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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03화 (214/361)

203화

생각보다 격렬히 싫어하는 것 같 다. 좀 의아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알림: '노이트 리볼버'가 성좌가 되려면 여러 까다로운 조건을 맞춰 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야 하겠지.

그래도 그 성좌라는 이들은 시스 템에 관여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니 까.

'어떤 조건을 맞춰야 하는데?'

그 방법을 알면 예언을 더 잘 이 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성좌로 올라서려는 욕심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알림: '노이트 리볼버'가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고 경고합 니다.]

'상관없어.'

과거의 아픔 때문에 현재를 마주 보지 못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으니.

노이트는 잠시 침묵하다 말을 이 었다.

[알림: '노이트 리볼버'가 새하나 교와 관련된 일이라고 운을 뗍니 다.]

새 하나교.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나도 모르 게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내게 등 돌렸던 이들과 스러져 버 린 이가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알림: '노이트 리볼버'는 그때 아 이템과 영혼이 결합되는 걸, 그로 인해 아이템이 큰 힘을 얻는 걸 보 지 않았냐고 묻습니다.]

보았다.

'똑똑하게. 이 두 눈으로.'

이찬송이 줬던 아이템을 통해 그 연결 고리를 분명히 봤다.

안유수의 영혼이 순식간에 동나는 것도 봤다.

그리고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 것이 바로 성좌가 되는 방법이었다.

[알림: '노이트 리볼버'가 아이템 은 적정 수준 이상의 '신격'을 갖추 면 틀에서 벗어난 존재, 즉 성좌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격.

아이템의 신격, 영혼의 격.

그놈의 격에 대한 얘길 몇 번째 듣고 있는지.

나는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사람의 영혼을 흡수하는 것도…… 격을 갖추는 방법 중 하나야?'

영혼을 흡수했던 아이템들은 하나 같이 몰라볼 정도로 강한 힘을 얻 었었다.

그게 그들이 영혼의 격을 흡수하 면서 자신의 신격을 높인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알림: '노이트 리볼버'가 신격을 자연적으로 올리려면 아주 오랜 시 간이 걸린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영 혼을 흡수하는 게 그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입니다.]

그래서 노이트가 그렇게 기겁을 했던 모양이다.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게 아 니면, 성좌가 된다는 말은 곧 인간 의 영혼을 잡아먹는단 소리일 테니.

'노이트의 경우엔, 내 영혼을 말이 지.'

다행히 노이트는 그런 것에 관심 이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알림: '노이트 리볼버'가 인간의 영혼을 동의 없이 취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영혼의 주인에 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인 과율에 부합한다고 설명합니다.]

'하긴. 아무 인간의 영혼이나 가져 갈 수 있었다면 모두 다 성좌가 됐 겠지.'

적어도 노이트가 내 동의 없이 내

영혼을 빼먹을 일은 없다는 얘기였 다.

머리가 아팠다. 좋지 않은 기억들 과 새롭게 얻은 정보들이 머릿속에 서 뒤엉켰다.

'얘기해줘서 고마워. 노이트.'

[알림: '노이트 리볼버'가 너무 많 은 것을 알아버린 사용자를 안타까 워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노이트는 침묵을 지켰다.

나는 고개를 들어 백목련과 박노 아를 바라봤다. 둘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됐어요."

"어떻게 된 거죠? 그 리볼버랑 뭔 가 대화를 나눈 건가요? 에고를 가 진 무기가 사용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듣긴 했는데 직접 본 건 처음이네요."

백목련이 참았던 말들을 한 번에 쏟아냈다.

눈빛에선 감출 수 없는 호기심이 번뜩였다.

"무슨 대화를 하셨나요?"

박노아의 물음에 나는 잠시 단어 들을 골랐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을 꺼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백목련은 새하나교에 대한 이야기 도 다 알고 있으니, 괜찮을 거야.'

나는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우리가 추측한 것처럼 에고를 지 닌 아이템이 격을 갖추면 성좌가 되는 거라고, 그 방법 중 하나 가…… 새하나교에서 봤던 것과 유 사한 방식이라고 말이다.

"그런 일이……

백목련의 표정이 삽시간에 심각해 졌다.

"당신, 그 리볼버를 믿을 수 있나 요?"

그녀가 내게 확신할 수 있냐고 물 었다.

"만약 나중에라도 마음이 달라지 면, 당신을 잡아먹고 성좌가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확신할 수 있었다.

노이트를 수리할 때, 날 말리던 손

이석과 다정 언니에게 했던 말이었 다.

"믿을 수 있어요."

노이트가 만약 내 영혼을 취하려 했다면 그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 을 거다.

'언제나 한계에 다다랐을 때, 나는 노이트에게 애원했으니까.'

그때 노이트가 내 영혼을 대가로 달라고 요구했다면 난 이미 이 세 상에 없었을 테니까.

내 확고한 눈빛에 백목련은 미심 쩍다는 표정으로 노이트를 바라보 다가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얘길 듣고 나니, 왜 톨룩에서 아이템을 '신의 조각'이라고 불렀는 지 알겠네요."

백목련의 말에 나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놀랐다.

'맞아. 그러고 보니, 왜 아이템을 신의 조각이라 부르는 건지 이상하 게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아이템이 신, 그러니까 성 좌가 될 수 있어서 그런 거라면 참 공교로운 이름 아닌가.

'나타롯샤 신학교.... 그곳에서 모든 게 시작된 거야.'

녹슨 쇳조각을 긁는 것 같은 목소 리를 내던 성녀와, 내 앞에서 눈을 감던 달리아가 순차적으로 떠올랐 다.

'모든 게 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운명인지 뭔지 모를 것이 나를 이 곳까지 오게 조종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별개의 사건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종국엔 같은 맥락에서 벌어진 일들 이었다니.

가슴이 옥죄이는 것처럼 답답해졌

다.

"일단…… 예언에 대한 건 저랑 박노아 씨가 더 연구해보도록 할게 요."

백목련의 말에 박노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마 그쪽도 우릴 눈여겨보고 있 겠지만…… 우리도 하나 있잖아요? 상대 쪽을 엿볼 수 있는 고장 난 라디오가."

백목련이 고갯짓으로 박노아를 가 리킨다.

당분간 야근을 해야겠다고 중얼거 리자, 박노아가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었다.

"그러니까, 이만 들어가서 쉬어 요."

그 목소리 안에 감춰진 배려를 못 알아차릴 내가 아니었다.

"이 뒤는 우리한테 맡기고요. 처음 부터 그러기로 했잖아요? 연구는 내가, 현장은 한서하 씨가."

백목련이 내 등을 떠민다.

어어, 하는 순간 연구실에서 멀어 져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여기 온 거죠? 가 족들은요."

"아직…… 제가 들어온 것만 알 거예요."

"그럴 줄 알았어요."

가족을 묻는 말에 절로 혜원 언니 와 연원이가 떠올랐다. 둘 다 한창 바쁠 텐데.

"들어가서 잠이나 자요. 당신은 머 리 쓰는 일보단 몸 쓰는 일 담당이 니까."

등을 떠미는 손끝이 스치듯 올라 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보다 살짝 작은 키 탓에 살짝 까치발을 든다.

"복잡한 건 잊어버리라고요."

백목련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 사이로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따스한 손길에 나는, 그녀의 말 대로 하고 싶어졌다.

안유수며, 새하나교며, 성좌며 하 는 것들을 다 잊고. 그대로 오랜 시간 푹 잠들고 싶었다.

아주아주 깊은 잠에 빠지고 싶었 다.

집 안에 들어서자 따스한 공기가 날 감쌌다.

싸늘하게 느껴지던 밤공기와 달리 사람의 온정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런데 주변이 온통 깜깜했다.

"혜원 언니? 연원아?"

다들 어디 나간 건가, 하기엔 집 안에 인기척이 있었다.

그것도 안쪽 방에.

"둘이 안에서 뭐 하는……

벌컥, 문고리를 잡으려는 찰나에 문이 활짝 열렸다.

팡!

"짜잔니"

가벼운 폭죽 세례와 함께, 혜원 언 니가 케이크를 들고 등장했다.

'뭐지?'

나는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눈을 크게 떴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노래를 듣고 나서야 겨우 깨달았 다.

"저…… 오늘 생일이에요?"

감출 수 없게도, 떨떠름한 목소리

가 흘러나왔다.

"거봐요. 서하 누나는 모를 거라 했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 기 생일도 모를 수가 있어?"

표연원이 그럼 그렇지, 하는 어투 로 말하자 혜원 언니가 말도 안 된 다며 받아쳤다.

"뭐야. 진짜야?"

넋이 나간 내 표정을 보고서 혜원 언니가 깜짝 놀란다.

내가 농담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고 있었단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어……. 정말 깜빡하고 있었어 요."

내 생일파티라니. 혜원 언니네 집 에 들어온 이후론 종종 챙겼지 만…… 아직까지 익숙하진 않았다.

"왜, 그동안 서하가 워낙 바빠서 딱 생일 당일에 챙긴 적이 별로 없 었잖아! 이번에 모처럼 귀국하는 날짜가 맞길래 몰래 준비했는데."

혜원 언니는 몰래 준비한 파티가 성공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얼굴이 었다.

"일단 초부터 불어요."

표연원이 적절하게 중재를 했다. 그래, 케이크에 꽂은 초가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후우.

가볍게 불자 촛불이 꺼졌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귀국 비 행기는 훨씬 일찍 도착했던데."

"죄송해요. 전 기다리는 줄도 모르 고…… 다른 데 급한 볼일이 있어 서 거길 먼저 다녀왔어요."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이윽고, 혜원 언니가 케이크를 먹 자며 식탁에 다 같이 둘러앉자 좀실감이 났다.

따스한 집, 날 사랑해주는 가족.

그 존재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큰 위안을 받는지. 한 번 더 실감할 수 있었다.

"고마워요. 둘 다."

백목련의 말대로, 이 순간만큼은 다른 걸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이런 날엔 얼굴에 케이크 좀 발라줘야 하는 건데 참는다!"

"미역국 끓여뒀으니까 내일 먹어 요. 오늘은 너무 늦은 것 같네요."

다정한 말들이 쏟아져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오늘따라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 들을 너무 많이 되새겨서 그런 걸 지도 몰랐다.

"그럼, 한 번 더!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요!"

이 둘을 지키려면, 나는 더욱 굳세 져야 했다.

나는 남몰래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무너질 순 없었다. 내겐 앞 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었으 니까.

-'매달리는 것'입니다. 뭐라도 좋 으니 끈질기게 매달리는 인재가 필 요합니다. 지금 우리에겐.

-뭐든 좋아요. 매달릴 목표 하나 라도 있으면, 누구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까.

최우도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 것 은, 아마도 그 때문일 거다.

내가 몇 번이고 매달려야 하는 이 유를 다시 한번 확인하려고.

* * *

다음 날, 나는 이운우를 찾아갔다.

그에게 이번에 열린 전쟁 게이트 에 특이점이 없는지 물어보니, 그는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대답했다.

"좀 특이한 전략을 쓰는 곳이 있 긴 하지. 해외에서 한번 보고된 사 례와 유사해 보이는데……

그가 서류를 뒤적이다 막 생각났 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너한테 이 얘길 한 적이 있네."

그가 파일철 하나를 건넸다. 제일

앞에 'DUMMY'라고 적혀 있었다.

"일종의 코드 네임이야. 상대방도 인재가 한정적이니 같은 사령관을 여러 번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 성격이 특징적이면 이렇게 코드 네 임이 붙지."

전시에 종종 사용되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코드 네임을 붙이면 상대 를 파악하기 훨씬 수월해진다.

"터무니없이 쉽게 져주는 걸로 방 심을 유도한다……고 보고되어 있 는데, 최근에 비슷한 성향을 가진 게이트가 있어."

찾았다. 5황자.

나는 남몰래 눈을 반짝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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