력을 높
이 사 게이트를 맡기신 것이니 너 무 노여워 마십시오."
"나는! 그게! 싫다고!"
쾅! 쾅! 쾅!
시온은 맨손으로 테이블을 내려치 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 냉정하신 폐하께서 왜 나한테 이렇게 여러 번 기회를 주 시는지 알 수가 없구나!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실패했는데 세 번째 기 회라니!"
시온은 급기야 마구잡이로 머리를 헤집었다. 그러다가 탁, 멈추고는 낮게 중얼거리는 것이다.
"이번마저 실패하면…… 황제 폐 하께서 날 가만두지 않으시겠 지……?"
"저하, 황제 폐하께서 설마 저하를 해하시 겠습니까."
"그럴지도 몰라! 날 세 번이나 전 쟁터에 보내신 걸 보면 그냥 내가 죽을 때까지 사지에 내몰 생각이신 거라고!"
엉엉 울기 직전인 시온을 보며 세 드릭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하, 이만 들어가서 쉬시는 게……
그때 였다.
벌컥!
시온이 식사 중이던 연회장의 문 이 활짝 열렸다.
"크, 큰일 났습니다!"
"무엄하군. 저하께서 식사 중이신 데, 대체 무슨 소란이지?"
세드릭이 냉담한 어조로 물으며 검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절망에 빠져 있던 시온은 손을 휘휘 젓고는 대충 웅수했다.
"무슨 일인데."
"바깥을 좀 보십쇼!"
" 바깥?"
시온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 려 창을 바라보는 그 순간.
콰아아아앙!
쨍그랑! 와장창!
창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괜찮으십니까!"
"으응. 덕분에."
다행히 세드릭이 재빨리 몸으로 가려준 덕분에 멀쩡했다.
세드릭의 옷 위로 유리 파편이 좀
튄 것 같았지만, 그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 야……. 난 창문이 깨지는 건 이제 질색인데."
시온이 울상을 지었다.
그가 맨 처음으로 출전했던 그때 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직도 악몽을 꾼다고! 왜 날 두 고 갔냐고 우는 리트의 모습이 종 종 꿈에 나온단 말야……!"
"그거 감사하네요."
침착하면서도 나긋한 목소리. 익숙
한 말투였다. 모를 리가 없는.
"세, 세드릭. 내가 이제 환청까지 듣나 봐."
"환청이라뇨. 듣는 사람 섭섭하 게."
시온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검은 눈동자와 단번에 시선이 마 주했다. 트레이드마크 같은 무표정 도 눈에 들어왔다.
"리트! 리트잖아! 귀신인가? 저번 에 죽었을 텐데, 분명……!"
시온의 앞을 세드릭이 가리고 섰 다.
그녀에게 날카로운 칼끝을 겨눈다.
"살아있었군."
"네. 죽을 뻔했지만요."
"어떻게? 그 게이트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 있다고 듣긴 했다만, 너는 그들과 척졌으니 무사했을 리가 없 는데."
세드릭이 차분하게 상황을 짚어냈 다.
리트, 그러니까 한서하가 무사했을 리 없다는 결론에 들어서자 더더욱 수상해졌다.
"저 돌아왔……! 어?"
깨진 창문을 통해 익숙한 이가 한 명 더 들어왔다.
살벌한 낫을 타고 온 것만 빼면, 이전과 달라진 점이 없었다.
갈색 머리카락이 살랑이고, 해맑게 웃는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와! 드디어 만났네요! 황자님!"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죽었던 리트랑 라임이 왜 다시 돌 아온 거냐고……
시온은 기절할 것처럼 정신이 아 득해졌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저흰 더 이상 예전의 우리가 아
니에요."
"맞아요!"
"위대한 '그분'의 선택을 받고 혹 마법사로 다시 태어났거든요."
흑마법사?
시온은 둘의 얼굴을 살폈다. 진심 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진짠가 봐! 진짜 혹마법사가 된 거야?'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진심이 느껴졌다!
"마족과 계약을 했다고요?"
세드릭이 의심스럽다는 듯 둘을
바라봤다.
"네. 정말입니다. 그분의 힘 덕분 에 살아남을 수 있었죠. 그게 아니 면 어떻게 저희가 그 게이트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겠습니까?"
" 그건......
세드릭도 그 질문엔 말문이 막혔 다. 이 둘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살 아 돌아오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구라는 선택지가 제외된 탓이었 다.
"그리고 이렇게……
슉!
"힘도 얻었고요."
"으아아악!"
바로 옆에서 들리는 음성에 시온 이 기겁하며 뒤로 넘어졌다.
우당탕탕!
한바탕 소란이 일고 난 다음에야 시온은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럼, 아까 그 폭발도……?"
"아! 그건 제가 했어요!"
류라임이 손을 들고 대답했다.
살벌한 낫이 그들이 혹마법사라는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었다.
"왜 돌아왔지? 간신히 살아남았다 면, 그대로 떠나는 게 나았을 텐 데."
"그럴 리가요. 5황자 저하께선 아 무 능력도 없는 평민이던 때 저흴 거두어주신 은인인걸요."
시온이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둘의 편의를 많이 봐줬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은혜를 갚으러 왔어요. 저희는 이 제 힘이 있으니까요."
"날 도우려고……?"
시온은 강인한 전투원이 되어 돌
아온 둘을 보며 어안이 벙벙한 표 정을 지었다.
"그치만 난…… 그냥 실패한 사령 관이 되고 싶을 뿐인데……?"
"제가 도와드릴게요."
"맞아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 다.
시온은 문득 뭉클한 감정을 느꼈 다.
"내가 그래도 인생을 잘못 살진 않은 모양이야. 이렇게 돌아오기도 하고. 그렇지, 세드릭?"
그는 뒤돌았다가 살벌하게 인상을 쓰고 있는 세드릭을 발견했다.
"……세드릭?"
"예, 저하. 물론이죠."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는 듯, 눈 을 한번 깜빡여보니 세드릭은 평소 처럼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은 둘에게 방을 내어주고, 회 포는 나중에 풀자고!"
세드릭은 매우 천천히 고개를 끄 덕였다. 아주 내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휘이이잉.
그때 뻥 뚫린 창문을 통해 바람이 솔솔 불었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근데 꼭 창문으로 와야 했 어?"
"정문으로 멀쩡히 들어오면 그게 더 문제 아닐까요?"
시온의 말에 류라임이 해맑게 대 답했다. 맞는 말이라 시온도 금방 수긍했다.
탁.
문이 닫히자마자 세드릭은 돌변했 다.
"무슨 속셈이지?"
목에 칼날이 드리운 게 하루 이틀 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꽤 기세가 살벌했다.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벨 거다."
"5황자 저하께서 속상해하실 텐데 요."
"어쩔 수 없지. 그보다 저하의 안 위가 더 중요하니까."
단호한 어투였다.
뭐, 힘없는 병사에서 혹마법사로 돌변해 등장했으니 이상할 것도 없 는 태도였다.
"네 녀석은 항상 수상했어. 전에 미리 치워뒀어야 했는데."
"이미 늦었습니다. 5황자 저하는 저횔 보고 기뻐하시는 눈치던데요. 여전히 전쟁터에 계시고."
" 그건......
"황궁으로 돌아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죠."
내 말에 세드릭은 입을 다물었다.
척 봐도 강직한 기사이니, 간계를
써 황궁으로 돌아갈 비책을 세우진 못했겠지.
"세드릭 경. 왜 우리를 두려워하 죠'?"
"병사 명부에도 없던 놈들이 나타 나 저하께 접근하고, 죽은 줄 알았 는데 이렇게 살아 돌아오니 의심이 갈 수밖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5황자 저하께 해를 끼칠 생 각이 없습니다. 정말로요. 세드릭 경이 지키고 있는데 제가 무슨 수 로 그러겠습니까?"
나는 오히려 5황자가 전쟁 영웅이
되길 바라거든. 죽으면 곤란하지.
5황자의 의사에 반하는 일이겠지 만 겉으로 보기엔 퍽 헌신적인 행 보일걸?
"무슨 생각이지? 네 목적이 뭐냐."
"5황자 저하는 황궁으로 들어가 한량처럼 지내길 원하시죠. 세드릭 경도 저하께서 그러시길 바라나 요?"
내 말에 세드릭은 눈가를 움찔했 다.
"난 저하의 말을 따를 뿐이다."
"경도 저하께서 황궁 구석에서 있
는 듯 없는 듯 살길 바라신단 말인 가요?"
그럴 리가 없지.
대개 이런 충직한 검들은, 명예를 중요시해서 제 주인도 드높은 하늘 의 별이 되길 바라거든.
"5황자 저하께서 모두의 위에 서 는 모습이 보고 싶지 않으세요?"
톨룩의 하늘, 황제가 되는 모습 말 이다.
내가 5황자를 하늘로 만들어주겠 다.
그 하늘을 비트는 것도 내가 전문
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